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사관고 3년 김신 - 지도교사 민사고 김민주 선생님 (경제)

김신 학생(민사고 3년)은 올해 토플대란 때문에 토플시험을 보러 일본 요코하마까지 다녀와야 했던 것이 이 논문을 쓰게 된 계기라고 합니다.

그는 학교에서 '맨큐의 경제학'으로 경제수업을 듣고 '괴짜경제학' 등 경제교양서적을 읽으면서 일상생활과 경제학을 접목시키는데 관심을 갖게 됐습니다.

장래 희망은 우리나라 금융산업의 경쟁력과 세계화를 위해 일하는 것입니다.

본래 경제보다 물리 등 과학에 관심이 많아 '지구온난화의 비밀'(원제;Is the Temperature Rising?)이란 원서를 동급생 2명과 함께 번역·출간해 언론에 두루 소개되기도 했습니다.

김신 학생의 논문 원본과,논문을 쓰게 된 계기 및 논문작성을 지도한 민사고 김민주 선생님(경제)의 소감을 생글생글 홈페이지(www.sgsgi.com)에 게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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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2007년 4월,일본 요코하마에서 토플¹시험을 치렀다.

'토플대란'으로 인해 국내에서 토플시험 접수가 힘들어지자 상대적으로 접수가 용이한 일본,대만,필리핀,홍콩 등지로 토플원정을 다녀와야만 했던 수험생 중 한 명이었던 것이다.

수천 명의 수험생들을 해외로 몰아내고,수만 명의 수험생들이 며칠 밤을 지새우며 ETS² 홈페이지에 접속하며 시험등록이 개시되기만 기다리게 했던 토플대란의 배경을 단순히 시험방식 변경으로 인한 응시가능 인원 축소만으로 설명하기에는 부족하다.

공급량 감소로부터 시작된 토플대란이 정말 대란(大亂)다운 면모를 가지게 된 것은 수험생들의 사재기로 인한 가수요(假需要)의 폭발적인 증가 때문이다.

이 논문은 토플대란에서 드러난 사재기 현상을 경제학적으로 분석하고자 한다.

⊙ 토플시장의 모델링

토플시장의 모델링을 통해 토플대란의 특징과 의미있는 패턴들을 발견하고자 하는데,모델링에 앞서 현실을 단순화시키는 몇가지 가정을 도입하도록 하겠다.

첫째,시험의 공급자는 매달 한 번씩 앞으로 한 달 동안의 모든 시험등록을 받는다.

둘째,개인은 1개월당 횟수에 제한 없이 예약이 가능하다.

실질적으로는 한 달에 네 번으로 제한돼 있지만 그 정도 제한으로는 사재기를 억제하는 효과가 크지 않기 때문에 현실과 본 모델링이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셋째,모든 개인에게는 모든 시장정보가 주어져 있고 이를 바탕으로 자신의 이익 극대화를 위해 합리적으로 행동한다.

①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사재기 수요

사재기의 가장 무서운 점은 사재기가 한번 시작되면 사재기가 사재기를 낳아 순식간에 사재기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어난다는 것이다.

토플대란의 경우 사재기 수요의 증폭을 관찰하기 위해서는 시험접수 확률과 수요량의 관계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스페셜] 고등학생이 쓴 경제논문 - 토플대란, 그리고 사재기의 경제학
그렇다고 해서 수요량이 무한대까지 끝없이 늘어나고 접수확률이 0까지 끝없이 하락하는 일은 발생하지 않는다.

악순환 사이클이 진행됨에 따라 수요량 증가에 대한 접수확률 감소폭도 점차 줄어들고(그래프 1-1),접수확률 하락에 대한 수요량 증가폭도 점차 줄어들기 때문에(그래프 1-2)⁴,다시 말해 그래프 1-1과 1-2의 기울기가 둘 다 서서히 완만해지기 때문에 수요량과 접수확률이 더 이상 변화하지 않는 균형수요량과 균형 접수확률에 곧 도달한다.

물론 공급량이 달라지면 그래프 1-1과 1-2도 변하기 때문에 그에 따른 새로운 균형수요량과 균형접수확률이 도출된다.

모든 공급량에 대해 각각의 균형수요량을 모아 그래프로 나타내면 아래와 같은 그래프를 그릴 수 있다.

③ '수요량=공급량' 지점의 중요성

[스페셜] 고등학생이 쓴 경제논문 - 토플대란, 그리고 사재기의 경제학
그래프 2에서 볼 수 있듯이 사재기 발생과 해소 모두 수요량=공급량 지점에서 이루어진다.

우선 사재기가 발생하는 상황을 살펴보자.공급량이 충분해 수요량보다 많은 동안에는,다시 말해 공급량이 A보다 클 경우에는 공급량이 줄어들어도 접수확률이 언제나 100%로 유지되고 수요량에는 변화가 생기지 않는다.

그러나 공급량이 수요량보다 작아지는 점 A를 통과하는 순간부터는 추후의 시험등록 가능여부가 불확실해지면서 불안감으로 인해 사재기가 발생한다.

이미 설명했듯이 사재기가 한 번 시작되면 사재기 수요량이 접수확률과 균형을 찾을 때까지 폭발적으로 증가한다.

공급량이 A보다 더 줄어들면 수요량은 서서히 상승한다.

