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김만중 '서포만필(西浦漫筆)'

책을 읽으면 지식과 정보도 얻을 뿐만 아니라 다양한 체험을 할 수 있고,나아가 삶의 의미나 세계의 원리를 깨달을 수도 있기에 독서를 강조한다.

그렇다면 과연 책을 많이 읽은 사람은 책을 안 읽은 사람보다 더 많은 삶의 진리와 깨달음을 얻었다고 볼 수 있을까?

아니면 책을 읽지 않고도 직접체험을 통해 삶의 진정한 의미와 진리를 깨우치고 지혜를 얻을 수 있을까?

다음 제시문을 읽고 이 문제에 대해 깊이 있게 생각한 다음 논술문을 써 보자.

※ 아래 제시문을 읽고 문제에 답하시오.

(가) 삶의 의미와 세계의 원리 등에 대한 깨달음에 도달한다는 것은 지극히 어려운 일이다.

스스로 도달하기가 어려울 경우 앞선 스승들의 가르침을 기록한 글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글과 깨달음의 관계는 종종 손가락과 달의 관계로 비유된다.

손가락을 들어서 하늘에 떠 있는 달을 가리킬 때,만약 가리키는 달은 보지 않고 손가락 끝만 쳐다본다면 이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손가락이 달이 아니듯이 글의 내용도 깨달음 그 자체는 아니다.

하지만 손가락이 가리키는 방향에 달이 있듯이 글은 깨달음으로 이끌어 준다.

-고등학교 '철학교과서' 중에서

[친절한 금자샘의 교실밖 논술강의] 논제의 보물창고 고전수필 실전논술
(나) 금강산을 사랑하는 사람이 금강산 그림을 널리 수집하고 자세히 살펴본 뒤에 손뼉을 치면서 말하는 내금강·외금강의 봉우리,골짜기들은 생생하여 들을 만하다.

그러나 그가 한 번도 한양 밖을 나간 적이 없는 사람이라면,그가 본 것이라곤 종이 위의 풍경이므로 기껏해야 산을 보지 못한 사람과 이야기할 수 있을 뿐이다.

만일 그가 금강산에 있는 정양사 주지를 만난다면 곧바로 뒤로 물러서고 말리라. 범부(凡夫)들이 대개 그러하다.

그런데 그림으로만 금강산을 본 데 불과하면서도 타고난 슬기로움으로 그 속의 울긋불긋한 산길과 물길을 잘 알아보고,지난날의 묵은 자취에 얽매이거나 다른 사람의 말에 현혹되지 않은 채 산 속의 경치를 진짜 본 것처럼 상상해 내는 사람도 있다.

비록 단발령 고개 위에서 금강산을 본 것은 아니지만 그를 선지식*으로 추켜세울 수 있을 것이다.

장유(張維)가 바로 그런 사람이다.

- 김만중(金萬重)의 '서포만필(西浦漫筆)' 중에서

* 선지식(善知識) : 지혜와 덕망이 있고 사람들을 교화할 만한 능력이 있는 사람.

(다) 제나라 환공(桓公)이 어느날 당(堂) 위에서 책을 읽고 있었다.

목수 윤편(輪扁)이 당 아래에서 수레바퀴를 깎고 있다가 망치와 끌을 놓고 당 위를 쳐다보며 환공에게 물었다.

"감히 한 말씀 여쭙겠습니다만,전하께서 읽고 계시는 책은 무슨 내용입니까?"

환공이 대답하였다.

"성인(聖人)의 말씀이다."

"성인이 지금 살아 계십니까?"

환공이 대답하였다.

"벌써 돌아가신 분이다."

"그렇다면 전하께서 읽고 계신 책은 옛사람의 찌꺼기이군요."

환공이 벌컥 화를 내면서 말하였다.

"내가 책을 읽고 있는데 바퀴 만드는 목수 따위가 감히 시비를 건단 말이냐.


합당한 설명을 한다면 괜찮겠지만 그렇지 못하다면 죽음을 면치 못할 것이다."

윤편이 말하였다.

"신(臣)의 일로 미루어 말씀드리겠습니다.

수레바퀴를 깎을 때 많이 깎으면 굴대가 헐거워서 튼튼하지 못하고 덜 깎으면 빡빡하여 굴대가 들어가지 않습니다.

더도 덜도 아니게 정확하게 깎는 것은 손짐작으로 터득하고 마음으로 느낄 수 있을 뿐,입으로 말할 수는 없습니다.

