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은 생명과 이익을 동시에 낳는 어머니다
지구상에 괴물이 나타났다.
이 괴물은 다른 생물들의 보금자리를 무참하게 파괴하고 생명을 도륙한다.
도무지 만족을 모르는 괴물의 광포한 탐욕성은 급기야는 전 지구적 비상사태를 초래해 대규모 멸종이 일어나고 생태계가 붕괴된다.
그러나 불행인지 다행인지,이 괴물의 어리석음 때문에 이 괴물마저도 이제 종말의 어두운 운명을 바라보고 있다.
그리고 괴물의 이름은 바로 우리,인간이다.
지구의 다른 생명체들에게는 틀림없이 끔찍한 괴물로 비쳐질 우리 인간이 자업자득의 결과 지금 마주하고 있는 위험한 시대를 세계적인 생물학자 에드워드 윌슨은 '병목(bottleneck)의 세기'라고 이름 붙였다.
'병목의 세기'는 인류가 우리 자신과 모든 지구 생명을 절멸시킬 수 있는 '병목'으로 몰아넣은 치명적 시대이다.
'인간 본성에 대하여''개미''통섭' 등 유명한 저술에서 깊이 있는 혜안을 보여준 에드워드 윌슨은 '생명의 미래'에서 인류의 그간 행보를 비판하며 우리가 감당하여야 하는 지구의 미래를 어둡게 전망한다.
어쩌면 우리는 윌슨의 말대로 22세기의 후손들에게 다음과 같은 유언장을 남겨야 할지도 모른다.
"여기저기 사용하지 않고 남겨 놓은 얼마 안되는 야생 환경과 함께,하와이의 합성 정글, 그리고 한때는 삼림으로 울창했던 아마존 잡목 지대를 우리는 당신들에게 유산으로 남깁니다.
당신들이 할 일은 유전공학으로 새로운 종류의 동식물을 창조하고 이들을 독립적인 인공 생태계에 적응시키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임무가 불가능할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이해합니다.
부디 우리의 사과와 함께, 과거에 존재했던 놀라운 세계를 보여주는 시청각 자료를 받아 주십시오."
'생명의 미래'에서 이렇게 암울한 유언장을 미리 작성한 윌슨은 인간을 '생물권의 연쇄 살인범'이라고 명명한다.
그간 인류가 벌여 온 환경파괴 때문이다.
'생명의 미래'는 장기적 시계를 갖추지 못한 인간들이 단기적 탐욕을 위해 다른 생물들을 어떻게 절멸시켰는지,그리고 그 결과가 어떻게 나타났는지를 다음과 같이 체계적으로 밝히고 있다.
⊙ 원문읽기
생물 다양성을 파괴할 때 인간들은 먹이사슬의 위에서 아래로 내려오며 동식물들을 잡아먹는다.
가장 먼저 사라지는 동물은 크고,느리며,맛이 있는 종류이다.
사람들이 미개척지에 들어가면 어디서나 대부분의 대형 동물이 곧 절멸하고 만다는 것은 보편적인 원리이다.
또한 쉽게 잡을 수 있는 육상 조류의 대부분,그리고 거북의 상당 부분이 절멸했다.
작고 잽싼 종들은 숫자가 감소했지만 절멸하지는 않았다.
(중략) 최근의 고고학적인 연구 덕분에 갑작스러운 대량 절멸이 아주 자세하게 밝혀지고 있다.
아마도 처음에는 100명도 안되는 정착민들이 도래했을 것이며,모아가 마지막으로 사라질 무렵에는 1000여명이 살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작은 인간 집단은 16만마리로 추정되는 모아를 절멸시키기에 충분했다.
날지 못하고 순했으리라고 추정되는 이 새들은 쉽게 잡혔다.
보통 상체 부분을 먹은 후에 나머지는 버리거나 개에게 먹였다.
둥지가 발견될 때마다 알도 먹어 치웠음이 틀림 없다.
비록 잡아 먹는 사람의 숫자는 적었지만,모아는 그런 고강도의 포식을 견뎌낼 수가 없었다.
(중략) 뉴질랜드 점령의 피해가 더욱 복잡하고 심각하게 진행되었다.
