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변양균·신정아 드라마

[오태민의 마중물 논술] (41) 재미있는 설명을 조심하라
지난해 온 나라를 들었다 놓았던 신정아 사건은 변양균 전 장관과 신정아씨의 염문으로 가닥이 잡혔다.

변씨와 신씨가 그렇고 그런 사이였다는 설명 하나로 모든 그림이 짜맞춰졌다.

신씨가 무엇을 믿고 그렇게 대담하게 행동했는지, 변씨가 무엇 때문에 젊은 여성의 뒤를 돌보았는지 말이다.

중년 남성들 사이에서는 변씨를 동정하는 여론이 있다고도 하고, 젊은 여성들 사이에서는 신씨를 연예인처럼 선망하는 분위기도 있다고 한다.

정부와 사회시스템에 심각한 결함이 드러난 사건이 통속드라마로 전락했지만 그 드라마는 어쨌건 성공했다.

전 국민이 인기드라마를 보듯 신씨의 입국과 그의 패션,그의 기호를 시청했고 언론은 변씨와 신씨가 데이트했던 코스와 건네진 선물을 상세하게 묘사했다.

인터넷에는 두 사람이 주고받았다고 하는 뜨거운 연애편지가 돌고 있지만 여러 판본이 있어 모두 위작일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시간과 상상력,그리고 상당한 수준의 필력을 자랑하는 누군가 두 사람 사이의 단편들을 주워 담아 연결하여 새로운 문학 장르를 개척하고야 말았다.

일컬어 '인터팩션'(internet과 fact 및 fiction의 조합어)이라고 불릴 만하다.

기자들을 비롯한 정보 전문가들조차 수사당국에 진위 여부를 의뢰할 정도로 주인공들의 성격이 생생하게 살아있어 꼭 사실일 것 같다고 한다.

⊙ '왜?'라는 질문

'신정아 사건은 왜 일어났는가?'라는 질문은 생각처럼 간단치 않다.

국민과 대다수 언론이 선택한 답변은 매우 명쾌하며 인간적이다.

두 남녀의 비틀린 욕망이 원인이었다.

그러나 정말 그럴까?

가정이 있는 성공한 중년 남성과 야심만만한 미모의 미혼 여성이 소위 부적절한 관계를 맺는 경우가 꽤 있다.

그렇지만 이런 관계가 모두 신씨와 변씨의 사건처럼 국가의 근간을 흔들지는 않는다.

이에 대해 설명이 필요하다.

질문을 여기까지 끌고 들어가면 '왜?'라는 질문이 간단치 않다는 걸 눈치 챌 수 있다.

밤 11시, 아무도 없는 아파트 놀이터의 그네가 혼자 흔들거린다.

왜?

방금 전 누군가 그네에 앉아 있었다고 쉽게 생각해 낼 수 있다.

약간의 상상력을 보태면 늦은 밤 홀로 그네에 앉아 깊은 한숨을 내쉬던 어느 집 가장의 고뇌가 생생하게 떠오르기까지 한다.

그러나 과학자들은 이 왜라는 질문에 전혀 다르게 접근하는 별종들이다.

그들에게 누군가 앉아 있었거나 그렇지 않거나 하는 증명할 수 없는 사실은 관심 밖이다.

왜 그네는 저 혼자서 움직일까?

바람이 불고 있지 않다면 관성의 법칙이라든가 마찰력 등을 이용해 설명한다.

진자운동과 관련된 법칙을 이용하면 앞으로 몇 번이나 더 왕복할지를 추론해 낼 수도 있다.

사람들은 날아가는 돌은 누군가 던졌기 때문이라고 설명하고 끝내지만 과학은 돌이 사람의 손을 떠나서도 계속 날아가는 이유를 설명하면서 시작했다.

'돌은 왜 허공을 날아갈까?'라고 질문은 똑같지만 과학자들은 굳이 손쉬운 설명을 피해 위대한 업적으로 나아갈 수 있었다.

⊙ WBC에 숨겨진 미국의 음모(?)

2006년 한국 대표팀은 제1회 세계야구대회(WBC·World Baseball Classic)에서 4강에 올랐다.

그 대단하다던 미국과 일본의 올스타팀을 꺾을 때마다 국민은 흥분할 수밖에 없었다.

그 행복한 흥분이 지속되던 대회기간에도 인터넷에서는 대회와 관련해 음흉한 소문이 끊이지 않았다.

미국이 주관하는 WBC에는 미국의 제국주의적 음모가 도사리고 있다.

미국민의 애국주의를 고양하기 위해서 창안되었기 때문에 처음부터 다른 나라는 들러리일 뿐이다.

이런 주장을 뒷받침하는 근거로는 메이저리그 심판의 기용,또 한국이 일본과 세 차례나 경기를 하게 되면서 불거진 결승 진행 방식이 제시되었다.

미국은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해서 오직 미국 대표팀을 위한 대회를 만들었고 한국이나 다른 모든 나라는 미국팀에 얻어터지는 역할을 충실히 해야 할 들러리에 지나지 않았다.

이 이야기를 가설로 정리해보자.

'WBC의 주체국인 미국은 미국팀에 절대적으로 유리한 경기 진행 방식을 노골적으로 선택했다.'

그렇다면 다음 사실 중 이 가설을 반박하는 데 가장 유력한 것은 무엇일까?

① 미국 대표팀이 손쉽게 우승을 차지한다.

② 미국 대표팀이 우승을 하지는 못하지만 우수한 성적을 낸다.

③ 미국 대표팀이 형편없는 성적으로 예선 탈락한다.

답은 ③.

놀랍게도 지난 WBC에서 일어난 일이다.

