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 논술, 시장경제 원리를 물었다

교과서에서 제시문 첫 출제…최근 생글생글 꼼꼼히 읽은 수험생들에겐 수월한 주제
[서울대 논술 특집] 서울대 2008학년도 수시 논술 살펴보니…
서울대가 11월29일 실시한 2008학년도 수시 2학기 논술고사에서 고교 교과서 지문을 중심으로 과목별 통합교과 형태의 문항을 출제했다.

교과서 지문이 대입 논술문항의 제시문으로 나온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전문가들은 교과서에서 논술 제시문이 출제됐기 때문에 지문의 독해는 쉬웠겠지만 요구조건이 까다로워 수험생들이 느낀 체감 난이도는 높은 편이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서울대 논술고사의 주제는 자본주의 시장경제다.

제시문 (가)는 고교 경제 교과서에 소개된 애덤 스미스의 '국부론' 가운데 일부.

시장경제와 가격이 결정되는 원리를 설명하는 대목이 지문으로 출제됐다.

제시문 (나)는 자본주의 시장경제 이외의 다양한 경제체제와 관련된 글 4편으로 구성됐다.

사회주의 경제체제에 관한 논쟁,사회 교과서에 나온 미크로네시아 야프 섬의 화폐 사용 사례,세계사 교과서에 나온 서양 중세의 자급자족적 장원경제,'무소유 공동체'를 주장하는 일본 '야마기시즘' 등이 나왔다.

제시문 (가)와 (나)에 등장한 두 편의 글은 교과서에서 발췌한 글이다.

서울대는 제시문 (나)에 제시된 네 가지 경제체제의 특성이 '국부론'으로 대표되는 현대의 자본주의 시장경제 체제를 보완하거나 대체할 수 있는지 혹은 시장경제 체제가 그대로 유지돼야 하는지에 대해 기술토록 했다.

또 '국부론'에 나온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기본 핵심 요소가 다른 경제체제에서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분석하라는 문제도 나왔다.

평소 생글생글을 꼼꼼히 읽은 수험생이라면 서울대 논술의 주제인 '자본주의의 변형 가능성'을 어렵지 않게 기술할 수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마치 생글생글이 서울대 수시논술 주제를 맞춘 것처럼 여겨질 정도다.

생글생글은 최근 커버스토리로 시장경제의 철학적 기초에 대해 △121호(11월12일자) '짝퉁이라도 만들어본 나라가 잘 산다'(경제하려는 의지) △122호(11월19일자) '시장경제,이기심을 이타적 행동으로 바꾸는 힘'(시장경제의 작동원리) △123호(11월26일자) '기업의 사회공헌은 더 좋은 제품을 만드는 것'(기업의 목적) 등 3부작으로 심도 있게 다뤘다.

이는 서울대 수시논술이 요구한 논제를 답하는데 더할 나위 없는 이론적 기초를 제공한 것으로 평가된다.

논술 전문가들은 향후 서울대 논술에 응시하려는 수험생들은 정확한 제시문 독해와 창의적 발상,논리적 근거 제시 등 세 가지를 잘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이전의 시험과 비교할 때 제시문 독해에는 어려움이 없겠지만 창의적 발상과 논리적 근거 제시 부분은 평가 기준이 더 엄격해진 만큼 이 부분을 평소 중점적으로 연습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 대다수 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한편 서울대는 이번 수시 2학기 특기자전형에서 1단계 서류전형 점수,면접·구술 점수,논술 점수를 각각 50%,30%,20%씩 반영해 인문계 224명,미술대 40명을 최종 선발할 계획이다.

논술시험을 치르지 않는 자연계와 지역균형선발 응시자들은 면접·구술만으로 최종 합격자를 가린다.

송형석 한국경제신문 기자 click@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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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 김영정 입학관리본부장 일문일답

김영정 서울대 입학관리본부장은 지난달 29일 오후 2008학년도 서울대 수시 2학기 특기자전형 인문계·미대 논술고사와 관련해 "정시 논술시험도 이번 수시처럼 통합교과형으로 출제할 계획"이라며 "수시에서는 일선 고교의 교육과 괴리가 있을까 우려해 경제 사회 역사 등 비교적 유사한 과목들만 통합했지만 앞으로는 통합의 강도가 다소 높아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다음은 김 본부장과의 일문일답.

-점수를 받을 수 있는 포인트는 무엇인가.

"세 가지 과제를 줬다.

첫 번째는 아담 스미스의 '국부론'이 제시한 자본주의 경제체제의 기본적인 핵심 요소를 추려내는 것이었고,두 번째는 '국부론'의 키워드를 다른 경제체제와 비교,분석하는 것이었다.

세 번째로 다른 경제체제가 자본주의 경제체제를 보완하거나 대체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는지를 물었다.

답을 쓸 수 있는 길은 여러갈래다.

시장경제를 확 바꿀 수 있다는 답안도,시장경제 체제가 가장 바람직하니 그대로 유지해야 한다는 답안도 논거만 탄탄하다면 좋은 점수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좋지 못한 답안의 유형을 꼽아본다면.

"익히 알려진 사회주의 계획경제와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비교 구도를 암기해 논의를 전개하면 높은 점수를 받지 못할 것이다.

주장은 있으나 논거가 약한 글도 감점을 피하기 어렵다.

자본주의 경제체제를 보완하거나 대체해야 한다면 왜 그런지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주장보다는 논거가 중요하다."

-비판적·창의적 사고력이 없으면 풀기 어려운 문제라는 분석도 있는데.

"경제,사회,역사 관련 교과서의 내용들을 융합할 수 있는지 보고 싶었다.

자본주의가 아니면 사회주의 또는 이 두 가지를 혼합한 수정자본주의만이 현실세계에서 구현할 수 있는 경제체제라고 생각하는 수험생이 대부분일 것이라고 생각하고 여러 가지 경제체제가 가능하다는 것을 전제로 한 문제를 출제했다."

-이번 논술고사를 통합교과형으로 볼 수 있나.

"학생들에게 인문계와 자연계 내용을 통합하는 것은 아직 익숙하지 않아서 공교육 현장과의 괴리감을 없애기 위해 통합의 정도를 낮게 잡았다.

이번 수시논술은 정시논술의 출제 방향을 가늠할 수 있는 '징검다리'가 될 것이다.

인문계 논술에서 수리적 내용이 다뤄질 가능성도 있다.

통합의 정도는 수시 수준이거나 좀 더 나간 정도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