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의 시작을 알리느 위대한 목소리

기독교적 관점으로 바라본 인간의 운명

[고전속 제시문 100선] (65) 단테 ‘신곡’(神曲)
셰익스피어,괴테와 함께 유럽문학의 거장으로 불리는 단테의 「신곡」은 고전 중의 고전으로 꼽히는 불후의 명작이다.

'인간의 손으로 만든 최고의 것'이라는 괴테의 극찬만으로도 이 작품의 명성을 알 수 있지 않을까?

신 중심의 중세 문화에서 벗어나 개인의 해방과 자각을 강조하는 인간 중심의 문화를 탄생시킨 '르네상스'의 시작이 단테에서부터 비롯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르네상스는 그리스·로마의 고전작품을 연구하면서 성장하였다.

수도원이나 각지에서 숨겨져 있던 고전들을 찾아내 신과 관계없이 인간적 가치를 중심으로 바라보고자 하였다.

단테는 「신곡」에서 '인간성에 대한 깊은 이해'를 나타내었고,이는 이후의 수많은 작품에 영향을 끼친다.

「신곡」을 간단히 소개하자면,단테로 추정할 수 있는 한 살아 있는 인간의 저승여행기이다.

일주일 동안 지옥,연옥,천국을 여행하면서 보고 듣고 생각한 것을 이야기하는 형식으로 구성한 시이다.

누구나 한 번쯤 상상해 봤을 법한 죽음 이후의 모습을 이렇게 생생하게 표현한 작품을 다시 찾을 수 있을까?

간단한 스토리 라인이지만 등장하는 인물만도 수백 명이 넘으며,그리스·로마신화의 신과 인간,괴물이 등장하고,실존인물에서 전설 속의 인물,다루고 있는 사건들까지 워낙 폭넓은 주제를 담고 있기 때문에 이해하기란 결코 쉽지 않다.

그래도 그리스·로마신화를 읽어 본 독자라면,그 자신이 크리스천이라면,또한 서양 역사에 관심을 갖고 있는 사람이라면 「신곡」을 읽으면서 반가운 이름을 발견하는 기쁨을 누릴 수 있을 것이다.

⊙원문읽기

우리 인생길의 한중간에서

나는 올바른 길을 잃어버렸기에

어두운 숲 속에서 헤매고 있었다.

아, 얼마나 거칠고 활량하고 험한

숲이었는지 말하기 힘든 일이니,

생각만 해도 두려움이 되살아난다!

<중략>

내가 낮은 곳으로 곤두박질치는 동안,

내 눈앞에 한 사람이 나타났는데

오랜 침묵으로 인해 희미해 보였다.

무척이나 황량한 곳에서 그를 본 나는 외쳤다.

'그대 그림자이든, 진짜

사람이든,여하간 나를 좀 도와주시오!'

▶해석=「신곡」의 기본 구성 요소는 곡(曲)이다.

이 시는 100개의 곡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이들은 지옥,연옥,천국으로 크게 3편으로 나뉘어 있으며 각각 33개의 곡으로 이루어져 있다.

또한 시의 운율체계는 3운구법(韻句法)이다.

이는 「신곡」이 쓰여질 당시에 '3'이라는 숫자가 신성하게 여긴 것의 반영으로 보이며, 작품의 어디서나 나타난다.

원문은 '지옥'의 제1곡의 처음 부분이다.

「신곡」에는 두 명의 저승여행 안내자가 등장하는데,하나는 지옥과 연옥을 안내하는 베르길리우스이고,다른 하나는 천국을 안내하는 베아트리체이다.

여기서는 첫 여행지인 지옥을 안내하는 베르길리우스를 만나는 장면이다.

지옥의 안내자로 베르길리우스를 선택한 이유는 단테 스스로가 그를 '정신적 스승'으로 섬겼기 때문이라고 한다.

베르길리우스는 로마시대의 위대한 시인으로 로마 건국신화인 「아이네이스」를 남겼다.

⊙원문읽기

아,지혜로써 단지 행동뿐만 아니라

생각까지 꿰뚫어 보는 자들 곁에 있으면,

사람들은 얼마나 신중해야 하는지!

