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 사생활의 감시냐? 개인 안전의 수호자냐?
얼마 전 나라를 떠들썩하게 몰아갔던 안양 여아 살해사건이나 일산 유아 납치 성추행 미수사건 등으로 국민들의 생명이나 재산에 대한 불안은 어느 때보다 높아지고 있다.
그러나 두 사건에는 확연한 차이가 있다.
전자의 사건은 범죄자를 검거하는 데 오랜 시간과 많은 노력이 소비되었지만 후자의 사건은 비교적 손쉽게 범인을 검거할 수 있었다.
두 사건의 차이는 CCTV의 존재 유무에서 그 이유를 찾아볼 수 있다.
이와 같은 일련의 끔찍한 사건들 이후 최근 우리 사회에서도 CCTV가 각광받고 있다.
이런 맥락으로 최근에 들어서는 CCTV 확대 설치 방안에 관한 의견이 봇물처럼 제기되고 있다.
일부 지자체들은 이와 같은 여론에 맞추어 발빠르게 추가 설치 계획을 발표한 곳도 있다.
어느덧 감시자 CCTV의 부정적 이미지가 개인들의 생명과 재산에 대한 수호자라는 긍정적 이미지로 바뀌어 가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CCTV 확대 설치는 최선의 대안인가.
여기에는 개인의 인격권과 생존권의 안전이라는 두 가지 양보할 수 없는 딜레마가 자리하고 있다.
먼저,현대사회에서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개인 사생활의 자유와 생활의 안전 중 어떠한 가치가 우선시되어야 하는지에 대해 사회계약설을 통해 살펴보자.
17세기 중엽 청교도혁명기에 '리바이어던'(1651)을 쓴 홉스는 인간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생명의 보존(자기보존)이라고 말했다.
국가가 만들어지기 이전의 자연상태에서는 모든 개인들이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 상태에 놓여 있다.
그러므로 각 개인들은 계약을 맺어 자신들이 가지는 자연권을 포기하는 대신 생명의 안전이 보장 가능한 정치사회를 만드는 데 동의하였다.
이를 통해 각 개인들은 생명의 안전을 보장하는 법률을 제정하고 그 법률에 따름으로써 평화롭고 안전하게 살고자 한다는 것이 홉스의 기본적 입장이다.
홉스와 같이 로크도 자연상태를 통해 국가가 만들어지는 이유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초기에는 확실히 욕망의 억제를 가르친 자연법이 존재하는 평화상태였지만,인간이 화폐를 발명하고 재산을 축적하자 투쟁·강도·사기 등 나쁜 일이 생겨났다.
그래서 사람들은 소유권을 지키기 위해 계약을 맺고 정치사회를 만들었다고 설명하고 있다.
이와 같이 사회계약론자들에 따르면 국가나 개인들의 가장 중요한 관심사는 사생활의 자유나 인격권보다는 각 개인의 생명권과 재산권에 대한 안정적 보장이었다.
이런 의미에서 민생 안정을 위해 실시되었던 조선시대 오가작통법이나 현대사회 CCTV 확대 설치 문제는 국민들이 국가에 대해 가지고 있는 생명과 재산의 안정적 보장이라는 기대 역할의 충실한 이행으로 해석될 수 있다.
그러나 이와 같은 제도의 시행에 앞서 중요한 것은 국민들로부터 여론 수렴이나 국민적 동의의 공정한 절차를 통해 정당성을 확보하는 것이다.
우선 현대사회 CCTV 확대 설치 문제를 조선 성종(成宗) 때 한명회(韓明澮)에 의해 고안된 오가작통법(五家作統法)과 관련지어 살펴보자.
오가작통법은 1485년(성종 16년) 한명회의 발의에 따라 채택되어 경국대전에 올랐는데,이에 의하면 한성부에서는 방(坊) 밑에 5가작통의 조직을 두어,다섯 집을 1통(統)으로 하여 통주(統主)를 두고,방에 관령(管領)을 두었다.
지방은 역시 다섯 집을 1통으로 하고,5통을 1리(里)로 해서,몇 개의 리(里)로써 면(面)을 형성하여 면에 권농관(勸農官)을 두어 운영하였다.