정착민들이 의도하지 않게 데리고 온 쥐들의 수가 불어나자 그들은 방어 능력이 없는 작은 조류,파충류,그리고 양서류의 치명적인 적이 되었다.
인구가 증가하면서 마오리 족은 넓은 지역을 벌채하거나 태워서 조류의 일부 서식처를 한계 수준까지 감소시켰다.
날지 못하는 8종의 조류를 포함한 20종의 다른 육상 조류들이 절멸했다.
1800년대에 새로 도착한 영국인 정착민들이 추가적으로 외래 동식물 종을 도입하고 자연 환경을 경작지와 목초 지대로 바꾸면서 뉴질랜드 전역에 치명적인 칼날을 휘둘렀다.
▶ 해석
윌슨은 인류가 주변 환경에 미친 급작스러운 변화를 '학살'이라는 단어를 통해 표현한다.
이를테면 뉴질랜드에서의 동식물 대량 멸종은 뉴질랜드 학살,마다가스카르에서의 대규모 생물권 파괴는 마다가스카르 학살인 것이다.
윌슨은 인류가 지금까지 다섯 가지의 대표적인 방법으로 자연을 파괴했다고 분석하면서 그 방식을 'HIPPO'라고 정리하였다.
'HIPPO'는 서식처 파괴(Habitat Destruction),침입종(Invasive Species),오염(Pollution),인구(Population),과수확(Overharvesting)의 앞 글자를 각각 따서 만든 조어이다.
자연파괴에 천부적인 재능을 지닌 인류의 활동 덕에 2100년의 자연계는 엄청난 고통을 겪을 것이라고 예측된다.
지금과 같은 추세라면 '생명의 미래'에서 전망하는 22세기 미래는 미개척지와 야생 지역은 대부분 사라지고,아마존이나 콩고,혹은 뉴기니의 황무지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으며,생물 다양성의 중요 지역들과 더불어 반 이상의 동식물 종이 지구에서 사라지는 시대이다.
그러나 윌슨은 '생명의 미래'에서 체념하는 비관주의자의 모습으로 머무르지는 않는다.
그리고 그가 전망하는 '생명의 미래'가 암울하기만 한 것도 아니다.
⊙ 원문읽기
사람이 아닌 생명을 사랑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알면 사랑하게 된다.
다른 생명을 사랑할 수 있는 포용력과 경향은 사람의 본능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다.
이 현상은 '생명사랑(biophilia)'이라고 정의되는데,이는 생명과 생명을 닮은 형태에 대하여 관심을 가지려는,어떤 경우에는 이들과 감정적으로 교제하려는 천부적인 경향으로 정의할 수 있다.
사람은 살아 있는 것과 생명이 없는 것을 확연하게 구별한다.
우리는 다른 생물에서 볼 수 있는 신기함과 다양성을 존중한다.
우리는 심해나,미개척림이나,혹은 궁벽한 산악 지대의 알지 못하는 생물을 상상하며 흥분한다.
심지어 다른 행성에 생물이 있다는 생각에 몰두하기도 한다.
공룡은 사라진 생물 다양성에 대한 우리의 아이콘이다.
미국에서는 더 많은 사람들이 프로 스포츠 경기를 보러 가기보다는 동물원을 관람하기를 더 좋아한다.
이들이 워싱턴의 국립 동물원에서 자주 찾는 장소는 신기함과 다양성을 최대로 보여 주는 곤충 전시관이다.
비록 인간이 지금까지 환경적으로 '괴물'과도 같은 행각을 벌이기는 하였으나, 인간의 본질 자체가 괴물은 아니라고 윌슨은 말한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자연을 사랑하는 마음,생명을 사랑하는 태도가 있다.
그리고 이 사랑이 바로 병목의 세기에 인류와 다른 생명체들을 구하는 단초가 될 것이다.
자신이 선보인 가상의 유언장과 같은 일이 실제로 벌어지지 않으려면,인류가 모든 노력을 다해 지구 생명들과 함께 '병목의 시대'를 안전하게 통과하는 지혜를 강구해야 한다는 것이 윌슨이 궁극적으로 하고 싶은 말이다.
