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한국외대 예시 논술 문제는 기존의 출제방향과 두 가지 정도 차이를 보인다. 하나는 문제의 질문이 세분화됨으로써 실질적으로 문항수가 증가되었다는 것이고,이에 따라 분량도 1200자에서 2000자로 늘어났다는 것이다. 글자수가 늘어나면 학생들은 우선 겁부터 먹는 경향이 있는데 질문 하나당 써야 할 분량은 300~400자에 불과하여 오히려 1200자의 긴 글을 쓰는 것보다 체감 난이도는 낮을 수 있으므로 자신감을 갖도록 하자.

논제의 전체적인 주제는 '네트워크'였다. 제시문 자체의 난이도가 다소 높을 뿐만 아니라 그림이 자료로 주어지고 답 또한 그림으로 제시하도록 하였다는 점에서 학생들이 쉽게 접근하기 어려운 부분도 있었을 것이다.네트워크에 관한 연구는 20세기 말에 이르러서야 활성화될 정도로 그 역사는 오래되지 않았지만 20세기까지 지배적 사고였던 환원주의에 대한 반성을 담고 있다는 점에 그 의의가 있다. 환원주의란 부분을 통해 전체를 이해하려는 이론으로 '부분의 합은 전체와 같다'는 명제를 기반으로 한다. 예를 들어 정책결정자와 같은 미시적인 단위체의 성향으로 전쟁이나 국제정치 현상들을 설명하는 연구방식은 환원주의적 연구에 속한다. 그러나 부분의 합인 전체는 부분과 전혀 다른 성향을 띨 수 있다는 점에서 환원주의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었다. 가장 흔한 예로 도덕적인 개개인이 모인 사회가 비도덕적일 수 있는 것이다. 네트워크 연구는 잘게 쪼개지고 흩뜨려진 조각들로는 이해 불가능한 현상의 특징을 전체적인 틀안에서 이해하려는 본격적인 시도라 할 수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논제를 자세히 살펴보자.


◆[문제 1] 해설

제시문을 통해 추론할 수 있는 노드와 링크의 의미는 점과 선이다. 좀더 쉽게 말해 노드는 집합을 이루는 하나하나의 개체를 뜻하고,링크는 노드들 간의 관계라고 할 수 있다. 공통점과 차이점을 찾으라는 논제에서 가장 우선해야 할 것은 비교 대상을 확정하는 것이다. 무턱대고 공통점과 차이점을 찾다보면 기준이나 관점이 모호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는 각 제시문에서 노드와 링크에 해당하는 것을 찾는 것이 이에 해당한다.우선 사례 1에서 노드는 상인이며 링크는 전통사회에서는 혈연과 지연,그리고 개혁기 이후에는 경제활동 분야의 동질성이라고 할 수 있다.사례 2 이하에서도 동일한 방식으로 정리할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정리된 노드와 링크를 비교하는 과정에서 피상적이고 일반적인 접근은 절대 금물이라 할 수 있다. 단순히 눈에 드러나는 공통점과 차이점으로는 수많은 다른 답안들과 차별화할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공통점을 노드와 링크만으로 서술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고,부분과 전체의 관계를 통해 다양한 사회현상을 파악하려 한다는 의도가 숨어있다는 등의 드러나지 않은 의미까지 찾아낼 수 있어야 한다. 차이점에서는 대칭적 vs 비대칭적,수평적 vs 수직적,독립적 vs 종속적,동질적 vs 비동질적 등의 구체적 기준을 잡아 이에 따라 전 제시문을 아우를 수 있어야 한다. 예를 들어 수평적 vs 수직적이라는 기준을 잡는다면 콴시는 상부상조를 바탕으로 하므로 수평적인 관계라 볼 수 있고,에르되스와 관련된 연구자들도 동등한 관계라고 볼 수 있다. 반면에 다단계 판매 방식은 피라미드식의 수직적 관계이며,국제 관계도 힘을 바탕으로 하는 수직적 관계로 분류할 수 있다.

중요한 포인트는 제시문이 분명하게 드러난 대비점을 갖고 있지 않다면 표면적 의미에 천착하지 말고 숨겨진 의미를 찾아내어 정리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학생들이 표면적 의미 파악에 그치고 제시문의 궁극적인 의도를 전체적 맥락에서 읽어내려 하지 않기 때문에 논술문의 깊이가 떨어진다는 점을 명심하자.


