배당·자사주 취득 등 기업들이 내놓은 돈 작년 21조원 넘어
기업들이 사업을 하는 데 필요한 자금을 구하는 방법은 뭐가 있을까.
은행에서 돈을 빌리거나 회사채를 발행해 자금을 조달할 수 있다.
이런 방법은 이자를 물어야 하는 것도 부담이 크지만 높은 이자를 주면서도 필요한 돈을 구하기 어렵다는 게 문제다.
특히 마땅한 담보나 신용이 부족한 신생기업이 은행 대출을 받거나 회사채를 발행하는 것은 무척 힘들다.
또 대기업이라도 대규모 투자에 필요한 자금을 한꺼번에 조달하기는 어려울 때가 많다.
그렇다면 은행과 회사채가 아닌 방법은 없을까.
주식시장에 상장해 증시에서 자금을 조달하면 된다.
증시 자금을 이용하려면 우선 엄격한 상장요건을 갖춰 증시 상장에 성공해야 한다.
상장한 뒤에는 '상장유지 비용'을 물어야 한다.
상장기업들의 상장유지 비용에 대해 알아보자.
⊙ 상장유지 비용이란
증시에 상장하면 기업들은 주주들에게 의무를 지게 된다.
기업공개(IPO)와 유상증자 등을 통해 자사에 돈을 투자한 주주들에게 기업 수익의 일정 부분을 배당으로 돌려줘야 하고,주가 부양을 위해 자사주를 사들여야 하는 경우가 많다.
바로 이 배당과 자사주 취득이 상장기업들이 부담해야 하는 상장유지 비용이다.
비상장기업은 증시에서 자금을 얻지 않는 대신 이런 부담에서 자유롭다.
비상장기업들도 자사 주주들에게 배당을 하지만 상장기업보다 일반적으로 주주의 수가 적기 때문에 부담이 크지 않다.
반면 상장기업들은 외국인 주주들의 고배당 요구에 어쩔 수 없이 큰 돈을 배당해야 할 때가 많다.
또 주가가 떨어지면 주주들은 자사주를 사서 주가를 높이라고 목소리를 높인다.
게다가 회사 경영권을 노린 적대적 M&A(인수·합병) 우려가 생기면 경영권을 방어하기 위해 그 기업은 자사주를 사들여야 한다.
증시에서 자금을 조달하는 이점을 누리는 대신 적지 않은 상장유지 비용을 치르는 것이다.
증시 전문가들은 우선 배당과 자사주 취득을 통해 주주중시 경영이 자리잡고 있는 점은 긍정적이라고 평가한다.
외국계 투자자들의 무리한 압력에 굴복한 측면이 있다 하더라도 국내 기업들의 배당과 자사주 취득을 통한 주주환원은 한 단계 도약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기업들의 미래 경쟁력 확보를 위한 투자가 활발해질 수 있도록 증시에서의 자금조달이 더욱 원활해져야 한다고 지적한다.
⊙ 지난해 상장유지 비용 21조9000억여원
그렇다면 상장유지 비용은 얼마나 될까.
지난해 상장기업들은 현금배당과 자사주 취득에 21조9343억원을 썼다.
이에 비해 IPO와 유상증자 등을 통해 증시에서 조달한 자금은 19조5118억원에 그쳤다.
상장기업들이 조달한 자금보다 상장유지 비용으로 지불한 금액이 더 많았다는 얘기다.
이 때문에 기업의 자금조달이라는 증시 본연의 기능이 원활하게 작동하지 않고 있어 문제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상장유지 비용 문제는 특히 유가증권시장에서 심각하다.
지난해 유가증권시장 상장기업들은 20조3164억원을 투입하고 14조453억원을 조달, 증시에서 얻은 자금보다 증시에 집어넣은 자금이 6조원 이상 많았다.
조달한 자금 가운데 지난해 1월 신한지주가 LG카드 인수를 위해 실시한 유상증자 3조7000억여원을 빼면,투입자금이 조달자금의 두 배에 이르는 셈이다.
2006년에는 현금배당과 자사주 취득을 합친 상장유지 비용이 19조원에 달해 조달자금 5조9000억여원의 3배를 넘었다.
유가증권시장이 상장기업들의 자금줄 역할보다는 기업 자금을 빨아들이는 '블랙홀'로 작용하는 상황이 이어졌다는 얘기다.
증시 전문가들은 "돈이 주식시장에서 기업으로 흘러들어야 하는데 이런 상황은 자금 흐름이 왜곡돼 있는 것을 보여준다"며 "기업들이 증시에서 조달한 자금으로 미래 성장동력에 투자하지 않는다면 국내 증시는 앞으로 기업실적 급감이라는 심각한 도전에 직면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한 전문가는 "조달자금이 늘었다는 점보다는 투입자금보다 여전히 적다는 데 주목해야 한다"며 "한 해 유상증자만 30조원 이상 이뤄지기도 했던 1990년대 말에 비하면 최근 몇 년간은 기업들의 자금조달이 상당히 위축돼 있다"고 지적했다.
