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화 애국주의에 물든 성화봉송 현장
반(反)서방 분위기가 고조되면서 지난달 30일 올림픽 개막 D-100일 잔치는 중국인만의 축제가 돼 버렸다.
시내 곳곳에서 개최하려던 문화 행사는 대부분 취소됐다.
베이징의 젊은이들이 많이 모이는 광화루인근 더 플레이스 광장에서 행사를 준비하던 한 중국인은 "행사 전날인 지난달 29일 밤 베이징 공안국에서 이를 취소한다"는 짤막한 통지문을 받았다고 황당해 했다.
올림픽 스타디움에서 마라톤대회가 열리긴 했지만 참석한 외국인은 모두 베이징 시정부의 초청장을 보여줘야 참여할 수 있었다.
홍콩에선 반중국 인사나 인권단체 관계자들이 줄줄이 공항에서 입국을 거부당하고 있다.
조각가이자 인권운동가인 덴마크 옌스 갈시옷을 비롯해 자유티베트학생운동 소속 외국인 등 8명이 홍콩에 발을 들여놓지 못했다.
티베트 망명정부 깃발을 들고 1인 시위를 예고했던 홍콩대 철학과 찬하우만은 오성홍기를 든 중국 유학생들 10여명으로부터 위협을 당했다.
인터넷에선 '매국노'라는 비난이 쏟아진다.
성화봉송 때 이를 탈취하려는 사람으로부터 성화를 지켜내 영웅으로 대접받던 중국의 장애인 펜싱 선수 진징은 까르푸의 불매운동에 대해 거부감을 표명한 뒤 하루 아침에 매국노로 전락했다.
올림픽은 전 세계인이 하나가 되어 펼치는 지상 최대의 평화적 축제로 꼽힌다.
올림픽을 상징하는 오륜기의 동그란 고리 5개는 올림픽정신으로 하나가 된 유럽·아시아·아프리카·오세아니아·아메리카의 5개 대륙을 상징한다.
하지만 이번 베이징 올림픽을 앞두고 오륜기가 휘날리는 모습은 오성홍기로 무장한 중화주의(中華主義) 물결에 밀려 거의 찾아보기 어렵다.
오히려 철저하게 '중국인들만의 축제'가 돼 가는 분위기마저 느껴진다.
과연 무엇이 베이징 올림픽을 이렇게 만들고 있을까?
바로 올림픽의 피할 수 없는 정치성이다.
중국 정부에 있어 이번 베이징 올림픽은 반드시 성공적으로 치러내야 하는 사상 최대의 정치 행사다.
여기엔 55개 소수민족을 '중화민족'이라는 틀로 녹여 체제를 안정시키고 나아가 중국의 우월성을 세계에 과시하려는 의도가 깔려있다.
1840년 아편전쟁 이후 항상 자신들이 서구 제국주의에 침략을 당한 피해자라고 생각해 왔던 중국에 올림픽은 스스로의 위상을 드높일 절호의 기회인 셈이다.
더욱이 덩샤오핑(鄧小平)의 개혁·개방 정책이 30년째 추진되며 쌓인 경제력과 그에 대한 자부심도 만만찮다.
중국의 국내총생산(GDP) 순위는 지난해 미국과 일본 독일에 이어 세계 4위를 기록했다.
하지만 올림픽 개최를 코앞에 두고 벌어진 티베트 유혈진압 사태는 이러한 중국의 의도에 찬물을 끼얹었다.
티베트 사태에 대한 국제사회의 비난이 쏟아지고, 중국의 인권향상과 민주주의 체제 도입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지자 중국인들은 이를 자국 체제를 인정하지 않는 내정간섭으로 여겼다.
여기엔 전 세계에 흩어져 있는 해외 거주 중국인들이 서구인들로부터 오랫동안 업신여김을 당해 오며 키워온 분노도 한몫 했다.
특히 젊은 중국 학생들 사이에선 이번 기회에 반드시 중국의 자존심을 되찾아야 한다는 애국주의가 확산됐다.
박선영 포항공대 중국사 교수는 "개혁·개방 뒤 공산주의 이데올로기를 대체하면서 등장한 것이 중화애국주의"라며 "과거에 중화애국주의는 말에 불과했지만 이를 구체적인 행동으로 실천할 수 있는 계기가 바로 올림픽"이라고 말했다.
박 교수는 "중국인들은 올림픽만 끝나면 중국이 세계 패권의 반열에 오를 수 있다고 생각한다"며 "따라서 중국 유학생들은 올림픽 방해 시도는 폭력을 불사해서라도 막아야 한다고 믿었을 것"이라고 밝혔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지난달 28일 인터넷과 기술의 발달로 국가 간 경계와 무역장벽이 허물어지는 글로벌화 행진에서 이제는 각국이 장벽을 다시 높이는 '신(新)내셔널리즘' 시대로 들어서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보도했다.
따라서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인 토머스 프리드먼이 2005년 글로벌화를 비유한 '세계는 평평하다'는 말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고 주장했다.
2008 베이징 올림픽은 바로 이러한 '신내셔널리즘' 시대의 등장을 가장 정확히 드러내고 있다.
오랫동안 휴화산처럼 잠재돼 있던 중국 중화주의의 본격적인 폭발,이에 대한 외부 국가들의 견제가 절묘하게 어우러져 올림픽이란 매개체로 등장한 것이다.
올림픽 개최가 이제 100일도 남지 않은 지금 과연 이번 베이징 올림픽이 평화의 축제가 될지, 보이지 않는 치열한 정치 전쟁터가 될지 지켜봐야 할 것이다.
