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를 알면 논술이 술술] 17. 요즘엔 왜 맞벌이로도 살기 빠듯하게 느껴질까?
GDP와 생활수준


1970,80년대만 해도 맞벌이는 흔치 않았다.

아버지는 일터로 나가고 어머니는 집안살림을 하는 게 보편적인 가정 형태였다.

가장 혼자 벌어도 5~6식구가 먹고 사는 데 큰 지장이 없었다.

그런데 요즘은 임금도 높아지고 부부가 맞벌이를 하는데도 살림살이가 빠듯하다.

자녀 사교육비,대학 등록금에다 주택 대출까지 받았다면 허리가 휠 지경이다.

잘 실감이 안 나면 당장 부모님께 여쭤보라.

1인당 국민소득(GNI)이 1000달러 안팎일 때는 가장 혼자 벌어도 살았는데,1인당 소득 2만달러 시대에 맞벌이를 해도 많은 사람들이 왜 더 살기 어려워졌다고 느낄까?

국내총생산(GDP) 규모 세계 12위인데 국민 행복지수는 왜 100위권 밖일까?

이런 괴리는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GDP 통계의 패러독스에 대해 생각해보자.

⊙30년간 1인당 소득 20배 증가

지금 고교생들이 태어나기 훨씬 전인 30년 전(1977년) 1인당 국민소득은 1007달러였다.

올해 2만달러를 웃돌 전망이므로 30년 새 20배가 된 것이다.

1945년 한국인 평균 수명은 50세였지만 2005년 평균 수명은 78.5세로 높아졌다.

집집마다 승용차 한두 대씩 다 있고,더 좋은 집,더 좋은 옷,더 좋은 음식을 즐기며,영양 부족이 아니라 과체중을 신경쓰게 됐다.

유사 이래 한국인들이 이만큼 잘 먹고 오래 살게 된 적이 없다고 할 정도다.

그만큼 잘 살게 됐으니 행복해져야 할 텐데."행복하십니까?" 하고 물으면 대개 고개를 가로젓는다.

영국 신경제학재단이 178개국의 국민행복지수 조사한 결과 한국은 102위에 그쳤다.

자살률(인구 10만명당 26.1명)은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국가 중 1위다.

미국 일본 유럽 등 선진국들도 사정은 우리나라보다는 조금 낫지만 크게 다르지 않다.

반면 세계 233개국 중 경제규모 203위인 비누아투라는 남태평양의 작은 섬나라,아시아에서 제일 가난한 수준인 방글라데시 같은 나라들은 국민 행복지수에선 1,2위를 다툰다.

국가적 성공과 개인의 행복은 무관한 것인가,부유함과 개인의 행복은 무관한 것인가 하는 의문이 생긴다.

⊙같으면서 다른 GDP와 생활수준

우리나라 경제규모는 1962년 본격 경제개발을 시작한 이후 세계 경제의 성장속도에 견줘 10배 정도 빠르게 성장했다고 한다.

외환위기 이전까지 연 평균 8% 성장했다.

이는 '72법칙'(규모가 두 배가 되는 데 걸리는 기간=72÷성장률)으로 계산해보면 9년마다 경제규모가 두 배로 증가했다는 이야기다.

또한 1인당 소득은 1962년 87달러에서 올해 약 2만달러로 230배가량 증가했다.

이처럼 통계상의 생활수준이 크게 향상된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1962년에 비해 230배 잘 살고 있다고 여기는 사람은 거의 없다.

이에 대해 '버냉키·프랭크 경제학'에선 "GDP가 경제적 복지와 동일하진 않다"고 지적한다.

국민의 경제적 복지에 기여하는 많은 요소들은 시장에서 판매되지 않고 가격이 형성되지 않아 대부분 GDP에서 누락돼 있다는 것이다.

이를 테면 여가시간,삶의 질,환경의 질,범죄율과 안전,시장 밖의 경제활동(자원봉사,지하경제 등),빈곤과 경제불평등 같은 것들은 GDP에서 찾아낼 수 없다.

