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속 제시문 100선] (71) 동양고전의 세계를 찾아서 ①莊子
사람은 소나 돼지를 먹고,


사슴은 풀을 먹고,

지네는 뱀의 골을 달게 먹고,

솔개와 갈가마귀는 쥐를 맛있게 먹는다.

이 넷 중에서

어느 존재가 '올바른' 맛을 아는가?

[고전속 제시문 100선] (71) 동양고전의 세계를 찾아서 ①莊子
장자의 『장자(莊子)』는 방대한 분량에 다양한 주제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통독을 하지 않고 한 토막의 짧은 구절만 읽어도 그 철학적 깊이와 문학적 유려함은 깊은 감동을 주기에 많은 이들이 저자인 장자를 '동양사상의 둘도 없을 귀재(鬼才)'라고 손꼽는다.

『장자』는 내편(內篇)과 외편(外篇)으로 나뉘는데,내편은 장자 본인이 집필하고 외편은 장자의 제자 혹은 그를 따르는 사람들이 쓴 글을 모았다는 분석이 현재까지 가장 유력하다.

내편이 보다 응축되고 밀도 있는 철학적 성찰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며, 기언과 독설을 통한 장자의 천재적 표현력이 두드러지기 때문이다.

따라서 『장자 내편』에 집중하여 그 사상적 특색을 살펴보는 게 좋을 것이다.

광범위한 사색의 폭을 감안한다면 짧은 서평으로 장자 사상의 요체를 모두 보여주기란 곤란하겠지만, 장자 사상의 가장 큰 특징이자 서구 중심의 근대화를 경험하고 현대사회의 여러 문제로 고민하는 우리에게 많은 것을 시사하는 상대주의적·자유주의적 세계관에 집중하여 장자를 살펴보기로 하겠다.

⊙ 원문 읽기

道에서 보면 모든 존재는 귀천이 없다.

하지만 개별적 존재의 관점에서 보면, 자기는 귀하고 남은 천하다.

사회 관습의 관점에서 보면, 천은 개체에 있는 것이 아니다.

차별의 관점에서 보아서, 어떤 존재가 다른 존재보다 크기 때문에 크다고 한다면 만물 중에 크지 않은 것이 없다.

천지가 곡식 낟알만하다는 것을 인식하고, 한 터럭의 끝이 언덕이나 산만한 것으로 인식하는 것은 사물들의 차이를 상대적으로 본 결과이다.(중략)

道의 관점에서 만물을 똑같이 본다면 무엇이 짧고 무엇이 긴가?

道에는 처음도 끝도 없다.

개별적 존재에만 삶과 죽음이 있다.

개별적 존재는 완성된 하나의 결과에만 머무를 수 없다.

한번 비었다가는 다시 차게 되니 자기 모습을 고정할 수 없다.

흘러간 세월은 다시 올 수 없고 시간은 정지할 수 없다.

소멸과 생성, 채움과 비움은 끝나면 다시 시작한다.

▶해설=장자는 '제물론'의 관점에서 세상 만물을 동등하게 바라본다.

끊임없는 변화 속에 함께 존재하는 만사만물은 서로 같다는 것이다.

'차이'와 '차별'을 부정하는 이러한 관점을 견지할 때 세속적인 가치와 권위는 모두 조롱거리로 전락하고 만다.

만물을 갈라서 나누는 사회의 규범과 위계질서는 사람들이 인위적으로 만들어낸 구속에 불과하다.

장자는 인위적인 가치에 급급해하며 속박당하는 어리석음을 저지르지 말고 자유로워질 것을 주장한다.

세상의 어리석음과 잘못된 위계를 멀리서 관조하며 일체의 구속이 없는 자유로운 경지에서 노니는 '소요유(逍遙遊)'는 장자가 추구하던 진정한 삶의 자세이다.

⊙ 원문 읽기

각자가 자기의 편견에 따라서 그것을 시비의 표준으로 삼는다면 누군들 표준이 없겠는가?

도는 작은 성취에서 어그러지고, 말은 화려한 꾸밈에서 어그러진다.

그러므로 유가와 묵가의 시비 논쟁은 상대방이 '그르다'라고 하는 것을 이쪽에서는 '옳다'고 하며, 상대방이 '옳다'고 하는 것을 이쪽에서는 '그르다'라고 한다.

상대방이 그르다고 하는 것을 옳다고 하고 상대방이 옳다고 하는 것을 이쪽에서 그르다 한다면 그것은 밝은 지혜로써 하는 것만 못하다.

▶해설=항상 변화하는 세상만물을 고정된 잣대로 재단하고 인위적인 평가로써 차이를 만들어내는 것이 어리석다고 비판하는 장자에게는 미와 추, 선과 악, 삶과 죽음의 구별 또한 무의미해진다.

장자는 세상의 구분과 대립을 지양하고 사람들이 만물과 어울려 조화롭게 살기를 바랐다.

