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시사회는 국가에 대항했던 사회
사회는 그 자체로 볼 때 철학적이지도,과학적이지도,종교적이지도 않다.
사회엔 철학,과학, 종교가 혼재하고 있으며 철학,과학,종교로 환원될 수 없는 독자적인 고유의 영역이 있다.
그것이 바로 정치다.
사회는 정치적이다.
피에르 클라스트르(Pierre Clastres,1934~1977)는 프랑스의 정치인류학자이다.
그는 오랜 기간에 걸쳐 파라과이와 베네수엘라의 인디언들과 함께 생활하며 연구를 했다.
오래 전 뒤르켐이 '종교 생활의 기본 형태'를 원시 사회를 통해 연구함으로써 중요한 성과를 거둔 것처럼 클라스트르가 '정치 생활의 원초적 형태'를 원시 사회를 통해서 밝히려는 것은 대단히 의미 있는 시도였다.
클라스트르는 폭력과 국가,지배,복종의 문제를 자신의 필생의 연구대상으로 삼았다.
그는 만인에 의한 만인의 투쟁이라는 야만의 상태를 종식하기 위해서 인류에게 국가가 필요하다는 홉스의 견해에 반대하여 원시사회는 '국가에 대항하는 사회'였다는 것을 제시했다.
원시사회는 미개해서 사회의 발전 형태인 '국가'에 도달하지 못한 것이 아니라,사회가 국가에 도달하지 못하도록 내부의 사회적 장치를 가지고 있었던 사회라고 클라스트르는 주장했다.
◆원문 읽기
국가를 갖춘 사회 모두는 그렇지 않은 사회들에서는 찾을 수 없는 분할(division)의 차원을 지닌다.
국가를 갖춘 사회들은 그들의 존재에 있어서 지배자와 피지배자들로 나뉘어 있지만 국가 없는 사회들은 그러한 분할을 모른다.
그리하여 원시사회들을 국가 없는 사회로 규정한다는 것은 원시사회들이 그들의 존재에 있어서 동질적이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나누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는 여기서 원시사회들에 대한 민족학적 정의를 다시 만난다.
즉 원시사회들은 권력의 분리된 기관을 갖지 않는다.
권력은 사회로부터 분리되어 있지 않다.
▶해설=원시사회라는 말이 의미하는 것은 무엇인가? 가장 고전적인 인류학에 따르면 원시사회들은 국가 없는 사회들이다.
원시사회들은 그 몸체가 정치권력의 분리된 기관을 갖지 않는 사회들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국가가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사회들을 두 집단으로 나눈다.
국가 없는 사회와 국가를 갖춘 사회,또는 원시적인 사회들과 그렇지 않은 사회들로 말이다.
국가를 갖춘 사회들은 지배자와 피지배자로 나뉘어 있지만,국가 없는 사회들은 그러한 분할을 모른다.
원시사회는 나누어지지 않은 사회들이다.
가난한 자를 착취하는 부자들이 존재하지 않는 사회,권력을 행사하는 분리된 기관이 없고 지배자와 피지배자 사이의 분할이 없는 계급 없는 사회인 것이다.
◆원문 읽기
원시사회에서 우두머리는 권력의 표면적인 장소,가정된 장소이다.
그렇다면 그 실재의 장소는 어디인가? 그것은 바로 사회적 몸체 자체이다.
사회적 몸체 자체는 권력을 소유하고 또 분할되지 않은 통일체로서 권력을 행사한다.
사회로부터 분리되지 않은 그러한 권력은 단 하나의 방향으로 행사되고,단 하나의 프로젝트만을 실현한다.
사회의 존재를 분할되지 않은 상태로 유지시키는 것,사람들 사이의 불평등이 사회 내에 분할을 도입하는 것을 막는 것이 그것이다.
그래서 이 권력은 사회를 소외시키고 사회에 불평 등을 도입할 수 있는 모든 것에 대항해 행사된다.
특히 이 권력은 권력을 사취할 수 있는 제도,즉 우두머리 제도에 대해 행사된다.
부족 내에서 우두머리는 감시받는다.
