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규재 한국경제신문 논설위원

☞ 한국경제신문 2월26일자 A39면

이명박 대통령 정부가 출범했다.

그러나 달리 무엇을 기대할 것이며 주문할 것인가.

정치는 결코 국민 다수의 평균적 수준을 넘어설 수 없는 법이다.

첫 내각 후보 명단에서 우리가 보았던 것도 그것이다.

논문을 표절하고, 복부인이 따로 없고, 자식은 이중국적이며, 정체불명의 외국 투기자본이 주는 사외이사 자리라도 마다않고 꿰차며 살아왔던 다채로운 인생 역정에서 우리는 쉽게 눈을 뗄 수가 없다.

고르고 고른 분들이 그런 정도라면 지금도 줄을 대기 위해 동분서주하는 인물들도 다를 바 없을 것이라는 암담한 추정만 해볼 뿐이다.

물론 그것을 정당화할 까닭은 없다.

체면을 구기더라도 잘못된 것은 바로잡으면 되는 것이고, 이런 때일수록 더욱 엄정한 도덕적 잣대를 들이대는 것이 옳다.

누구를 탓할 일도 아니다.

한국의 지식인을 자처하는 사람들이며, 중산층을 자처하는 사람들이 살아왔던 방식이 그런 것 아니었나.

좌파를 핑계대기만 하면 시장 세력이 되고 정부의 무능을 탓하면 자신은 유능해 보이는 그런 왜곡과 굴절이 있었기 때문에 옥석을 구분하기 더욱 어렵기도 했다.

평등주의를 비난하면서 계급주의를 정당화하고 자유를 주장하면서 갖은 기회를 노리는 천박성을 정당화해왔던 것이 지난 10년이기도 했던 것이다.

나라의 중심 세력이라고 자부하는 중산층들도 마찬가지다.

중산층 지식인 그룹 가운데 고르고 고른 사람들이 이런 정도라는 사실을 직시하는 바탕 위에서 이제는 정치질서가 아닌 행동양식에 새로운 변화를 만들어 내지 않으면 안 되는 순간이 왔다.

이명박 정부 5년 동안 새로운 삶의 방식을 만들어 내지 못한다면 나중에는 노무현 정부 아닌 더욱 기형적인 좌파 정부를 필시 맞닥뜨려야 한다는 점을 이명박 대통령 취임식을 보면서 지금 가슴에 새겨야 한다.

시장경제라는 이름으로 부패를 정당화하고 황금만능에 천박성까지 정당화하기로 든다면 이명박 아니라 그 어떤 대통령이 집권하더라도 더 이상 몇 년을 견딜 것인가.

정부가 그 어떤 노력을 펴더라도 저출산 노령화가 진척되는데 비례해 빈부격차는 더욱 벌어질 것이고 우리가 통제할 수조차 없는 해외발 인플레이션과 대불황이 덮치고 있는 상황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앞으로 1, 2년 동안은 누가 뭐래도 내수경기 아니면 경제를 지탱할 길이 없는 구조에서 혹여 그것이 투기붐까지 촉발시킨다면 그것만으로도 새 정부는 단기간 내에 충분히 모욕적 평가를 듣게 될 가능성이 크다.

그리되면 희망은 순식간에 절망에 자리를 내주게 될 것이다.

중산층이 달라지지 않는다면 이명박 정부도 희망이 없다.

대중은 너무도 쉽게 언제든 성난 군중으로 돌변하게 마련이다.

좌파 정부가 판을 깨면서 하려고 했던 일을 이제 중산층이 스스로 떠맡아야 마땅하다.

시장경제를 지키려면 그것을 따뜻한 것으로 변화시켜야 하고 기업들도 사회 속으로 들어가야 한다.

중산층의 개인적인 사회 기여가 가장 빈약한 나라에서 정치가 안정되기를 바라는 것은 무리다.

이제는 누구를 핑계댈 수도 없다.

중산층이 사회적 책임을 버린다면 노무현 아니라 그보다 더한 인물이 나와 또 다시 문화혁명적 상황을 만들어 내면서 판을 깨자고 나서는 것도 시간 문제다.