◆[문제 2] 해설

도식화된 그림을 통해 의미를 추론해 내라는 문제는 기존에 출제되지 않은 색다른 유형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자칫 거부감이나 두려움이 생길 수 있으나 오히려 사고를 다양하게 펼칠 수 있다는 점에서 딱딱한 제시문보다 접근하기 쉬울 수 있다.(가)의 특징을 살펴보면 수많은 노드들이 하나의 노드에 집중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런 식의 네트워크방식은 중앙집중형이므로 쉽게 통제할 수 있고 잡다한 연결고리를 차단함으로써 신뢰성을 높일 수도 있다. 반면에 소통이 자유롭지 못하고 폐쇄적일 수 있다는 점이나 권위적인 상하관계가 성립할 수 있다는 점은 단점일 수 있겠다.(나)의 도식은 중심적인 노드가 있다는 것은 (가)와 동일하나 그러한 노드가 다수라는 점에서 (가)와 구별된다. 따라서 통제와 신뢰성은 약해질 수 있지만 소통의 자유로움이나 폐쇄성에서는 어느 정도 완화된다는 장점이 있다. 눈여겨 볼 것은 중심적인 노드들 간에만 연결이 있을 뿐 모든 부분 노드들이 자유롭게 연결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마지막으로 (다)의 특징을 살펴보면 모든 노드들이 자유롭고 다양한 방식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집중식의 (가)와 (나)보다 훨씬 더 탄력적으로 문제에 대처할 수 있으며 평등하고 동등한 관계를 유지할 수 있다는 점에서 우월하다. 반면에 통제가 어렵고 지나치게 다양한 소통경로로 인해 오히려 효율성이 떨어질 수 있다.

사례 2와 사례 3에 공통적으로 가장 가까운 그림을 선택하려면 먼저 두 사례의 공통적인 부분을 찾아내야만 할 것이다.얼핏 사례 2는 노드들의 자유로운 연결고리가 확보된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에르되스와 직접적인 링크를 가진 연구원도 있는 반면,그 연구원과의 공동연구를 통해 에르되스와 연결되는 연구원들도 상당수 있다. 즉 중심적인 연구원과 에르되스는 연결되는 반면 각 연구원들 사이에 직접적인 연결고리가 있다고는 할 수 없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다단계 판매 방식도 특정 판매원끼리는 직접적으로 연결되나 모든 판매원이 자유로운 연결고리를 가지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사례 2와 사례 3에 공통적으로 가장 가까운 그림은 (나)의 탈집중형 네트워크라고 할 수 있다.


◆[문제 3] 해설

이 논제 또한 특이한 지향점을 갖고 있는데,논술의 답안을 글이 아닌 그림으로 완성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논리성보다는 창의성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는 문제라 하겠다.먼저 제시문과 사례 4의 밑줄 친 내용을 살펴보면 위상구조의 변화만으로도 전체를 변화시킬 수 있다는 것과 국제정치의 복잡한 상호 의존적 관계로 인해 자율성의 약화라는 희생이 따른다는 점이다.따라서 국제관계의 효율성을 확보하면서 문제점을 해결할 수 있는 네트워크는 어떻게 그려질 수 있는가가 이 문제의 궁극적인 의도라 할 수 있겠다.

도식과 관련지어 국제관계의 특징을 살펴보면 (가)는 중앙집중형이므로 강대국이 지배하는 패권적 국제관계라 할 수 있고 (나)는 특정 강대국을 중심으로 뭉쳐진 국가집단 사이의 국제관계로 볼 수 있다.(다)는 모든 국가 간의 연결과 접촉이 가능하므로 동등하고 평등하며 상호의존적인 국제관계로 파악할 수 있다. 그나마 가장 바람직한 국제 관계는 (다)의 도식형태라 할 수 있으나,이 도식에도 문제는 있다. 지나치게 다양한 연결고리 때문에 의존성이 강화되고 자율성은 약화되는 것이다.따라서 궁극적인 국제관계는 분산형 네트워크식의 국제관계에서 발생할 수 있는 문제점들을 보완할 수 있는 도식은 어떤 형태인가를 통해 도출될 수 있다. 자율성을 강화하기 위해 지나치게 많은 링크를 제거해야 할 것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국가 간의 대등한 관계가 파괴될 정도여서는 안 될 것이다. 예를 들어 특정 링크들을 점선으로 표시함으로써 지나친 자율성의 침해를 경계하는 식의 도식도 가능할 것이다. 또 초국가적 구심점이 약화된 분산형 네트워크와 결합함으로써 국가 간의 결합을 유지하면서도 자율성을 강화할 수 있는 도식도 가능하다. 도식이라고 해서 마구잡이로 그릴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논리적 설명과 적절히 조화를 이뤄야만 좋은 점수를 받을 수 있을 것이다.

박상철 S·논술 선임연구원 ace@nonsu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