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늦둥이 문제
여성들이 결혼을 늦게 하면서 적령기를 넘겨 출산하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다.
산모의 나이가 30세를 넘은 경우 산모와 아이의 건강에 신경이 많이 쓰인다.
일반적으로 산모의 나이가 많으면 기형아 출산 확률이 올라간다고 알려져 있기도 하다.
얼마 전 조선일보는 '늦둥이가 건강하게 자라줄까? 걱정도 팔자'라는 기사에서 30세가 넘어 아이를 낳은 엄마들의 걱정을 달래주었다.
나이가 들어 가진 아이도 건강하고 똑똑할까를 염려하는 엄마들에게 "No problem!"이라고 단언했다.
"인생의 안정기인 30대 후반에 낳은 아기도 건강하고 똑똑하다."
이 기사는 '30대에 낳은 아이가 똑똑하다'라는 책을 펴냈으며 본인 스스로 39세에 셋째 아이를 출산한 정지행 한의학 박사를 인용하였다.
며칠 후 같은 신문의 독자투고란에는 이 기사를 반박하는 박정한 대구 가톨릭의대 교수의 글이 실렸다.
"1995년에 우리나라의 전체 출생아 중 20~29세 산모에게서 태어난 아기가 74.4%,30~39세 산모의 아기가 25.1%였는데,2005년에는 20대 산모 비율이 47.7%로 감소한 반면 30대 산모는 50.3%로 증가하였다.
이 기간에 저체중아 출산율이 3.0%에서 4.3%로 증가했다.
저체중아가 증가한 중요 원인은 불임부부가 늘어나면서 인공수정 시술이 늘고,이 경우 쌍둥이 등 다태아 출산율이 증가한 탓이다.
저체중아는 정상아에 비해 신생아 때 사망 확률이 20배 이상 높고,생존해도 뇌성마비 등 신경학적 후유증이 남을 확률이 높다.
또 다운증후군을 비롯한 염색체 이상아 출생률은 25세 여성의 경우 476명당 1명인데,35세에는 192명당 1명,40세에는 66명당 1명으로 증가한다."
박 교수는 위 통계를 인용하며 문제의 기사가 의학적 통계를 무시하고 한 예를 일반화한 오류를 범했다고 우려했다.
⊙ 정말 30대 산모의 아기가 똑똑하다
박 교수의 지적대로 정 박사는 본인 자신의 이야기를 확대 해석하는 오류를 범했을 뿐일까?
그가 말한 30대 후반에 낳은 아이가 더 똑똑하다는 주장도 통계적으로 전혀 근거없는 말은 아니다.
최근 미국에서 이루어진 믿을 만한 연구에 의하면 30대가 넘어 첫 아이를 출산한 경우 다른 조건이 비슷한 아이들보다 학업성취도가 더 높았다(미국 교육부,'아동 성취도 발달에 관한 장기적 연구'/'괴짜경제학'에서 재인용).
이 통계에 따르면 30대 이후에 낳은 아이가 더 똑똑하다는 정 박사의 주장도 설득력 있어 보인다.
그렇다면 박 교수가 인용한 의학적 통계가 틀린다는 말인가? 두 통계 모두 맞을 수 있다.
즉,두 통계는 서로 충돌하지 않는다.
30세가 되어서 첫 아이를 낳은 여성은 30세 이전에 출산하는 여성들과 통계적으로 다른 특성을 갖는 집단일 가능성이 크다.
스스로 고급교육을 받길 원했거나,자기 일에서 역량을 향상시키고 싶어했던 여성일 가능성이 높다.
또 10대나 20대에 아이를 낳은 경우보다 출산을 원했을 가능성이 크다.
이 경우 주도면밀하게 준비하고 임신기간에 더 조심했을 가능성이 높다.
30대 이후에 첫 아이를 출산하는 엄마들이 20대에 출산하는 엄마들보다 통계적으로 더 균질한 집단이다.
20대 출산에는 의지적인 출산과 비의지적인 출산,교육받기를 원하는 여성의 출산과 교육에 관심없는 여성의 출산이 혼재되어 있는 반면,30대 이후에 첫 아이를 출산하는 집단에는 출산을 원해서 계획을 세우고 교육에 대한 욕구가 강한 여성들이 더 많이 포함되어 있다는 말이다.
이런 집단의 특성이 더 높은 학업성취도의 상당부분을 설명한다.
그러나 이 통계를 늦게 낳은 아이가 더 똑똑하다라고 읽을 순 없다.
같은 통계에서 둘째 아이의 출산이 30대 이후냐 이전이냐는 아무런 차이를 만들지 않았다.
즉,30대 이후에 낳은 아이가 더 똑똑하다는 기사를 읽은 20대에 첫 아이를 이미 가진 엄마가 둘째를 30세를 넘어 낳아도 아무런 효과를 볼 수 없다.
늦게 낳아서 똑똑해지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첫 아이를 서른살 넘어 출산하는 엄마들의 특성이 중요할 뿐이다.