장자가 살았던 춘추전국 시대의 아귀다툼과 제자백가 쟁론의 논박은 장자의 눈에는 피곤한 일로 비쳐졌다.

개인의 '행복'과 '삶의 진정성'은 자신의 고유한 가치를 긍정하고 남의 가치 또한 그대로 긍정하는 데에 있지, 격렬한 다툼과 대립 속에서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하였기 때문이다.

장자는 '상대주의'를 통해 세상의 '평화'를 찾을 수 있다고 믿었다.

⊙ 원문 읽기

[고전속 제시문 100선] (71) 동양고전의 세계를 찾아서 ①莊子
산의 나무는 그 유용(有用)함 때문에 베이는 것이고, 기름덩이는 그 쓰임새(有用) 때문에 불태워진다.

계수 나뭇가지는 약용으로 먹을 수 있기 때문에 베어진다.

옻나무는 칠에 쓰이기 때문에 잘린다.

사람들은 모두 '유용'의 쓰임은 알지만 '무용'의 쓰임은 모른다.

▶해설=그리고 장자는 한 단계 더 나아가 무소용(無所用)의 논리를 주장한다.

세상의 혈투에 희생되는 똑똑한 사람들과 인간의 편리를 위해 사라지는 유익한 생명체들은 그 '유용함'이 원인이므로 차라리 아무 데에도 쓰일 데가 없는 '무소용'이 생명을 지키는 현명한 길이라고 설파한다.

이는 여러 우화를 통해서 반복되어 나타나는데, 튼튼하고 털이 흰 소가 그 눈에 띄는 유용함 때문에 제물로 바쳐져 생명을 잃게 된다는 이야기가 무척 유명하다.

그런데 장자의 '무소용'은 단순히 생명의 온전함을 위한 방편만이 아니다.

인간의 편협한 자기중심주의에 대한 일갈이기도 하다.

인간중심주의에서 봤을 때의 무소용이지 각 생명체들은 그들 나름의 가치가 있기 때문이다.

장자는 인간의 도구주의를 비판하며 모든 존재는 존재 나름의 고유성과 진실성을 지니고 있음을 강조한다.

그러므로 '나'의 기준으로 '남'을 재단하고 규제하려 하는 것은 비극이다.

이러한 논지는 다음의 글에서 더욱 선명하게 드러난다.

⊙ 원문 읽기

사람은 습한 데서 자면 병에 걸려 죽는다.

그런데 미꾸라지 또한 이러한가?

사람은 나무 위에 올라가면 떨어질까 무서워서 벌벌 떤다.

원숭이도 또한 이러한가?

이 셋 중에서 어떤 존재가 '옳은' 주거처를 알고 있는가?

사람은 소나 돼지를 먹고,사슴은 풀을 먹고,지네는 뱀의 골을 달게 먹고, 솔개와 갈가마귀는 쥐를 맛있게 먹는다.

이 넷 중에서 어느 존재가 '올바른' 맛을 아는가?

모장이나 여희와 같은 미인을 사람들이 보면 좋아하지만, 물고기가 보면 물 속 깊이 숨고 새가 보면 높이 달아나고 사슴이 보고는 마구 도망친다.

이 넷 가운데 무엇이 '진정한' 미를 알고 있는가?

내가 보기에는 인의라는 도덕관념이나 시비 판단의 방도도 마구 뒤섞여 있으니 내가 어찌 그것들을 변별할 수 있겠는가?

▶해설=모든 존재는 다양하고 개별적이며, 그 고유성을 넘어서는 획일적이고 객관적인 기준은 없다.

인간은 제한적인 존재이므로 인간의 잣대로 만물을 평가하려고 들어서는 안 된다.

장자는 인간의 도구주의적 관점과 그로 인한 한계를 넘어설 것을 요청한다.

서양의 영향을 받아 근대화를 밟은 현대 우리 사회에는 '지식이 곧 힘(Knowledge is power)'이라는 신념이 뿌리를 내리고 있다.

인간의 도구적 역량(지식)에 의한 자연 지배는 장자의 관점에서 보았을 때 어리석고 위험한 일이다.

인위적인 잣대로 인간과 인간이 아닌 것을 차등적으로 구분하고, 위계질서에 따라 인간에게도 차등적 관념을 적용하는 것은 막스 베버가 말한 철창(iron cage)에 갇히는 것이다.

도구적 이성을 통해 만들어진 이기의 속박에서 삶의 의미와 행복을 찾지 못하고 있는 우리에게 장자는 그의 해답을 제시한다.

세상만물은 상대적이고 가변적인 것이니 문명제도의 발달로 개인의 자유를 간섭 받지 말라 하고, 타자(他者)와의 투쟁과 대립을 지양하라고 말한다.

모든 것이 고유하고 독자적이라는 장자에 따르면 '나'의 의미의 원천을 내 외부에서는 찾을 수 없다.

장자는 생명력 있는 '개인 자신'의 삶과 세상의 조화로운 '평화'를 원했다.

홍보람 S·논술 선임연구원 nikehbr@nonsu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