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속 제시문 100선] (74) 동양고전의 세계를 찾아서 ④ 묵자(墨子)
결코 폭력적이지 않은 낭만적인 조직깡패?


현재 우리가 그저 엄숙하다고만 생각하는 인물들 가운데 상당수는 탈도 많고 말도 많은 인생을 살다 갔다.

묵가(墨家)의 인물들도 마찬가지다.

묵가를 쉽게 이해하자면 낭만적인 조직 깡패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조직 폭력배'라는 익숙한 표현을 마다하고 '조직 깡패'라는 다소 어색한 말을 사용하는 이유는, 묵가의 인물들이 병법과 무술에 탁월했고 엄격한 규율을 따르는 조직 생활을 하긴 했으나 결코 폭력적이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동양의 여러 사상가 집단 가운데 가장 낭만적 색채를 띠고 있는 집단이 바로 묵가이다.

강렬한 느낌을 위해 '낭만적 조직 깡패'라는 다소 긴 현대 속어로 옮겼으나, 당대로부터 흔히 쓰이던 정확한 호칭은 '묵협(墨俠)'이다.

그러나 어찌 하든 간에 의협을 따르는 삶을 살다 가신 분들이니 이해가 쉽게 의리와 낭만의 깡패라고 부른다 해도 고인들에 대한 명예훼손죄는 되지 않을 것 같다.

근래 개봉한 '묵공'을 비롯하여 여러 영화에서 두루 재조명이 되고 있는 묵가 사상은 영화 장르로 치자면 느와르와 어울린다.

<여씨춘추>의 기록에 의하면, 기원전 381년 양성군(陽城君)의 부탁을 받고 왕실의 공격에 대항해 성을 수비하던 묵가 학파는 수성에 패하자 집단 자살을 한 것으로 전해진다.

당시 묵가 집단의 총수였던 맹승(孟勝)과 그를 따르는 제자 183명이 성 위에 누워 자살하는 비장한 최후를 맞이했다.

맹승은 "왕실의 공격을 막을 힘도 없고 그렇다고 신의를 저버릴 수도 없다.

죽음으로써 신의를 지킬 수밖에 다른 도리가 없다.

양성군에 대한 나의 관계는 스승이기 이전에 벗이었고, 벗이기 이전에 신하였다.

지금 우리가 죽기를 마다한다면 앞으로 세상 사람들이 엄격한 스승을 구할 때 묵가 학파는 반드시 제외될 것이며, 좋은 벗을 구할 때에도 묵가 학파는 제외될 것이고, 좋은 신하를 구할 때도 반드시 묵가 학파가 제외될 것이다.

우리가 죽음을 택하는 것은 묵가의 대의를 실천하고 그 업을 계승하기 위한 것"이라며 자결하였다.

묵가가 왜 묵협이라고 불렸는지 그 이유를 알 수 있는 대목이다.

하지만 이런 면모만이 묵가 사상의 전부는 결코 아니다.

[고전속 제시문 100선] (74) 동양고전의 세계를 찾아서 ④ 묵자(墨子)
묵가 조직은 '거자(鉅子)'라는 책임자 아래 단결하고, 거자가 생사여탈권을 가질 정도로 조직 규율이 엄격하였지만, 그 이전에 무엇보다도 평화를 사랑하고 실리를 중시하는 실천적 사상가들이었다.

수천 년 전 사상이라서 왠지 곰팡내가 날 것 같다는 편견을 깨고 <묵자(墨子)>를 펼쳐보면 흥미롭고 다채로운 묵가의 면면을 살펴볼 수가 있다.

<묵자>는 본래 71편으로 이루어졌는데 그 가운데 18편이 유실되고 현재는 53편만이 전해지고 있다.

<묵자> 안에서는 묵가 학파의 창시자인 묵적(墨翟)이 항상 화자로서 등장하나, 묵적 혼자 <묵자>를 모두 집필한 것은 아니다.

묵적 자신이 집필한 부분도 있지만 그를 추종하는 후학들이 묵적에게 가탁하여 그의 목소리를 빌어 묵가 사상을 펼친 부분 또한 상당하다.

그래서 <묵자>에는 근 300년 세월에 걸쳐 정립되고 발전한 묵가 사상이 총체적으로 집대성되어 있다.

여타 사상서와 차별화되는 <묵자>의 특색은, 사회사상 및 논변에 관한 내용과 함께 병법과 고대 과학기술에 관한 내용이 망라되어 있다는 점이다.

묵가 사상가들은 실제로 기술자와 무사 출신이 많았다.

