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자유주의가 항상 좋은 것은 아니다"
국가가 수행하여야 하는 바람직한 역할에 관한 논의는 여러 제 학문의 열띤 논쟁 대상이다.
특히 경제학에서는 국가의 시장 개입이 무엇보다도 중요한 화두이다.
고전주의 자유방임 시대에는 야경 국가가 이상적이었고,케인스 경제학은 국가와 시장이 함께 조화롭게 작용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국가의 적극적인 활동을 촉구하였다.
이렇듯 국가의 역할을 놓고 대립적인 견해가 분분한 가운데 현재 가장 많은 지지를 받고 있는 입장은 신고전주의이다.
신고전주의는 시장과 국가를 적대적 관계로 파악한다.
즉 신자유주의에서는 시장을 최대한 있는 그대로 내버려두고 국가의 개입을 자제하라고 요구한다.
케인스 경제학을 누르고 1970년대 재차 주류 경제 담론으로 부상한 신자유주의는 국가의 시장 개입을 악(惡)으로 판단한다.
국가는 민간 기업에 비해 시장 정보가 부족하며 또한 관료들의 부정부패가 시장의 건전성을 망친다는 것이 그 주된 이유다.
현재 우리나라도 신고전주의의 인기가 높아 '작은 정부론'이 대세이며,그에 따라 예산 감축과 공기업 민영화,탈규제 정책들이 추진되고 있다.
그런데 이에 팽팽히 맞서면서 신자유주의 논리를 하나 하나 논파하며 국가의 시장 개입이 필요하다는 주장 또한 만만치는 않다.
오늘 소개하려는 명저,'국가의 역할'은 신자유주의에 대한 반격의 선봉에 서 있다.
2003년 발간된 이 책의 원제는 약간 길다.
제목이 '세계화,경제 발전,그리고 국가의 역할 : Globalization,Economic Development,and the Role of the State'로서 우리나라에는 이종태,황해선의 공동 번역으로 2006년 소개되었다.
저자 장하준은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경제학 석사 및 박사 학위를 취득하여 1990년 이래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경제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저자는 신자유주의가 항상 좋은 것은 아니기 때문에 규제할 것은 규제하고 방임주의보다는 적극적인 산업 정책을 취해야 한다고 말한다.
우리들에게 잘 알려진 주요 저서로는 '사다리 걷어차기'(2004) '개혁의 덫'(2004) '쾌도난마 한국경제'(2005) '나쁜 사마리아인들'(2007) 등이 있는데,특히 대담 기획서인 '쾌도난마 한국경제'는 청와대의 필독서로 꼽힐 만큼 높은 인지도를 쌓았다.
이 자리에서 소개되는 '국가의 역할'은 저자의 학문적 탐색의 집약적 성과라고 평가할 수 있다.
저자는 시장은 '자연발생적이며 절대적인 신성불가침'의 시스템이 아니라는 것을 밝힌다.
시장은 어디까지나 인위적이고 결함이 많은 제도이므로,시장에 대한 가치 판단과 규제를 일절 거부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비판한다.
"신자유주의 경제는 강자의 약육강식 논리이므로 각 국가는 그 국가의 상황에 어울리는 국가의 개입을 통해 경제를 발전시켜야 한다"
⊙ 원문 읽기
국가에 대한 신자유주의적 담론은 근본적으로 두 가지의 큰 주제로 나뉘어질 수 있다.
첫째, '자유 시장'은 사회적으로 적정한 결과를 생산하는가?
신자유주의자들은 대부분의 상황에서 그렇다고 생각한다.
둘째,국가 개입이 자유 시장의 결과를 개선할 수 있는가?
물론 신자유주의자들은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신자유주의자들의 결론에 동의하든 반대하든,이와 같은 문제 제기 자체는 충분히 정곡을 찌르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
오히려 터무니없어 보이지만 중요한 질문이 있다.
자유 시장이 '국가 개입이 없는' 시장이냐는 것이다.
물론 자유 시장이 국가 개입이 없는 시장이라는 명제가 옳다면,그 다음 단계로 어떤 국가 개입이 좋은 것이고 나쁜 것인지에 대해 여러 가지 견해가 나올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에 대해 또 하나 중요한 질문을 던질 수 있다.
즉 '국가 개입'이라는 것이 정확히 무엇을 의미하느냐는 것이다.
필자는 우리가 국가 개입이라는 용어의 의미를 알고 있다고 확신할 수 없다.
