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카가와 유키코
와세다대 정치경제학부 교수
☞한국경제신문 4월24일자 A38면
큰 병을 앓았던 환자가 짓는 안도의 미소는 어딘가 약하다.
지난 21일 회담을 끝낸 한·일 두나라 정상의 미소에도 그런 약함이 엿보였다.
일본은 과거사 문제를 들먹이지 않고 '실리'를 강조한 이명박 대통령에 대해 분명한 호의를 나타냈다.
그러나 일본은행 총재 인사 하나 정부 맘대로 못하는 정국에서 책임있는 정치적 결단을 내리긴 어렵다.
호의를 행동으로 옮기기가 쉽지 않을 것이란 얘기다.
정권 말기에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의 의회 비준을 얻어야 하는 미국 정부도 비슷한 처지가 아닐까.
'실리'를 얻는 게 늦어지면 한·미·일 협력체제 재구축에 나선 한국의 '경제 대통령' 입장은 괴로울 것이다.
3년 이상이나 중단됐던 한·일FTA 재교섭은 가장 큰 '실리'중 하나다.
그러나 한국과 일본 모두 그 실리의 본질에선 거리가 있다.
한국의 여론은 아직도 '수출=선(승리)' '수입=악(패배)'의 중상주의적 발상을 버리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대일무역 적자 확대는 '패배' 누적의 감정론으로 연결된다.
적자의 요인을 일본의 기술 이전 부족으로 돌리는 등 4반세기 전의 논의마저 부활하고 있는 것엔 솔직히 놀라움을 금할 수 없다.
액정패널 등의 중간재로 한국에 대한 적자가 늘고 있는 중국이 한국에 똑같은 요구를 한다면 한국은 응할 수 있을까.
일본의 경우도 기업의 권익 확대와 농수산업의 보호를 금과옥조로 삼는 한 FTA협상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글로벌 경쟁은 사업 매수나 매각,기술 표준 형성에의 네트워크화,지식재산권 전략,전문 인재의 이동 등 진정한 의미의 개방적 사업 환경이 원칙이다.
그러나 일본에선 시장 접근이나 경쟁법 등에 대한 글로벌화가 깊이 검토된 적이 거의 없다.
더구나 국내 생산자와 수입자 간 이익 상충마저 조정할 수 없는 농수산 가공품 등은 아예 논외다.
한국과 일본이 FTA체결에만 집착하면 할수록 경제협력 '실리'의 돌파구는 더 안 보일지 모른다.
FTA와 비슷하거나,그 이상의 무역 촉진 효과를 내는 협력 분야는 많다.
예컨대 한·일 간 관세 수준은 전체적으로 그리 높지 않기 때문에 통관 수속이나 물류의 효율성이 경쟁력엔 더 결정적으로 중요하다.
전 세계의 전면적인 관세 철폐는 한국의 국내총생산(GDP)을 불과 1% 정도 늘릴 뿐이지만 통관 효율화 등을 통한 무역 원활화 효과까지 합치면 3% 증가한다는 분석도 있다.
동남아국가연합(아세안·ASEAN)에선 이미 전자 통관의 전제가 되는 관세 분류 번호의 통합이 진행되고 있다.
세계 공통의 네자릿수를 한층 더 심화시켜 아세안 공통의 6자릿수까지 만든 상태다.
관세 분류 번호의 통합은 FTA에 있어서 원산지 증명의 발급 비용을 줄이고,통관 담당자의 자의적 품목 판단을 막는 등 무역 원활화에 크게 기여한다.
그러나 한·일 간에는 그런 기술적인 작업조차 논의된 적이 없다.
검역은 품질로 경쟁해야 하는 한·일의 농수산 무역에서 중요한 요소다.
검역 작업을 신속화하고,문제가 생겼을 때 데이터 교환이나 검역 전문관의 의견교환 등을 통해 원만하게 처리하면 두 나라의 소비자들도 안심할 수 있고 농수산물 교역확대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국 중 서로 이웃 나라이면서도 FTA를 체결하지 못한 경우는 한국과 일본이 유일할 것이다.
때문에 한·일FTA 교섭 재개는 바람직하다.
그러나 무역 증대는 반드시 FTA에 의해서만 실현되는 것이 아니다.
관세 인하 이상의 효과를 갖는 협력 분야는 얼마든지 있다.
서로 규제완화까지 요구하고,결국 실현된다면 그것이야 말로 한·일 간 전략적 파트너십이 아니고 무엇인가.
한국과 일본은 FTA에 대한 '집착'으로부터 해방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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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TA특혜 보다 서로 무역규제 먼저 풀어야
▶ 해설
자유무역협정(FTA;Free Trade Agreement)은 특정 국가가 서로 상대방에 관세를 없애거나 크게 낮춰 특혜를 부여하는 협정이다.
주로 상품 관세를 철폐하는 내용을 골자로 하고 있으며 그 외 서비스 투자 자유 등을 포함하기도 한다.
