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책학과 국제정치학의 살아있는 교과서

[고전속 제시문 100선] (76) 사회과학 명저를 찾아서 ② '결정의 엣센스 Essence of Decision'
1971년 초판이 나온 이래 단순히 정책학뿐만 아니라 모든 분야의 전문가들과 일반인들에게 열렬한 환호를 받으며 곧바로 고전의 반열에 오른 책이 있다.

영화도 시리즈가 뒤로 가면 갈수록 재미없어지는 것이 일반인지라 이런 책을 고쳐 쓰기란 참으로 부담스러웠을 것인데 초판 출간 28년 만인 1999년에 용감한 개정판이 나오게 된다.

개정판은 통상의 우려와는 상관 없이 고전의 재탄생이라는 수식을 받으며 다시금 세간의 이목을 끄는데, 이 책이 바로 <결정의 엣센스;Essence of Decision>이다.

1999년 발간된 개정판에는 초판의 저자인 그래엄 앨리슨(Graham Allison)뿐만 아니라 콘돌리자 라이스 미 국무장관의 자문인 필립 젤리코(Philip Zelikow)도 함께 저자로 참여하고, 28년 사이 확보한 더욱더 세밀하고 풍부한 자료와 정확한 사실이 곁들여져 한층 높은 완성도를 갖추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사실 영어 원제를 충실히 번역하자면 '의사 결정의 요체'이다.

하지만 영어와 한국어를 반반씩 섞은 '결정의 엣센스'라는 제목이 워낙 유명해졌으니 그 제목을 그대로 사용하는 것도 무리가 없을 듯하다.

<결정의 엣센스>는 부제인 '쿠바 미사일 위기의 설명'(원제 Essence of Decision;Explaining the Cuban Missile Crisis)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1962년 쿠바 미사일 위기 사태를 다각도로 조명한 책이다.

핵무기가 세상에 등장한 이후 핵전쟁 위기의 가능성은 항상 존재해 왔으나, 그 긴장의 끈이 가장 팽팽하게 당겨졌던 때가 이 책의 시간적 배경인 1962년이다.

쿠바 미사일 사태는 한국 사회에서는 그다지 주목하는 사건은 아니지만 제3차 세계대전의 전조가 충분히 될 수 있었던 사건이었다.

우리도 남북 대치 상황에서 북한의 핵무기 개발로 20년 넘게 곤란을 겪어오고 있기 때문에 1962년 10월의 긴장감은 쉽게 상상할 수 있을 것이다.

당시의 피 말리는 상황을 옮긴 이라는 영화는 미국 각료들의 고심과 번뇌를 흥미진진하게 다루고 있는데 <결정의 엣센스>와 함께 본다면 재미가 배가될 것이다.

<결정의 엣센스>에는 1962년 10월 소련이 미국의 지근 거리에 위치한 쿠바에 핵 미사일을 설치한 것을 미국 정부가 알게 되고 이에 대응하는 과정이 예리하게 분석되어 있다.

유명한 '정책 결정의 세 가지 모델'을 낳은 이 책은 쿠바 미사일 위기 상황에서 미국과 소련의 정책 결정이 어떻게,왜 이루어졌는지를 설명하고 분석한다.

즉,쿠바 미사일 위기사태에 관한 사례 연구를 통해 의사 결정의 일반론을 도출하고 또다시 일반론을 구체적 사례에 적용하고 있는 내용이다.

앨리슨의 세 가지 의사결정 모델은 제1모델인 합리적 행위자 모델, 제2모델인 조직행태 모델,제3모델인 정부정치 모델이다.

<결정의 엣센스>에서는 쿠바 미사일 사태의 구체적 상황과 상기 세 모델이 번갈아 가며 다루어진다.

이론은 이론끼리, 사례는 사례끼리 다루는 구조가 아니라 이론-사례-이론-사례-이론-사례의 세련된 형식이어서 한자리에 앉아 책 한 권을 떼어도 지루한 감이 전혀 없다.

'가까이하기에는 지루한 고전'이 절대 아니므로 누구에게나 일독을 권하고 싶은 책이다.

정책학과 국제정치학의 살아 있는 교과서라고 평가받는 <결정의 엣센스>는 정책 결정의 현실을 생생히 파헤치고 분석한다.