그 이유는 똑같은 국가 행위가 어떤 사회에서는 개입으로 여겨지지만,다른 사회에서는 개입으로 여겨지지 않는 현상이 실제 존재하기 때문이다.
또한 같은 사회 내에서도 과거에는 국가 개입이었던 행위가 현재는 국가 개입으로 간주되지 않기도 한다.
(중략) 사회 구성원들이 특정한 권리 및 의무에 대해 '정당한 : legitimate' 것으로 간주하느냐 하지 않느냐에 따라 동일한 국가의 행위가 개입으로 간주될 수도 있고,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또한 어떤 행위가 특정한 시대,특정한 사회에서 개입으로 인정되지 않는다면,이 같은 금지의 효율성을 따지는 것 역시 정치적으로 거부된다.
이 같은 상황은 신이 부여한 어떤 이유가 아니라,사회의 권리·의무 구조에 기인한 것이다.
동일한 영역의 동일한 시장에서 동일한 국가 개입이 이루어진다고 해도,그 사회의 권리·의무 구조에 따라 시장이 국가 개입으로부터 자유롭다고 간주할 수도 그렇지 않을 수도 있는 것이다.
▶ 해석
저자는 신자유주의는 진리가 아니라 지적 독트린에 불과하다고 통렬히 비판한다.
신자유주의자들은 무엇이 국가의 영역이고, 또 무엇이 국가의 영역이 아닌지에 대해 자기 멋대로 임의적 정의를 내리는 우를 범하고 있다고 지적하면서 신고전주의 학자들의 모순적이고 일관성 없는 논리를 꼬집는다.
현실에 대한 편향된 해석에 뿌리를 두는 신고전주의는 본질적으로 잘못된 담론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저자는 신자유주의자들의 애매모호한 논리를 생생한 실례를 들며 비판한다.
아동 노동의 경우,현재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들에서는 아동 노동 금지가 인위적인 국가 개입으로 간주되지 않지만,많은 제3세계 국가들과 과거의 선진국들에서는 아동 노동 금지가 국가 개입으로 받아들여졌다.
그리고 수많은 환경 기준들이 OECD 국가들에 처음 도입되었을 때는 사업과 개인적 자유에 대한 부당한 침해로 광범위하게 비판받았으나 현재는 이를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다.
이처럼 모순적인 태도들에서 시장의 합리성을 왜곡하는 정치를 축출해야 한다는 신자유주의 독트린의 허구가 드러난다.
정치가 경제를 오염시키기 때문에 경제의 탈정치화를 지향하여야 한다는 주장은 본질적으로 불가능하다고 저자는 말한다.
그러면서 신자유주의 정책이 특히 개발도상국에서 실패한 것은 신자유주의자들이 시장과 국가,그리고 여타 제도들 사이의 관계를 제대로 이론화하지 못하였기 때문이라고 공박한다.
⊙ 원문 읽기
가장 개화되고 개방적인 신고전학파 경제학자와 제도주의적으로 의식화된 경제학자 간의 차이는 무엇일까.
신고전학파 경제학자들 특유의 신앙이다.
필자는 이 신앙을 '시장 우선성 가정 : the market primacy assumption'이라고 부른다.
신고전학파의 관점에 따르면,'태초에 시장이 있었다.'
그리고 국가 개입,조직,제도 등은 시장의 결함이 견딜 수 없을 정도로 심화된 이후에야 나타나는 인위적 대체물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중략) 그러나 사실은 다음과 같다.
태초에 시장은 없었다.
경제사학자들은 역사적으로 볼 때 매우 지역적인 수준이나 매우 국제적인 수준을 제외할 경우,시장 메커니즘은 최근까지도 인류의 경제 생활에서 주요한 몫을 차지하지 못했다는 사실을 반복해서 보여 준다.
(중략) 영국과 미국뿐만 아니라 적어도 일정 기간 동안 국가가 경제 발전에 강력하게 개입하지 않고 산업화에 성공한 나라는 없다고 필자는 단언할 수 있다.
물론 국가 개입의 형태는 매우 다양하다.
사회주의 혁명에 대항해서 선제 공격적 복지국가를 이루었던 비스마르크의 독일,프랑스의 전후 산업정책,연구개발에 대한 스웨덴의 국가적 지원,2차 대전 이후 공기업 부문을 통해 제조업 부문의 전환을 이루어 낸 오스트리아,잘 알려진 동아시아 국가들의 국가 주도 발전 등이 그것이다.