사회는 위세에 대한 애호가 권력의 욕망으로 발전하지 않도록 감시한다.
권력에 대한 우두머리의 욕망이 뚜렷이 드러날 때 취해지는 조치는 매우 간단하다.
그를 쫓아내거나 아니면 죽이는 것이다.
분할이라는 유령이 원시 사회에 출몰하지만,원시사회는 그 유령을 쫓아낼 수단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원시사회들의 예는 우리에게 다음의 사실을 가르쳐준다.
분할은 사회성의 존재에 내재적이지 않다는 것,달리 말해 국가는 영원한 것이 아니라는 것,국가는 특정한 시점에 발생했다는 것이 그것이다.
▶해설=많은 인류학자들은 국가가 없다는 사실로 원시사회를 원시적이라고 판단했으며,국가 없는 사회로부터 국가 있는 사회로의 진행을 진화적이고 필연적인 것처럼 여겼다.
하지만 클라스트르는 다르게 생각했다.
원시사회에 국가가 없는 이유는 원시사회의 미발달 때문이 아니라 그 사회가 국가의 발생을 억제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다시 말해 원시사회가 국가에 '대항하는' 사회,국가를 거부하는 사회라고 생각한 것이다.
클라스트르는 이 점을 원시 사회의 우두머리에 대한 연구를 통해서 보여준다.
원시사회에서 우두머리,즉 지도자는 같은 사회구성원들에 대해서 명령권을 가지고 있지 않다.
그는 단지 그가 행하는 봉사에 대해 최소한의 신뢰를 받는 자이며,그로부터 위세를 얻는 자일 뿐이다.
그의 의견은 그것이 전체 사회의 관점을 표현해 주는 한해서만 효력을 갖는다.
원시사회는 지배자와 피지배자로 사회적 몸체가 분할되는 것을 거부한다.
'야만인들'의 정치는 권력의 분리된 기관의 발생에 끊임없이 제동을 거는 것이고,우두머리와 권력행사 사이의 치명적인 만남을 가로막는 것이다.
자신의 내부에서 지배자와 예속민,우두머리와 부족 사이의 불평등이 발생하는 것을 막는 것,원시사회가 원하는 것은 바로 이것이다.
바로 그래서 원시사회의 우두머리들은 권력이 없고,바로 그래서 권력은 하나의 몸체로서의 사회로부터 분리되지 않는다.
◆원문 읽기
모든 원시 공동체는 그들의 소비의 생산이란 관점에서 완전한 자율성을 열망한다.
즉 모든 원시 공동체들은 그들의 이웃 집단에 대한 모든 의존 관계를 거부한다.
이는 아주 압축적으로 표현해 보자면 원시사회의 자급자족의 이상이다.
즉 모든 필요를 충족시키기 위해 요구되는 최소의 것을 생산하고,그러나 이러한 최소치의 전체를 생산하기 위해 서로 조절한다는 것이다.
가구적 생산양식은 "잉여의 형성에 근본적으로 적대적인 체제"이면서도,또 동시에 필요 충족을 보장하는 최소치 이하로 생산이 떨어지는 것도 거부한다.
경제적 자급자족의 이상은 사실상 정치적 독립의 이상이기도 하며,정치적 독립은 타자들을 필요로 하지 않을 때에만 보장될 수 있는 것이다.
▶해설=원시사회는 경제적 잉여를 거부한다.
그 사회는 낮은 수준의 생산력 때문에 잉여를 생산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잉여의 생산을 거부한다.
원시 경제는 소비생활과 자급자족을 지향하는데,그것은 '정치적 자급자족'의 전제가 된다.
원시사회에서 우두머리 빅맨(big man)은 부를 축적한다.
하지만 빅맨은 그것을 이웃에게 끊임없이 나눠주어야 하며,그 대신 명예와 위세를 얻는다.
다시 말해,원시사회에서 부자는 이웃을 착취하는 자가 아니라 사회로부터 착취당하는 자이며,위세를 위해서 자신을 착취하는 자일 뿐이다.
그런 의미에서 원시사회는 사회로부터 분리된 경제에 대항하는 사회이며,착취를 거부하는 사회이다.