생명의 어두운 미래를 밝은 미래로 바꾸는 노력에 다 함께 동참하자고 '생명의 미래'는 호소한다.
그리고 생명의 밝은 미래는 자연 생태계의 소중함에 대한 올바른 인식에서 시작한다.
하지만 자연의 보호가 단순히 생명사랑이라는 이유밖에 없는 것은 아니다.
윌슨은 '생명의 미래'에서 자연주의자와 경제주의자들이 이제 그만 다투고 의기투합하라고 이야기한다.
왜냐하면 자연의 가치는 경제적인 가치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 원문읽기
비록 대략적으로나마 무엇이 사라지고 있는지를 지금 측정해 보는 방법은 없을까?
어떠한 시도를 하더라도 과소평가될 수밖에 없지만 어쨌든 거시경제학에서 시작해 보자.
1997년 경제학자들과 환경학자들로 구성된 국제 연구진은 자연계의 생물 환경에서 인류가 공짜로 사용하는 환경 서비스를 달러로 환산했다.
여러 가지 데이터베이스를 사용하여 이들은 환경 서비스가 무려 연간 33조달러 이상이라고 추정했다.
이 액수는 세계 모든 나라의 국민총생산,즉 18조달러의 세계 총생산의 두 배에 가깝다.
생태계 서비스는 사람의 존재를 부양하는 생물권에서 유래한 물질,에너지 정보의 흐름으로 정의된다.
여기에는 대기와 기후의 조절,담수의 정화와 유지,작물의 수분,목재,목초,그리고 생물 연료 등이 포함된다.
만약 인류가 공짜로 제공되는 자연의 경제를 자신이 제조한 대체품으로 바꾸려고 노력한다면 전 세계의 국민총생산은 적어도 33조달러 이상으로 늘어날 것이라는 1997년의 평가는 더욱 커다란 설득력을 가질 수 있다.
하지만 이런 일은 상상으로만 가능하다.
자연의 생태계를 완전히,적어도 대부분 대체하는 것은 경제적으로,심지어는 물리적으로도 불가능하며 만약 시도한다고 하면 우리는 죽어 버리고 말 것이다.
생태경제학자는 생태계 이용 가능성이 줄어들 때마다,이의 감소 속도에 대한 생태계 서비스 값의 변화 속도로 정의되는 한계 가치가 급격하게 증가한다고 이를 설명한다.
만약 너무 많은 것을 인위적으로 대체하려고 한다면 자연적인 방법과 인위적인 방법의 조합을 통해 우리에게 필요한 서비스를 만들어 내는 인간의 수용 능력을 초과하게 된다.
따라서 인공적인 수단에 너무 의존하게 된다면 생물권뿐만 아니라 인류 자체도 위험해진다.
▶ 해석
우리는 자연의 보전을 통해 이익을 거둘 수 있다.
윌슨은 뉴욕시의 예화를 드는데,뉴욕시는 상수원인 캐츠킬 유역의 개발을 놓고 두 가지 선택을 해야 했다.
첫째,60억달러 내지 80억달러의 자본 비용과 매년 3억달러의 운전 비용을 투입하여 캐츠킬 유역을 대체할 여과 장치를 세운다.
둘째,10억달러를 들여 캐츠킬 유역의 자연을 복구한다.
후자의 경우 유지비용은 소요되지 않는다.
당연히 당국자들은 자연을 보전하는 선택을 내렸다.
비단 뉴욕시의 경우뿐만 아니라,개발도상국의 보호지역 인근에 사는 주민들도 자연환경을 이용하여 경제적인 이득을 얻을 수 있다.
숲을 밀어 버리고 농사를 짓는 것보다 생태 관광,생물 탐색,그리고 야생지의 탄소 배출권 거래가 더 많은 소득을 가져다 주기 때문이다.
지구는 섬세한 생명의 막으로 감싸여 있고,그 섬세한 생명의 막은 우리에게 생명과 경제적 이익을 동시에 낳아주는 어머니이다.
생명의 미래는 우리를 둘러싼 이 생명의 막의 소중한 가치를 제대로 인식할 때 밝아질 것이다.
