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경제신문 10월2일자 A10면

전교조 교사들이 학원비리 척결을 이유로 수업을 거부하고 집회 및 시위를 벌이는 것은 학생들의 학습권과 학부모들의 교육권을 침해하는 것이라는 대법원의 확정 판결이 나왔다.

대법원 3부(주심 안대희 대법관)는 서울의 S여고 학부모들이 전교조 교사들의 수업거부로 학습권과 교육권을 침해당했다며 시위·집회에 참가한 교사들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피고들은 원고들에게 각 30만~100만원씩 지급하라”고 판결한 원심을 확정했다고 1일 밝혔다.

재판부는 “헌법이 규정한 학습권 보장은 국민이 인간으로서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하고 인간다운 생활을 영위하는데 필수적인 조건이자 대전제이며,자녀에 대한 교육권은 헌법에 명문화돼 있지는 않지만 불가침의 인권으로서 자녀의 보호와 인격 발현을 위해 부여되는 것”이라고 판시했다.

학생의 학습권은 교원의 수업권에 대해 우월한 지위에 있기 때문에 교원의 수업권은 일정한 범위 내에서 제약을 받을 수 밖에 없다는 취지다.

대법원은 특히 “피고들의 위법한 수업거부 및 수업방해 행위로 인해 당시 대학 진학을 앞둔 원고 학생들이 수업을 받지 못해 학습권이 침해되고 그 부모들의 교육권 또한 침해돼 정신적 고통을 입은 만큼,위자료를 지급하고 손해를 배상해야 한다는 원심의 판단은 수긍이 간다”고 판결했다.

서울의 S여고 3학년생 학부모들은 이 학교 전교조 교사들이 2001년 4∼5월 사이 23일간 부패재단 퇴진운동을 이유로 수업을 거부하자 학생의 학습권과 학부모들의 교육권을 침해당했다며 소송을 냈다.

정태웅 한국경제신문 기자 redael@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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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원비리 척결 등을 이유로 한 전국교직원노조(전교조) 소속 교사들의 수업 거부에 대해 "학생의 학습권과 학부모 교육권을 침해했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오면서 교육계가 술렁대고 있다.

교사의 수업권은 학생의 학습권 실현을 위해 인정되는 것이며,수업 거부는 동기와 정황이 어찌됐든 불법이라는 게 이번 판결의 요지다.

이에 대해 전교조 측은 "당시 학생과 학부모들의 자발적 결의를 통해 수업을 거부했는데도 법원이 대표성이 없는 일부의 주장을 근거로 교사들에게만 책임을 떠넘겼다"며 "사안을 '학습권 대 수업권'으로만 몰고 가는 근시안적 관점"이라며 비판하고 나섰다.

교사의 수업권이 존중돼야 하는 것은 새삼 강조할 필요도 없다.

문제는 교사들이 학원비리 등을 이유로 학생의 학습권 실현에 필요한 수업을 과연 거부할 수 있느냐는 점이다.

학생의 학습권과 교사의 수업권 간 충돌이 일어날 경우 어떻게 풀어나가는 게 타당한지 살펴본다.

◎ 전교조,"비리 외면한 채 수업거부만 문제삼아선 안 돼"

전교조 측은 "수업결손 사태의 근원은 부패 비리 사학재단에 있음에도 대법원이 이를 도외시했다"며 정말로 손해배상을 하고 책임을 질 대상은 바로 사학재단이라고 주장한다.

20년이 넘게 침해된 아이들의 학습권과 교사들의 수업권,학내 분규와 수업결손의 책임은 재단이 져야 한다는 얘기다.

특히 6월의 사학법 재개정 등 우리 사회의 보수화 흐름 속에서 개혁과 진보를 앞세운 시민단체들을 겨냥한 정치적 판결이라고 지적한다.

일각에서는 학교는 운영주체의 전유물이 아니라 학생,교사,학부모 등 교육 이해당사자의 공동체인데도 대법원이 교사를 학교에 고용돼 학습권을 위해 봉사하는 부수적 존재로 끌어내렸다며 볼멘소리를 낸다.

더구나 이유를 불문하고 교사들은 수업을 거부할 수 없다는 것은 교사의 단체행동권을 침해하는 행위라고 꼬집는다.

학생의 배울 권리가 중요하다면 학생의 권리를 찾고 학습권을 지켜주기 위한 교사의 노력도 정당하게 평가받아야 한다는 얘기다.