이 유명한 책의 시작은 아주 소박하다.

우리가 어떤 국가의 행위를 이해하기가 참 곤란하다는 것이다.

복잡하고 알기 힘든 국가의 행위를 설명하고 분석하는 것이 이 책의 목표였다.

결과는 외교 정책을 넘어서는 모든 정책학 분야와 경영학 분야에서 귀감으로 삼는 책이 되었지만 말이다.

국가의 행위를 이해하려는 노력은 앞에서도 말했듯이 세 가지 방식으로 이루어져 있다.

하나씩 짚어가며 원문의 맛을 느껴 보기로 하자.

⊙ 원문 읽기

행위와 행동은 어떻게 다른가?

인간의 행위가 목표 지향적이란 의미는 무엇인가?

또 인간의 활동이 '의도에 있어서 합리적'이라는 것은 무슨 의미인가?

경제학, 결정 이론, 그리고 게임 이론에서는 이와 같은 합리적 행동에 대한 정밀한 모델을 개발해 왔다.

그 정밀성은 행동이 목표 지향적이라는 기본적 개념에 합리성의 개념을 더하되 그 합리성의 개념을 엄격히 정의함으로써 얻어진다.

합리성의 개념에서 중요한 것은 일관성(consistency)이다.

즉, 특정한 행동의 목표와 목적에 있어서 일관성이 있어야 하고 대안을 선택하는 기준에 있어서도 일관성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합리성이란 '주어진 상황에서 특정한 목표에 적합한 행위'를 지칭한다.(중략)

곧 합리성이란 주어진 제약 조건 속에서 일관성이 있고 가치를 극대화하는 선택을 말한다.'

▶해설

합리적 행위자 모델은 국가의 행위가 단일한 선상에서 합리적으로 이루어진다고 가정한다.

이 모델에서 중요하게 다루는 개념으로는 목표와 목적, 대안, 결과, 선택 등이 있다.

국가는 경제학에서 가정하는 개인과 마찬가지로 철저한 계산에 따라 가장 효용이 높은 선택을 한다는 것이다.

이는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국가(자국보다는 주로 다른 나라)의 이미지와 가장 흡사하다.

저자들은 이 모델을 적용해 쿠바 미사일 사태에서 소련과 미국의 '계산'과 '선택', 그리고 그들의 '목적'을 분석한다.

하지만 이내 이들은 다른 관점에서 접근하는 것을 시도한다.

그 다른 관점은 조직행태 모델과 정부정치 모델이다.

⊙ 원문 읽기

제1모델은 정부의 행위를 의식적인 선택의 결과라고 본다.

그리고 선택을 한 정부는 잘 통제되고 완전한 정보를 가진, 가치의 극대화를 추구하는 단일하고 합리적인 의사 결정자라고 가정한다.

그와 같은 가정은 매우 유용할 때가 있다.

그러나 누가 뭐래도 정부는 개인이 아니다.

대통령과 그 측근이 전부가 아니란 뜻만은 아니다.

대통령 말고 입법부와 사법부가 있다는 뜻도 아니다.

정부는 조직이다.

저마다의 독자적인 생명력을 지닌 여러 조직이 느슨하게 엮어진, 마치 재벌과 같은 관벌이다.

정부의 지도자는 이 관벌의 총수에 불과하다.

정부가 문제를 인식하는 것은 결국 조직의 촉수를 통해서다.

정부는 각 조직이 처리하는 정보에 따라 대안을 규정하고 결과를 평가한다.

정부의 행동은 조직의 짜여진 관례, 혹은 통상 절차를 작동함으로써 이루어진다.

이렇게 볼 때 정부의 행위는 의식적인 선택이 아니라 거대한 조직들이 미리 규정된 행위 패턴에 따라 작동한 일종의 산출물이다.

▶ 해설

조직행위 모델은 국가가 '조직'임에 주목한다.

국가를 개인과 단순 비교할 수는 없다고 하면서 조직 문화와 조직 행태에 관심을 보인다.

조직은 조직만의 특수한 논리에 기반하여 움직이는데, <결정의 엣센스>가 가장 중요하게 다루는 것은 '표준업무 절차;standard operation procedure'이다.

특정 조직에서 표준으로 삼고 있는 업무절차 관습은 그 조직이 어떻게 행위하는지를 결정한다는 것이다.

