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이인로 '월등사죽루죽기(月燈寺竹樓竹記)'

[친절한 금자샘의 교실밖 논술강의] 논제의 보물창고 고전수필 실전논술
얼마 전 필자는 S대학에서 교사대상 논술연수를 받았다.

그때 그 대학 논술담당 교수로부터 직접 들은 얘기를 잠깐 인용해 보면 다음과 같다.

대입 논술 답안은 크게 A B C D 네 등급으로 나누어지고, 이 네 등급의 기준은 대부분 상대평가에 의해 이루어진다.

그러나 원칙적 차원에서 본다면 크게 글의 내용과 형식, 두 가지를 본다.

내용을 평가하는 것은 '무엇을' 썼는지 평가하는 것이고, 형식을 평가하는 것은 '어떻게' 썼는지 평가하는 것이다.

D급 답안은 내용에 상관없이 형식을 갖추지 못한 답안이다.

예를 들면, 결론이 무엇인지 알 수 없거나 결론은 있지만 근거 제시가 전혀 되지 않을 경우 D급으로 평가된다.

반면, A급 답안은 형식적으로 큰 문제가 없으면서 내용이 탁월한 글을 말한다.

다시 말해 논리적 구성에 별 문제가 없으면서 자기 나름의 결론과 깊이 있고 다각적인 근거를 제시한 글이다.

논술시험에 응시한 학생이라면 누구나 A급 답안을 쓰고 싶을 것이다.

그렇다면 자기 나름의 결론과 깊이 있고 다각적인 근거는 어떻게 쓸 수 있을까?

이때 필요한 것이 바로 관점의 전환이다.

새로운 관점으로 접근해서 재해석하려는 태도가 필요한 것이다.

고정관념이나 선입견 편견을 극복하지 못한다면 새로운 관점은 만들어지지 못한다.

위 평가기준에 유념하면서, 다음 고전수필 '월등사죽루죽기'를 읽고 같은 대나무를 바라보는 태도가 사람들마다 왜 다른지, 그러한 차별은 왜 생기는지 그 이유를 오늘날의 상황에서 찾아보자.

※ 아래 제시문을 읽고 문제에 답하시오.

화산 월등사 서남쪽에 죽루라는 누각이 있다.

이 누각의 서편 언덕에 대나무 수천그루가 자라는데, 절의 후면을 에워싸고 울창하게 솟아 있는 것이 볼 만하다.

주장 노승인 대선후가 일찍이 이 대나무를 매우 사랑했다.

하루는 노승이 누각에 손님들을 모아 놓고 대나무를 가리키며 말했다.

"여러분들이 대나무의 좋은 점을 각자 말씀해 주신다면 대단히 고맙겠습니다."

그러자 어떤 사람이 말했다.

"대나무의 순은 좋은 먹거리입니다.

죽순이 쑥쑥 자랄 때 마디는 촘촘하고 대 속은 살이 올라 꽉 차게 됩니다.

이때에 도끼로 찍고 칼로 다듬어서 솥에 삶아 내거나 풍로에 구워 놓으면 향기가 좋고 맛이 연하여 입에는 기름이 돌고 배는 살이 찝니다.

쇠고기나 양고기보다 맛있고, 노린내 나는 산짐승 고기와는 비교도 되지 않습니다.

이른 아침에 먹어도 질리지 않으니, 대의 맛이 이러합니다."

어떤 이가 또 말했다.

"대가 단단해 보이지만 그런 것만은 아니고, 유약해 보이지만 그런 것만도 아니어서, 사람이 여러 가지로 활용하기 좋습니다.

휘어서 만들면 광주리와 상자가 되고, 가늘게 쪼개 엮으면 문을 가리는 발이 되며, 엷게 쪼개서 짜면 마루에 펴는 자리가 되고, 또 쪼개서 다듬으면 고리짝과 도시락과 술을 거르는 용수는 물론, 소와 말을 먹이는 여물통과 대그릇과 조리 따위가 됩니다.

이것이 모두 대로 만드는 것이니, 대의 성질이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이 말했다.

"대가 솟아날 때에는 무더기로 솟는데 작은 것, 큰 것, 먼저 난 것, 나중 난 것이 순서를 다툽니다.

처음에는 약하게 나오고 얼마 후에는 가늘게 자랍니다.

그러다가 바다거북의등 같은 두꺼운 껍질이 벗겨지고 옥기둥 같은 줄기가 자라나면 흰 가루는 없어지고 껍질이 단단해지면서 흰 마디가 뚜렷해집니다.

푸른 연기가 흩어지지 않고 바람 소리가 저절로 납니다.

쇄쇄 하는 소리와 두터운 그늘과 저녁의 그림자는 달빛을 희롱하며, 차가운 모습으로 눈에 덮여 있습니다.

대나무는 이럴 때가 가장 아름답습니다.

봄에서부터 섣달그믐때까지 날마다 여기서 시를 읊을 수 있고, 근심 걱정을 잊을 수 있으며, 기분을 돋울 수 있습니다.

대의 운치란 이런 것입니다."(중략)

식영암이 말했다.

