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세기 이후 포르투갈 스페인 네덜란드 등 9개국의 흥망성쇠 다뤄


리더십 창의적 사고 배울 만... 한국 기업들 학습 열기

[Special] 中다큐 '大國堀起' 열풍
중국에서 방영돼 큰 반향을 일으켰던 중국 국영방송 CCTV의 다큐멘터리 '대국굴기'가 국내에서도 열풍을 일으키고 있다. 강대국의 흥망성쇠에 대한 깊은 고찰을 통해 정치는 물론 기업 경영에 다양한 시사점을 던지고 있다는 의견이 많아지면서 기업을 중심으로 '대국굴기' 시청과 학습 붐이 확산되고 있다.

◎대국굴기란 무엇인가?

'대국굴기(大國堀起)'란 '강대국으로 우뚝 일어서다'는 뜻으로 15세기 이후 세계 강대국의 자리를 차지했던 포르투갈 스페인 네덜란드 영국 프랑스 독일 일본 러시아 미국 등 9개국의 흥망성쇠를 다룬 다큐멘터리 제목이다. 중국 국영방송 CCTV가 12부작에 걸쳐 제작한 대국굴기는 지난해 13억 인구를 흥분하게 만든 대작이다. 한국에서도 노무현 대통령이 전편을 다 봤다고 공식 석상에서 말하고,윤종용 삼성전자 부회장,이재용 삼성전자 전무 등도 시청했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대국굴기' 학습 열풍까지 불고 있는 상태이다.

◎ 글로벌 초우량 기업을 만드는 방법론 제시

'대국굴기'에서 말하는 대국이란 현대의 관점으로 보면 선진 강국으로 해석할 수 있다. 우리가 '대국굴기'를 보면서 배워야 할 것은 그러니까 세계에 우뚝 서는 나라 또는 기업 조직을 만드는 방법론이다. '대국굴기'가 제시한 대국의 조건은 세 가지다. 단결력, 문화, 그리고 새로운 체제로의 빠른 전환이다.

지도자의 리더십과 국민의 애국심이 있어야 하고 새로운 환경에 빠르게 적응하는 체계가 갖춰져야 한다. 구성원이 똘똘 뭉쳐서 혁신적인 조직 문화를 만들고 변화 속에서 기회를 찾아낼 수 있다면 어떤 조직도 글로벌 무대에서 우뚝 설 수 있다는 희망의 메시지인 셈이다. 포르투갈과 스페인이 해양 시대를 먼저 개척할 수 있었던 것은 유럽에서 가장 빨리 민족 국가를 이룬 단결력 덕분이었다.

이들 강국의 역사에서 배워야 할 또 다른 덕목은 창의적 사고다. 윤종용 삼성전자 부회장도 "창의적 사고가 역사의 패러다임을 바꾸는 기폭제가 된다는 점을 '대국굴기'에서 배울 수 있다"고 강조한 것으로 알려졌다. 포르투갈과 스페인은 새 항로를 개척하며 당시까지 공유 개념이었던 바다를 자기 영토로 만들어 패러다임의 변화를 주도했다.

창의적 사고는 혁신 기회를 찾는 눈이 있어야 가능하다. 청어잡이가 경제의 전부였던 네덜란드는 국토가 작고 인구가 적은 한계를 창의적으로 극복했다. '바다의 마부'를 자임하며 중개 무역 시장을 개척,최강 해상 무역국으로 발돋움할 수 있었다. 네덜란드인들에게 바다의 위험은 도약의 기회로 비춰졌던 것이다.

'대국굴기'에서 빠뜨릴 수 없는 것이 리더십이다. 선진국으로 우뚝 서고 글로벌 초우량 기업을 만들겠다는 '통 큰' 비전을 갖춰야 한다. '대국굴기'에 나온 강대국들도 이전에는 작은 섬나라나 보잘 것 없는 땅덩어리에 불과했다. 그러나 비전을 가진 영웅이 있었다. 경제 대공황에서 미국을 기적처럼 구해 낸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도 경제 회생과 부흥이라는 웅대한 비전이 있었다.

'대국굴기'는 부흥의 조건도 제시했지만 패망의 사연도 자세히 보여주고 있다. 해외에서 거둬들인 엄청난 부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고 상공업을 경시해 3류 국가로 전락한 포르투갈과 스페인의 사례에서 우리는 미래 성장 엔진의 중요성을 절감할 수 있다. 또 자국만 강대해지기 위해 전 세계를 고통으로 몰아넣었던 독일과 일본의 사례에서 인류적 가치를 존중하는 기업이라야 위대한 성과를 올릴 수 있다는 교훈을 배워야 한다.