주로 호구를 밝히고 범죄자를 색출하며 세금 징수,부역의 동원,인보(隣保)의 자치조직을 꾀하여 만들었으나,시대에 따라 운영 실적이 한결같지 않아,1675년(숙종 1년)에는 '오가작통법 21조'를 작성하여 조직을 강화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오가작통법은 백성들의 동의라는 여론 수렴 과정의 절차를 무시하고 지배계층의 일방적 결정만으로 시행되었다는 측면에서 제도에 대한 긍정적 평가를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다.
또한 처음의 의도와는 다르게 과도한 세금 징수나 군역 부과의 수단으로 변질되어 백성들의 사생활과 기본권을 침해하는 감시자의 역할로 전락하여 백성들에게 고통을 안겨주었다.
그렇다면 현대사회에서의 CCTV 확대 설치 문제는 조선시대 오가작통법과 마찬가지로 국민들의 사생활과 인격권에 대한 위협적 요소로 받아들여 거부해야 하는가.
그렇지 않으면 생명권이나 재산권이라는 기본적 가치에 대한 수호자로 인정하여야 하는가.
다음 존 롤스(John Rawls)의 입장을 통해 공정한 절차를 통한 정의로운 가치 선택에 대한 합의 도출 과정을 살펴보자.
위의 가치 충돌 문제에 대해서는 무엇이 사회적으로 더 정의로운가에 대해 절차적으로 개인들의 합의가 우선되어야 한다.
그러나 정의로움에 대해 위의 찬반양론처럼 다양한 견해들이 생겨나는 것은 각자가 처한 입장이 모두 서로 다르기 때문이다.
롤스는 이러한 문제의식에 착안하여 '무지의 베일(Veil of Ignorance)'이라는 개념을 제시하고 있다.
그에 의하면 정의는 누구에게나 공정한 것이어야 한다.
공정하기 위하여 누구나 동의할 수 있는 절차를 통해 정의라는 것이 정해져야 한다.
그러나 정의에 대해서는 각자가 처해진 입장에 따라 견해가 달라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 문제다.
자기의 입장을 떠나서 객관적일 수는 없는 것인가?
만약 그럴 수 있다면 거기서 도출되는 정의에 대한 합의야말로 진정한 정의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그는 하나의 가상적 상황으로서 '무지의 베일'을 가정한다.
롤스가 주장하는 '무지의 베일'은 하나의 가상적 상황으로서 사람들이 그 안에 들어가면 자기가 어떤 사람인지 전혀 알 수 없게 되는 베일을 가정한다.
이 안에 들어간 사람은 자기가 가지게 되는 사회적,경제적,신체적,우연적 요소에 대해 전혀 알지 못하게 된다.
따라서 베일 안에 들어 있는 사람은 자신의 입장에 따라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누구라도 동의할 수밖에 없는 차원에서 결정이 이루어진다.
다시 말하면 모든 합의를 위한 절차의 과정은 위와 같은 요소들의 우연성에 대해 '무지의 베일' 속에서 이루어진다고 가정하여야 한다.
이로 인해서 당사자들은 제시된 대안들이 자신의 특정한 이해관계에 미칠 결과에 따라서 자기에게 유리한 흥정이나 결탁을 할 수 없으며 일반적인 고려 사항에 바탕을 두고 결정하게 된다.
그렇다면 이 베일 안에 들어 있는 사람들이 자기가 어떠한 상황에 처하게 될지 모르면서도 동의할 수 있는 정의의 기준은 무엇일까?
합리적인 개인들이 이런 상황에서 가장 신경쓰는 것은 최선의 상황에 놓였을 때보다 최악의 상황에 놓인 경우일 것이다.
롤스 입장의 연장선상에서 CCTV 확대 설치에 대한 국민적 동의의 문제도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합리적이고 이기적인 개인들이 자신들의 가족이나 본인이 범죄의 표적이 될 수 있다는 최악의 상황에 대한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에 사생활의 자유나 인격권보다 생명과 재산의 안전이라는 가치를 우선적으로 선택하게 된다.
즉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합리적 개인들은 자유와 안전이라는 대립적 가치의 딜레마에서 어쩔 수 없이 최악 상황의 가능성에서 벗어나기 위하여 CCTV 확대 설치를 최선의 대안으로 선택할 수밖에 없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개인들의 사생활과 인격권 침해에 맞닿아 있는 CCTV 확대 설치는 조선시대 오가작통법과 같이 국민에 대한 감시자로서의 수단이 아닌 범죄로부터 개인들의 안전을 보호하는 수호자의 목적으로만 순수하게 사용되어야 할 것이다.
