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 "경기악화 대비 하려면 추경 불가피"

반 "재정 건전성 훼손하고 인플레 초래"

정부가 추가경정예산안을 편성해 내수를 진작하겠다고 나서면서 경기부양을 위한 추경편성문제가 논란을 빚고 있다.

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은 "올해 경제성장률이 저하될 것이 우려되고 내수 부진과 고용 부진도 심화되는 등 경제지표가 좋지 않다"면서 추가경정예산 편성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특히 정부 측은 현재 추경예산 편성 요건이 전쟁과 대규모 자연재해,경기 침체,대량 실업 등으로 지나치게 제한돼 있다며 한나라당에 국가재정법 개정을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여당인 한나라당에서조차 인위적 경기부양용 추경 편성은 과거 사례에서도 드러났듯이 효과가 미진한 반면 재정 건전화를 훼손하고 물가상승을 초래하는 등 부작용이 만만치 않을 것이라며 반대한다.

야당에서도 내수 진작을 위한 추경 편성은 재정 운용의 정도가 아닐 뿐 아니라 국가재정법상 요건에도 맞지 않는다고 지적한다.

일각에서는 현행 추경예산 편성요건은 2006년 국가재정법 제정 당시 한나라당이 요구했던 것이라며 관련 규정 개정에 대해서도 부정적 반응을 보이고 있다.

문제는 이러한 논란에도 불구하고 정부가 경기부양을 위해 추경예산을 편성하겠다는 게 과연 설득력이 있느냐는 점이다.

⊙ 찬성 측, "경기악화에 대비한 내수진작위해 추경편성 불가피"

추경편성을 찬성하는 쪽에서는 "올 2·4분기 이후 성장률이 급격히 하락할 것으로 예측되는 데다 고용시장이 악화되고 있으며 원유 및 곡물 등 국제원자재 가격 또한 급상승하고 있다"며 이에 선제적으로 대응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다.

이대로 가다가는 경기가 살아나기는커녕 오히려 더 가라앉을 게 뻔하기 때문에 내수 진작을 위한 추가경정예산 편성이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지난해 쓰고 남은 세수(세계잉여금) 15조3000억원을 지방교부세 정산과 국가채무 상환에 우선 투입하고 남은 4조8000억원 중 3조원을 추경예산 편성을 통해 재정지출에 쓴다면 경제성장률을 0.2% 끌어올릴 수 있다는 설명이다.

더욱이 '내수 위축'은 현행 국가재정법에 규정된 추경예산 편성요건, 즉 '경기침체 또는 대량실업 등 대내외 여건에 중대한 변화가 발생했거나 발생할 우려가 있는 경우'에 포함된다고 해석하고 있다.

내수 위축도 넓은 의미의 '경기침체'에 해당된다는 얘기다.

일부에서는 재정지출 확대를 통한 경제성장 추진을 위해 전쟁과 대규모 자연재해,경기침체,대량실업 등으로 엄격히 제한돼 있는 추경예산편성 요건을 완화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 반대 측,"재정확대 통한 경기부양은 인플레 등 부작용만 초래"

이에 대해 반대하는 쪽에서는 추경편성과 관련된 현행 국가재정법 규정을 지나치게 포괄적으로 해석하는 것은 정당성을 확보하기 어렵다고 지적한다.

현재와 같은 상황에서 추경편성이 이뤄지면 국가재정법 자체가 유명무실해질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더욱이 한나라당은 정부의 인위적인 경기부양을 막겠다며 현행 추경예산 편성요건을 강화한 국가재정법을 제정한 지 불과 1년6개월여 만에 법 개정을 통해 이를 완화하겠다는 것은 자기모순이라고 꼬집는다.

게다가 재정을 풀어 경기를 부추기는 것은 그 효과도 의심스러울 뿐더러 재정 건전화를 훼손하고 물가상승을 초래하는 등 부작용 또한 만만치 않을 것이라고 우려한다.

정부에서 10% 예산절감 등을 통해 씀씀이를 줄이겠다고 발표해놓고도 재정지출 규모를 늘리는 추경을 편성하겠다는 것은 정책의 일관성을 깨뜨리는 것이라고 반박한다.

일각에서는 경제정책은 장기적 안목을 갖고 수립해야 하는 만큼 추경편성보다는 감세를 통해 내수진작을 도모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주장한다.

⊙ 무리한 경기부양보다는 성장잠재력 확충에 힘 쏟아야

정부가 추경편성 카드를 활용하려는 배경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는 재정의 경기조절보다는 구조적 건전성에 초점을 맞추는 세계적 추세에 어긋나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우리 경제의 여건이 국가재정법상 추경편성 요건에 해당되는지도 의문이다.