묵가 사상의 개창자인 묵자 또한 뛰어난 기술자임과 동시에 발군의 병술가였다.

'묵협'이었기에 병법을 자세하게 기술한 것이 당연하다고도 보이나, 묵가의 병법이 흥미로운 점은 오직 '방어'를 위한 병법이라는 것이다.

묵가는 평화를 사랑하고 전쟁에 반대하였다.

앞서 '낭만적'이라고 표현하였으나, 엄밀히 말하자면 '반전평화론자'가 묵가의 진면목이다.

<묵자>에서 병법을 다룬 부분의 편제는 '비공'이다.

비공(非攻)이란 문자 그대로 공격을 하지 말라는 의미이다.

묵가 사상가들은 어떤 전쟁이든 가리지 않고 참여한 것이 아니라 강자의 횡포로부터 약자를 지키는 방어 전쟁에만 참여하였다.

그래서 <묵자>에는 방어기술, 축성술이 소상하게 나와 있다.

즉, 묵가 집단에는 일상 생활과 마찬가지로 군인 생활 또한 묵가의 철학을 실현하는 길이었다.

반전평화론자에서 떠올리는 통상의 이미지를 뒤엎는 용맹한 '묵협'이기는 하지만, 그들의 용맹은 평화와 사랑이라는 묵가의 궁극적 가치를 실천하기 위한 방도였을 따름이다.

<묵자>의 핵심적인 메시지는 '겸애'를 비롯한 다른 편제에 담겨 있다.

묵자는 사회가 어지러운 원인을 규명하고 그 혼란을 극복하기 위한 방안을 다음과 같이 제시한다.

⊙ 원문 읽기

"천하를 다스리는 성인은 반드시 혼란이 일어나는 원인을 알아야 다스릴 수 있다.

혼란의 원인을 알지 못한다면 다스릴 수가 없는 것이다.

비유하자면 의사가 병을 고치는 경우와 마찬가지이다.

그 병의 원인을 알아야 병을 고칠 수 있으며 병의 원인을 알지 못하면 고칠 수 없는 것이다.

사회의 혼란을 다스리는 것도 이와 다를 것이 없다.(중략)

사회의 근본적인 세 가지 문제점은, 배고픈 자가 먹지를 못하고, 추운 자가 옷을 입지 못하고, 노역을 하는 자가 쉬지를 못하는 것이다."

▶해설=묵자는 사회문제의 근본 원인을 민생이 해결되지 않는 것이라고 파악하였다.

묵자는 '비유(非儒)'라는 글에서 유가를 신랄하게 비판하는데, 그들의 번거로운 장례 풍속이나 기타 예식이 지나치다는 것이 그 이유다.

허례허식과 과시적 행태를 비판한 묵자는 근검하고 소박한 생활이 바람직하다고 여겨, 생존에 꼭 필요한 것만을 누리는 금욕적 삶을 살라면서 '비례·비락·절용·절장'을 주장하였다.

묵가는 음식도 간소하였고 옷 또한 사치스러워서는 안 되었다.

그리고 노래와 오락도 금기시되었고 장례도 얇은 관 하나만으로 검소하게 치러야 했다.

묵자는 한가한 예술적 정서의 추구보다는 생산활동에 종사할 것을 주장하였다.

공자가 음악을 인격 도야의 최고 수단이라고 찬양한 것과는 사뭇 대조적인 태도다.

묵자는 사회 혼란의 또 다른 근본 원인이 사람들이 서로를 사랑하지 않는 것이라 하여 무차별적인 사랑을 주장하는 '겸애'를 설파하였다.

묵자의 사상 전반에 걸쳐 가장 중시되는 것이 바로 '겸애'로서 이는 너와 나의 구별이 없는 절대적 사랑을 말한다.

⊙ 원문 읽기

천하 사람들이 서로 사랑하면 세상이 올바르게 평화롭고, 사람들이 서로 증오하면 사회가 어지러워진다.

다른 사람을 사랑하지 않으면 안 되는 까닭은 이와 같다.(중략)

어진 사람(仁人)은 반드시 세상의 이로움을 찾아 일으키고 사회악을 없애는 일에 힘쓴다.

그렇다면 현 시점에서 가장 큰 사회악은 무엇인가?

큰 나라가 작은 나라를 공격하고, 큰 귀족 가문이 작은 귀족 가문을 어지럽히고 강자가 약자를 짓밟고, 사회의 다수가 소수자에게 폭력을 행사하며, 약삭빠른 자가 우직한 자를 기만하고, 귀한 사람이 천한 사람을 무시하는 것이 천하의 해로움이다.