개입 형태는 이렇듯 다양하지만 분명한 것은 모든 성공적인 경제발전 노력에는 엄청난 규모의 국가 개입이 수반되어 있다는 것이다.
▶ 해석
선진국들은 절대로 신자유주의 이론을 좇아 경제 발전에 성공한 것이 아니다.
국가적인 산업정책을 수립하고,관세 장벽 등으로 국내 산업을 보호하고,외국인 투자를 제한하고,특허를 엄격히 적용하지 않는 등 신자유주의와는 정반대로 행동한 결과 현재의 부를 일구어냈다.
그런데도 마치 자유 무역 덕분에 경제 발전이 가능했던 것인 양 역사를 왜곡하며 개발도상국들에 신자유주의 정책을 강요하고 있다.
저자는 신자유주의 경제는 강자의 약육강식 논리이므로 각 국가는 그 국가의 상황에 어울리는 국가 개입을 통해 경제를 발전시켜야 한다고 주장한다.
저자는 산업구조 변동기에 변혁의 중심 주체로서 거시적 비전을 제공할 수 있는 적임자는 강력한 정책 역량을 지닌 국가라며,신자유주의자들이 주창하는 탈규제 정책을 주도한 미국·영국이 정작 1970년대 이후 보여 준 경제 실적은 좋지 않다고 지적한다.
탈규제가 일시적으로 단기적 효율성을 높일 수 있을지 몰라도 장기적 생산성 향상까지 이끈다는 학문적 증거는 없다는 것이다.
장하준 교수가 신자유주의에 대한 대안으로 제시하는 것은 제도주의이다.
신자유주의 논리와는 반대로 국가가 시장에 적극적으로 개입하여 영향력을 행사해야 한다며,시장에 대한 국가의 중요한 역할을 크게 두 가지로 정리한다.
기업가의 역할과 갈등 조정자의 역할이 그것이다.
저자가 말하는 기업가의 역할은 미래의 비전을 제시하고 이를 현실화하기 위해 제도를 수립하는 것이며,갈등 관리자의 역할이란 사회의 구조 변동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갈등을 현명하게 조정하고 줄이는 일이다.
홍보람 s·논술 선임연구원 nikehbr@nonsul.com
국가가 수행하여야 하는 바람직한 역할에 관한 논의는 여러 제 학문의 열띤 논쟁 대상이다.
특히 경제학에서는 국가의 시장 개입이 무엇보다도 중요한 화두이다.
고전주의 자유방임 시대에는 야경 국가가 이상적이었고,케인스 경제학은 국가와 시장이 함께 조화롭게 작용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국가의 적극적인 활동을 촉구하였다.
이렇듯 국가의 역할을 놓고 대립적인 견해가 분분한 가운데 현재 가장 많은 지지를 받고 있는 입장은 신고전주의이다.
신고전주의는 시장과 국가를 적대적 관계로 파악한다.
즉 신자유주의에서는 시장을 최대한 있는 그대로 내버려두고 국가의 개입을 자제하라고 요구한다.
케인스 경제학을 누르고 1970년대 재차 주류 경제 담론으로 부상한 신자유주의는 국가의 시장 개입을 악(惡)으로 판단한다.
국가는 민간 기업에 비해 시장 정보가 부족하며 또한 관료들의 부정부패가 시장의 건전성을 망친다는 것이 그 주된 이유다.
현재 우리나라도 신고전주의의 인기가 높아 '작은 정부론'이 대세이며,그에 따라 예산 감축과 공기업 민영화,탈규제 정책들이 추진되고 있다.
그런데 이에 팽팽히 맞서면서 신자유주의 논리를 하나 하나 논파하며 국가의 시장 개입이 필요하다는 주장 또한 만만치는 않다.
오늘 소개하려는 명저,'국가의 역할'은 신자유주의에 대한 반격의 선봉에 서 있다.
2003년 발간된 이 책의 원제는 약간 길다.
제목이 '세계화,경제 발전,그리고 국가의 역할 : Globalization,Economic Development,and the Role of the State'로서 우리나라에는 이종태,황해선의 공동 번역으로 2006년 소개되었다.
저자 장하준은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경제학 석사 및 박사 학위를 취득하여 1990년 이래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경제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저자는 신자유주의가 항상 좋은 것은 아니기 때문에 규제할 것은 규제하고 방임주의보다는 적극적인 산업 정책을 취해야 한다고 말한다.