◆원문 읽기
원시사회는 모두 동일한 원심적 논리에 의해 지배받는 비분화된 공동체들의 다수성이다.
어떤 제도가 그러한 논리의 항구성을 표현하고 또 보장해줄까? 전쟁이 바로 그것이다.
전쟁은 공동체들 사이의 관계의 진리이고,통합화의 구심적 힘에 대항하여 분산의 원심적 힘을 발전시키는 주된 사회학적 수단이다.
전쟁 기계는 사회 기계의 동력이고,원시사회의 존재는 완전히 전쟁에 기초하고 있으며,원시사회는 전쟁 없이 지속될 수 없다.
전쟁이 더 많을수록 통합화는 반대로 적어진다.
국가의 가장 강력한 적은 전쟁이다.
전쟁을 위한 사회로서의 원시사회는 국가에 대항하는 사회이다.
▶해설=클라스트르는 일관되게 원시사회에서 권력은 사회로부터 분리되어 있지 않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전쟁은 필연적으로 전사 집단을 형성하고,사회로부터 분리된 권력집단을 생산하지 않을까? 클라스트르는 그렇지 않다고 답한다.
원시사회에서 전쟁은 일반적이지만,그 사회에서 전사는 적의 머리 가죽을 벗기는 무훈을 성취해야 한다.
그런 무훈은 명예와 찬사를 제공하지만 곧 덧없이 잊혀지는 것이기 때문에 전사는 새롭고 더 빛나는 무훈의 길로 나서지 않을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사회를 능가하는 권력을 쌓기 전에 죽을 수밖에 없는 애석한 운명으로 내몰린다.
원시사회는 전쟁 사회이지만 전사에 대항하는 사회인 셈이다.
클라스트르는 이와 같은 실증적 연구를 통해 원시사회야말로 지배와 착취에 저항해서 자유를 수호한 성숙한 사회이며,착취와 지배의 발생은 사회의 진화적 결과가 아니라 사회의 실패라고 주장했다.
이중한 에듀한경 연구원 doodut@eduhankyung.com
사회는 그 자체로 볼 때 철학적이지도,과학적이지도,종교적이지도 않다.
사회엔 철학,과학, 종교가 혼재하고 있으며 철학,과학,종교로 환원될 수 없는 독자적인 고유의 영역이 있다.
그것이 바로 정치다.
사회는 정치적이다.
피에르 클라스트르(Pierre Clastres,1934~1977)는 프랑스의 정치인류학자이다.
그는 오랜 기간에 걸쳐 파라과이와 베네수엘라의 인디언들과 함께 생활하며 연구를 했다.
오래 전 뒤르켐이 '종교 생활의 기본 형태'를 원시 사회를 통해 연구함으로써 중요한 성과를 거둔 것처럼 클라스트르가 '정치 생활의 원초적 형태'를 원시 사회를 통해서 밝히려는 것은 대단히 의미 있는 시도였다.
클라스트르는 폭력과 국가,지배,복종의 문제를 자신의 필생의 연구대상으로 삼았다.
그는 만인에 의한 만인의 투쟁이라는 야만의 상태를 종식하기 위해서 인류에게 국가가 필요하다는 홉스의 견해에 반대하여 원시사회는 '국가에 대항하는 사회'였다는 것을 제시했다.
원시사회는 미개해서 사회의 발전 형태인 '국가'에 도달하지 못한 것이 아니라,사회가 국가에 도달하지 못하도록 내부의 사회적 장치를 가지고 있었던 사회라고 클라스트르는 주장했다.
◆원문 읽기
국가를 갖춘 사회 모두는 그렇지 않은 사회들에서는 찾을 수 없는 분할(division)의 차원을 지닌다.
국가를 갖춘 사회들은 그들의 존재에 있어서 지배자와 피지배자들로 나뉘어 있지만 국가 없는 사회들은 그러한 분할을 모른다.
그리하여 원시사회들을 국가 없는 사회로 규정한다는 것은 원시사회들이 그들의 존재에 있어서 동질적이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나누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는 여기서 원시사회들에 대한 민족학적 정의를 다시 만난다.