이에 대한 가치를 높게 부여할수록 GDP로 표시되는 경제성장률과 국민소득은 남의 나라 얘기처럼 여겨지는 것이다.

그러나 '버냉키·프랭크 경제학'은 동시에 "GDP는 경제적 복지와 관련되어 있다"고 강조한다.

우리 속담에 '곳간에서 인심난다'는 말이 있듯이,생활수준을 향상시키는 문화생활,깨끗한 환경 등은 경제적 여유가 전제되야만 서서히 해결된다.

대기나 강물의 청정도가 경제력에 비례하는 것처럼.

⊙왜 살기 힘들어졌다고 여길까

지난 3분기 전국 가구의 월 평균 소득은 328만2400원.이 중 세금,사회보험료 등으로 45만6800원을 내고,222만8400만원을 소비해 59만7200원의 흑자를 냈다.

통계상 24%가량 흑자인데 서민층은 물론 중산층도 살기 힘들다고 하소연이다.

서울대 사회발전연구소 조사에 따르면 스스로 중산층이라고 여기는 사람 비율도 10년 전 41%에서 28%로 줄었다.

한국인의 객관적 생활수준과 주관적 평가 사이의 간극은 심리적 요인과 높은 소비성향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다.

한국인의 유별난 평등의식,즉 '배고픈 것은 참아도 배아픈 것은 참지 못한다'는 심리가 자신의 객관적 생활수준 자체를 낮게 평가한다.

또한 저축률 하락에서도 확인되듯이 가계의 씀씀이가 엄청나게 늘어난 것도 부인할 수 없다.

더 넓은 집을 원하고,승용차 굴리며,주말엔 외식,1년에 한두 차례 해외여행에다 골프까지 즐기고,사교육비로 웬만한 가정에선 월 100만원 이상을 지출하다 보니 늘 빠듯하다.

자기의 생활수준을 주위에 비교할 대상이 많아지다 보니 눈높이는 한없이 높아진다.

결국 어지간해선 만족하기 힘든 사회가 된 것이다.

오형규 한국경제신문 연구위원 ohk@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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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를 알면 논술이 술술] 17. 요즘엔 왜 맞벌이로도 살기 빠듯하게 느껴질까?
GDP가 손 못 대는 가사노동·지하경제

국내총생산(GDP)으로 측정되는 경제규모가 실생활을 반영하지 못하는 부분이 있다.

시장가격이 형성되지 않았거나,시장 밖에서 거래되는 재화·서비스들이 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실제 느끼는 생활수준과 괴리가 생긴다.

대표적인 것이 주부의 가사노동이다.

주부가 집에서 빨래하고,밥 하고,청소하고,아이를 키우는 것은 GDP에 하등의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시장가치를 매길 수 없기 때문이다.

반면 옷을 세탁소에 맡기고,외식을 하고,파출부를 쓰고,놀이방에 아이를 보내는 것은 모두 GDP에 포함된다.

가사노동을 타인에게 위임할 때 비용도 그만큼 늘어나는 것이다.

따라서 가사노동은 분명 가치가 있는 일이지만 주부가 취업하지 않는 한 GDP로 계상되지 못하는 맹점이 있다.

한 보험회사는 전업 주부의 가사노동 가치를 연봉 2500만원 수준이라고 평가한 바 있다.

여성개발연구원은 전체 주부의 가사노동이 연 60조~70조원으로,GDP의 13~15%에 이른다고 추정했다.

부부가 이혼할 때 전업 주부라도 재산 분할 권리를 갖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또한 지하경제도 실체가 있지만 시장 밖에서 음성적으로 거래돼 GDP에는 반영할 수 없다.

지하경제(black economy)란 탈세 사채 뇌물수수 조폭 마약 매춘 등 범죄에다 개인과외,임시 아르바이트 등 소득 파악이 안 되는 모든 일거리와 사적거래를 포괄하는 개념이다.

LG경제연구원은 국내 지하경제 규모를 GDP의 11.3%로 추정했다.

그러나 변용림 한림대 교수는 최근 지하경제가 GDP의 27.5%인 160조원(2000년 기준)에 이른다고 주장해 눈길을 끌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