사학 민주화 투쟁의 본질을 왜곡하고 비리 재단을 옹호한 일부를 전체로 호도한 이번 판결에도 불구하고 사립학교 교육민주화를 위한 투쟁을 앞으로도 계속할 것이라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 보수단체,"투쟁도 학생들 공부는 시켜가면서 해야"

보수단체 등은 재단이 잘못한 것과 교사로서의 책임과 의무를 다하지 않은 것은 전혀 별개의 문제라며 그러한 구분조차 제대로 하지 못한다면 어떻게 교사 집단이라고 말할 수 있겠느냐고 반문한다.

말하자면 '데모도 좋고 투쟁도 좋지만 학생들 공부는 시켜가면서 하라'는 것이다.

이러한 상식이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는 것은 일부 전교조 교사들의 집단행동이 도를 넘고 있는데도 제재가 가해지지 않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더욱이 이런 판결에 대해서도 전교조 측은 "교사가 제대로 가르치고 학생이 수업에 전념할 수 있게 하는 더 큰 틀의 학습권이 재단 측에 의해 이미 훼손된 사실을 고려하지 못한 잘못된 판결"이라며 승복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뉴라이트교사연합 측은 "비리 척결이 목적이라면 수업 거부라는 극단적 방법이 아니더라도 얼마든지 해결책을 모색할 수 있다"며 비리 문제를 내세워 불가피하게 수업결손이 발생했다는 전교조 측의 주장은 설득력이 없다고 비판한다.

때문에 전교조는 이번 판결을 받아들여야 하며 그 내용을 성실하게 이행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입장이다.

◎ '교육은 학생에 대한 최소한의 서비스' 깊이 새겨야

교사는 스승인 동시에 교육서비스를 제공하는 노동자다.

때문에 스승이 재단 문제를 이유로 제자 가르치는 일을 외면해서는 결코 안 된다.

스승으로서,노동자로서 본분에 충실하면서 투쟁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게 순리다.

그런 점에서 교원의 수업권은 교원의 지위에서 생기는 일차적 교육상의 직무권한이지만 어디까지나 학생의 학습권 실현을 위해 인정되는 것이므로 학생의 학습권은 교원의 수업권에 대해 우월한 지위에 있다는 이번 판결은 옳고 당연하다.

따라서 전교조는 이번 판결이 비리로 얼룩진 사학의 현실을 도외시한 것이라며 반발할 게 아니라 위법적 행태에 대한 법원의 경고를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게 순리다.

한마디로 이번 판결에서 많은 교훈을 얻지 않으면 안 된다는 얘기다.

그 첫 걸음은 바로 이번 판결을 성실하게 이행하는 것임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무엇보다도 '교육은 학생에 대한 최소한의 서비스'라는 사실을 이번 기회에 다시 한번 깊이 새겨야 할 것이다.

김경식 한국경제신문 논설위원 kimks5@hankyung.com


용어풀이

◎ 교육권=교육을 받을 권리,교육을 할 권리 또는 양자를 포함하는 권리를 의미한다.

교육을 받을 권리는 '모든 국민은 능력에 따라 균등하게 교육을 받을 권리를 가진다'는 헌법 제31조에 근거를 두고 있다.

교육을 할 권리는 교육권이 교사에게 위탁돼 있다는 것을 전제로 교사에게 부여된 교육 실시권을 말한다.

양친의 자식에 대한 친권으로서의 교육권은 '모든 국민은 그 보호하는 자녀에게 적어도 초등교육과 법률이 정하는 교육을 받게 할 의무를 진다'는 헌법 제31조 2항에 근거한 것으로 자연법적인 권리다.

◎ 학습권=인간이 태어나면서부터 학습을 통해 인격을 형성하고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실현하며 인간적으로 성장·발달해 나갈 권리로,자연법적 권리의 성격을 가진다.

대부분 나라에서 헌법상의 권리로 인정하고 있다.

학습의 권리,탐구의 자유,진리를 알 권리 등 정신적 자유권이며 국가권력이나 제3자가 침해할 수 없다.

대상은 주로 아동·학생이지만 성인도 포함된다.

◎ 수업권=교사입장에서 수업을 할 권리를 말한다.

학생들의 학습권에 대응해 교사들이 학생을 가르칠 권리이며 교사의 '교육의 자유'를 의미하기도 한다.

수업권은 교사의 지위에서 생기는 일차적인 교육상의 직무권한이지만 어디까지나 학생의 학습권 실현을 위해 인정된다는 게 대법원의 판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