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두 은자(隱者)의 삶의 기록

물질 문명에 대한 저항!

삶에 필요한 모든 것을 땅에서 얻는다는 철학!

[고전속 제시문 100선] (68) 헬렌 & 스코트 니어링 ‘조화로운 삶’
한 해를 정리하는 시기이다.

각 분야마다 올해를 정리하고 내년을 준비하는 움직임이 분주하다.

얼마 전 신문을 보니 2007년의 최고 이슈는 단연 '환경'이라고 한다.

그래서인가?

지난 4일부터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열린 기후변화협약 총회에서는 2012년 종료되는 '교토의정서' 이후의 온실가스 감축계획에 대한 협약이 논의 중이다.

지구의 위기는 이미 시작되었다고 한다.

최고점 해발이 4m인 남태평양 투발루는 이미 국토의 상당 부분을 잃었고,인도네시아는 2030년엔 섬 2000개가 사라질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

싱가포르는 200㎞ 전 해안에 둑을 쌓겠다고 나섰다.

내륙에서는 강우량이 줄어 사막화가 가속화하고 있다고 한다.

지난 10월 유엔환경계획(UNEP)은 지구가 생성된 이후 여섯 번째 생물 대멸종이 진행 중이라는 충격적인 보고서를 내놓기도 했다.

이처럼 지구온난화는 먼 미래의 문제가 아니라 당장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심각한 문제이다.

이런 상황에서 니어링 부부의 『조화로운 삶』은 우리에게 더욱 소중하다.

불황과 실업이 난무하는 대공황의 한가운데서 도시를 떠나 과감히 시골 생활로 돌아간 이들의 삶을 통해 오늘날 우리 앞에 닥친 환경 문제와 도시 문명에 지친 인간의 삶을 한번이라도 돌아볼 수 있기 때문이다.

⊙ 원문읽기

우리는 먹고 사는 데 필요한 것을 절반쯤은 자급자족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

우리를 에워싸고 있는 이윤 추구의 경제에서 살 수 있는 한은 여기서 벗어나기를 희망한다.

(중략) 우리는 다음과 같은 단계를 밟아서 자급자족 경제를 이루어 보려고 했다.

첫째 우리 밥상에 올리기 위해 땅과 기후가 허락하는 한 곡식을 많이 가꾼다.

둘째 거둔 곡식을,우리가 생산하지 않거나 생산할 수 없는 곡식이나 물건으로 바꾼다.

셋째 연료로 나무를 때며,나무는 우리 손으로 해 온다.

넷째 농장에 있는 돌과 나무를 써서 필요한 건물을 짓되,반드시 스스로 한다.

다섯째 썰매,짐수레,모래 치는 망,사다리 같은 장비들을 만든다.

여섯째 돈을 주고 사야만 하는 장비,연장,부속품,기계 같은 도구는 되도록이면 적게 쓴다.

일곱째 만일 쟁기,트랙터,경운기,불도저,기계톱과 같은 장비들을 한 해에 몇 시간이나 며칠쯤만 써야 한다면 그 기계를 돈 주고 사 오는 대신 동네 사람들에게 잠시 빌리거나 다른 것과 바꿔 쓴다.

▶해설=도시를 떠나 버몬트라는 미국의 시골로 간 헬렌과 스코트 부부가 맨 처음 세운 12가지 원칙의 첫번째 내용이다.

이들이 도시를 떠나기로 결심한 직접적인 이유는 바로 '대공황'이었다.

대공황은 가장들을 실업으로 내몰았고,모든 생필품과 살림살이들을 돈으로 사야 하는 경제구조에서 수백만의 사람들은 생존의 두려움 속에서 살 수밖에 없었다.

때문에 시골에서의 처음 10년을 위한 계획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것이 이윤을 추구하는 경제구조 속에서 대공황과 같은 '두려움'을 해결할 수 있는 대안으로 '자급자족하는 생활'이었다고 한다.

그리고 "돈을 벌 생각이 없다.

은행에서는 절대 돈을 빌리지 않는다.

단풍 시럽을 생산한다.

능률적으로 일한다.

필요한 것을 충분히 살 수 있는 한 아무것도 내다 팔지 않는다.

집짐승을 기르지 않는다.

낡은 집을 고치느라 시간을 낭비하지 않는다.

자연에 있는 돌과 바위로 집을 짓는다.

목재 창고부터 지으며,좋은 모래와 자갈을 구할 수 있는 데를 알고 있어야 한다"는 나머지 원칙들도 구체화되었다.

니어링 부부는 이들 원칙을 지켜냈다.

이것은 헬렌과 스코트 부부의 삶의 철학을 단적으로 보여주기도 한다.

⊙ 원문읽기

우리는 하루를 아침 네 시간과 오후 네 시간,이렇게 두 부분의 시간대로 크게 나누었다.

평일이면 아침 먹을 때 우리는 무엇보다 날씨를 먼저 살펴보고,서로 이렇게 물었다.

"오늘 하루를 어떻게 보낼까?"

이런 질문을 한 뒤 우리는 먹고 살기 위한 노동에 바칠 시간과 자기가 알아서 보낼 시간을 토론으로 결정했다.

날씨는 이런 결정을 하는 데 반드시 염두에 두어야 할 첫째 요소였다.

(중략)

우리 계획에서 또 하나 중요하게 기억할 만한 것이 있다.

