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지의 비극

[경제를 알면 논술이 술술] 4. 청계천 사과나무엔 사과가 없다
서울시가 청계천을 복원할 때 충주시로부터 사과나무 116그루를 기증받았다. 청계천변에 심어진 사과나무에선 2500여개의 열매가 맺었다. 하지만 작년 가을 수확한 사과는 30개도 채 안 됐다. 시민들이 익기도 전에 몰래 따갔기 때문이다. 청계천 사과가 남아나지 않았듯이,도시 인근 산의 도토리를 싹쓸이해 다람쥐들을 굶기고,은행을 따려고 도로변 은행나무를 발로 차는 사람들을 종종 볼 수 있다. 사람들은 왜 이런 행동을 할까?

경제학에선 이를 '공유지의 비극(tragedy of commons)'이라고 부른다. 쉽게 말해 '먼저 보는 사람이 임자'라고 여기는 행태이다. 이번 주에는 2006학년도 서울대,성균관대 논술고사에 출제되는 등 대입 논술의 단골 주제인 '공유지의 비극'에 대해 함께 생각해보자.

◆생물학자가 발견한 경제원리

'공유지의 비극' 개념을 처음 제시한 개럿 제임스 하딘(1915~2003)은 생물학자인데도 종종 경제학자로 오해 받는다. 미국 캘리포니아대 인류생태학 교수를 지낸 하딘은 1968년 과학전문지 '사이언스'에 '공유지의 비극'이란 제목의 논문을 기고하면서 경제학자들에게 수십 년간 논쟁을 벌일 화두를 던졌다. 누구나 가축을 방목할 수 있는 목초지(공유지)가 있으면 농부들은 더 많은 소를 풀어 기르려고 경쟁하고,종국엔 목초지를 황폐하게 만든다는 내용이다. 개개인의 극단적인 이익 추구가 전체의 손실을 가져온다는 얘기다. 공산주의 70년 실험이 참담한 실패로 끝난 것도 바로 공유지의 비극과 사유재산의 중요성을 간과한 때문이 아닐까? '능력껏 일하고 똑같이 배분하는 지상낙원'이라던 공산국가(옛 소련)에선 이런 우스갯소리가 있다. "국민은 일하는 척하고,정부는 배급하는 척한다."

◆공중화장실 깨끗한 거 봤나

많이 나아졌다지만 공중화장실에 가면 여전히 더러운 곳이 많다. 자기 집에서는 그렇게 안 했을 텐데 공중전화,공공도서관처럼 '공중''공공'이란 접두어가 붙으면 헤퍼진다. 또 형제나 친구들끼리 간식을 먹을 때면 두 가지 장면이 나타난다. 따로 자기 몫이 나눠져 있을 때보다 모두 함께 숟가락 들고 덤빌 때 훨씬 먹는 속도가 빠르다. 자기 몫의 간식은 사유재산이지만 함께 먹는 간식은 공유재산(공유지)이기 때문이다.

이렇듯 사람들은 자기 것은 아끼지만 여럿이 공동으로 소유하는 것은 과도하게 또는 함부로 소비하는 경향이 있다. 자기 차는 조금만 더러워져도 세차하지만 빌린 렌터카는 아무리 더러워도 세차를 안 한다. 내 것이 아니니까. 여기서 한발 더 나가면 '내 것은 내 것,네 것도 내 것'이라는 놀부심보와 통한다.

이런 사례는 수도 없이 찾아볼 수 있다. 경제학 교과서에는 흔히 바닷속 물고기 남획,아프리카 코끼리 밀렵,아마존 열대림 훼손 등을 예로 든다. 우리 주변의 사례로는 학교 화장실의 화장지,공무원들의 남는 예산 처리 방식,무상치료를 받는 의료급여 수급자들의 병원 가는 횟수(실제로 하루에 27번의 진료를 받은 사람도 있다)… 등등.