한성고 교사 cyjin@hanmail.net
<용어정리>
▶ 사회계약설
17,18세기 영국 및 프랑스에서 전개된 이론이며,부르주아혁명 때에는 근대시민계급의 이데올로기적 기둥으로 중요한 구실을 하였다.
이 이론은 국가나 기타의 정치적 제도는 실제적·실체적 성격을 잃고,계약을 지탱하는 개인의 의지에 따라 그 존재가 좌우되는 인공적 가구물(假構物)이라고 생각하였다.
대표적인 사회계약론자로는 T 홉스,J 로크,J J 루소 등을 들 수 있다.
▶ 오가작통법
1485년(성종 16년) 한명회(韓明澮)의 발의에 따라 채택되어 '경국대전'에 올랐는데,이에 의하면 한성부에서는 방(坊) 밑에 5가작통의 조직을 두어 다섯 집을 1통으로 하여 통주(統主)를 두고,방에 관령(管領)을 두었다.
후기에 이르러 호패(戶牌)와 더불어 호적의 보조수단이 되어 역(役)을 피하여 호구의 등록 없이 이사·유리(流離)하는 등의 만성화된 유민(流民)과 도적의 은닉을 방지하는 데 이용하였고,헌종 때에는 통의 연대책임을 강화하여 가톨릭교도를 적발하는 데 널리 이용하였다.
▶ 무지의 베일(veil of ignorance)
무지의 베일은 원초적 입장에 도달하기 위해 필요한 가상의 개념적 장막이다.
무지의 베일이 쳐진 상태에서 사람들은 자신의 능력,재산,신분 등의 사회적 조건을 알 수 없기 때문에 사회계약 체결 후 어떤 계층에 속할지 알 수 없다.
롤스는 그런 상황에서 사람들이 어떤 계층에 특별히 유리하거나 불리하지 않도록 조화로운 사회계약을 체결할 것이라고 보았다.
얼마 전 나라를 떠들썩하게 몰아갔던 안양 여아 살해사건이나 일산 유아 납치 성추행 미수사건 등으로 국민들의 생명이나 재산에 대한 불안은 어느 때보다 높아지고 있다.
그러나 두 사건에는 확연한 차이가 있다.
전자의 사건은 범죄자를 검거하는 데 오랜 시간과 많은 노력이 소비되었지만 후자의 사건은 비교적 손쉽게 범인을 검거할 수 있었다.
두 사건의 차이는 CCTV의 존재 유무에서 그 이유를 찾아볼 수 있다.
이와 같은 일련의 끔찍한 사건들 이후 최근 우리 사회에서도 CCTV가 각광받고 있다.
이런 맥락으로 최근에 들어서는 CCTV 확대 설치 방안에 관한 의견이 봇물처럼 제기되고 있다.
일부 지자체들은 이와 같은 여론에 맞추어 발빠르게 추가 설치 계획을 발표한 곳도 있다.
어느덧 감시자 CCTV의 부정적 이미지가 개인들의 생명과 재산에 대한 수호자라는 긍정적 이미지로 바뀌어 가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CCTV 확대 설치는 최선의 대안인가.
여기에는 개인의 인격권과 생존권의 안전이라는 두 가지 양보할 수 없는 딜레마가 자리하고 있다.
먼저,현대사회에서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개인 사생활의 자유와 생활의 안전 중 어떠한 가치가 우선시되어야 하는지에 대해 사회계약설을 통해 살펴보자.
17세기 중엽 청교도혁명기에 '리바이어던'(1651)을 쓴 홉스는 인간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생명의 보존(자기보존)이라고 말했다.
국가가 만들어지기 이전의 자연상태에서는 모든 개인들이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 상태에 놓여 있다.
그러므로 각 개인들은 계약을 맺어 자신들이 가지는 자연권을 포기하는 대신 생명의 안전이 보장 가능한 정치사회를 만드는 데 동의하였다.