물론 더 깎고 덜 깎는 그 어름에 정확한 치수가 있을 것입니다만,신이 제 자식에게 깨우쳐 줄 수 없고 제 자식 역시 신으로부터 전수받을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일흔 살 노인임에도 불구하고 손수 수레를 깎고 있는 것입니다.

옛사람도 그와 마찬가지로 가장 핵심적인 것은 책에 전하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을 것입니다.

그래서 전하께서 읽고 계신 것이 옛사람들의 찌꺼기일 뿐이라고 말씀드린 것입니다."


-'장자(莊子)' '천도(天道)' 편 중에서

[논제] 다음 글 (가)와 (나)에 비유적으로 표현된 내용을 해석하여 제시하고,이를 바탕으로 (다)의 '윤편'의 주장에 대한 반론을 논리적으로 서술하시오.

(2006학년도 부산대학교 논술고사 기출문제)

⊙ 예시 답안 : 이○○ (신림고)

제시문 (가)에서는 독자가 글을 통해 얻게 되는 깨달음을 달에 비유하고 있으며,깨달음을 도와주는 글은 손가락에 비유하고 있다.

(나)에서는 깨달음을 금강산에 비유하고 있다.

금강산에 다녀온 사람,곧 깨달음을 얻은 사람은 그림으로 금강산을 표현해 놓고,금강산을 알고자 하는 사람,곧 독자는 그림에 기대어서 금강산을 참모습에 가깝도록 상상한다.

제시문 (가)와 (나)에서는 글이나 그림이 깨달음 그 자체는 아니지만 그것으로서 가치가 있고,또한 깨달음으로 이끌어주는 훌륭한 수단이 된다고 보고 있다.

제시문 (다)에서 '윤편'은 성인이 깨달은 내용을 글로는 온전히 담아낼 수 없기에 찌꺼기에 불과한 경전을 읽어 보아야 깨달음에는 이를 수 없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제시문 (가)와 (나)에서 말하고 있듯이,손가락과 그림을 통해서 깨달음을 전수할 수 있는 가능성이 열려 있다.

물론 그런 가능성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작자와 독자,모두의 노력이 필요하다.

책을 통해서 깨달음을 얻는다는 것은 무척 힘든 일이다.

작가가 자신의 깨달음을 온전하게 글로 표현하기도 힘들고,독자도 책을 읽고 깨달음의 내용에 다가가기도 힘들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제시문 (나)에 나오는 장유처럼 독자는 글 자체가 달이나 금강산은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알고 스스로의 슬기로움을 발휘해야 한다.

그렇게 되면 직접적인 체험에 국한되지 않는 깨달음을 얻을 수 있기에 '윤편'과 같이 자식에게도 전할 수 없다고 절망할 필요는 없다.

또한 글은 깨달음과 무관하므로 찌꺼기에 불과하다는 선입관은 버려야 한다.

작자와 독자가 글을 통해서 깨달음을 주고받을 수 있기 때문에 다음 세대로 이어지는 인식의 발전도 가능하게 되는 것이다.

⊙ 강평

제시문의 내용을 각각 분석해 보면 다음과 같다.

제시문 (가)에서는 '글의 내용은 깨달음은 아니지만,글은 깨달음으로 이끌어 준다'는 것을 달과 손가락의 관계에 비유하고 있다.

제시문 (나)에서는 책을 읽어 단순히 지식만 많이 쌓은 사람(범부)과 타고난 슬기로움으로 그 지식을 지혜로 승화시킨 사람(장유)을 비교하고 있다.

(다) 제시문에서는 목수 윤편은 책으로는 깨달음을 얻을 수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위 논제에 답하기 위해서는 우선 제시문의 내용을 분석하여 비유적으로 표현된 부분을 해석해야 한다.

비유적으로 표현된 것이 정확히 무엇인지,목수 윤편이 주장하는 것이 무엇인지 정확히 이해하지 못한다면 논술문의 결론은 아주 이상하게 될 것이다.

따라서 글(책)과 깨달음의 관계에 대한 학생의 입장을 서술하되,'윤편'의 주장인 '책은 찌꺼기'에 대한 반론을 제시해야 하는 것이다.

위 학생의 글을 보면,제시문에서 비유적으로 표현된 부분에 대한 해석도 정확하고,윤편의 주장에 대한 반론도 논리적으로 잘 펼치고 있다.

다만 아쉬운 점은 글을 통해 옛 성현들의 지혜를 깨달을 수 있다는 것을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예를 들어주었다면 훨씬 더 좋은 글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책을 읽지 않는 세태에 대한 비판을 하되 그 이유나 근거도 구체적으로 제시했었다면 훨씬 더 설득력있는 글이 될 수 있다.

백금자 신림고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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