◎ 뜨거워지는 학습 열기

'대국굴기' DVD의 국내 배급을 맡고 있는 다우리엔터테인먼트에 따르면 최근 청와대는 '대국굴기' DVD를 주문했으며 오세훈 서울시장도 DVD를 구매했다. 이에 앞서 올초 노무현 대통령이 '대국굴기' 12편을 모두 보고 공식 석상에서 시청 소감을 밝힌 데 이어 윤종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임직원에게 시청을 권유해 화제가 됐다. 기업들도 관심을 보여 삼성그룹 계열사는 물론 SK㈜ GS홈쇼핑 등 국내 대기업이 잇따라 직원 교육용으로 '대국굴기' DVD를 구매하고 있다. 이상훈 다우리 이사는 "이미 출시 전부터 웬만한 대기업의 인사·교육담당 부서에서 언제 출시되느냐는 문의가 쇄도했고 직장인들이 개인적으로 주문하는 사례도 많았다"고 설명했다. 최근에는 대입 논술시험에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으로 학부모의 문의가 눈에 띄게 늘었다고 덧붙였다.

방송가에서도 단연 '대국굴기'가 화제다. 올초 '대국굴기'를 12회에 걸쳐 방영했던 EBS는 이 프로그램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자 지난달 25일부터 재방송에 들어갔다. 케이블·위성TV인 히스토리채널도 2일부터 방송을 시작했다.

특히 CEO 대상 교육 사이트인 한경 HiCEO(www.hiceo.co.kr)가 지난 5월부터 '대국굴기'의 주요 내용을 리뷰하는 동영상 특강(총 15강)을 제작해 서비스를 시작한 뒤에는 기업 경영자와 각 기관장들까지 학습 열풍에 동참하고 있다. 리더들이 관심을 보이면서 조직 전략과 비전을 가다듬은 교과서로 '대국굴기'를 채택하고 있는 조직도 늘어나고 있다.

◎'대국굴기' 왜 인기인가

중국 CCTV가 제작, 경제 채널에서 방영한 '대국굴기'는 신대륙 탐험에 나서면서 세계 최강국으로 부상한 포르투갈과 스페인을 비롯 네덜란드 영국 프랑스 독일 일본 러시아 미국 등 15세기 이후 부침했던 9개 강대국의 흥망성쇠를 다루고 있다. 이 작품에 영감을 제공했던 '강대국의 흥망'의 저자 폴 케네디 등 100여명의 국제전문가 정치인 등의 인터뷰를 통해 객관적이고 깊이 있는 시각을 보여준다.

중국에서는 가히 선풍적인 인기를 얻었다. 중국 언론매체의 여론 조사에 따르면 CCTV에서 방영되는 동안 중국 도시 성인 남녀의 27.5%가 이 프로그램을 보았고,29.5%는 보지는 못했지만 이 다큐멘터리에 대한 정보를 접했다고 한다.

DVD가 출시됐을 때는 3일 만에 매진 사태를 빚었다. 시청률과 판매 면에서 여러 가지 기록을 세우고 있지만 '대국굴기'가 화제를 불러일으킨 또 다른 이유는 이 프로그램을 사회주의 국가 중국이 만들었다는 점이다. 그동안 중화 사상,서양 물질문명에 대한 비판,치욕적인 근대사에 대한 거부감 등으로 기피하다시피했던 서방 선진국에 대한 진지한 성찰을 보였을 뿐 아니라 자유와 평등, 민권 등의 민주주의 이념을 향후 강대국이 되기 위한 핵심 요소로 제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의 '최강국 비전'이 녹아 있는 프로그램

'대국굴기'는 단순 TV 프로그램이 아니라 중국 국민을 위해 중국 정부가 치밀하게 준비한 집단 학습 프로그램이라는 점에서 더욱 흥미롭다. 실제로 중국은 프로그램 제작에 앞서 2003년부터 중앙정치국이 '15세기 이후 세계 주요국의 발전사'라는 테마를 잡고 학습 기관을 조직해 자료를 수집해 왔다. 프로그램 방영 이후 9개 강대국의 부흥과 쇠락을 통한 교훈 외에 중국 정부의 의도와 향후 정책 방향에 대한 의견도 분분했다.

신희철 한경 가치혁신연구소 연구원 ksk3007@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