시장경제가 가장 깨끗한 체제이며 개방적이며 더구나 도덕적이라는 것을 보여주지 못하면 새 정부도 결코 성공할 수 없다.

그것은 정부 아닌 중산층에 달려 있다.

한국은 태생적으로 높은 좌파 정서를 가진 나라다.

노무현 정부가 결코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것이 아니라는 점을 잊지 말라.

다음 번에는 종부세가 아니라 부유세와 증오세가 올 것이라는 사실을….

jkj@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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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산층도 내면적 윤리나 사회적 책임을 다해야 할 때

해설

이명박 정부가 출범하면서 내세운 장관 후보자들의 도덕성 적격 여부가 심판대에 올랐다.

장관 후보자들 가운데 부동산 투기 문제로 이춘호 여성부 장관 후보자등 3명의 내정자가 이미 스스로 사퇴의사를밝혔으며 다른 후보자들도 야당인 민주당으로부터 사퇴 압박을 받고 있다.

성숙한 시민의식과 따뜻한 시민사회를 기반으로한 건전한 보수의 육성을 내세운 이명박 정부로서는 장관 후보자의 부도덕성이 큰 타격이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사실 중산층이란 노동자 계층보다 지식과 자산을 많이 갖고 있지만 자본가에는 끼지 못하는 계층을 일컫는다.

한 사회와 국가의 튼튼함과 건전성을 판단하는 기준은 중산층이 얼마나 두터우냐에 달려 있다고 사회학자들은 얘기한다.

이들은 또한 국가 경쟁력의 핵심을 이루는 계층이기도 하다.

최근 일본 정부가 일본 내에서 중산층이 얇아지고 빈부격차가 심해지고 있는 현상을 가장 두려워 해 이들을 보호하는 각종 시책을 내고 있는 것만 보더라도 이들의 존재와 힘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 수 있다.

중산층의 힘은 물론 시민사회를 이끌어가는 주역이라는 데에서 비롯된다.

따라서 이들이 얼마만큼의 재산을 축적하고 있느냐 못지않게 적절한 교양과 함께 윤리적이고 합리적인 도덕의식을 갖고 있는지도 매우 중요하다.

자신에 대한 엄격한 도덕적 잣대는 물론 사회적 책임에 대한 자각을 하고 있어야 비로소 중산층이라고
이름을 얻게 되는 것이다.

정규재 논설위원이 칼럼을 통해 주장하는 내용은 한국에서 중산층이 이제 건전한 시민사회를 구성하는 원동력으로 자리매김해야 하며 이를 위해서는 그동안 추구해왔던 지식이나 부의 축적 등 하드웨어적인 모습에서 벗어나 중산층에 걸맞은 소프트웨어적 변화를 이뤄야 한다는 것이다.

즉 자신을 중산층이라고 믿는 사람들일수록 내면적 윤리나 사회적 책임을 다해야 할 때가 왔다는 설명이다.

그는 특히 이명박 정부의 장관 인선에 대해 언급하면서 “중산층 지식인 그룹 가운데 고르고 고른 사람들이 이런 정도라는 사실을 직시하는 바탕 위에서 이제는 정치질서가 아닌 행동 양식에 새로운 변화를 만들어 내지 않으면 안 되는 순간이왔다”고 지적하고 있다.

정부가 바뀌었다고 사회가 저절로 발전하는 것이 아니며 중산층이 스스로를 업그레이드해 가지 않으면 진정한 의미의 사회발전도 기대하기어렵다는 말이다.

중산층의 사회책임 의식이 제대로 확립돼야만 한국 사회가 천민자본주의나 좌파이데올로기에 함몰되지 않고 도덕적 성실성과 진정성을 가진 시민사회로 나갈 수 있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시장경제를 지켜내고 자본주의를 유지하기 위해서라도 중산층의 자각과 과감한 개혁 운동이 우리 사회에서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다.

오춘호 한국경제신문 연구위원 ohcho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