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닻별 황샘의 사통팔달 실전논술] 4.구조의 집짓기
고3 시절,문학 시험에서 윤동주의 유고 시집 제목을 외워 쓰는 주관식 문제가 있었다.

시집 제목은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였다.

제목에 쓰인 소재는 생각나는데,그 순서가 영 헷갈렸다.

다른 아이들도 그랬는지 다양한 경우의 수를 보여주는 답안이 나왔다.

'바람과 별과 하늘과 시''시와 하늘과 별과 바람''별과 시와 바람과 하늘' 등등….

소재 네 가지를 다 썼으면 맞게 해달라고 우겨도 순서가 맞지 않아 모두 오답 처리 되었다.

여러분도 한번 외워보라.단번에 쉽게 외워지지 않는다.

그런데 유고 시집이라 하면 작가가 죽고 나서 흩어져 있던 원고를 묶어서 출판한 것으로 시집 제목도 결국은 편집자들이 지은 것이 아닌가?

그렇다면 윤동주가 가장 좋아하고 시에서 제일 많이 등장한 소재를 중심으로 제목을 단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 시집 맨 앞에 실린 대표작 '서시'를 보았다.

그러면 왜 시집 제목이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인지 알게 될 것이다.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서시에서 나오는 의미있는 소재들을 순서대로 묶으면 시집 제목이 된다.

이렇듯 일면 우리가 보기에 무의미한 것의 나열이라고 느껴지는 소재들도 나름대로 짜임새 있는 구성을 가지고 있다.

논술의 제시문도 마찬가지다.

필자가 근무하는 학교의 교훈은 '알찬 지식,참된 인간,굳센 체력'이다.

교훈이 두 글자여도 외우지 못하는데 3개의 항목이 나열된 교훈은 완전히 관심 밖으로 밀려 나기 쉽다.

이 교훈도 윤동주의 유고 시집 제목처럼 보이지 않는 구성이 있다.

한번 찾아보자.

"남의 학교 교훈까지 알아야 하나"하는 생각은 잠시 접어두고,대상을 일반화시켜 보자.일반화라는 용어를 쓰니 거부감이 생길지 모르겠지만 좀 더 크고 개념적으로 생각해 보면 된다.

그러면 우리가 윤리책에서 익숙하게 들었던 '지,덕,체'가 연상되고,더 추상화시키면 '진,선,미'가 된다.

알찬 지식 → 지 → 진

참된 인간 → 덕 → 선

굳센 체력 → 체 → 미

이 순서라면 학교 교훈을 외우기 쉽고,그 교훈의 의도가 무엇인지 보인다.

이런 구조를 제시하고 아이들에게 교훈을 외우라고 하면 순서를 틀리지 않고,단박에 정확하게 암기한다.

이것이 구조가 지닌 힘이다.

논술도 이와 마찬가지이다.

무의미하게 나열된 것 같은 제시문도 조금 전략적으로 접근하면 구조를 찾을 수 있다.

통합논술이 시행되면서 제시문의 수가 많아졌다.

그리고 채점의 용이성을 위해 오답이 있는 논술 문제가 많이 출제되고 있다.

제시문을 면밀히 읽는 것도 중요하지만,조금 물러서서 제시문 사이를 엮을 수 있는 구조를 찾자.

구조를 찾을 때 우리에게 친절한 도우미가 되는 것이 있다.

그것은 논제이다.

대학에서 개최하는 입시설명회에 참석하면 제발 논제대로만 써달라고 애원을 한다.

논제대로 써달라는 것은 더 심하게 말해 논제 순서대로 쓰고,구조화시키면 된다는 것이다.

대학의 요구대로 제시문을 볼 때 논제의 순서대로 일단 구조화시켜 보면,의외로 숨어 있던 틀이 보이고 얼개를 짜기도 쉬울 것이다.

제시문의 수준에 주눅들지 말고 구조를 보고 논리를 세우자.논술은 글짓기가 아니다.

구조의 집짓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