박 교수의 말대로 의학적으로는 늦게 낳을수록 아이의 육체적,정신적 건강에 문제가 생길 가능성이 더 높다.
따라서 문제의 기사는 과학적 진실을 왜곡했거나 오도할 가능성이 크다.
박 교수의 주장에 대해 해당 기사를 작성한 기자도 기사의 오독 가능성을 인정하고 지적에 대한 감사를 표했다.
⊙ 일단 결혼한 고학력 여성의 높은 출산율
마중물 논술 33회 마지막 부분에 문제로 남겨뒀던 고학력 여성의 출산율 증가도 같은 맥락에서 읽을 수 있다.
고학력 여성들은 결혼을 덜하지만 일단 결혼하면 아기를 더 낳는다는 통계였다.
이를 설명하기 위해 특별한 이유를 찾을 필요가 없을지 모른다.
출산을 결혼의 중요한 목표로 삼는 여성의 분포가 고학력 여성이 높기 때문이다.
결혼하는 여성이 모두 출산을 원하는 건 아니다.
그러나 결혼 이외의 다른 선택이 상대적으로 많은 고학력 여성들은 아이를 낳지 않을 경우 굳이 결혼을 하지 않는다고 생각해 보자.
이들의 데이터를 모으면 결혼은 덜하지만 일단 결혼하면 아이를 더 낳는 현상이 관찰될 것이다.
고급 교육을 받고 뒤늦게라도 결혼하는 여성들은 출산에 대한 집념이 큰 통계집단이기 때문이다.
고학력을 높은 출산율의 원인으로 해석하기 이전에 집단특성의 투영이라는 관점에서 통계를 읽어보는 지혜가 필요하다.
고급교육을 받고도 뒤늦게 결혼을 선택하는 자체가 출산에 대해 두드러진 집념을 갖는 여성들을 솎아내는 역할을 하지만 직관적으로만 보면 마치 고학력이 출산율을 높이는 것으로 보인다.
⊙ 통계와 직사각형
직사각형의 면적은 가로변의 길이로 결정될까,세로변의 길이로 결정될까? 바보같은 질문이다.
굳이 답하자면 가로변,세로변 둘 다 영향을 미친다.
이는 통계적 방법에 비판적인 이들이 흔히 드는 비유다.
얼핏 보면 통계학자들의 고민과 노력은 직사각형의 넓이를 가로가 결정하는지 세로가 결정하는지를 따지는 헛된 일 같다.
통계학자들은 아이의 인성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 유전자인지 엄마의 교육방식인지를 놓게 진지하게 따진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도 본성과 양육 모두 복합적으로 영향을 미친다는 걸 알 수 있지 않은가?
통계가 완벽한 방법론은 아니지만 이 비판은 통계에 대한 기초적이며 완전한 무지에서 비롯되었다.
통계는 직사각형의 면적을 가로나 세로가 결정한다고 우기지 않는다.
그러나 이렇게는 말한다.
세로 길이가 동일한 직사각형들의 면적은 가로의 길이에 비례한다.
따라서 세로길이가 같은 직사각형의 집단에서는 가로의 길이가 직사각형에 대해 많은 것을 설명한다고(주디스 리치 해리스,'개성의 탄생').
'첫 아이의 출산이 30대를 넘긴 경우에는'이라는 말에는 다른 조건,예를 들면 인종,경제적 수준,부모의 학력 등이 동일하다는 가정이 포함되어 있다.
한편 늦은 출산이 이상아 가능성을 높인다는 통계에는 동일한 여성이라는 전제가 포함되었다.
따라서 첫 아이 출산이 늦은 여성들은 그렇지 않은 집단에 속한 여성에 비해 계획적이며 의도적인 출산을 선택할 가능성이 많지만 아무리 주도면밀한 여성이라도 이 여성이 30대에 낳은 아이는 같은 여성이 20대에 낳은 아이에 비해 이상아일 가능성이 크다.
출산이 늦은 아이의 학업성취도가 높다는 통계는 집단의 분포를 나타내지만 다른 조건이 같을 경우 늦은 출산은 확률적으로 더 위험하다.
그러나 통계를 공부한 이들조차도 30대를 넘어 낳은 첫 아이가 더 똑똑하다는 통계를,아이는 늦게 낳을수록 더 똑똑해진다로 잘못 읽곤 한다.
⊙ 서울대 정시논술과 직사각형
특히 다음 달 서울대 정시논술을 앞두고 있는 학생이라면 이 직사각형의 문제에 익숙해야 한다.
서울대가 이미 구체적으로 예고했다.
통계적 상상력은 이과생이 아니라 문과생에게 오히려 더 중요하다.
서울대 인문계의 대다수 교수들은 통계언어를 이해하지 못하는 학생을 제자로 받고 싶어하지 않는다는 의사표현을 논술 예시문항을 통해 여러차례 전달했다.
그리고 이때 통계언어란 공식이나 수학적 기법을 넘어선 상상력의 영역이다.
대체로 그 상상력은 직사각형을 어떻게 풀어내느냐에 달려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