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를 알면 논술이 술술] 6. 파이를 똑같이 나누면 아무도 키우려 하지 않는다
'파이는 공평하게 분배할수록 크기가 점점 작아진다.'

경제학자들은 소득 분배와 관련된 토론이 벌어지면 대체로 이러한 결론에 도달한다. 파이(부)를 평등하게 분배할수록 파이를 키우려는 구성원들의 인센티브가 줄어들어 전체적인 파이의 크기는 점차 줄어들게 된다는 것으로 결론을 맺는다.(맨큐의 경제학 511쪽) 소득 분배는 오래 전부터 많은 학자들이 고민해 오고 있는 경제 문제다. 모든 사람이 골고루 잘 사는 이상사회를 갈망해 왔지만 현실은 항상 그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갔다. 그래서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플라톤은 '가장 부자인 사람의 소득이 가장 가난한 사람의 소득보다 4배 이상 많아서는 안 된다'고 말하기까지 했다. 최근 들어서는 각 나라들이 분배냐 성장이냐를 놓고 논란을 벌이며 선거철마다 분배 문제가 큰 이슈로 등장하고 있다. 부자와 가난한 자의 격차를 줄일 수 있으면 좋겠지만 지나치게 줄이려고 할 경우 부자가 되고자 하는 인센티브가 약해져 생산 자체가 줄어든다는 문제점이 있다. 균형점이 어디냐는 것도 어려운 문제다.

◆소득 불균형의 원인

소득 불균형의 원인은 생산에 투입되는 요소 서비스에 대한 가격 차이 때문에 발생한다. 노동 토지 자본 등 생산 요소에 대한 대가로 지급되는 임금 지대 배당금 등의 차이가 사회 구성원들의 소득 불균형으로 나타난다. 그런데 이들 생산 요소의 가격은 시장에서 수요 공급에 의해 결정된다. 또 요소의 수요는 그 요소를 생산과정에서 투입했을 때 얻을 수 있는 생산물의 가치에 달려 있다. 예를 들어 컴퓨터 프로그래머가 주유소 직원보다 봉급이 많은 것은 컴퓨터 프로그래머가 창출하는 시장가치가 주유소 직원이 창출하는 서비스의 시장가치보다 높기 때문이다.

재미있는 컴퓨터 게임에 대해 사람들이 지불할 의사가 있는 금액의 크기가 주유소에서 휘발유를 넣어 주는 서비스에 대한 지불 의사보다 크기 때문에 컴퓨터 프로그래머의 연봉이 시장에서 더 높게 형성되는 것이다. 물론 같은 컴퓨터 프로그래머라고 해도 숙련도와 기술 등에 차이가 난다. 이를 인적 자본이라고 하는데 이 인적 자본이 소득에 미치는 영향이 점점 커지고 있는 추세이다. 미국의 경우 대학 졸업자의 임금이 고졸 근로자보다 평균 2배 정도 높다. 최근 국내에서 대학교수와 유명 연예인 일부가 수년 동안 학력을 속인 사실이 드러나고 있는데 이 역시 이 같은 배경에서라고 할 수 있다.

소득 불균형이 심화되고 있는 또 다른 이유는 기술 개발과 시장 개방으로 단순 노동을 기계가 대체하거나 해외 저가 상품의 유입으로 저임금 근로자들이 일자리를 잃어 가고 있기 때문이다. 강석훈 성신여대 교수가 최근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우니나라 소득 5분위 배율(상위 20%의 소득점유율/하위 20%의 소득점유율)이 2003년 7.23에서 2006년 7.64로 높아졌고 소득 불균형 정도를 나타내는 지니계수(1에 가까울수록 불평등)도 0.341에서 0.351로 나빠졌다. 다른 나라와 비기면 그다지 높지는 않지만 점점 차이가 커지고 있다는 것은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소득재분배에 대한 시각들

소득 불균형은 자본주의 시장경제에서 피할 수 없는 현상이다. 이에 따라 대부분의 나라에서는 정부가 정책을 통해 어느 정도까지 이를 시정하고 있다. 소득 불균형을 어느 정도 개선시킬 것인지를 두고 학자들 간에 많은 논란이 있다. 우선 철학자 로버트 노직(Robert Nozik)은 정부의 소득 재분배 정책 자체를 부정한다. 사람들이 시장에서 생산 서비스를 제공하고 소득을 얻는 과정 자체가 공평하면 되는 것이지 소득 재분배 정책은 필요없다고 본다. 노직은 '무정부국가 그리고 유토피아'에서 이렇게 주장하고 정부는 결과의 평등이 아나리 기회의 균등에 주력하라고 강조했다.