반대로 공급량을 서서히 늘려 사재기가 해소되는 과정을 살펴보면,공급량 B 이전까지는 공급량을 늘림에 따라 사재기 수요량이 서서히 줄어드는 것을 볼 수 있다.

흥미로운 것은,처음에 사재기가 발생해 폭발적인 수요 증가가 일어났던 공급량 A를 지나도 사재기가 없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같은 공급량 A라도 사재기가 발생하기 전에는 A지점에서 수요량이 공급량과 같았지만,사재기가 발생한 후에는 수요량이 급격히 늘어났기 때문에 그 늘어난 수요량 만큼 공급량을 늘려야만 하기 때문에 공급량 A에서도 사재기가 해소되지 않는다.

결국 사재기가 해소되는 것은 공급량이 수요량을 다시 넘어서는 공급량 B에서다.

그 순간 남아있던 사재기 수요가 한꺼번에 해소되면서 사재기 발생 이전 수준의 수요량을 회복한다.

④ 사재기 해결의 어려움

위의 그래프에서 내릴 수 있는 결론을 정리하자면 다음과 같다.

수요량이 공급량을 넘어서는 순간에 사재기가 발생하며,공급량이 수요량을 넘어서는 순간에 사재기가 해소된다.

또한 사재기가 해소되는 공급량 B가 A보다 현저하게 더 크다는 것은 사재기가 한번 발생한 후에는 사재기를 해소시키기가 무척 힘들다는 사실을 나타낸다.

⊙ 공급자 입장에서 바라본 토플대란

그렇다면 토플대란은 시험 공급자인 ETS에 있어서는 어떤 의미를 가질까?

ETS의 입장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선 사재기 발생과 해소에 따른 ETS의 매출곡선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스페셜] 고등학생이 쓴 경제논문 - 토플대란, 그리고 사재기의 경제학
토플대란으로 인한 ETS의 매출 차이는 공급량 A-B 구간에서 확연하다.

사재기가 발생하기 이전에는 공급량 A-B 구간에서 수요량에 비해 공급량이 넉넉했기 때문에 고정된 수요량 만큼의 매출만 올릴 수 있었지만,사재기가 발생한 이후에는 같은 구간에서 수요량에 비해 공급량이 부족하기 때문에 공급량을 늘리는 대로 매출이 늘어나는 효과를 볼 수 있다.

즉,사재기가 발생함으로써 ETS는 더 나은 매출곡선을 맞이하게 된 것이다.

사재기가 발생한 이후 공급량 A-B 구간 안에서 공급량을 늘리는 것은 ETS의 매출에 도움이 되지만,사재기가 해소되는 공급량 B를 넘기면 매출이 급락하기 때문에 사재기를 해소할 경제적 유인이 전혀 없다.

매출 급락뿐만 아니라 A에서 B까지 늘린 공급량이 사재기 해소 이후에는 모두 잉여공급량으로 전락하게 된다는 부담 또한 안고 있기 때문에 사재기 해소는 ETS에 있어서 오히려 자충수(自充手)인 것이다.

토플대란이 장기화될 수밖에 없었던 이유다.

⊙ 토플대란,사재기,그리고 시장실패

토플대란은 각 경제주체들이 자신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합리적인 판단'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비효율이 발생한 시장실패의 사례다.

토플대란은 두 가지 측면에서 시장실패의 전형적인 면모를 드러냈다.

첫째,각각의 수험생에게 있어서는 사재기라는 선택이 합리적인 판단이었지만,궁극적으로는 사재기가 엄청난 가수요를 형성하며 토플대란이 촉발돼 수험생 모두가 손해를 보게 됐다.

둘째,사회전반으로는 토플대란 때문에 수많은 사람들이 ETS 웹사이트에서 다음달 등록이 시작되기만 기다리면서 낭비되는 엄청난 대기비용(queuing cost),토플 응시권 프리미엄 거래의 암시장 형성과 해외 원정 토플로 인한 사회적 비효율을 치르게 됐지만,사태해결의 실마리인 공급량을 조절할 수 있는 ETS는 토플대란을 해소할 유인이 없었기 때문에 토플대란이 장기화됐다.

각 경제주체가 자신들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합리적인 판단'을 한 결과 토플대란이 발생했고,더 나아가 장기화됐던 것이다.

이와 같은 시장실패를 해결하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은 사재기를 미연에 방지할 수 있는 제도를 도입하는 것이다.

예컨대 한 달에 예약할 수 있는 시험 개수 제한을 현재의 네 개에서 두 개 또는 한 개로 줄이면 사재기를 억제할 수 있다.

하지만 위에서 언급했듯이 이러한 제도는 ETS의 직접적인 매출에 악영향을 끼치기 때문에 ETS에서 먼저 나서서 이러한 제도를 시행하는 것을 기대하기는 어려울 수도 있다.

정부나 소비자단체 차원에서 ETS에 예약 개수 제한을 강화하도록 권고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각주>

1. TOEFL ; Test of English as a Foreign Language

2. Educational Testing Service ; 토플시험을 주관하는 미국의 비영리단체

3. 전체수요량은 모든 개인수요량의 총합이며 개인수요량은 시험접수비용,원하는 시험점수를 획득했을 때의 효용,1회 시험에 원하는 시험점수를 획득할 확률,다음 달 시험을 신청할 수 있을 확률에 의해 결정된다.

4. 접수확률 하락에 대한 수요량 상승폭이 줄어드는 이유는 논문 원문(
www.sgsgi.com에 게재)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