홍보람 s논술 선임연구원 nikehbr@nonsul.com
지구상에 괴물이 나타났다.
이 괴물은 다른 생물들의 보금자리를 무참하게 파괴하고 생명을 도륙한다.
도무지 만족을 모르는 괴물의 광포한 탐욕성은 급기야는 전 지구적 비상사태를 초래해 대규모 멸종이 일어나고 생태계가 붕괴된다.
그러나 불행인지 다행인지,이 괴물의 어리석음 때문에 이 괴물마저도 이제 종말의 어두운 운명을 바라보고 있다.
그리고 괴물의 이름은 바로 우리,인간이다.
지구의 다른 생명체들에게는 틀림없이 끔찍한 괴물로 비쳐질 우리 인간이 자업자득의 결과 지금 마주하고 있는 위험한 시대를 세계적인 생물학자 에드워드 윌슨은 '병목(bottleneck)의 세기'라고 이름 붙였다.
'병목의 세기'는 인류가 우리 자신과 모든 지구 생명을 절멸시킬 수 있는 '병목'으로 몰아넣은 치명적 시대이다.
'인간 본성에 대하여''개미''통섭' 등 유명한 저술에서 깊이 있는 혜안을 보여준 에드워드 윌슨은 '생명의 미래'에서 인류의 그간 행보를 비판하며 우리가 감당하여야 하는 지구의 미래를 어둡게 전망한다.
어쩌면 우리는 윌슨의 말대로 22세기의 후손들에게 다음과 같은 유언장을 남겨야 할지도 모른다.
"여기저기 사용하지 않고 남겨 놓은 얼마 안되는 야생 환경과 함께,하와이의 합성 정글, 그리고 한때는 삼림으로 울창했던 아마존 잡목 지대를 우리는 당신들에게 유산으로 남깁니다.
당신들이 할 일은 유전공학으로 새로운 종류의 동식물을 창조하고 이들을 독립적인 인공 생태계에 적응시키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임무가 불가능할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이해합니다.
부디 우리의 사과와 함께, 과거에 존재했던 놀라운 세계를 보여주는 시청각 자료를 받아 주십시오."
'생명의 미래'에서 이렇게 암울한 유언장을 미리 작성한 윌슨은 인간을 '생물권의 연쇄 살인범'이라고 명명한다.
그간 인류가 벌여 온 환경파괴 때문이다.
'생명의 미래'는 장기적 시계를 갖추지 못한 인간들이 단기적 탐욕을 위해 다른 생물들을 어떻게 절멸시켰는지,그리고 그 결과가 어떻게 나타났는지를 다음과 같이 체계적으로 밝히고 있다.
⊙ 원문읽기
생물 다양성을 파괴할 때 인간들은 먹이사슬의 위에서 아래로 내려오며 동식물들을 잡아먹는다.
가장 먼저 사라지는 동물은 크고,느리며,맛이 있는 종류이다.
사람들이 미개척지에 들어가면 어디서나 대부분의 대형 동물이 곧 절멸하고 만다는 것은 보편적인 원리이다.
또한 쉽게 잡을 수 있는 육상 조류의 대부분,그리고 거북의 상당 부분이 절멸했다.
작고 잽싼 종들은 숫자가 감소했지만 절멸하지는 않았다.
(중략) 최근의 고고학적인 연구 덕분에 갑작스러운 대량 절멸이 아주 자세하게 밝혀지고 있다.
아마도 처음에는 100명도 안되는 정착민들이 도래했을 것이며,모아가 마지막으로 사라질 무렵에는 1000여명이 살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작은 인간 집단은 16만마리로 추정되는 모아를 절멸시키기에 충분했다.
날지 못하고 순했으리라고 추정되는 이 새들은 쉽게 잡혔다.
보통 상체 부분을 먹은 후에 나머지는 버리거나 개에게 먹였다.
둥지가 발견될 때마다 알도 먹어 치웠음이 틀림 없다.
비록 잡아 먹는 사람의 숫자는 적었지만,모아는 그런 고강도의 포식을 견뎌낼 수가 없었다.
(중략) 뉴질랜드 점령의 피해가 더욱 복잡하고 심각하게 진행되었다.