이미아 한국경제신문 국제부 기자 mia@hankyung.com
시내 곳곳에서 개최하려던 문화 행사는 대부분 취소됐다.
베이징의 젊은이들이 많이 모이는 광화루인근 더 플레이스 광장에서 행사를 준비하던 한 중국인은 "행사 전날인 지난달 29일 밤 베이징 공안국에서 이를 취소한다"는 짤막한 통지문을 받았다고 황당해 했다.
올림픽 스타디움에서 마라톤대회가 열리긴 했지만 참석한 외국인은 모두 베이징 시정부의 초청장을 보여줘야 참여할 수 있었다.
홍콩에선 반중국 인사나 인권단체 관계자들이 줄줄이 공항에서 입국을 거부당하고 있다.
조각가이자 인권운동가인 덴마크 옌스 갈시옷을 비롯해 자유티베트학생운동 소속 외국인 등 8명이 홍콩에 발을 들여놓지 못했다.
티베트 망명정부 깃발을 들고 1인 시위를 예고했던 홍콩대 철학과 찬하우만은 오성홍기를 든 중국 유학생들 10여명으로부터 위협을 당했다.
인터넷에선 '매국노'라는 비난이 쏟아진다.
성화봉송 때 이를 탈취하려는 사람으로부터 성화를 지켜내 영웅으로 대접받던 중국의 장애인 펜싱 선수 진징은 까르푸의 불매운동에 대해 거부감을 표명한 뒤 하루 아침에 매국노로 전락했다.
올림픽은 전 세계인이 하나가 되어 펼치는 지상 최대의 평화적 축제로 꼽힌다.
올림픽을 상징하는 오륜기의 동그란 고리 5개는 올림픽정신으로 하나가 된 유럽·아시아·아프리카·오세아니아·아메리카의 5개 대륙을 상징한다.
하지만 이번 베이징 올림픽을 앞두고 오륜기가 휘날리는 모습은 오성홍기로 무장한 중화주의(中華主義) 물결에 밀려 거의 찾아보기 어렵다.
오히려 철저하게 '중국인들만의 축제'가 돼 가는 분위기마저 느껴진다.
과연 무엇이 베이징 올림픽을 이렇게 만들고 있을까?
바로 올림픽의 피할 수 없는 정치성이다.
중국 정부에 있어 이번 베이징 올림픽은 반드시 성공적으로 치러내야 하는 사상 최대의 정치 행사다.
여기엔 55개 소수민족을 '중화민족'이라는 틀로 녹여 체제를 안정시키고 나아가 중국의 우월성을 세계에 과시하려는 의도가 깔려있다.
1840년 아편전쟁 이후 항상 자신들이 서구 제국주의에 침략을 당한 피해자라고 생각해 왔던 중국에 올림픽은 스스로의 위상을 드높일 절호의 기회인 셈이다.
더욱이 덩샤오핑(鄧小平)의 개혁·개방 정책이 30년째 추진되며 쌓인 경제력과 그에 대한 자부심도 만만찮다.
중국의 국내총생산(GDP) 순위는 지난해 미국과 일본 독일에 이어 세계 4위를 기록했다.
하지만 올림픽 개최를 코앞에 두고 벌어진 티베트 유혈진압 사태는 이러한 중국의 의도에 찬물을 끼얹었다.
티베트 사태에 대한 국제사회의 비난이 쏟아지고, 중국의 인권향상과 민주주의 체제 도입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지자 중국인들은 이를 자국 체제를 인정하지 않는 내정간섭으로 여겼다.
여기엔 전 세계에 흩어져 있는 해외 거주 중국인들이 서구인들로부터 오랫동안 업신여김을 당해 오며 키워온 분노도 한몫 했다.
특히 젊은 중국 학생들 사이에선 이번 기회에 반드시 중국의 자존심을 되찾아야 한다는 애국주의가 확산됐다.
박선영 포항공대 중국사 교수는 "개혁·개방 뒤 공산주의 이데올로기를 대체하면서 등장한 것이 중화애국주의"라며 "과거에 중화애국주의는 말에 불과했지만 이를 구체적인 행동으로 실천할 수 있는 계기가 바로 올림픽"이라고 말했다.
박 교수는 "중국인들은 올림픽만 끝나면 중국이 세계 패권의 반열에 오를 수 있다고 생각한다"며 "따라서 중국 유학생들은 올림픽 방해 시도는 폭력을 불사해서라도 막아야 한다고 믿었을 것"이라고 밝혔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지난달 28일 인터넷과 기술의 발달로 국가 간 경계와 무역장벽이 허물어지는 글로벌화 행진에서 이제는 각국이 장벽을 다시 높이는 '신(新)내셔널리즘' 시대로 들어서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보도했다.
따라서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인 토머스 프리드먼이 2005년 글로벌화를 비유한 '세계는 평평하다'는 말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고 주장했다.
2008 베이징 올림픽은 바로 이러한 '신내셔널리즘' 시대의 등장을 가장 정확히 드러내고 있다.
오랫동안 휴화산처럼 잠재돼 있던 중국 중화주의의 본격적인 폭발,이에 대한 외부 국가들의 견제가 절묘하게 어우러져 올림픽이란 매개체로 등장한 것이다.
올림픽 개최가 이제 100일도 남지 않은 지금 과연 이번 베이징 올림픽이 평화의 축제가 될지, 보이지 않는 치열한 정치 전쟁터가 될지 지켜봐야 할 것이다.
이미아 한국경제신문 국제부 기자 mi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