정부는 여러 조직으로 구성되어 있고, 조직의 복합적 상호작용인 국가의 행위는 단일한 의사 주체의 합리적 의사 결정과는 큰 차이를 보인다.

이 모델은 조직론 연구에 큰 영향을 미쳤다.

그러나 저자들은 이에 그치지 않고 쿠바 사태를 둘러싼 정부 행위를 두고 또 다른 분석을 한다.

⊙ 원문 읽기

각 조직의 수장은 홀몸이 아니다.

경쟁이 매우 치열한 경기에 참가한 대표 선수와 같다.

그 경기의 이름은 정치다.

조직의 특징인 위계적 구조로 인해 그와 같은 경기는 정부 조직의 각 단계에서 진행된다.

이와 같은 기본적 틀을 가진 제3모델에 따르면 정부의 행위는 조직의 산출이 아니라 협상 게임의 결과다.

그 결과는 서로 다른, 그리고 경쟁하는 이익과 선호가 맞물려서 빚어낸다.

제1모델과 달리 제3모델, 즉 정부정치 모델에는 단일한 행위자가 아니라 각자가 선수인 많은 행위자가 있다.

이 선수들은 단 한 번의 전략적 게임을 하고 마는 것이 아니라 여러 개의 게임을 동시에 벌인다.

그리고 '국가 이익'이라는 이름으로 일관성 있는 이익구조를 가진 것이 아니라 각자가 생각하는 국가 이익, 조직 이익, 개인 이익에 따라서 경기한다.

정부의 결정은 심사숙고한 한 번의 결정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여럿이 서로 '밀고 당기는' 게임의 결과로 이루어진다.

그것이 정치다.

정부조직 그 자체가 아주 복합적인 게임의 무대다.

게임에 참여하는 경기자에는 정부의 최고 지도자가 당연히 포함된다.

그러나 그 말고 각 조직의 수장들도 함께 참여하여 핵심 경기자 집단을 구성한다.

핵심 집단의 참가자는 문제가 된 사안에 함께 참여하여 핵심 경기자 집단을 구성한다.

핵심 집단의 참가자는 문제가 된 사안에 따라서 결정된다.

일부 참여자는 직책상 참가가 필수적이지만 일부는 초청받고, 다른 일부는 스스로 우겨서 그 집단에 참가한다.

그 핵심을 중심으로 하는 여러 개의 동심원을 그리면 여러 단계의 경기장이 만들어진다.

정부의 하위 관리들, 언론, 이익집단, 시민단체, 그리고 국민 전체가 모두 게임의 참가자가 된다.

▶해설

정부정치 모델을 아주 쉽게 말하자면, 국가의 행위는 난해하고 복잡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서로 다른 이해 관계를 가진 다양한 주체들이 뛰어들어 얽히고 설키면서 영향력을 행사하기 때문에 원래 국가의 행위는 예측하기 힘들고 복잡다양하다.

정부정치 모델은 권한은 여러 기관이 공유하고,권한 주체들 사이에서는 끊임없는 흥정이 진행된다고 한다.

그래서 '대통령을 평가하는 기준은 그가 어떠한 행동을 취했는지가 아니라 그가 결과에 어떠한 영향을 미쳤는지'라는 유명한 표현대로, 권력은 결과에 미치는 영향력의 정도라고 정의한다.

그리고 흔히 국내와 국외를 구분하나,국내 관계와 국제 관계는 맞물려 작용하기 때문에 국내 정치의 논리가 국제 정치에 뛰어들기도 하고,국제 정치의 논리가 국내 정치의 흐름을 형성하기도 한다.

현대 과학의 카오스 이론이 연상되는 설명이지만, 현실에 대한 가장 생생하고 역동적인 접근 방식이다.

신문 지상에는 항상 국가를 둘러싼 크고 작은 뉴스들이 끊이지 않는다.

그리고 그에 대한 분석 또한 다채롭기 그지없다.

국가가 도대체 왜 그러한 행동을 하는지 그 이유를 설명하고 싶다면, 국가의 행위를 찬찬히 들여다보고 싶다면,<결정의 엣센스>는 분명 큰 도움이 될 것이다.

홍보람 s.논술 선임연구원 nikehbr@nonsu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