정착민들이 의도하지 않게 데리고 온 쥐들의 수가 불어나자 그들은 방어 능력이 없는 작은 조류,파충류,그리고 양서류의 치명적인 적이 되었다.
인구가 증가하면서 마오리 족은 넓은 지역을 벌채하거나 태워서 조류의 일부 서식처를 한계 수준까지 감소시켰다.
날지 못하는 8종의 조류를 포함한 20종의 다른 육상 조류들이 절멸했다.
1800년대에 새로 도착한 영국인 정착민들이 추가적으로 외래 동식물 종을 도입하고 자연 환경을 경작지와 목초 지대로 바꾸면서 뉴질랜드 전역에 치명적인 칼날을 휘둘렀다.
▶ 해석
윌슨은 인류가 주변 환경에 미친 급작스러운 변화를 '학살'이라는 단어를 통해 표현한다.
이를테면 뉴질랜드에서의 동식물 대량 멸종은 뉴질랜드 학살,마다가스카르에서의 대규모 생물권 파괴는 마다가스카르 학살인 것이다.
윌슨은 인류가 지금까지 다섯 가지의 대표적인 방법으로 자연을 파괴했다고 분석하면서 그 방식을 'HIPPO'라고 정리하였다.
'HIPPO'는 서식처 파괴(Habitat Destruction),침입종(Invasive Species),오염(Pollution),인구(Population),과수확(Overharvesting)의 앞 글자를 각각 따서 만든 조어이다.
자연파괴에 천부적인 재능을 지닌 인류의 활동 덕에 2100년의 자연계는 엄청난 고통을 겪을 것이라고 예측된다.
지금과 같은 추세라면 '생명의 미래'에서 전망하는 22세기 미래는 미개척지와 야생 지역은 대부분 사라지고,아마존이나 콩고,혹은 뉴기니의 황무지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으며,생물 다양성의 중요 지역들과 더불어 반 이상의 동식물 종이 지구에서 사라지는 시대이다.
그러나 윌슨은 '생명의 미래'에서 체념하는 비관주의자의 모습으로 머무르지는 않는다.
그리고 그가 전망하는 '생명의 미래'가 암울하기만 한 것도 아니다.
⊙ 원문읽기
사람이 아닌 생명을 사랑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알면 사랑하게 된다.
다른 생명을 사랑할 수 있는 포용력과 경향은 사람의 본능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다.
이 현상은 '생명사랑(biophilia)'이라고 정의되는데,이는 생명과 생명을 닮은 형태에 대하여 관심을 가지려는,어떤 경우에는 이들과 감정적으로 교제하려는 천부적인 경향으로 정의할 수 있다.
사람은 살아 있는 것과 생명이 없는 것을 확연하게 구별한다.
우리는 다른 생물에서 볼 수 있는 신기함과 다양성을 존중한다.
우리는 심해나,미개척림이나,혹은 궁벽한 산악 지대의 알지 못하는 생물을 상상하며 흥분한다.
심지어 다른 행성에 생물이 있다는 생각에 몰두하기도 한다.
공룡은 사라진 생물 다양성에 대한 우리의 아이콘이다.
미국에서는 더 많은 사람들이 프로 스포츠 경기를 보러 가기보다는 동물원을 관람하기를 더 좋아한다.
이들이 워싱턴의 국립 동물원에서 자주 찾는 장소는 신기함과 다양성을 최대로 보여 주는 곤충 전시관이다.
비록 인간이 지금까지 환경적으로 '괴물'과도 같은 행각을 벌이기는 하였으나, 인간의 본질 자체가 괴물은 아니라고 윌슨은 말한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자연을 사랑하는 마음,생명을 사랑하는 태도가 있다.
그리고 이 사랑이 바로 병목의 세기에 인류와 다른 생명체들을 구하는 단초가 될 것이다.
자신이 선보인 가상의 유언장과 같은 일이 실제로 벌어지지 않으려면,인류가 모든 노력을 다해 지구 생명들과 함께 '병목의 시대'를 안전하게 통과하는 지혜를 강구해야 한다는 것이 윌슨이 궁극적으로 하고 싶은 말이다.