그렇다면 미국팀이 일찌감치 예선에서 탈락한 뒤에는 미국 국가주의와 관련된 가설이 잦아들었어야 정상이다.

그러나 한국과 일본의 준결승전을 중계하는 TV 해설자는 미국의 '의도'를 다시 거론했다.

미국의 '의도'는 그랬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다고 말이다.

미국팀의 예선 탈락 이후 인터넷의 음모론은 더 흥미진진해졌다.

애초부터 미국팀의 예선 탈락이 계획된 것이었다는 것이다.

야구가 워낙 미국적인 스포츠기 때문에 세계인들이 야구를 열렬히 시청하는 자체가 미국의 제국주의적 문화를 전파하는 데 도움이 된다.

게다가 한 명 한 명이 전체팀의 연봉 합계에 맞먹는 선수들로 구성된 미국팀을 두들기면서 그 나라 사람들이 얻게 되는 만족은 무엇으로도 대신할 수 없다.

이런 분위기에서 미국은 이라크전을 계기로 자신들에게 겨누어진 세계인들의 곱지 않은 시선을 달래주면서 정치·경제적 협상을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이끌어 갈 수 있다는 것이 변형된 이야기의 골자였다.

⊙ 의문의 막다른 골목

신화나 신화의 현대적 장르인 음모론은 누군가의 의도를 찾으면 정답을 찾았다고 믿는다.

그네가 움직이는 건 누군가 앉았었기 때문이었고 돌이 날아가는 건 누군가 그 돌을 집어 던졌기 때문이듯이 좋지 못한 사건의 배후에는 악한 누군가의 의도가 있다는 게 음모론의 일반적 논리구조다.

신정아 사건의 원인은 신씨의 욕망 때문이고,WBC의 이상한 규칙에는 미국의 의도가 숨겨져 있다는 식이다.

이런 설명은 자연스러워 보이지만 사실 기묘하다.

모든 기업은 돈을 벌겠다는 강력한 의도를 갖고 있지만 매번 성공하지는 못한다.

따라서 어떤 기업의 행동을 설명하기 위해 그 기업이 돈을 벌려고 했기 때문이라고 답한다면 어떨까?

아무 것도 설명하지 않은 셈이다.

돈을 벌려는 의도야 모두 동일하지만 돈을 벌 수 있는 여러 방법 중에 하필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를 설명할 것을 기대하고 있기 때문이다.

빌 게이츠나 스티브 잡스나 돈을 벌려는 의도는 동일했지만 사업을 하는 방식은 완전히 달랐다.

게이츠는 누구나 접근할 수 있는 값싼 컴퓨터를 선택했고 잡스는 컴퓨터에 안목이 있는 이들이 좋아할 컴퓨터를 선택했다.

그리고 이 선택이 각각 MS와 애플사의 운명을 갈랐다.

어떤 기업은 돈을 벌기 위해 불량품을 만들지만 또 어떤 기업은 돈을 벌기 위해 불량품을 스스로 찾아낸다.

돈을 벌려는 기업이 답이 아니듯 이익을 챙기거나 출세하고 싶은 인간의 욕망이 어떤 문제의 의미있는 답인 경우는 매우 드물다.

⊙ 과학이라는 이야기

과학도 일종의 이야기다.

눈앞에 펼쳐지는 사건들의 원인을 찾아내서 이야기로 엮어 설명하려 한다는 점에서는 과학이나 신화나 음모론이나 다를 바가 없다.

과학은 태풍을 포세이돈의 진노로 말하는 대신 '열대성 저기압'이라고 설명한다.

열대성 저기압이라는 설명 자체가 포세이돈의 진노보다 더 과학적인 것은 아니다.

내용만 다를 뿐 하나의 이야기라는 점에서는 다를 바가 없다.

단,북극에서 발원하는 태풍이 발견된다면 포세이돈의 진노라는 가설은 수정할 필요가 없지만 열대성 저기압이라는 설명은 폐기되거나 수정되어야 한다.

이것이 과학적 가설의 독특한 특성이다.

그렇지만 증명 과정이 필요 없는 음모론이나 신화는 점쟁이의 점괘와 닮았다.

설명 안 되는 것도 없고 설명 못 할 것도 없지만 조금만 생각해 보면 증명할 수 없는 이야기일 뿐이다.

과학과 음모론은 '왜?'라는 질문을 대하는 태도에서부터 다르다.

과학은 왜라는 질문을 좀 더 까다롭게 다룬다.

증명할 수 없는 누군가의 의도는 '왜?'라는 질문에 대한 좋은 답이 아니다.

과학의 까다로운 태도가 부자연스럽긴 해도 한 가지 확실한 건 누군가의 의도를 붙잡고 늘어지는 음모론보다 훨씬 유용하다는 사실이다.

두 남녀의 비틀린 욕망 때문이라고 답해버리면 매우 단순하지만 문제를 해결하거나 개선할 실마리를 찾기는 어렵다.

잘못된 것을 욕망하는 인간성 자체를 개조하는 방법밖에 남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국가의 예산이 배정되는 시스템이나 미술품이 유통되거나 전시되는 방식에서 문제의 원인을 찾다 보면 적어도 같은 사건을 억제할 수 있는 해결책도 발견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심각한 문제는 끊임없이 발생하지만 올바른 질문을 던지고 의미 있는 답에 목말라 하는 경우는 흔치 않다.

드라마를 좋아하는 국민이 드라마 같은 음모만을 좇다보면 똑같은 문제가 반복해서 발생한다.

드라마라면 어떨지 모르지만 현실이라면 이건 비극이 틀림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