또한 군주가 너그럽지 못하고, 신하가 충성스럽지 못하며,아버지가 인자하지 않고, 자식이 불효하는 것 또한 천하의 해로움이다.

그리고 칼과 같은 병기, 독약을 이용하거나 물과 불의 힘을 빌려 서로를 해치는 일 또한 사회악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사회악들이 발생하는 원인은 무엇인가?

이 문제들은 어디에서 생겨나는 것인가?

이것들이 남을 사랑하고 남을 이롭게 해주는 데에서 생겨나는가?

결코 그러하지 않다.

남을 미워하고 남을 해치는 데에서 이러한 문제들이 필연적으로 생겨나는 것이다.

악한 마음을 먹고 남을 해치는 자는, 겸(兼;평등박애)을 모르고 별(別;이기적 차별)을 따르는 자이다.

따라서 이기적인 차별의 마음을 가지는 사람이 정녕 천하의 크나큰 해악을 일으키는 것이다.

그러므로 별(別)은 옳지 않다.

우리가 남을 옳지 않다고 여긴다면, 반드시 그 사람을 바꾸어 놓아야만 한다.

남이 옳지 않다고 하면서도 그를 바꿔놓지 못한다면, 그것은 물에 물을 타는 것과 비슷한 허무한 짓이다.

그러므로 겸으로써 별을 바꿔야만 한다.

▶해설=묵자는 세상 사람들이 다만 자기 몸만을 사랑할 줄 알고 남을 사랑할 줄 몰라 남을 해치기를 꺼리지 않는다고 비판한다.

묵자는 세상의 모든 전란과 찬탈과 원한의 까닭이 바로 서로 사랑하지 않는 데에서 비롯한다고 보았다.

세상 사람들이 서로 사랑하지 않기에, 강자는 약자를 핍박하게 마련이고, 부자는 가난한 자를 업신여기며, 신분이 높은 자는 비천한 자를 경시하고, 약삭빠른 자는 어리석은 자를 기만한다고 하였다.

그리고 이러한 양태를 바꾸기 위해서는 서로 사랑하고 서로 이롭게 하는 원칙(兼相愛 交相利)을 따르고 실천할 것을 주장한다.

묵자는 '다른 사람을 자기 몸처럼 아끼고 사랑하라'고 말하며 자신의 철학을 일단 한 번 따른다면 그 옮음을 바로 확인할 수 있다며 강한 긍지와 자신감을 내보였다.

<묵자>에는'근검'과 '겸상애·교상리'의 사상 외에도 다른 풍부한 내용들이 있어, 묵가 특유의 사상적 면모를 살필 수 있다.

세상 사람들 모두의 연대와 사랑을 주장한 묵자는 겸애의 바탕은 '평등'이라며 계급적 차별을 부정한다.

만민공동사회에서 서로의 이익을 상호증진하는 '상동(尙同)'의 이상을 추구할 것을 묵자는 희망하였다.

게다가 숙명론 내지 운명론을 배격한 것도 특징적이다.

노동을 통한 발전을 주장하는 묵자는 실천적 노력을 강조한다.

'운명이란 것은 포악한 임금이 지어낸 것이고 궁지에 몰린 사람들이나 떠받드는 것이지 어진 사람이 말할 바는 아니다'라며 노력하지 않고 능력 없는 자가 운명을 찾는다고 하였다.

숙명을 믿게 되면 사람들은 노력하지 않게 되며 노력하지 않음은 이 세상을 이롭게 할 수 없기에 '운명'은 세상을 이롭게 하지 못한다고 하였다.

그래서 실천적 노력을 역설하는 '강·불강(强不强)' 또한 <묵자>의 중요한 부분이다.

공자의 가족사랑이 타인은 사랑할 줄 모르는 '별애(別愛)'이기에 그릇되었다고 비판하고, 유가의 허례허식과 차별적 계층구조를 비난한 묵가 사상은 유교사회에서 많은 탄압을 받았다.

우리나라에서도 조선시대 묵가를 사문난적이라고 몰았다.

하지만 반전평화론과 무차별적인 사랑, 만민평등사회를 말한 <묵자>는 다시 부활하여 현재를 사는 우리에게 많은 의미를 깨닫게 하고 있다.

<묵자>의 구절은 사랑과 평화를 원한다는 점에서 기독교 성서와도 겹치고, 만민평등 사상에서는 우리나라 동학과도 겹친다.

고전읽기의 즐거움은 어느 한 고전에서의 길이 다른 고전으로도 통한다는 점일 것이다.

홍보람 S·논술 선임연구원 nikehbr@nonsu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