◆국립공원 입장료를 올릴까,없앨까

「맨큐의 경제학」은 '뉴스 속의 경제학'에서 경제학자 앨런 샌더슨이 뉴욕타임스에 기고한 글을 소개하고 있다. 옐로스톤 국립공원의 입장료를 디즈니월드 입장료 정도로 올려 공원도 살리고 돈도 벌자는 내용이다. 국립공원이야말로 대표적인 '공공재'이지만 '공유지'도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제기된 주장이다. 샌더슨은 1916년 당시 승용차를 몰고 온 5인 가족의 옐로스톤 입장료는 7.5달러였는데,여전히 10달러에 불과해 너무 많은 사람이 입장하고 자연을 훼손한다고 주장했다. 물가 수준을 고려하면 120달러는 돼야 디즈니월드 입장료나 미식축구 관람료와 맞먹게 된다는 것이다.(현재 입장료는 차량 한 대당 20달러)

우리나라는 어떤가? 16개 국립공원 입장료가 올해부터 폐지되면서 북한산 등 국립공원들이 몸살을 앓고 있다고 한다. 입장객이 두 배로 늘면서 자연 훼손,쓰레기 투기 등의 부작용도 커지고 있다. '공공재'인 국립공원의 가치를 누구나 공짜로 즐길 수 있게 함으로써 '공유지'로 전락시킨 것이다.

이렇듯 공동으로 책임을 지우면 아무도 책임지지 않듯이,공동소유인 것은 누구나 공짜로 여긴다. 성선설을 신봉하는 도덕주의자들은 아니라고 부정하고 싶겠지만,실제 세상 돌아가는 모양새가 그렇다.

오형규 한국경제신문 연구위원 ohk@hankyung.com

---------------------------------------------------------------

공유지의 비극 극복하기

국립공원의 입장료를 대폭 인상한다면 당장 이런 항의가 쏟아질 것이다. "그럼 부자들만 국립공원을 즐겨야 하냐"고.

물론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또 그래서도 안 된다. 입장료를 대폭 인상하지 않고도 국립공원이 공유지의 비극에 빠지지 않도록 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 우선,국립공원을 훼손하지 않을 수준의 1년 방문객 수를 정한다. 이 숫자만큼 공원 입장권을 만들어 국립공원을 자주 찾는 인근 지역 저소득층 주민이나 노인들에게 나눠준다. 이렇게 하면 입장권의 시장가격이 형성되고,지역 주민들은 공원을 보호하고 관리할 강한 동기를 갖게 된다. 이는 정부가 직접 나서 공공근로자를 고용하거나 공익근무요원을 동원해 관리하는 것보다 훨씬 효과적일 수 있다.

환경 문제는 공유지의 비극과 가장 밀접하다. 환경은 공동의 소유다보니 헤프게 마구 다뤄질 가능성이 크다. 환경보호론자였던 개럿 하딘이 이 개념을 제시한 것도 필연적으로 황폐해질 공유지(환경)를 보호하려면 일부 자원의 사용을 제한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경제학자들은 공유지의 비극을 인간 본성상 해결 불가능한 숙명으로 보지 않는다. 경제학자들은 그 해결책으로 두 가지 원칙을 제시한다. 즉,사람은 내 것이면 아낀다는 점과,인센티브에 반응한다는 점이다. 공유지에 명확한 소유권을 부여하고,그 소유권이 돈이 되게끔 해주는 것도 유력한 방법이다. 찰스 윌런은 「벌거벗은 경제학」에서 멸종 위기에 처한 코뿔소를 보호하는 방법으로 철저한 밀렵 단속보다 오히려 주변 부족에게 코뿔소를 이용해 관광객들의 관람료를 받게 해준 것이 훨씬 효과적이었음을 설득력 있게 설명한다.

고등학교 사회 교과서엔 공유지의 비극에 대한 해법으로 시민의식과 공동체의식 함양을 들고 있다. 의식 함양도 중요하지만 이기적인 개개인이 얽힌 문제를 해결하는 데 충분조건은 못된다. 여기에다 주인의식(내 것이란 생각)과 경제적 인센티브(돈,수입)를 가미하면 바람직한 결과를 가져올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