'경기침체 대량실업 등 대내외 여건에 중대한 변화가 발생했거나 발생할 염려가 있을 때'라고 보기 어렵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심각한 것은 무리한 경기부양이 몰고 올 부작용이다.

3월 수입물가가 10년 만에 최고로 오르는 등 물가불안이 가중되고 있는 마당에 추경편성을 통한 경기부양은 불에 기름을 끼얹는 꼴이 될 게 뻔한 이치다.

추경편성을 통해 세수잉여분을 별도 예산사업에 지출할 경우 감세에 따른 세수 구멍을 메우지 못해 예산 적자가 불가피해지고 결국은 나라 빚이 크게 늘어날 수밖에 없다.

정부 당국은 성장의 가시적 성과를 보여주겠다는 조급증에서 하루 빨리 벗어나지 않으면 안된다.

무리한 경기부양보다는 기왕에 내놓은 감세정책과 규제개혁 등을 통해 성장잠재력을 키우는 데 보다 힘을 쏟아야 할 것이다.

김경식 한국경제신문 논설위원 kimks5@hankyung.com

<용어풀이>

▶추가경정예산(supplementary budget) = 예산이 확정된 후에 생긴 부득이한 사유로 인하여 이미 성립된 예산을 변경할 필요가 있을 때 편성하는 것으로 추경예산이라고도 한다.

국회에 제출된 예산(안)을 수정하는 수정예산이나 예산편성 후의 불가피한 사유에 기인한 추가예산과 다르다.

▶국가재정법 = 참여정부가 재정혁신과제를 제도적으로 뒷받침하기 위해 1961년 제정된 예산회계법을 전면 개편한 것으로,2007년 1월 시행에 들어갔다.

5년 단위로 국가재정운용계획을 수립,그 토대 아래 단년도 예산을 편성하고 자율과 성과중심 재정운용방식과 국가채무관리계획 국회제출의무화 등을 담고 있다.

89조에는 전쟁, 대규모 자연재해, 경기침체 등 추경예산 편성요건이 규정돼 있다.

▶세계잉여금(歲計剩餘金) = 재정운용 결과 당초 목표한 세수액을 초과해 징수되었거나 지출이 세출예산보다 적어 사용하지 않은 금액(세출불용액)을 합한 것.

국회 동의 없이도 쓸 수 있지만 국채원리금이나 차입금 상환 등 정부 채무변제에 우선 충당하도록 규정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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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경제신문 4월24일자 A5면

정부가 내수 진작용 추가경정 예산을 편성할 수 있도록 국가재정법을 개정해 달라고 여당에 공식 요청하는 등 본격적으로 '추경편성' 드라이브를 걸고 나섰다.

이에 한나라당은 23일 국회에서 열린 2차 당·정 협의에서 추경 편성이 당의 경제철학에 어긋난다면서 반대 입장을 굽히지 않았다.

지난 18일 첫 고위 당·정·청 협의에서 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과 이한구 당 정책위 의장이 정면 충돌한데 이은 당·정 간 추경 공방 2라운드다.

이한구 한나라당 정책위 의장과 조중표 국무총리 실장, 배국환 기획재정부 차관 등 정부 부처 실무자들이 참석한 이날 당정협의에선 추경 '엑셀'을 밟겠다는 정부 측과 '브레이크'를 풀지 않겠다는 여당 입장이 맞서며 당·정 간 힘 겨루기가 벌어졌다.

본지가 단독 입수한 정부의 임시국회 처리 협조요청 50개 법안에 따르면 정부는 의원입법을 통해 현재 경기 침체·대량 실업 등으로 한정돼 있는 추경 예산의 편성 요건을 완화해 줄 것을 요청했다.

지난 22일 국무회의에서도 지난해 발생한 세계잉여금 4조8655억원으로 추경 편성할 수 있도록 의결했다.

정부 측은 협의에서 2006년 제정된 현행 국가재정법이 추경 편성 요건을 지나치게 엄격하게 제한해 경제·재정 여건 변화에 따른 탄력적인 재정 운용을 제약하고 있다는 논리로 법 개정의 당위성을 역설했다.

이에 한나라당은 "꿈 깨라. 정부가 추경을 백날 올려봐야 실현되지 않을 것"이라면서 한 걸음도 물러서지 않았다.

국가 재정의 건전화와 민간 자율화를 통한 경제 활성화가 당의 경제철학인데 정권이 바뀌자마자 당이 2004년∼2006년 개정한 국가개정법을 개정하는 것은 국민들로부터 지탄받을 행동이라는 주장이다.

김홍열/이준혁/유창재 기자 come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