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농약·원자력·스모그 등

각종 위험에 '동등하게' 둘러싸여 있다

시야가 흐릿해질 만큼 정신없이 돌아가는 현대사회를 명확하게 설명하기란 참으로 힘든 일이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복잡다단한 사회를 이해하고 정의내리려는 욕망 또한 그만큼 크다.

이는 모호하고 불명확한 현대사회를 바라보는 뚜렷한 척도를 마련하지 않고서는 어지러운 이 세상을 제정신으로 살아나가기가 힘겹다는 의미이기도 할 것이다.
[고전속 제시문 100선] (79) 사회과학의 명저를 찾아서 ⑤ 울리히 벡 '위험사회'
현대사회를 하나의 공식으로 요약하면 이렇게 표현할 수 있다.

즉 빈곤은 위계적이지만 스모그는 민주적이다.

근대화 위험의 확장에 따라,즉 자연 건강 영양 등의 위험의 확장에 따라 사회적 차이와 한계는 상대화된다.

대단히 상이한 결과들이 이로부터 계속해서 도출된다.

하지만 객관적으로 위험은 그 범위 내부에서 그리고 그로부터 영향을 받는 사람들 사이에서 평등화 효과를 보여 준다.

위험이 새로운 정치력을 갖게 되는 것은 정확히 그 같은 효과 안에서이다.

이런 점에서 위험사회는 정확히 계급사회가 아니다.

위험사회의 위험지위는 계급지위로 이해될 수 없다.

또는 그 갈등은 계급갈등으로 이해될 수 없다.

우리가 근대화 위험의 특정한 양식,특정한 분배 유형을 검토해 보면 이 점은 훨씬 더 명확해진다.

위험은 지구화 경향을 내포하고 있다.

산업 생산에는 생산지와는 무관하게 위해의 보편화가 수반된다.

즉 먹이사슬은 실제로 지상의 모든 사람을 다른 모든 사람에게 연결시킨다.

먹이사슬은 국경선 아래로 숨어든다.

대기 중의 산성 성분은 조각물이나 예술 작품만을 조금씩 갉아먹는 것이 아니라,오래 전에 근대적인 세관의 장벽도 해체했다.

캐나다에서조차 호수들이 산성화되었으며 스칸디나비아 북부에서조차 삼림이 죽어가고 있다.

▶ 해석

울리히 벡은 현대사회는 공평한 사회라고 말한다.

근대사회는 불평등을 극복하고 평등을 쟁취하기 위해서 투쟁하는 시대였으나,현대는 만인이 저절로 평등한 사회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 평등이 긍정적 의미의 평등이 절대 아니라는 사실이다.

공해와 위험의 만민평등 사회이기 때문이다.

물론,부유한 계층의 사람들은 유기농 식품을 먹고 비교적 안전한 주거환경에서 사는 등 상위 계층일수록 위험이 줄어들고 하위 계층일수록 위험이 증대하는 계층 상대적인 면모가 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위험의 상대성을 논하기에는 이미 위험의 심각성이 너무 악화되었다.

세계화는 공해의 측면에서도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농약과 원자력,스모그,소음 등 각종 위험에 동등하게 둘러싸여 있다.

그리고 근대사회가 '불평등'으로 인해 사회의 마찰과 분리를 부추겼다면, 현대사회는 위험의 '동등함'으로 인해 구성원들의 단결과 유대를 가능하게 한다.

⊙ 원문 읽기

정치적 표현이 개방되어 있고 정치적 결과가 모호하다고 해도 계급사회에서 위험사회로 이행하는 과정에서 공동체의 질은 변하기 시작한다.

도식적으로 말하자면 두 개의 완전히 다른 가치체계가 이러한 두 가치 유형의 근대사회에서 표현된다.

계급사회는 그 발전동학에서 ('기회의 평등'에서 사회주의적 사회모델들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게 형성되는) 평등의 이상과 계속해서 관련을 맺는다.

위험사회는 그렇지 않다.

그 기초이자 원동력인 규범은 '안전'이다.

'불평등한' 사회의 가치체계의 자리는 '불안한' 사회의 가치체계로 대체된다.

평등의 유토피아가 사회 변화의 실질적이고 적극적인 목표로서 부를 포함한다면,위험사회의 유토피아는 특히 소극적이고 방어적인 성격을 지닌다.

기본적으로 사람들은 '좋은' 것을 획득하는 데 더 이상 관심을 가지지 않으며, 그보다는 최악의 것을 예방하는 데 관심을 갖는다.

'자기 한정'이 목표다.

계급사회의 꿈은 모든 사람이 파이를 나누어 먹고 싶어 하고 또 그래야만 한다는 것이다.

위험사회의 유토피아는 모든 사람이 위험에 중독되지 않고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두 사회에서 사람들이 살아가고 협력하게 되는,그리고 사람들을 이동시키고 분리하거나 융합시키는 기본적 사회 상황에는 그에 상응하는 차이가 있다.

계급사회의 동력은 다음과 같은 표현으로 요약될 수 있다.

"나는 배고프다!" 다른 한편 위험사회에서 작동하는 운동은 이런 식으로 표현될 수 있다.

"나는 두렵다!" 불안의 공동성이 필요의 공동성의 자리를 차지한다.

위험사회의 유형은 이런 점에서 '불안에서 비롯된 유대'가 생겨나고 정치적 힘이 되는 사회적 시기를 보여 준다.

그러나 불안의 유대력이 어떻게 작동하는지,심지어 그것이 과연 작동은 하는지에 관해서는 아직 완전히 드러나지 않고 있다.

불안의 공동체들은 어느 정도로 압력을 버틸 수 있는가?

그것들은 행동을 위해 어떤 동기와 힘을 작동시키는가?

불안의 사회적 힘은 실제로 유용성에 대한 개별적 판단을 깨뜨릴 것인가?

불안이 생산하는 위난 공동체들은 어떻게 타협할 수 있는가?

그들은 어떤 형태의 행동으로 조직될 것인가?

불안은 사람들을 비합리주의,극단주의 또는 광신 상태로 몰아갈 것인가?

▶ 해석

울리히 벡은 위험에 대한 불안이 현대사회를 다른 시대와 구별짓는 특징이라고 하면서,그 불안이 사회와 구성원들을 어떻게 변화시켜왔는지,그리고 앞으로 어떻게 변화시킬지를 고찰한다.

저자는 위험사회를 현명하게 극복하기 위해서는 사회 구성원들의 유대와 협력이 필요하고,또한 제도적 노력 역시 뒷받침되어야 한다고 설명한다.

벡은 '위험의 제도화'라는 표현을 통해서 미래상을 제시하는데,우리가 맞닥뜨리고 있는 위험 요인들을 사회 제도의 틀 안으로 포섭하여,이를 사회 모두가 함께 고민하면서 해결해야 한다는 주장을 편다.

위험의 제도화는 근대사회에도 일어났던 일이다.

일례로 폭발적인 노사갈등의 위험은 노동법규의 제도적 정비를 통해서 대처 및 위험의 제어가 가능해졌다.

현재 우리가 맞서고 있는 사회 각 방면의 위험들도 적절한 제도화와 공동 대처를 통해서 극복할 수 있다고 울리히 벡은 말한다.

'위험'이라는 요소에 초점을 둔 울리히 벡의 독창적인 시선은 사회의 다양한 면면을 통찰력 있게 꿰뚫고 있다.

특히 다사다난한 우리 한국 사회에 '위험사회'는 시사하는 바가 많다.

홍보람 s·논술 선임연구원 nikehbr@nonsu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