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하기] (다산칼럼) '실용'을 잃어버린 세월
박효종(朴孝鍾) 서울대 교수·정치학

☞한국경제신문 1월16일자 A39면

요즈음 정권 교체와 더불어 뜨고 있는 화두(話頭) 가운데 하나가 '실용'이다.

이명박 당선인이 '실용정부'를 표방하자 이에 뒤질세라, 엊그제 선출된 손학규 대통합민주신당 대표도 '실용진보'를 내걸었다.

바야흐로 '실용'이 시대정신이 되는 것인가.

실용주의란 이상에 비해 현실을 중시하는 철학이다.

품위 있는 삶이 되려면 하늘도 바라보아야 한다.

땅만 바라보며 사는 삶에는 속물적 냄새가 나게 마련이다.

그런데 왜 지금 '실용'에 대해 난리들인가.

일찍이 러시아의 문호 파스테르나크는 '닥터지바고'에서 국가사회주의는 '식량'도 없고 '장작'도 없는데, 정작 '식량정책'과 '땔감정책'은 넘치는 정부라고 지적한다.

20세기 사회주의 소련에 대한 이러한 비판이 무색하리 만큼, 참여정부에서도 '아파트'와 '땅값'은 천정부지로 치솟는데 실효성 없는 '아파트 정책'과 '토지정책'만 남발했다.

또 '국정'은 형편없었으나, '국정홍보'는 요란했고 '정치'는 별로였는데 '정치실험'은 천지를 진동시켰다.

'청계천'처럼 딱 부러진 정책실적은 없는데 '위원회'는 무수히 설립돼 '위원회공화국'이 되고 말았다.

'정의로운 사회' 등 '추상명사형 개혁'에 강한 집념을 보인 참여정부를 보면 실제로는 '절벽'위를 걸으면서 '구름'이 어디에 있는지 찾고 있는 사회주의 정권 특유의 모습이 생각난다.

과거사 청산이 '새로운 구름'으로 보이고, 행정수도 이전이 '멋진 무지개'로 보인다면서 그것을 잡으려고 안간힘을 쓰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천장을 보면 바닥이 보이지 않는다던가.

결국 하늘만 쳐다보다 민생을 잃어버렸다.절벽에서 추락한 것이다.

주택의 분배정의를 실현한다며 양도세를 대폭 올리고 종부세를 신설했지만, 오히려 전세금 부담을 늘려 저소득층의 삶은 피폐해졌다.

또 환경친화적 정부를 자처하며 도롱뇽을 위해 목숨을 바치겠다는 한 여승의 '로맨티시즘'을 살리느라 천성산 공사를 지연시켜 2조5000억원의 국고 손실을 초래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참여정부가 현실에 대해 몰랐다는 것은 아니다.

'옥탑방'을 알지 못해 낭패를 당한 한나라당의 16대 대선후보와는 달리 '옥탑방'은 물론 노점상과 달동네도 알았다.

집 없는 사람과 점심 굶는 학생, 임대주택에 사는 사람, 기초생활보호대상자들 사정에도 밝았다.

비정규직의 고달픈 처지도 알고 또 거리에 나서서 데모하는 사람들의 심정도 알았다.

하지만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른 것이 '치명적 자만'이었다.

빈곤은 알았지만, 수월성과 명품의 가치는 몰랐다.

자립형 사립고의 설립을 불허하면 평준화는 유지되지만 중등학교 인재들이 외국으로 빠져나간다는 것은 알지 못했고, 노조를 편애하고 기업과 부자들을 냉대하면 투자가 줄어들고 공장이 외국으로 옮겨간다는 것은 몰랐다.

또 세금을 올리면 조세정의는 실현될지 모르나, 사람들의 소비가 줄어든다는 것은 몰랐다.

한편 목소리를 높이며 법에 저항하는 사람들의 정의감만 알았을 뿐, 법과 질서를 지키며 살아가는 평범한 사람들의 인내심과 절제의 아름다움은 몰랐다.

또 일자리는 정부가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기업이 제공한다는 것도 몰랐다.

뿐만 아니라 '시장실패'는 소리 높여 외쳤지만, '정부실패'나 '관료실패'에 대해선 '모르쇠'로 일관한 것이다.

개인이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른다면 학습의 대상이다.

그러나 국정을 책임지는 사람들이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른다면, 직무유기가 아닐 수 없다.