유가증권시장과 달리 코스닥시장은 상장기업들의 자금조달이 활발하다.
지난해 5조4665억원을 끌어모으고 1조6179억원을 주주들에게 돌려줘 조달자금이 투입자금보다 3배 이상 많았다.
2006년에는 조달자금(5조2000억여원)이 투입자금(9000억여원)의 5배를 웃돌았다.
이에 따라 코스닥시장은 높은 사업위험으로 은행에서 자금을 얻기 어려운 신생기업들에 돈을 대주는 기능을 비교적 잘 수행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 투자로 수익 돌려주는 게 근본적인 주주환원
상장유지 비용을 줄인다면 그 돈은 어떻게 사용해야 할까.
전문가들은 기업 본연의 활동인 투자에 사용해 기업의 수익성을 높여야 한다고 주문한다.
그 기업이 창출하는 수익을 기대하면서 돈을 투자한 주주들에게 성공적인 투자의 결실을 가져다 줘야 한다는 의미다.
그러나 많은 기업들이 투자활동에서 생기는 위험을 기피하려는 경향이 심해져 증시를 통한 자금조달보다는 주주환원에 집중하고 있다.
여기에 마땅한 투자처를 찾지 못하고 있는 것도 자금조달이 부진한 이유다.
증시 전문가들은 "배당과 자사주 취득이 당장은 주주를 위한 경영이라고 볼 수 있지만 더 근본적이고 장기적인 주주환원은 상장기업들이 증시에서 적극적으로 돈을 조달해 수익성 있는 사업에 투자함으로써 실적을 올리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특히 한국이 고령화사회로 접어들고 베트남 등 신흥국처럼 고도성장을 이어갈 수 없다는 점을 감안하면 상장기업들이 증시에서 모은 자금을 글로벌 투자 전략에 따라 해외 사업에 적극 투자하는 게 바람직하다.
한편 IPO와 유상증자를 비롯 CB(전환사채) BW(신주인수권부사채) 등 주식관련 채권발행 등으로 자금조달이 활발한 코스닥시장과 관련해선 조달자금이 원래 목적대로 투자와 기업운영 등에 쓰이는지 꼼꼼히 따져봐야 한다는 지적이다.
장경영 한국경제신문 기자 longrun@hankyung.com
은행에서 돈을 빌리거나 회사채를 발행해 자금을 조달할 수 있다.
이런 방법은 이자를 물어야 하는 것도 부담이 크지만 높은 이자를 주면서도 필요한 돈을 구하기 어렵다는 게 문제다.
특히 마땅한 담보나 신용이 부족한 신생기업이 은행 대출을 받거나 회사채를 발행하는 것은 무척 힘들다.
또 대기업이라도 대규모 투자에 필요한 자금을 한꺼번에 조달하기는 어려울 때가 많다.
그렇다면 은행과 회사채가 아닌 방법은 없을까.
주식시장에 상장해 증시에서 자금을 조달하면 된다.
증시 자금을 이용하려면 우선 엄격한 상장요건을 갖춰 증시 상장에 성공해야 한다.
상장한 뒤에는 '상장유지 비용'을 물어야 한다.
상장기업들의 상장유지 비용에 대해 알아보자.
⊙ 상장유지 비용이란
증시에 상장하면 기업들은 주주들에게 의무를 지게 된다.
기업공개(IPO)와 유상증자 등을 통해 자사에 돈을 투자한 주주들에게 기업 수익의 일정 부분을 배당으로 돌려줘야 하고,주가 부양을 위해 자사주를 사들여야 하는 경우가 많다.
바로 이 배당과 자사주 취득이 상장기업들이 부담해야 하는 상장유지 비용이다.
비상장기업은 증시에서 자금을 얻지 않는 대신 이런 부담에서 자유롭다.
비상장기업들도 자사 주주들에게 배당을 하지만 상장기업보다 일반적으로 주주의 수가 적기 때문에 부담이 크지 않다.
반면 상장기업들은 외국인 주주들의 고배당 요구에 어쩔 수 없이 큰 돈을 배당해야 할 때가 많다.
또 주가가 떨어지면 주주들은 자사주를 사서 주가를 높이라고 목소리를 높인다.
게다가 회사 경영권을 노린 적대적 M&A(인수·합병) 우려가 생기면 경영권을 방어하기 위해 그 기업은 자사주를 사들여야 한다.
증시에서 자금을 조달하는 이점을 누리는 대신 적지 않은 상장유지 비용을 치르는 것이다.