즉 원시사회들은 권력의 분리된 기관을 갖지 않는다.
권력은 사회로부터 분리되어 있지 않다.
▶해설=원시사회라는 말이 의미하는 것은 무엇인가? 가장 고전적인 인류학에 따르면 원시사회들은 국가 없는 사회들이다.
원시사회들은 그 몸체가 정치권력의 분리된 기관을 갖지 않는 사회들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국가가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사회들을 두 집단으로 나눈다.
국가 없는 사회와 국가를 갖춘 사회,또는 원시적인 사회들과 그렇지 않은 사회들로 말이다.
국가를 갖춘 사회들은 지배자와 피지배자로 나뉘어 있지만,국가 없는 사회들은 그러한 분할을 모른다.
원시사회는 나누어지지 않은 사회들이다.
가난한 자를 착취하는 부자들이 존재하지 않는 사회,권력을 행사하는 분리된 기관이 없고 지배자와 피지배자 사이의 분할이 없는 계급 없는 사회인 것이다.
◆원문 읽기
원시사회에서 우두머리는 권력의 표면적인 장소,가정된 장소이다.
그렇다면 그 실재의 장소는 어디인가? 그것은 바로 사회적 몸체 자체이다.
사회적 몸체 자체는 권력을 소유하고 또 분할되지 않은 통일체로서 권력을 행사한다.
사회로부터 분리되지 않은 그러한 권력은 단 하나의 방향으로 행사되고,단 하나의 프로젝트만을 실현한다.
사회의 존재를 분할되지 않은 상태로 유지시키는 것,사람들 사이의 불평등이 사회 내에 분할을 도입하는 것을 막는 것이 그것이다.
그래서 이 권력은 사회를 소외시키고 사회에 불평 등을 도입할 수 있는 모든 것에 대항해 행사된다.
특히 이 권력은 권력을 사취할 수 있는 제도,즉 우두머리 제도에 대해 행사된다.
부족 내에서 우두머리는 감시받는다.
사회는 위세에 대한 애호가 권력의 욕망으로 발전하지 않도록 감시한다.
권력에 대한 우두머리의 욕망이 뚜렷이 드러날 때 취해지는 조치는 매우 간단하다.
그를 쫓아내거나 아니면 죽이는 것이다.
분할이라는 유령이 원시 사회에 출몰하지만,원시사회는 그 유령을 쫓아낼 수단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원시사회들의 예는 우리에게 다음의 사실을 가르쳐준다.
분할은 사회성의 존재에 내재적이지 않다는 것,달리 말해 국가는 영원한 것이 아니라는 것,국가는 특정한 시점에 발생했다는 것이 그것이다.
▶해설=많은 인류학자들은 국가가 없다는 사실로 원시사회를 원시적이라고 판단했으며,국가 없는 사회로부터 국가 있는 사회로의 진행을 진화적이고 필연적인 것처럼 여겼다.
하지만 클라스트르는 다르게 생각했다.
원시사회에 국가가 없는 이유는 원시사회의 미발달 때문이 아니라 그 사회가 국가의 발생을 억제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다시 말해 원시사회가 국가에 '대항하는' 사회,국가를 거부하는 사회라고 생각한 것이다.
클라스트르는 이 점을 원시 사회의 우두머리에 대한 연구를 통해서 보여준다.
원시사회에서 우두머리,즉 지도자는 같은 사회구성원들에 대해서 명령권을 가지고 있지 않다.
그는 단지 그가 행하는 봉사에 대해 최소한의 신뢰를 받는 자이며,그로부터 위세를 얻는 자일 뿐이다.
그의 의견은 그것이 전체 사회의 관점을 표현해 주는 한해서만 효력을 갖는다.
원시사회는 지배자와 피지배자로 사회적 몸체가 분할되는 것을 거부한다.
'야만인들'의 정치는 권력의 분리된 기관의 발생에 끊임없이 제동을 거는 것이고,우두머리와 권력행사 사이의 치명적인 만남을 가로막는 것이다.