일을 할 때 우리는 절대로 서두르지 않았다.

가끔 소나기가 막 쏟아지려 하거나,수액 통이 흘러 넘치거나,크리스마스 같은 특별한 날에 주문이 밀려드는 일이 없는 한,우리는 일을 서두르는 법이 없었다.

그리고 서두르지 않으려고 비상 사태를 될 수 있는 대로 미리 예상해서 대비해 두려고 노력했다.

옛말에 있듯이 서두르면 일을 그르치기 때문이다.

우리는 어느 순간이나,어느 날이나,어느 달이나,어느 해나 잘 쓰고 잘 보냈다.

우리는 할 일을 했고 그 일을 즐겼다.

충분한 자유 시간을 가졌으며,그 시간을 누리고 즐겼다.

먹고 살기 위한 노동을 할 때는 비지땀을 흘리며 열심히 일했다.

그러나 결코 죽기 살기로 일하지는 않았다.

그리고 더 많이 일했다고 기뻐하지도 않았다.

▶해설=시골에서의 생활을 제대로 하기 위해 니어링 부부가 선택한 방법은 사전에 치밀하게 계획하고 최대한 지켜내는 것이었다.

물론 이러한 삶의 방식은 버몬트의 다른 사람들의 눈에 도통 이해할 수 없는 것이었다.

'다람쥐 쳇바퀴 돌 듯' 자신들의 생활을 고문하는 것으로 밖에 비쳐지지 않았으니까 말이다.

사람들은 대게 아무렇게나 대충대충 사는 것이 익숙해 있다.

계획이 중요하고,어떤 일을 하든지 치밀한 사전계획이 필요하다고 인식하지 못하는 사람은 없지만 정작 이를 실천해 옮기는 경우는 드문 것이 사실이다.

기분에 따라 행동하고,정작 일을 할 때 준비가 안 되어 있기 때문에 제대로 하지 못하는 경우도 부지기수이다.

하지만 헬렌과 스코트 부부는 자신의 목적을 이루고자 하는 분명한 목표를 갖고 있었으며,때문에 정해진 계획표대로 따랐다.

그리고 이러한 삶의 태도 덕분에 버몬트에서 20년이라는 세월을 성공적으로 살 수 있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 원문읽기

우리는 경쟁을 일삼고 탐욕스러우며,공격하고 전쟁을 일으키는 사회 질서를 옹호하는 이론들에 반대한다.

이러한 사회는 자기 배를 채우려고 짐승을 죽이고,스포츠의 하나로써 또는 그저 힘을 뽐내려고 짐승을 죽인다.

이러한 사회 질서에 가까이 가면 갈수록 우리는 점점 완전하게 그 사회의 일부가 된다.

우리는 이러한 것을 거부하는 이론을 세웠기 때문에 될 수 있다면 실천에서도 거부해야 한다.

우리는 할 수 있다면 가장 품위 있고 친절하고 올바르고 질서 있고 짜임새 있게 살아야 한다.

어떤 처지에서도 사람은 옳게도 그르게도 행동할 수 있다.

어떤 환경이 주어지든,미워하고 공격하고 부수고 무시하고 될대로 되라고 내버려 두는 것 따위의 더욱 해로운 행동을 하기보다는,사랑하고 창조하고 건설하며 사는 것이 바람직하다.

우리는 대도시 한가운데보다는 산업이 아직 발달하지 않은 시골 마을에서 더 훌륭하게 조화로운 삶을 꾸려 갈 수 있다고 믿었다.

▶해설=헬렌과 스코트 니어링 부부의 사상을 잘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스코트 니어링은 펜실베이니아대 교수로 재직하던 중 아동 노동을 착취하는 것에 반대하는 시위를 하다 해직되었고,톨레도대에서도 세계대전을 반대하다 또다시 해직된다.

스코트 니어링 개인에게 가장 힘들었던 이 시기에 박애주의자이자 예술을 사랑하던 헬렌 니어링과 만나 두 사람은 함께 자본주의 경제로부터 독립한 자연 속에서 조화로운 삶을 살겠다고 결심했다고 한다.

그들은 불의에는 단호히 저항하며 자연에는 순순히 응하는 삶을 '조화로운 삶'이라 여기며,세상에 보탬이 되는 삶이 어떤 삶인지를 온몸으로 실천하고자 했다.

이 같은 니어링 부부의 사상은 '경제성장이냐 환경이냐'는 선택과 조화의 기로에 선 오늘날의 인류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시인 류시화는 이 책을 옮기며 "아름다운 두 영혼의 삶의 기록"이라고 평하고 있다.

그리고 그 평가는 사실이다.

물론 두 사람의 삶이 다른 사람들의 삶에 미친 영향은 얼마 안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50년이 넘는 세월 동안 흔들림 없이,즐거운 마음으로 자연에서의 생활을 실천해 온 사실만큼은 부정할 수 없기에 이들의 삶의 무게는 더욱 깊이가 있다.

이들의 꺾이지 않는 이상,청렴함,여유로운 마음,부지런함은 우리 모두가 본받아야 할 모습인 것은 두 말 할 나위 없다.

이러한 삶의 철학을 통해 오늘날 인류에게 닥친 환경 대재앙을 해결할 수 있는 열쇠를 쥘 수 있다고 여긴다면,그것은 착각일까?

김은희 S·논술 선임연구원 lovemin@nonsu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