이를 통해 각 개인들은 생명의 안전을 보장하는 법률을 제정하고 그 법률에 따름으로써 평화롭고 안전하게 살고자 한다는 것이 홉스의 기본적 입장이다.
홉스와 같이 로크도 자연상태를 통해 국가가 만들어지는 이유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초기에는 확실히 욕망의 억제를 가르친 자연법이 존재하는 평화상태였지만,인간이 화폐를 발명하고 재산을 축적하자 투쟁·강도·사기 등 나쁜 일이 생겨났다.
그래서 사람들은 소유권을 지키기 위해 계약을 맺고 정치사회를 만들었다고 설명하고 있다.
이와 같이 사회계약론자들에 따르면 국가나 개인들의 가장 중요한 관심사는 사생활의 자유나 인격권보다는 각 개인의 생명권과 재산권에 대한 안정적 보장이었다.
이런 의미에서 민생 안정을 위해 실시되었던 조선시대 오가작통법이나 현대사회 CCTV 확대 설치 문제는 국민들이 국가에 대해 가지고 있는 생명과 재산의 안정적 보장이라는 기대 역할의 충실한 이행으로 해석될 수 있다.
그러나 이와 같은 제도의 시행에 앞서 중요한 것은 국민들로부터 여론 수렴이나 국민적 동의의 공정한 절차를 통해 정당성을 확보하는 것이다.
우선 현대사회 CCTV 확대 설치 문제를 조선 성종(成宗) 때 한명회(韓明澮)에 의해 고안된 오가작통법(五家作統法)과 관련지어 살펴보자.
오가작통법은 1485년(성종 16년) 한명회의 발의에 따라 채택되어 경국대전에 올랐는데,이에 의하면 한성부에서는 방(坊) 밑에 5가작통의 조직을 두어,다섯 집을 1통(統)으로 하여 통주(統主)를 두고,방에 관령(管領)을 두었다.
지방은 역시 다섯 집을 1통으로 하고,5통을 1리(里)로 해서,몇 개의 리(里)로써 면(面)을 형성하여 면에 권농관(勸農官)을 두어 운영하였다.
주로 호구를 밝히고 범죄자를 색출하며 세금 징수,부역의 동원,인보(隣保)의 자치조직을 꾀하여 만들었으나,시대에 따라 운영 실적이 한결같지 않아,1675년(숙종 1년)에는 '오가작통법 21조'를 작성하여 조직을 강화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오가작통법은 백성들의 동의라는 여론 수렴 과정의 절차를 무시하고 지배계층의 일방적 결정만으로 시행되었다는 측면에서 제도에 대한 긍정적 평가를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다.
또한 처음의 의도와는 다르게 과도한 세금 징수나 군역 부과의 수단으로 변질되어 백성들의 사생활과 기본권을 침해하는 감시자의 역할로 전락하여 백성들에게 고통을 안겨주었다.
그렇다면 현대사회에서의 CCTV 확대 설치 문제는 조선시대 오가작통법과 마찬가지로 국민들의 사생활과 인격권에 대한 위협적 요소로 받아들여 거부해야 하는가.
그렇지 않으면 생명권이나 재산권이라는 기본적 가치에 대한 수호자로 인정하여야 하는가.
다음 존 롤스(John Rawls)의 입장을 통해 공정한 절차를 통한 정의로운 가치 선택에 대한 합의 도출 과정을 살펴보자.
위의 가치 충돌 문제에 대해서는 무엇이 사회적으로 더 정의로운가에 대해 절차적으로 개인들의 합의가 우선되어야 한다.
그러나 정의로움에 대해 위의 찬반양론처럼 다양한 견해들이 생겨나는 것은 각자가 처한 입장이 모두 서로 다르기 때문이다.
롤스는 이러한 문제의식에 착안하여 '무지의 베일(Veil of Ignorance)'이라는 개념을 제시하고 있다.
그에 의하면 정의는 누구에게나 공정한 것이어야 한다.
공정하기 위하여 누구나 동의할 수 있는 절차를 통해 정의라는 것이 정해져야 한다.
그러나 정의에 대해서는 각자가 처해진 입장에 따라 견해가 달라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 문제다.
자기의 입장을 떠나서 객관적일 수는 없는 것인가?
만약 그럴 수 있다면 거기서 도출되는 정의에 대한 합의야말로 진정한 정의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그는 하나의 가상적 상황으로서 '무지의 베일'을 가정한다.