소득 재분배에 대한 고전적 이론으로는 공리주의자들과 정의론을 쓴 존 롤스를 들 수 있다. 공리주의자들은 사회 구성원 전체의 총효용을 극대화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아울러 한계효용 체감의 법칙을 가정한다. 따라서 부자의 세금을 거둬 가난한 사람에게 나눠 줄 경우 전체 효용이 증가하기 때문에 공평한 분배에 힘써야 한다며 정부의 소득 재분배 정책을 지지한다. 하지만 인센티브 위축과 정부 실패 가능성을 이유로 모든 사람이 공평해야 한다는 주장에는 반대한다. 공리주의 논리를 잘 나타내는 비유로 사막의 오아시스에서 물 퍼나르기가 흔히 인용된다. 사막의 오아시스 근처에서 길을 잃은 두 사람이 있을 때 한곳에는 물이 있고 다른 한곳에는 물이 없어 정부가 물을 이동시켜야 한다면 어느 정도 이동시켜야 할까. 물이 없는 곳에 있는 사람을 살리기 위해 물을 이동시켜야겠지만 항아리가 샐 경우 문제는 달라진다. 새는 정도와 갈증 정도를 감안해서 이동할 물의 양을 결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경제학자들은 공리주의 소득 재분배 정책에 공감하고 있다.

하버드대의 도덕 철학자인 존 롤스는 공리주의자들에 비해 보다 적극적인 소득 재분배 정책을 주장한다. 롤스는 정의론에서 임금이 한계생산물가치에 의해 결정된다는 주장에 비판적 견해를 보였다. 그는 정의로운 소득 분배 정책을 생각함에 있어 사람들이 모여서 소득 분배에 대한 규칙을 정하는 상황을 상상해 보라고 말한다. 이 모임은 누구도 각 사람이 어떤 재능을 가졌는지 알지 못하는 무지의 베일 상태에서 열린다. 참가자들은 누가 현명하고 어리석은지 모르기 때문에 규칙이 자신에게 유리한지를 알 수 없다. 또 사람들은 대체로 위험을 기피하는 경향이 있으므로 공평하게 분배하는 것을 선호하게 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롤스는 공공 정책의 목표는 기본적으로 사회 최빈층의 복지를 증가시키는 것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어떠한 정책을 사용하더라도 최빈층의 복지를 증가시키는 조건으로 시행돼야 한다는 것이다. 한계효용 체감의 법칙을 근거로 사회 구성원의 효용총합계를 최대화시키는 것을 목표로 하는 공리주의자에 비해 롤스는 최빈층에 보다 높은 가중치를 부여한 소득 재분배를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소득 재분배 문제는 입시논술에서도 자주 출제되고 공리주의와 정의론적 주제들 역시 언제 출제되어도 이상할 것이 없는 그런 문제들이다. 어렵지만 열심히 공부해 두자.

박주병 한국경제신문 연구위원 jbpark@hankyung.com

--------------------------------------------------------

존 롤스에 대한 버냉키와 맨큐의 견해

존 롤스의 정의론은 현대 정치철학의 고전으로 통한다. '모든 사람이 아무런 기득권 없이(무지의 상태) 서로 합의해 정하는 규칙은 정당할 것이다. 그런 상태에서 사람들은 위험을 기피하는 성향이 있기 때문에 평등한 것을 선호하게 되므로 공공정책은 최빈층의 복지를 증가시킬 때만 정당하다'는 것이 롤스의 주장이다.

이에 대해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 의장인 벤 버냉키는 그의 저서 '경제학'에서 "시장경제에서 부의 분배를 결정하는 규칙으로 절대 평등은 최우선 정책 목표가 아니다"라고 비판한다. 그는 "부는 익명의 후원자에게 나오지 않는다. 사람들이 창출하여야 한다"면서 롤스는 부가 마치 주어지는 것처럼 가정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사람들이 동일한 소득을 보장 받는다면 교육이나 특별한 재능 개발에 투자할 사람은 없을 것"이라며 "실제 열심히 일하거나 위험을 감수하는 데 대한 보상이 없는 나라의 국민 소득은 보상이 있는 나라보다 현저하게 적다"고 밝혔다. 맨큐 경제학의 저자 그레고리 맨큐도 롤스의 소득분배론에 논란의 여지가 많다고 비판한다. 그러나 맨큐는 롤스가 제안한 가상 실험은 많은 사람들에게 호소력이 있다면서 롤스의 소득재분배를 일종의 사회보험으로 해석했다. '사람들이 집에 불이 날까봐 화재보험에 드는 것처럼 롤스식의 소득재분배 정책이 시행된다면 누구나 가난해질 수 있는 위험에 대비해 보험에 드는 셈이 된다'는 것이다. 맨큐는 사람들이 위험 회피적이어서 공평한 상태를 선호할 것이라는 롤스의 주장에 대해서는 반대 의견을 보였다. 그는 확률상 자신이 부자가 될지 가난한 자가 될지 모르므로 공공정책에 모든 가능성을 반영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렇게 되면 객관적인 사람들은 모든 사회구성원의 평균 효용을 극대화하게 될 것이라면서 이는 공리주의자들의 주장에 가까워진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