그것은 환자를 진단하고 병에 대한 처방을 내려야 할 책무를 가진 의사가 약을 처방하면서 그 효험만 알지 후유증이나 위험은 모르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또 바다를 항해해야 할 책무를 가진 항해사가 낮의 바다에 대해서는 밝으나 밤의 바다에 대해서는 문외한인 것과 다를 바 없는 상황이 되기 때문이다.

이제 '실용'을 외치는 소리는 때늦은 감이 있으나, 제대로 된 외침이라는 생각이 든다.

실용이란 추상명사형 개혁이나 설익은 현실 감각과는 거리가 멀고 '복잡한 현실'을 정확하게 직시하려는 진실된 노력에서 출발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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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정부가 '실용'을 내세운 건

이념에만 매달려 온 참여정부에 대한 반작용

● 해설

내달 새로 출범하는 이명박 정부의 대통령직 인수위원회가 새 정부의 틀을 짜는 작업이 한창 진행 중이다.

그런데 사회 각 분야를 아우르는 인수위의 광범위한 활동의 핵심에 자리잡고 있는 단어가 바로 '실용'이다.

물론 실용이라는 단어는 이명박 당선인이 당선되기 전부터 이미 각종 선거 공약을 내세울 때 이를 꾸미는 수식어로 종종 등장해왔다.

사실 실용이라는 단어가 갖는 의미는 명확하지 않으며 이 말 속에는 여러가지 의미가 포함될 수 있다.

경우에 따라서는 아주 애매하고 모호한 뜻으로도 사용될 수 있으며 심지어는 소극적 보신책으로 해석될 가능성도 있다.

인수위가 당초 차기 정부의 이름을 '실용정부'라고 부르려 하다가 이를 포기한 것도 바로 '실용'이라는 단어가 가질 수 있는 여러 의미 때문이다.

이러저러한 이유로 새 정부 이름에서는 실용을 떼어냈다고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명박 정부가 이 단어를 내세우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은 바로 이념에 매달려 온 참여정부에 대한 반작용이 그만큼 컸기 때문이었다고 볼 수 있다.

참여정부가 집권 5년간 사회 각 부문에 평등주의 잣대를 들이대다 보니 박효종 교수가 칼럼에서 지적한 것과 같은 부작용이 생겨났다.

특히 분배정의를 실현한다는 이념 아래 행해진 각종 세금정책이 결과적으로 저소득 계층을 더욱 어렵게 만들고 비정규직으로 불리는 근로자들의 이해를 대변한다는 정책이 오히려 비정규직 숫자를 더 늘어나게 만드는 아이러니가 발생했다.

이런 현상은 경제부문뿐 아니라 교육정책에서도 그대로 나타나 과도한 사교육비 부담을 없앤다는 취지로 도입된 정책이 더 많은 과외비 지출로 이어지는 결과를 낳았다.

2008학년도 대입에서 수능 등급제가 실시되면서 수능 변별력이 떨어져 논술에 대한 과외 수요가 더 늘어난 것이 단적인 예다.

특정 이념에 기초해 정부가 일일이 사회 각 분야에 적극적으로 개입한 결과들이다.

참여정부 집권 기간 중 정작 기업들의 사람 채용은 크게 늘어나지 않은 반면, 정부 부문의 인력과 조직이 매우 방대해진 것도 결코 우연이 아니다.

새 정부가 사용하는 '실용'이라는 단어는 바로 이 같은 '큰 정부와 규제'로 상징되는 참여정부의 정책과는 대비되는 '큰 시장,작은 정부'를 지향한다는 개념으로도 볼 수 있다.

요즘 연일 신문에 보도되고 있는 인수위의 정부조직 축소 개편과 각종 위원회 폐지안은 바로 작은 정부를 구현하겠다는 새 정부의 의도를 가장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대목이다.

경제를 비롯 사회 각 분야가 정부의 규제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경쟁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새 정부의 '실용 노선'은 분명 기업들의 의욕을 북돋우고 결과적으로 경제 전반에도 긍정적인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

다만 새 정부가 내세우고 있는 기름값과 통신비 인하 등 서민생활비 인하 정책은 정부의 직접적 개입이라는 또 다른 규제를 낳을 수도 있다는 점에서 신중하게 결정되어야 하겠다.

김선태 한국경제신문 연구위원 ks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