자유무역협정은 경제통합의 하나로 흔히 유럽연합(EU)을 가장 결속력이 강한 형태의 지역 경제통합, FTA를 가장 느슨한 형태의 지역 경제통합이라 부르기도 한다.
FTA로 대표되는 지역주의(regionalism)는 세계화와 함께 오늘날 국제 경제를 특징짓는 큰 흐름이다.
세계 총무역 중 지역무역협정 내의 무역 비중은 2005년 기준 55%에 달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우리나라도 2004년 칠레와 FTA를 맺었으며 이어 싱가포르, EU, 아세안, 미국과도 FTA를 맺었다.
그러나 정작 가장 가까운 일본과는 1998년부터 실무진 간 협의를 해 오고 있지만 아직 타결을 못하고 있다.
후쿠다 일본 총리는 최근 도쿄에서 열린 양국정상회담에서도 세 번이나 FTA의 필요성을 역설했고 이명박 대통령도 FTA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협상이 더딘 이유는 양국이 철저히 자국 이익만 챙기기 때문으로 보인다.
일본의 대표적인 경제지인 니혼게이자이신문은 22일 "대일 무역적자 해소를 최대 과제로 삼고 있는 한국과 자국 농업을 철저히 수호하고자 하는 일본 사이에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혀 있어 협의가 난항을 겪을 가능성이 있다"고 보도하고 있다.
일본은 관세 철폐로 자동차나 가전제품 등을 한국에 싸게 팔 수 있지만 한국은 제조업 분야에서 얻을 수 있는 이득이 별로 없다.
다만 일본보다 상대적으로 값싼 농산물을 일본에 수출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일본은 이러한 점을 우려해 농산물은 협상대상에서 제외, 철저히 자국 상품을 보호하려하고 있다.
후카가와 교수는 시론에서 경제 협력 '실리'의 돌파구를 찾지 못한 채 한국과 일본이 FTA 체결에만 집착한다고 분석하고 있다.
협상의 한계를 뻔히 보면서 각자의 실리나 이익만 염두에 둔 채 FTA를 서두른다는 것은 말이 안된다고 그는 주장한다.
그는 차라리 관세 인하 이상의 무역 증대 효과를 갖는 다른 방안을 찾으라고 권하고 있다.
통관이나 검역 효율화를 통해 관세 인하 효과를 거두라는 게 그의 논지다.
오춘호 한국경제신문 연구위원 ohchoon@hankyung.com
와세다대 정치경제학부 교수
☞한국경제신문 4월24일자 A38면
큰 병을 앓았던 환자가 짓는 안도의 미소는 어딘가 약하다.
지난 21일 회담을 끝낸 한·일 두나라 정상의 미소에도 그런 약함이 엿보였다.
일본은 과거사 문제를 들먹이지 않고 '실리'를 강조한 이명박 대통령에 대해 분명한 호의를 나타냈다.
그러나 일본은행 총재 인사 하나 정부 맘대로 못하는 정국에서 책임있는 정치적 결단을 내리긴 어렵다.
호의를 행동으로 옮기기가 쉽지 않을 것이란 얘기다.
정권 말기에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의 의회 비준을 얻어야 하는 미국 정부도 비슷한 처지가 아닐까.
'실리'를 얻는 게 늦어지면 한·미·일 협력체제 재구축에 나선 한국의 '경제 대통령' 입장은 괴로울 것이다.
3년 이상이나 중단됐던 한·일FTA 재교섭은 가장 큰 '실리'중 하나다.
그러나 한국과 일본 모두 그 실리의 본질에선 거리가 있다.
한국의 여론은 아직도 '수출=선(승리)' '수입=악(패배)'의 중상주의적 발상을 버리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대일무역 적자 확대는 '패배' 누적의 감정론으로 연결된다.
적자의 요인을 일본의 기술 이전 부족으로 돌리는 등 4반세기 전의 논의마저 부활하고 있는 것엔 솔직히 놀라움을 금할 수 없다.
액정패널 등의 중간재로 한국에 대한 적자가 늘고 있는 중국이 한국에 똑같은 요구를 한다면 한국은 응할 수 있을까.
일본의 경우도 기업의 권익 확대와 농수산업의 보호를 금과옥조로 삼는 한 FTA협상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글로벌 경쟁은 사업 매수나 매각,기술 표준 형성에의 네트워크화,지식재산권 전략,전문 인재의 이동 등 진정한 의미의 개방적 사업 환경이 원칙이다.
그러나 일본에선 시장 접근이나 경쟁법 등에 대한 글로벌화가 깊이 검토된 적이 거의 없다.
더구나 국내 생산자와 수입자 간 이익 상충마저 조정할 수 없는 농수산 가공품 등은 아예 논외다.
한국과 일본이 FTA체결에만 집착하면 할수록 경제협력 '실리'의 돌파구는 더 안 보일지 모른다.