그분은 나에게 '네가 기다리고 또한

네 생각이 꿈꾸는 것이 떠올라서

이제 곧 네 눈앞에 나타날 것이다.'

거짓말처럼 보이는 진실 앞에서 사람은

가능한 한 언제나 입을 다물어야 하는데,

잘못 없이 망신당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기서 나는 침묵할 수 없으니,독자여,

이 희극의 구절들을 걸고 맹세하건데,

그 구절들이 오래 호감을 얻기 바란다.

▶해석=지옥편의 제16곡의 마지막 부분이다.

단테는 자신의 작품을 '코메디아',즉 희곡이라고 부르는데,훗날 보카치오가 '신성하다'는 뜻의 단어를 덧붙여 「신곡」으로 재탄생한다.

여기서는 제17곡에서 여행하는 제8원으로 단테와 그의 스승을 데려갈 게리온을 만나게 된다.

게리온은 그리스·로마신화에서 헤라클레스에 의해 죽임을 당하는 괴물이다.

그리스·로마신화에서는 거인의 모습으로 묘사되지만 단테는 기만을 상징하는 박쥐,뱀,전갈로 묘사하고 있다.

이는 단테의 세계가 단순한 고전을 지향하지 않고,그리스도교적으로 재해석한 데서 비롯된 것이다.

⊙원문읽기

여기에서 나는 지나치게 경솔했는지

모르겠으나 그에게 이렇게 말했다.

'그래,이제 말해 보오.우리 주님께서

성 베드로에게 열쇠를 맡기기 전에

얼마나 많은 보물을 요구하셨소? 분명

"나를 따르라" 외에는 요구하지 않으셨소.

사악한 영혼이 잃은 자리에 마티아가

추첨되었을 때도,베드로나 다른

제자들은 금이나 은을 빼앗지 않았소.

행복한 삶에서 그대가 갖고 있던

최고의 열쇠들에 대한 존경심이

아직도 나에게 금지시키지 않는다면,

나는 훨씬 더 심한 말을 하고 싶으니,

그대들의 탐욕은 선인을 짓밟고 악인을

높여 세상을 슬프게 만들기 때문이오.

<중략>

아,콘스탄티누스여,그대의 개종보다

그대가 첫 부자 아버지에게 준 지참금이

얼마나 많은 악의 어머니가 되었던가!'

내가 이러한 가락을 노래하는 동안

분노나 또는 양심에 깨물렸는지

그는 두 발을 강하게 뒤흔들었다.

▶해석=지옥편의 제19곡의 일부이다.

단테는 여기에서 돈을 받고 성직이나 신성한 물건을 거래한 죄인들을 만나며,특히 교황 니콜라우스 3세와 이야기를 나누며 성직자들의 부패와 타락을 비판하며 한탄스러워 한다.

특히 로마의 황제 콘스탄티누스가 크리스트교를 공인하는 과정에서 교황과 거래를 한 것이 교회 부패의 기원이었다고 꼬집어 말한다.

당시에 단테는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자신의 병을 낫게 해 준 대가로 그리스도교로 개종하고,교회에 실질적인 권한을 제공하는 등 특전을 베풀었다고 주장한 것을 믿었던 것 같다.

그러나 후에 이러한 사실은 위조된 것으로 드러났다.

이 부분에서는 특히 단테의 정치적 성향이 잘 드러난다.

실제로 니콜라우스 3세는 고귀한 인품과 덕성을 지닌 교황으로 평가받는다.

그러나 단테는 그가 피렌체에서의 정치적 싸움을 조정하지 못해 자신이 정치적 망명생활을 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라 생각했다.

그렇게 때문에 니콜라우스 3세를 지옥으로 배치한 것이다.

콘스탄티누스 황제 역시 교회 부패에 대한 책임을 물어 현실에서의 명성과 달리 지옥에 배치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것은 「신곡」이 단테의 개인적이고 자서전적인 이야기라는 것을 알려주며,그를 둘러싼 당시의 시대적 상황에 대한 이해가 없이는 「신곡」을 이해하기 어렵다는 것을 뜻한다.

김은희 S·논술 선임연구원 lovemin@nonsu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