생명의 어두운 미래를 밝은 미래로 바꾸는 노력에 다 함께 동참하자고 '생명의 미래'는 호소한다.
그리고 생명의 밝은 미래는 자연 생태계의 소중함에 대한 올바른 인식에서 시작한다.
하지만 자연의 보호가 단순히 생명사랑이라는 이유밖에 없는 것은 아니다.
윌슨은 '생명의 미래'에서 자연주의자와 경제주의자들이 이제 그만 다투고 의기투합하라고 이야기한다.
왜냐하면 자연의 가치는 경제적인 가치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 원문읽기
비록 대략적으로나마 무엇이 사라지고 있는지를 지금 측정해 보는 방법은 없을까?
어떠한 시도를 하더라도 과소평가될 수밖에 없지만 어쨌든 거시경제학에서 시작해 보자.
1997년 경제학자들과 환경학자들로 구성된 국제 연구진은 자연계의 생물 환경에서 인류가 공짜로 사용하는 환경 서비스를 달러로 환산했다.
여러 가지 데이터베이스를 사용하여 이들은 환경 서비스가 무려 연간 33조달러 이상이라고 추정했다.
이 액수는 세계 모든 나라의 국민총생산,즉 18조달러의 세계 총생산의 두 배에 가깝다.
생태계 서비스는 사람의 존재를 부양하는 생물권에서 유래한 물질,에너지 정보의 흐름으로 정의된다.
여기에는 대기와 기후의 조절,담수의 정화와 유지,작물의 수분,목재,목초,그리고 생물 연료 등이 포함된다.
만약 인류가 공짜로 제공되는 자연의 경제를 자신이 제조한 대체품으로 바꾸려고 노력한다면 전 세계의 국민총생산은 적어도 33조달러 이상으로 늘어날 것이라는 1997년의 평가는 더욱 커다란 설득력을 가질 수 있다.
하지만 이런 일은 상상으로만 가능하다.
자연의 생태계를 완전히,적어도 대부분 대체하는 것은 경제적으로,심지어는 물리적으로도 불가능하며 만약 시도한다고 하면 우리는 죽어 버리고 말 것이다.
생태경제학자는 생태계 이용 가능성이 줄어들 때마다,이의 감소 속도에 대한 생태계 서비스 값의 변화 속도로 정의되는 한계 가치가 급격하게 증가한다고 이를 설명한다.
만약 너무 많은 것을 인위적으로 대체하려고 한다면 자연적인 방법과 인위적인 방법의 조합을 통해 우리에게 필요한 서비스를 만들어 내는 인간의 수용 능력을 초과하게 된다.
따라서 인공적인 수단에 너무 의존하게 된다면 생물권뿐만 아니라 인류 자체도 위험해진다.
▶ 해석
우리는 자연의 보전을 통해 이익을 거둘 수 있다.
윌슨은 뉴욕시의 예화를 드는데,뉴욕시는 상수원인 캐츠킬 유역의 개발을 놓고 두 가지 선택을 해야 했다.
첫째,60억달러 내지 80억달러의 자본 비용과 매년 3억달러의 운전 비용을 투입하여 캐츠킬 유역을 대체할 여과 장치를 세운다.
둘째,10억달러를 들여 캐츠킬 유역의 자연을 복구한다.
후자의 경우 유지비용은 소요되지 않는다.
당연히 당국자들은 자연을 보전하는 선택을 내렸다.
비단 뉴욕시의 경우뿐만 아니라,개발도상국의 보호지역 인근에 사는 주민들도 자연환경을 이용하여 경제적인 이득을 얻을 수 있다.
숲을 밀어 버리고 농사를 짓는 것보다 생태 관광,생물 탐색,그리고 야생지의 탄소 배출권 거래가 더 많은 소득을 가져다 주기 때문이다.
지구는 섬세한 생명의 막으로 감싸여 있고,그 섬세한 생명의 막은 우리에게 생명과 경제적 이익을 동시에 낳아주는 어머니이다.
생명의 미래는 우리를 둘러싼 이 생명의 막의 소중한 가치를 제대로 인식할 때 밝아질 것이다.
홍보람 s논술 선임연구원 nikehbr@nonsu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