증시 전문가들은 우선 배당과 자사주 취득을 통해 주주중시 경영이 자리잡고 있는 점은 긍정적이라고 평가한다.
외국계 투자자들의 무리한 압력에 굴복한 측면이 있다 하더라도 국내 기업들의 배당과 자사주 취득을 통한 주주환원은 한 단계 도약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기업들의 미래 경쟁력 확보를 위한 투자가 활발해질 수 있도록 증시에서의 자금조달이 더욱 원활해져야 한다고 지적한다.
⊙ 지난해 상장유지 비용 21조9000억여원
그렇다면 상장유지 비용은 얼마나 될까.
지난해 상장기업들은 현금배당과 자사주 취득에 21조9343억원을 썼다.
이에 비해 IPO와 유상증자 등을 통해 증시에서 조달한 자금은 19조5118억원에 그쳤다.
상장기업들이 조달한 자금보다 상장유지 비용으로 지불한 금액이 더 많았다는 얘기다.
이 때문에 기업의 자금조달이라는 증시 본연의 기능이 원활하게 작동하지 않고 있어 문제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상장유지 비용 문제는 특히 유가증권시장에서 심각하다.
지난해 유가증권시장 상장기업들은 20조3164억원을 투입하고 14조453억원을 조달, 증시에서 얻은 자금보다 증시에 집어넣은 자금이 6조원 이상 많았다.
조달한 자금 가운데 지난해 1월 신한지주가 LG카드 인수를 위해 실시한 유상증자 3조7000억여원을 빼면,투입자금이 조달자금의 두 배에 이르는 셈이다.
2006년에는 현금배당과 자사주 취득을 합친 상장유지 비용이 19조원에 달해 조달자금 5조9000억여원의 3배를 넘었다.
유가증권시장이 상장기업들의 자금줄 역할보다는 기업 자금을 빨아들이는 '블랙홀'로 작용하는 상황이 이어졌다는 얘기다.
증시 전문가들은 "돈이 주식시장에서 기업으로 흘러들어야 하는데 이런 상황은 자금 흐름이 왜곡돼 있는 것을 보여준다"며 "기업들이 증시에서 조달한 자금으로 미래 성장동력에 투자하지 않는다면 국내 증시는 앞으로 기업실적 급감이라는 심각한 도전에 직면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한 전문가는 "조달자금이 늘었다는 점보다는 투입자금보다 여전히 적다는 데 주목해야 한다"며 "한 해 유상증자만 30조원 이상 이뤄지기도 했던 1990년대 말에 비하면 최근 몇 년간은 기업들의 자금조달이 상당히 위축돼 있다"고 지적했다.
유가증권시장과 달리 코스닥시장은 상장기업들의 자금조달이 활발하다.
지난해 5조4665억원을 끌어모으고 1조6179억원을 주주들에게 돌려줘 조달자금이 투입자금보다 3배 이상 많았다.
2006년에는 조달자금(5조2000억여원)이 투입자금(9000억여원)의 5배를 웃돌았다.
이에 따라 코스닥시장은 높은 사업위험으로 은행에서 자금을 얻기 어려운 신생기업들에 돈을 대주는 기능을 비교적 잘 수행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 투자로 수익 돌려주는 게 근본적인 주주환원
상장유지 비용을 줄인다면 그 돈은 어떻게 사용해야 할까.
전문가들은 기업 본연의 활동인 투자에 사용해 기업의 수익성을 높여야 한다고 주문한다.
그 기업이 창출하는 수익을 기대하면서 돈을 투자한 주주들에게 성공적인 투자의 결실을 가져다 줘야 한다는 의미다.
그러나 많은 기업들이 투자활동에서 생기는 위험을 기피하려는 경향이 심해져 증시를 통한 자금조달보다는 주주환원에 집중하고 있다.
여기에 마땅한 투자처를 찾지 못하고 있는 것도 자금조달이 부진한 이유다.
증시 전문가들은 "배당과 자사주 취득이 당장은 주주를 위한 경영이라고 볼 수 있지만 더 근본적이고 장기적인 주주환원은 상장기업들이 증시에서 적극적으로 돈을 조달해 수익성 있는 사업에 투자함으로써 실적을 올리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특히 한국이 고령화사회로 접어들고 베트남 등 신흥국처럼 고도성장을 이어갈 수 없다는 점을 감안하면 상장기업들이 증시에서 모은 자금을 글로벌 투자 전략에 따라 해외 사업에 적극 투자하는 게 바람직하다.
한편 IPO와 유상증자를 비롯 CB(전환사채) BW(신주인수권부사채) 등 주식관련 채권발행 등으로 자금조달이 활발한 코스닥시장과 관련해선 조달자금이 원래 목적대로 투자와 기업운영 등에 쓰이는지 꼼꼼히 따져봐야 한다는 지적이다.
장경영 한국경제신문 기자 longr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