자신의 내부에서 지배자와 예속민,우두머리와 부족 사이의 불평등이 발생하는 것을 막는 것,원시사회가 원하는 것은 바로 이것이다.
바로 그래서 원시사회의 우두머리들은 권력이 없고,바로 그래서 권력은 하나의 몸체로서의 사회로부터 분리되지 않는다.
◆원문 읽기
모든 원시 공동체는 그들의 소비의 생산이란 관점에서 완전한 자율성을 열망한다.
즉 모든 원시 공동체들은 그들의 이웃 집단에 대한 모든 의존 관계를 거부한다.
이는 아주 압축적으로 표현해 보자면 원시사회의 자급자족의 이상이다.
즉 모든 필요를 충족시키기 위해 요구되는 최소의 것을 생산하고,그러나 이러한 최소치의 전체를 생산하기 위해 서로 조절한다는 것이다.
가구적 생산양식은 "잉여의 형성에 근본적으로 적대적인 체제"이면서도,또 동시에 필요 충족을 보장하는 최소치 이하로 생산이 떨어지는 것도 거부한다.
경제적 자급자족의 이상은 사실상 정치적 독립의 이상이기도 하며,정치적 독립은 타자들을 필요로 하지 않을 때에만 보장될 수 있는 것이다.
▶해설=원시사회는 경제적 잉여를 거부한다.
그 사회는 낮은 수준의 생산력 때문에 잉여를 생산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잉여의 생산을 거부한다.
원시 경제는 소비생활과 자급자족을 지향하는데,그것은 '정치적 자급자족'의 전제가 된다.
원시사회에서 우두머리 빅맨(big man)은 부를 축적한다.
하지만 빅맨은 그것을 이웃에게 끊임없이 나눠주어야 하며,그 대신 명예와 위세를 얻는다.
다시 말해,원시사회에서 부자는 이웃을 착취하는 자가 아니라 사회로부터 착취당하는 자이며,위세를 위해서 자신을 착취하는 자일 뿐이다.
그런 의미에서 원시사회는 사회로부터 분리된 경제에 대항하는 사회이며,착취를 거부하는 사회이다.
◆원문 읽기
원시사회는 모두 동일한 원심적 논리에 의해 지배받는 비분화된 공동체들의 다수성이다.
어떤 제도가 그러한 논리의 항구성을 표현하고 또 보장해줄까? 전쟁이 바로 그것이다.
전쟁은 공동체들 사이의 관계의 진리이고,통합화의 구심적 힘에 대항하여 분산의 원심적 힘을 발전시키는 주된 사회학적 수단이다.
전쟁 기계는 사회 기계의 동력이고,원시사회의 존재는 완전히 전쟁에 기초하고 있으며,원시사회는 전쟁 없이 지속될 수 없다.
전쟁이 더 많을수록 통합화는 반대로 적어진다.
국가의 가장 강력한 적은 전쟁이다.
전쟁을 위한 사회로서의 원시사회는 국가에 대항하는 사회이다.
▶해설=클라스트르는 일관되게 원시사회에서 권력은 사회로부터 분리되어 있지 않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전쟁은 필연적으로 전사 집단을 형성하고,사회로부터 분리된 권력집단을 생산하지 않을까? 클라스트르는 그렇지 않다고 답한다.
원시사회에서 전쟁은 일반적이지만,그 사회에서 전사는 적의 머리 가죽을 벗기는 무훈을 성취해야 한다.
그런 무훈은 명예와 찬사를 제공하지만 곧 덧없이 잊혀지는 것이기 때문에 전사는 새롭고 더 빛나는 무훈의 길로 나서지 않을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사회를 능가하는 권력을 쌓기 전에 죽을 수밖에 없는 애석한 운명으로 내몰린다.
원시사회는 전쟁 사회이지만 전사에 대항하는 사회인 셈이다.
클라스트르는 이와 같은 실증적 연구를 통해 원시사회야말로 지배와 착취에 저항해서 자유를 수호한 성숙한 사회이며,착취와 지배의 발생은 사회의 진화적 결과가 아니라 사회의 실패라고 주장했다.
이중한 에듀한경 연구원 doodut@edu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