FTA와 비슷하거나,그 이상의 무역 촉진 효과를 내는 협력 분야는 많다.
예컨대 한·일 간 관세 수준은 전체적으로 그리 높지 않기 때문에 통관 수속이나 물류의 효율성이 경쟁력엔 더 결정적으로 중요하다.
전 세계의 전면적인 관세 철폐는 한국의 국내총생산(GDP)을 불과 1% 정도 늘릴 뿐이지만 통관 효율화 등을 통한 무역 원활화 효과까지 합치면 3% 증가한다는 분석도 있다.
동남아국가연합(아세안·ASEAN)에선 이미 전자 통관의 전제가 되는 관세 분류 번호의 통합이 진행되고 있다.
세계 공통의 네자릿수를 한층 더 심화시켜 아세안 공통의 6자릿수까지 만든 상태다.
관세 분류 번호의 통합은 FTA에 있어서 원산지 증명의 발급 비용을 줄이고,통관 담당자의 자의적 품목 판단을 막는 등 무역 원활화에 크게 기여한다.
그러나 한·일 간에는 그런 기술적인 작업조차 논의된 적이 없다.
검역은 품질로 경쟁해야 하는 한·일의 농수산 무역에서 중요한 요소다.
검역 작업을 신속화하고,문제가 생겼을 때 데이터 교환이나 검역 전문관의 의견교환 등을 통해 원만하게 처리하면 두 나라의 소비자들도 안심할 수 있고 농수산물 교역확대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국 중 서로 이웃 나라이면서도 FTA를 체결하지 못한 경우는 한국과 일본이 유일할 것이다.
때문에 한·일FTA 교섭 재개는 바람직하다.
그러나 무역 증대는 반드시 FTA에 의해서만 실현되는 것이 아니다.
관세 인하 이상의 효과를 갖는 협력 분야는 얼마든지 있다.
서로 규제완화까지 요구하고,결국 실현된다면 그것이야 말로 한·일 간 전략적 파트너십이 아니고 무엇인가.
한국과 일본은 FTA에 대한 '집착'으로부터 해방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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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TA특혜 보다 서로 무역규제 먼저 풀어야
▶ 해설
자유무역협정(FTA;Free Trade Agreement)은 특정 국가가 서로 상대방에 관세를 없애거나 크게 낮춰 특혜를 부여하는 협정이다.
주로 상품 관세를 철폐하는 내용을 골자로 하고 있으며 그 외 서비스 투자 자유 등을 포함하기도 한다.
자유무역협정은 경제통합의 하나로 흔히 유럽연합(EU)을 가장 결속력이 강한 형태의 지역 경제통합, FTA를 가장 느슨한 형태의 지역 경제통합이라 부르기도 한다.
FTA로 대표되는 지역주의(regionalism)는 세계화와 함께 오늘날 국제 경제를 특징짓는 큰 흐름이다.
세계 총무역 중 지역무역협정 내의 무역 비중은 2005년 기준 55%에 달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우리나라도 2004년 칠레와 FTA를 맺었으며 이어 싱가포르, EU, 아세안, 미국과도 FTA를 맺었다.
그러나 정작 가장 가까운 일본과는 1998년부터 실무진 간 협의를 해 오고 있지만 아직 타결을 못하고 있다.
후쿠다 일본 총리는 최근 도쿄에서 열린 양국정상회담에서도 세 번이나 FTA의 필요성을 역설했고 이명박 대통령도 FTA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협상이 더딘 이유는 양국이 철저히 자국 이익만 챙기기 때문으로 보인다.
일본의 대표적인 경제지인 니혼게이자이신문은 22일 "대일 무역적자 해소를 최대 과제로 삼고 있는 한국과 자국 농업을 철저히 수호하고자 하는 일본 사이에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혀 있어 협의가 난항을 겪을 가능성이 있다"고 보도하고 있다.
일본은 관세 철폐로 자동차나 가전제품 등을 한국에 싸게 팔 수 있지만 한국은 제조업 분야에서 얻을 수 있는 이득이 별로 없다.
다만 일본보다 상대적으로 값싼 농산물을 일본에 수출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일본은 이러한 점을 우려해 농산물은 협상대상에서 제외, 철저히 자국 상품을 보호하려하고 있다.
후카가와 교수는 시론에서 경제 협력 '실리'의 돌파구를 찾지 못한 채 한국과 일본이 FTA 체결에만 집착한다고 분석하고 있다.
협상의 한계를 뻔히 보면서 각자의 실리나 이익만 염두에 둔 채 FTA를 서두른다는 것은 말이 안된다고 그는 주장한다.
그는 차라리 관세 인하 이상의 무역 증대 효과를 갖는 다른 방안을 찾으라고 권하고 있다.
통관이나 검역 효율화를 통해 관세 인하 효과를 거두라는 게 그의 논지다.
오춘호 한국경제신문 연구위원 ohcho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