"그 맛이나 재목, 혹은 운치나 지조 때문에 이 대를 좋아한다면, 이것은 겉만을 알고 그 본질을 알지 못하는 것입니다.

대나무가 처음 땅에서 돋아날 때부터 단번에 쑥 자라 버리는 것을 보면 선천적으로 자질을 타고 난 사람이 하루아침에 문득 깨달음이 향상되는 것을 알 수 있으며, 대가 늙을수록 더욱 단단해지는 것을 보면 후천적으로 노력한 사람의 힘이 차츰차츰 증진해 나아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또 대가 그 속이 빈 것을 가지고 보면 사람의 마음을 비운 모습인 것을 알 수 있으며, 대가 바깥쪽이 곧은 것을 가지고 보면 사람의 실상이 어떠한지 얘기할 수 있습니다.

대의 뿌리가 용으로 변화하는 것은 부처님이 될 수 있음의 비유가 되며, 열매로 봉황을 먹게 하는 것은 남을 유익하게 하는 행위입니다.

대사가 대를 좋아하는 까닭은 아마도 저런 이유 때문이 아니고, 이런 이유 때문인 듯합니다."

노승이 말했다.

"정말 의미가 깊도다.

그대의 말이여.

그대야말로 대나무의 유익한 친구입니다."

- 이인로의 <월등사죽루죽기(月燈寺竹樓竹記)> 중에서

[논제] 제시문의 내용을 참조하여 대상이나 사물의 한쪽 측면만을 바라보는 태도가 나타나게 된 요인들을 밝히되 오늘날의 사례를 활용하여 자신의 견해를 논술하시오. (700~800자)

⊙ 예시 답안♥ 박준오(신림고)

제시문에서는 한 명만을 제외하고 대나무를 모두 외적인 관점에서만 바라보고 있다.

이러한 예는 우리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다.

입사시험에서 그 사람의 학벌이나 외모를 보고 지레 짐작하여 좋은 인재를 시험에서 떨어뜨리기도 한다.

또 브랜드 가치에 혹해서 물건을 샀다가 이름값을 못하는 품질 때문에 애먹은 일은 모두 사람이나 사물의 평가를 내릴 때 학벌, 브랜드 등 외적인 것만 보고 생긴 고정관념 때문에 내면의 가치를 보지 못하기 때문에 생겨나는 것들이다.

그럼 이러한 일은 왜 일어나는 것일까?

나는 이러한 일들이 빨리 모든 일을 처리해야 하는 세태 때문에 내면을 볼 여유가 박탈당해서 생긴 일이라고 본다.

입사시험과 같은 일을 생각해보자.

인사담당자는 시험자의 서류와 짧은 시간의 면접으로 시험 대상자의 모든 것을 보고 합격과 불합격을 결정한다.

게다가 이런 일에 시간을 낭비할 수 없다.

최대한 빨리 끝내야 한다.

그 사람의 내면을 볼 시간이 없다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학벌을 보고 명문대 생은 모든 면에서 뛰어날 것이라는 자신의 편견에 의해 사원을 뽑는 사태가 일어나는 것이다.

한쪽 측면만 바라보는 것은 사회의 발전에 걸림돌이 된다.

그러면 이러한 태도를 고치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 할까?

우선, 외면의 학력과 외모 등이 아닌 내면의 지혜와 통찰력 등 내적인 것을 볼 수 있는 사회적 구조가 되어야 한다.

시험장으로 오는 길에 휴지를 떨어뜨려 놓고 휴지를 주운 사람을 뽑은 한 인사 담당자의 지혜에서 배워 내면의 것을 판단할 수 있는 구조가 되어야 할 것이다.

또한 개개인 모두 외면보다는 내면을 갈고 닦으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

⊙ 강평

'A급 답안은 형식적으로 큰 문제가 없으면서 내용이 탁월한 글을 말한다'고 서두에서 얘기한 바 있다.

이것은 어떤 의미일까?

바로 형식적 측면보다는 내용의 측면이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이 논제에 대한 학생들의 글을 보면 대상이나 사물의 한쪽 측면만을 보게 되는 요인들로 새로운 것에 대한 두려움이나 거부감, 무지, 편견, 선입견, 고정관념, 사회적 이해관계, 체제 유지, 기득권의 고수, 인습이나 타성 등을 제시했다.

오늘날의 사례를 활용하라는 요구에는 대부분의 학생들이 부응했으나, 여러 사례를 들고 장황하게 설명하면서도 정작 필요한 그 사례에 대한 해석과 논의가 빈약한 답안이 많았다.

위 학생의 경우에는 오늘날의 사회현상 중에서 학벌과 외모를 중시하는 입사시험을 예로 들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내면을 볼 여유가 없이 빨리빨리 일을 처리하는 사회구조 때문이며 사회발전에 걸림돌이 되기에 고쳐져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형식적으로 큰 문제가 없으면서 상투적인 방식이 아닌 자기 나름대로의 시각을 갖고 문제 해결에 접근하고 있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이라고 한다면, 사물이나 대상의 한쪽 측면만을 보는 태도는 사회 발전에 걸림돌이 되기 때문에 개개인은 어떠한 노력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내용이 미약하여 설득력이 떨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백금자 신림고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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