우리들에게 잘 알려진 주요 저서로는 '사다리 걷어차기'(2004) '개혁의 덫'(2004) '쾌도난마 한국경제'(2005) '나쁜 사마리아인들'(2007) 등이 있는데,특히 대담 기획서인 '쾌도난마 한국경제'는 청와대의 필독서로 꼽힐 만큼 높은 인지도를 쌓았다.
이 자리에서 소개되는 '국가의 역할'은 저자의 학문적 탐색의 집약적 성과라고 평가할 수 있다.
저자는 시장은 '자연발생적이며 절대적인 신성불가침'의 시스템이 아니라는 것을 밝힌다.
시장은 어디까지나 인위적이고 결함이 많은 제도이므로,시장에 대한 가치 판단과 규제를 일절 거부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비판한다.
"신자유주의 경제는 강자의 약육강식 논리이므로 각 국가는 그 국가의 상황에 어울리는 국가의 개입을 통해 경제를 발전시켜야 한다"
⊙ 원문 읽기
국가에 대한 신자유주의적 담론은 근본적으로 두 가지의 큰 주제로 나뉘어질 수 있다.
첫째, '자유 시장'은 사회적으로 적정한 결과를 생산하는가?
신자유주의자들은 대부분의 상황에서 그렇다고 생각한다.
둘째,국가 개입이 자유 시장의 결과를 개선할 수 있는가?
물론 신자유주의자들은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신자유주의자들의 결론에 동의하든 반대하든,이와 같은 문제 제기 자체는 충분히 정곡을 찌르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
오히려 터무니없어 보이지만 중요한 질문이 있다.
자유 시장이 '국가 개입이 없는' 시장이냐는 것이다.
물론 자유 시장이 국가 개입이 없는 시장이라는 명제가 옳다면,그 다음 단계로 어떤 국가 개입이 좋은 것이고 나쁜 것인지에 대해 여러 가지 견해가 나올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에 대해 또 하나 중요한 질문을 던질 수 있다.
즉 '국가 개입'이라는 것이 정확히 무엇을 의미하느냐는 것이다.
필자는 우리가 국가 개입이라는 용어의 의미를 알고 있다고 확신할 수 없다.
그 이유는 똑같은 국가 행위가 어떤 사회에서는 개입으로 여겨지지만,다른 사회에서는 개입으로 여겨지지 않는 현상이 실제 존재하기 때문이다.
또한 같은 사회 내에서도 과거에는 국가 개입이었던 행위가 현재는 국가 개입으로 간주되지 않기도 한다.
(중략) 사회 구성원들이 특정한 권리 및 의무에 대해 '정당한 : legitimate' 것으로 간주하느냐 하지 않느냐에 따라 동일한 국가의 행위가 개입으로 간주될 수도 있고,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또한 어떤 행위가 특정한 시대,특정한 사회에서 개입으로 인정되지 않는다면,이 같은 금지의 효율성을 따지는 것 역시 정치적으로 거부된다.
이 같은 상황은 신이 부여한 어떤 이유가 아니라,사회의 권리·의무 구조에 기인한 것이다.
동일한 영역의 동일한 시장에서 동일한 국가 개입이 이루어진다고 해도,그 사회의 권리·의무 구조에 따라 시장이 국가 개입으로부터 자유롭다고 간주할 수도 그렇지 않을 수도 있는 것이다.
▶ 해석
저자는 신자유주의는 진리가 아니라 지적 독트린에 불과하다고 통렬히 비판한다.
신자유주의자들은 무엇이 국가의 영역이고, 또 무엇이 국가의 영역이 아닌지에 대해 자기 멋대로 임의적 정의를 내리는 우를 범하고 있다고 지적하면서 신고전주의 학자들의 모순적이고 일관성 없는 논리를 꼬집는다.
현실에 대한 편향된 해석에 뿌리를 두는 신고전주의는 본질적으로 잘못된 담론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저자는 신자유주의자들의 애매모호한 논리를 생생한 실례를 들며 비판한다.
아동 노동의 경우,현재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들에서는 아동 노동 금지가 인위적인 국가 개입으로 간주되지 않지만,많은 제3세계 국가들과 과거의 선진국들에서는 아동 노동 금지가 국가 개입으로 받아들여졌다.
그리고 수많은 환경 기준들이 OECD 국가들에 처음 도입되었을 때는 사업과 개인적 자유에 대한 부당한 침해로 광범위하게 비판받았으나 현재는 이를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다.
