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화풍,풍경을 앞서다

[오태민의 마중물 논술] (24) 인식의 틀을 인정하라
[그림 1]은 어느 나라의 풍경일까? 학생들에게 물으면 대체로 중국이나 한국 혹은 일본이라고 답한다.

그림의 배경은 더웬트워터(Derwentwater)라는 영국의 한 지역이다.

중국 문필가인 예치양라는 사람이 영국을 여행하며 그렸다.

[그림 2]와 [그림 3] 역시 더웬트워터를 그렸다.

물론 중국 작가의 그림은 아니다.

(곰브리치,'예술과 환영'에서 인용)

왜 학생들은 그림의 배경이 동양 3국 중 하나라고 생각했을까? 동양화의 화풍은 동양의 자연을 배경으로 해야만 한다는 믿음 때문이었을까? 어쨌건 인간의 적극적인 지각능력은 섣부른 예단의 다른 이름이기도 하기에 필연적으로 오해를 유발한다.

◎ 오스카 와일드의 역설

어릴 적 한두 번은 읽었을 동화 '행복한 왕자'의 작가 오스카 와일드.그는 '거짓말의 쇠퇴'에서 사실과 예술에 대한 도발적인 주장을 펼친다.

"인상주의 화가들로부터가 아니면 어디서 우리는 우리의 거리에 기어서 내려가고,가스램프들을 흐리게 만들고,집들을 괴상한 그림자들로 만드는 놀라운 갈색 안개를 구할 수 있겠는가?

(중략) 지난 10년 동안 런던의 날씨에 일어난 놀라운 변화는 전적으로 이 특이한 '예술'의 유파 덕택일세.

(중략) 사물들은 우리가 그것들을 보기 때문에 존재하고 우리가 보는 대상과 우리가 그것을 보는 방법은 우리에게 영향을 준 '예술들'에 달려 있네.어떤 사물을 본다는 것은 어떤 사물이 보인다는 것과는 아주 다르지.

(중략) 사람들은 현재 안개가 있어서가 아니라 시인들과 화가들이 그들에게 그와 같은 이상들의 신비로운 매력을 가르쳐주었기 때문에 안개를 보는 것일세.런던에는 몇 세기 동안 안개가 있었을지 모르지.

아마 그랬을 거야. 그러나 아무도 그것을 못 보았고 그래서 우리는 안개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고 있지.

그것은 예술이 그것을 창안하기 전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걸세.

(중략) 어떤 사물의 존재를 믿도록 만드는 것은 표현양식,오직 양식뿐이라네."

[오태민의 마중물 논술] (24) 인식의 틀을 인정하라
[그림 4]처럼 런던의 안개를 그린 인상파 화가가 아니었다면 사람들은 런던의 안개를 아예 보지도 못했으리라는 주장은 지나치다.

그렇지만 사람들이 런던의 안개를 보는 방식에 끼친 예술의 영향을 강조한 표현이라면 매우 설득력이 있다.

런던의 안개를 보는 방식에 영향을 미친 것은 인상파의 그림만은 아니다.

1952년 수천명의 사상자를 낸 런던 스모그(맨 아래 사진)의 등장 이후로 사람들은 런던의 안개를 인상파 화가들처럼 아름답게만 보지는 못했으리라.

과학이 안개가 사람을 죽였다고 해석해주었고 스모그라는 별도의 이름을 지어준 다음부터 사람들은 런던 포그가 아니라 런던 스모그를 보기 시작했다.

그 다음부터는 뿌연 안개를 보고 '푸른색과 은색의 야상곡'을 떠올리기는 쉽지 않을 듯하다.

◎ 가설의 역할

오스카 와일드의 글은 과학과 과학이 제시하는 가설의 역할을 잘 설명하고 있다.

그의 말대로 사물이 보이는 것과 사물을 보는 것은 다르다.

과학적 가설이 없다면 사람들은 사물을 체계적인 구조의 겉모습으로 보지 못한다.

우리 중 누가 사과의 떨어짐과 밀물과 썰물 그리고 달의 회전과 계절의 변화가 같은 힘에 의한 다른 현상임을 매번 느낄 수 있단 말인가?

뉴턴이 있기 전에도 사과는 떨어졌고 밀물과 썰물은 반복됐으며 달은 지구를 돌고 돌았다.

뉴턴이 있고 나서야 인류는 이들 각각의 사건들이 사실은 동일한 원인,동일한 본질의 다른 모습일 뿐이라는 것을 지각하기 시작했다.