롤스가 주장하는 '무지의 베일'은 하나의 가상적 상황으로서 사람들이 그 안에 들어가면 자기가 어떤 사람인지 전혀 알 수 없게 되는 베일을 가정한다.
이 안에 들어간 사람은 자기가 가지게 되는 사회적,경제적,신체적,우연적 요소에 대해 전혀 알지 못하게 된다.
따라서 베일 안에 들어 있는 사람은 자신의 입장에 따라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누구라도 동의할 수밖에 없는 차원에서 결정이 이루어진다.
다시 말하면 모든 합의를 위한 절차의 과정은 위와 같은 요소들의 우연성에 대해 '무지의 베일' 속에서 이루어진다고 가정하여야 한다.
이로 인해서 당사자들은 제시된 대안들이 자신의 특정한 이해관계에 미칠 결과에 따라서 자기에게 유리한 흥정이나 결탁을 할 수 없으며 일반적인 고려 사항에 바탕을 두고 결정하게 된다.
그렇다면 이 베일 안에 들어 있는 사람들이 자기가 어떠한 상황에 처하게 될지 모르면서도 동의할 수 있는 정의의 기준은 무엇일까?
합리적인 개인들이 이런 상황에서 가장 신경쓰는 것은 최선의 상황에 놓였을 때보다 최악의 상황에 놓인 경우일 것이다.
롤스 입장의 연장선상에서 CCTV 확대 설치에 대한 국민적 동의의 문제도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합리적이고 이기적인 개인들이 자신들의 가족이나 본인이 범죄의 표적이 될 수 있다는 최악의 상황에 대한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에 사생활의 자유나 인격권보다 생명과 재산의 안전이라는 가치를 우선적으로 선택하게 된다.
즉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합리적 개인들은 자유와 안전이라는 대립적 가치의 딜레마에서 어쩔 수 없이 최악 상황의 가능성에서 벗어나기 위하여 CCTV 확대 설치를 최선의 대안으로 선택할 수밖에 없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개인들의 사생활과 인격권 침해에 맞닿아 있는 CCTV 확대 설치는 조선시대 오가작통법과 같이 국민에 대한 감시자로서의 수단이 아닌 범죄로부터 개인들의 안전을 보호하는 수호자의 목적으로만 순수하게 사용되어야 할 것이다.
한성고 교사 cyjin@hanmail.net
<용어정리>
▶ 사회계약설
17,18세기 영국 및 프랑스에서 전개된 이론이며,부르주아혁명 때에는 근대시민계급의 이데올로기적 기둥으로 중요한 구실을 하였다.
이 이론은 국가나 기타의 정치적 제도는 실제적·실체적 성격을 잃고,계약을 지탱하는 개인의 의지에 따라 그 존재가 좌우되는 인공적 가구물(假構物)이라고 생각하였다.
대표적인 사회계약론자로는 T 홉스,J 로크,J J 루소 등을 들 수 있다.
▶ 오가작통법
1485년(성종 16년) 한명회(韓明澮)의 발의에 따라 채택되어 '경국대전'에 올랐는데,이에 의하면 한성부에서는 방(坊) 밑에 5가작통의 조직을 두어 다섯 집을 1통으로 하여 통주(統主)를 두고,방에 관령(管領)을 두었다.
후기에 이르러 호패(戶牌)와 더불어 호적의 보조수단이 되어 역(役)을 피하여 호구의 등록 없이 이사·유리(流離)하는 등의 만성화된 유민(流民)과 도적의 은닉을 방지하는 데 이용하였고,헌종 때에는 통의 연대책임을 강화하여 가톨릭교도를 적발하는 데 널리 이용하였다.
▶ 무지의 베일(veil of ignorance)
무지의 베일은 원초적 입장에 도달하기 위해 필요한 가상의 개념적 장막이다.
무지의 베일이 쳐진 상태에서 사람들은 자신의 능력,재산,신분 등의 사회적 조건을 알 수 없기 때문에 사회계약 체결 후 어떤 계층에 속할지 알 수 없다.
롤스는 그런 상황에서 사람들이 어떤 계층에 특별히 유리하거나 불리하지 않도록 조화로운 사회계약을 체결할 것이라고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