이처럼 모순적인 태도들에서 시장의 합리성을 왜곡하는 정치를 축출해야 한다는 신자유주의 독트린의 허구가 드러난다.
정치가 경제를 오염시키기 때문에 경제의 탈정치화를 지향하여야 한다는 주장은 본질적으로 불가능하다고 저자는 말한다.
그러면서 신자유주의 정책이 특히 개발도상국에서 실패한 것은 신자유주의자들이 시장과 국가,그리고 여타 제도들 사이의 관계를 제대로 이론화하지 못하였기 때문이라고 공박한다.
⊙ 원문 읽기
가장 개화되고 개방적인 신고전학파 경제학자와 제도주의적으로 의식화된 경제학자 간의 차이는 무엇일까.
신고전학파 경제학자들 특유의 신앙이다.
필자는 이 신앙을 '시장 우선성 가정 : the market primacy assumption'이라고 부른다.
신고전학파의 관점에 따르면,'태초에 시장이 있었다.'
그리고 국가 개입,조직,제도 등은 시장의 결함이 견딜 수 없을 정도로 심화된 이후에야 나타나는 인위적 대체물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중략) 그러나 사실은 다음과 같다.
태초에 시장은 없었다.
경제사학자들은 역사적으로 볼 때 매우 지역적인 수준이나 매우 국제적인 수준을 제외할 경우,시장 메커니즘은 최근까지도 인류의 경제 생활에서 주요한 몫을 차지하지 못했다는 사실을 반복해서 보여 준다.
(중략) 영국과 미국뿐만 아니라 적어도 일정 기간 동안 국가가 경제 발전에 강력하게 개입하지 않고 산업화에 성공한 나라는 없다고 필자는 단언할 수 있다.
물론 국가 개입의 형태는 매우 다양하다.
사회주의 혁명에 대항해서 선제 공격적 복지국가를 이루었던 비스마르크의 독일,프랑스의 전후 산업정책,연구개발에 대한 스웨덴의 국가적 지원,2차 대전 이후 공기업 부문을 통해 제조업 부문의 전환을 이루어 낸 오스트리아,잘 알려진 동아시아 국가들의 국가 주도 발전 등이 그것이다.
개입 형태는 이렇듯 다양하지만 분명한 것은 모든 성공적인 경제발전 노력에는 엄청난 규모의 국가 개입이 수반되어 있다는 것이다.
▶ 해석
선진국들은 절대로 신자유주의 이론을 좇아 경제 발전에 성공한 것이 아니다.
국가적인 산업정책을 수립하고,관세 장벽 등으로 국내 산업을 보호하고,외국인 투자를 제한하고,특허를 엄격히 적용하지 않는 등 신자유주의와는 정반대로 행동한 결과 현재의 부를 일구어냈다.
그런데도 마치 자유 무역 덕분에 경제 발전이 가능했던 것인 양 역사를 왜곡하며 개발도상국들에 신자유주의 정책을 강요하고 있다.
저자는 신자유주의 경제는 강자의 약육강식 논리이므로 각 국가는 그 국가의 상황에 어울리는 국가 개입을 통해 경제를 발전시켜야 한다고 주장한다.
저자는 산업구조 변동기에 변혁의 중심 주체로서 거시적 비전을 제공할 수 있는 적임자는 강력한 정책 역량을 지닌 국가라며,신자유주의자들이 주창하는 탈규제 정책을 주도한 미국·영국이 정작 1970년대 이후 보여 준 경제 실적은 좋지 않다고 지적한다.
탈규제가 일시적으로 단기적 효율성을 높일 수 있을지 몰라도 장기적 생산성 향상까지 이끈다는 학문적 증거는 없다는 것이다.
장하준 교수가 신자유주의에 대한 대안으로 제시하는 것은 제도주의이다.
신자유주의 논리와는 반대로 국가가 시장에 적극적으로 개입하여 영향력을 행사해야 한다며,시장에 대한 국가의 중요한 역할을 크게 두 가지로 정리한다.
기업가의 역할과 갈등 조정자의 역할이 그것이다.
저자가 말하는 기업가의 역할은 미래의 비전을 제시하고 이를 현실화하기 위해 제도를 수립하는 것이며,갈등 관리자의 역할이란 사회의 구조 변동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갈등을 현명하게 조정하고 줄이는 일이다.
홍보람 s·논술 선임연구원 nikehbr@nonsu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