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수가 주도하는 정치이념에 얽매여 있는 건 아닌가?

[스페셜] 생글교사 베트남 연수기-호찌민 우상화
어디를 가나 한 나라의 수도는 정치·경제의 중심지로 기억에 오래 남는 걸까.

베트남의 노이바이 국제공항에서 홍강을 가로지르는 'LG 다리'(본 이름은 '홍교'이지만 우리나라 LG가 건설해 필자는 이렇게 부르기로 했다)를 건너면,곧바로 베트남의 요람인 '하노이'가 우리들을 반겨 준다.

중국 몽골 프랑스 미국 등과의 숱한 전쟁으로 상처가 깊은 나라, 그래서 하노이는 행정구역의 메카이기 전에 어쩌면 사방을 강물로 둘러싼 채 그네들만의 평화와 행복을 수호하는 도시로 거듭나고 있다면 필자의 지나친 억설일까.

비록 1000년간 중국의 지배로부터 자유롭지 못했지만,중국어 대신 로마자를 차용해 '하노이(Ha Noi)'란 모국어를 창조했듯 그네들의 언어로 소통할 때면,분명 나는 하노이의 이방인임에 틀림없었다.

연수 사흘째는 아침부터 사회주의를 기념하는 광장이 눈에 띄었다.

그 광장 중앙에는 레닌의 전신을 형상화한 동상이 우상처럼 서 있었다.

그러나 나는 오토바이 행렬의 출근 인파와 줄 지은 거리의 상점으로 눈길이 더 쏠렸다.

베트남 전통 음식인 쌀국수를 먹는 풍경,전통 의상인 아오자이로 맵시 있게 거니는 여성들, 시골 농부처럼 고깔 모자를 쓰고 하루를 시작하는 시민들….

하지만 교통을 안내하는 경찰들의 군복은 평화롭고 자유로운 하노이 시가지에서 옥의 티처럼 보였다.

내 속의 어딘가에서 이런 점들을 거부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이들의 가슴 속에는 내가 미처 모르는 다양한 사상과 문화가 복잡하게 뿌리 내리고 있는 걸까.

이날따라 아침부터 가랑비가 내리더니 하늘은 먹구름으로 종일 우중충하였다.

관광 버스가 호찌민 묘지에 도착하자, 카메라를 가지고 들어갈 수 없다고 가이드가 주의를 주었다.

매표소를 통과하면서 곳곳에 배치된 경찰들이 삼엄한 경계를 펼치는 통에 긴장감이 돌기도 했다.

이윽고 드넓은 '바딘 광장'이 펼쳐지고 거대한 지하 벙커와 같은 대형 건물이 모습을 드러냈다.

미국 프랑스 중국 등과 치른 숱한 전쟁에서 최후의 승리를 이끈 호찌민을 기념하는 묘지이다.

묘지는 안으로 들어갈수록 어두웠으며 호찌민의 시신은 유리벽을 친 관 속에 누워 음침하게 조명을 받고 있었다.

조금은 무섭기도 한 마음으로 출구를 나오니 전시된 시신은 밀랍으로 만든 가짜라고 가이드는 설명한다.

그 밑에 진짜 시신이 있는데, 방부 처리가 제대로 안 돼 썩고 있어 러시아로 옮겨갈 계획이라고 한다.

호찌민은 자신이 죽으면 화장하여 북부·중부·남부에 뿌려 달라는 유언을 남겼다고 한다.

하지만 그의 유언은 시신처럼 부패하고 있었다.

다시 호찌민 묘지를 되돌아보니, 학생들도 낀 방문객의 길게 늘어선 순례 행렬이 눈에 들어왔다.

그들 뒤로는 붉은 바탕에 큼직한 노란색의 별이 박힌 황성적기(黃星赤旗)가 펄럭이고 묘지 오른쪽으로는 '주석 호찌민 우리들의 가슴 속에서 영원히 살아 있다'는 긴 선전 문구가 나붙어 있다.

일순간 순례 행렬이 안쓰러워 보였다.

대다수의 베트남인들이 소수 공산당이 주도하는 정치 이데올로기에 종속되어 삶을 영위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성남 성일고 박태진 선생님 pti0001@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