인상파 이전의 사람들과 이후의 사람들이 런던의 안개를 보는 방식이 다른 것처럼 뉴턴 이전의 인류와 뉴턴 이후의 인류가 쳐다보는 사과의 낙하는 다르다.

열대지방을 여행하다 오후에 비를 맞았다면 그는 자신이 스콜(squall)을 경험했다고 믿어버리기 쉽다.

열대지방에서 주기적으로 내리는 소나기를 스콜이라고 한다고 배웠기 때문이다.

그러나 스콜은 해석이다.

이름이기도 하지만 일종의 가설이기도 하다.

그는 그냥 비를 맞았다.

사실은 그것뿐이다.

그러나 우리는 중력을 경험한다고 믿는 것처럼 과학이 제시하는 적절한 해석을 접하고 난 후로는 사실만을 경험하지 못한다.

아니 해석이라는 틀을 통해서만 사실을 경험할 수 있다고 말하는 편이 진실에 가깝다.

온난화라는 해석이 유행하면 언론들은 더운 여름을 지구온난화로 보도한다.

올 여름 통계적으로 예년과 큰 차이가 없는 평년 더위였지만 한국인들은 아열대라는 누군가의 해석을 통해 유난히 더운 여름을 경험하고 말았다.

◎ 인식의 틀을 인정하라

사실을 있는 그대로 보거나 있는 그대로 경험할 수 없다는 주장을 받아들이는 것은 쉽지 않다.

자신이 경험한 것은 분명 사실이었다고 굳게 믿기 마련이다.

그러나 인식의 틀을 부정하는 것은 더 객관적인 사실로 나아가는 데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진실은 반대다.

내가 보는 것,내가 경험한 것은 누군가의 해석에 나라는 인간의 독특한 습성,편견까지 덧붙인 그다지 투명하지 못한 창을 통해서일 뿐이라는 것을 인정하고 나서야 더 나은 인식을 향한 여정은 시작될 수 있다.

왜냐고? 우리는 무지와 편견 덩어리인 인간일 뿐이니까.

slowforest@eduhankyung.com


◆ 학생글:서지슬(명지외고 3학년)

우리는 '인식의 틀' 위에서만 사고한다.

(중략) 오스카 와일드의 말이 역설로 들리는 이유는 우리 자신이 인식의 틀이고,많은 사람들이 인식의 틀을 눈치 채지 못하고 살기 때문에 그런 게 있다는 것조차 낯설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전 국민이 안경을 쓰고 생활하는 어떤 이상한 나라가 있다고 가정해보자.그들 나라에서는 먼 옛날의 조상조차도 안경을 썼고,옆집 순이도,이웃집 철수도 모두 안경을 끼고 있기 때문에,아무도 안경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거나 하지 않고 살아왔다.

그러던 어느 날 어떤 천재적인 학자가 우리는 안경이 보여주는 세상에 살고 있고,안경을 쓰고 있는 상태라면 우리는 사실 그대로를 볼 수 없다는 그야말로 엄청난 사실을 발견하였다.

그래서 그는 진리 추구라는 학자의 본분을 완성하기 위해 안경을 벗어버리기로 결심했다.

그런데 그가 안경을 벗으려고 하는 순간 곁눈으로 바라본 세상은 뿌옇게만 보였다.

이미 그는 안경에 길들여져서 맨눈으로는 아무것도 볼 수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그는 다시 오랜 세월을 들인 연구를 한 끝에 안경이 좋아지면 세상을 정확하게 볼 수 있을 것이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그래서 최첨단 기술을 도입하여 아주 자세한 것까지 볼 수 있는 안경을 만들었다.

그러자 그는 그 특수 안경이 보여주는 새로운 것들에 매료되어 그가 안경을 쓰고 있다는 것조차 잊어버렸다.

이 이야기는 우리가 인식의 틀 위에서 사고할 수밖에 없으며,사실을 잡기 위해 만들어진 많은 학문들 또한 정교한 그리고 새로운 인식의 틀이라는 것을 제시한다.

많은 학자들을 그들이 연구하여 만들어낸 새로운 이론이 새로운 인식의 틀이라는 것을 알든 모르든 사실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고 믿는다.

그리고 그 학문이 보여주는 새로운 세상,새로운 것들에 매료된다.

어차피 사실을 잡을 수 없는 한 그렇게 사는 것이 현명한 선택일지도 모른다.

그런 점에서 오스카 와일드의 선택은 탁월했다.

그는 우리는 인식의 틀에서 세상을 바라보고 있고 생각하는 것 또한 인식의 틀을 따라간다는 것을 인정하고 적어도 나름대로 인식의 틀을 즐기기 위해 노력했다고 보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