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 제시문을 읽고 문제에 대해 답하시오.

[논술 길잡이] 한양대학교 2008학년도 모의논술 Ⅱ (인문계)
<제시문 [가]>


보스니아와 르완다 등지에서 대량 학살을 자행할 때처럼 사람들이 나쁜 짓을 저지를 때,우리는 그들을 짐승이라 부른다. 그렇지만 다른 사람의 목숨을 구한다거나 가난한 자를 돕는 것과 같은 이타적인 행동을 하면, 그러한 행동이 인간의 고상한 도덕성에서 비롯되었다고 말한다. 기독교에서 흔히 이야기하듯 악마와 천사 사이에 머물고 있는 인간 본성의 이중성이라는 주제는 우리와 가장 가까운 두 친척 동물인 침팬지와 보노보를 살펴봄으로써 보다 잘 이해할 수 있다. 침팬지는 폭력적이고 권력에 굶주린 동물이라는 평판을 얻고 있는 반면,영장류 세계의 히피족이라 할 수 있는 보노보는 '전쟁이 아니라 섹스'를 더 좋아하는 것처럼 보인다. 두 유인원은 인간과의 유전적 거리가 거의 같지만, 지금까지 언론 매체나 문헌에서는 우리와 침팬지를 비교하는 사례가 압도적으로 많았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보노보의 생활에 대해서 거의 알려져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보노보 사회가 보여주는 암컷의 지배, 협력적인 성격,사회적 갈등을 해소하기 위한 섹스의 사용 등은 지나치게 남성 중심적인 이론들에 큰 타격을 주었다. 이러한 이론들은 인간의 공격성을 발전과 동일시하고,우리의 친척인 침팬지의 행동에서 폭력성의 뿌리를 찾으려 했다.

지난 수십년 동안 생물학자들은 인간이 '이기적인' 유전자의 지배를 받으며 그에 따라 자신에게 이익이 되는 행동만 한다는 이미지를 널리 유행시켰다. 이 메시지는 레이건과 대처가 미국과 영국을 통치하던 시절,탐욕을 자유시장제도의 기초로 여기던 시대정신과 잘 들어맞았다. 그러나 엔론 사태와 그 밖의 기업들의 부정 사례가 터지기 전에도 우리는 이미 도덕적 책임과 공동체를 점점 더 중요시하게 되었다. 지난 수십년 사이에 생물학계에서도 인간의 본성에 관한 논쟁의 기조는 강자의 권리에서 도덕성과 책임감의 진화 쪽으로 급격히 쏠려 왔다. 따라서 지금이야말로 인간의 본성과 조상에 관해 보다 완전한 그림을 그리기에 아주 적절한 때로 보인다. 이 그림은 침팬지와 보노보 모두를 우리의 본성으로 수용하려 한다.

<제시문 [나]>

심층생태학(deep ecology)에 대한 대안으로 뤽 페리(Luc Ferry)는 민주생태학(democratic ecology)을 제안한다. 이는 인간의 권리를 위협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자연을 보호하고 환경을 보존하는 의무를 지녀야 한다는 것을 뜻한다. 자연은 물질이나 기계가 아니며 인간을 위한 도구도 아니다. 자연이 보유하고 있는 고유의 아름다움과 가치는 인정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것을 그대로 보존하는 것이 인간의 최우선 임무는 아니다. 인간이 삶을 영위하기 위해서는 자연으로부터 벗어나야 하며, 자연을 파괴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그것을 선용하는 것이 인간에게 주어진 자유의 의미이다. 또한 인간은 자연을 개발하더라도 그것을 무한정 소비할 정도로 지성이 부족한 존재는 아니다. 인간의 관심은 자연적 삶으로부터 탈피하는 것이지 자연을 완전히 정복하는 것은 아니며, 자연을 남용하는 것이 인간의 자유를 신장하는 데 도움이 안 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시장주의와 자본주의는 환경론적으로 의식화된 소비자를 길러냄으로써 우리가 우려하는 바와 같은 정도의 환경파괴는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페리의 자유관은 인간과 자연을 분리시키는 한편,인간의 본성에 대해서도 일반적인 견해와는 다른 의견을 내 놓는다. 그가 보기에 인간의 본성이 원래 선한가 혹은 악한가라는 질문은 초점을 벗어난 것이다. 본래적으로 인간은 선하며 동시에 악하기도 하다. 동물의 본성도 마찬가지이다. 동물도 때로는 상대방에게 우호적이며 때로는 해를 끼친다.

하지만 인간이 동물과 다른 것은 선행이든 악행이든 그것을 계획적으로 실행할 수 있다는 점과 그럼으로써 극도로 선하거나 극도로 악해질 수 있다는 점이다. 페리는 고문도구를 전시한 벨기에의 박물관을 예로 들면서, 세상에 다른 사람을 저토록 괴롭힐 수 있는 갖가지 방법을 계획적으로 고안해낸 종은 오직 인간밖에 없다고 지적한다. 자유로운 인간은 동물이 저지르는 악행보다 훨씬 더 강도가 세고 극단적인 악행을 저지를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 반대의 경우도 있다. 인간은 자유롭기 때문에 얼마든지 계획을 세워 다른 사람에게 선행을 베풀 수도 있다는 것이다.

결국 인간이란 자신의 삶을 자연이나 선과 같은 자신의 외부에 의해서가 아니라 자기 자신이 조직하는 존재이다. 이런 조직의 결과가 바로 역사이다. 인류의 역사가 때로는 훌륭하고 때로는 수치스럽기도 한데 이는 모두 자유로운 선택을 할 수 있었던 인간이 최종적으로 책임을 져야 하는 일이다. 인간은 본래 선하거나 악한 존재가 아니다. 그러나 인간의 선행과 악행은 역사를 만들며,그 역사에 대한 책임은 자유로운 선택을 했던 인간에게 돌아간다.이것이 바로 자유가 책임을 동반하는 이유인 것이다.

<제시문 [다]>

1992년 리우 환경개발정상회의에서 채택된 기후변화협약은 기후변화에 대한 역사적 책임이 있는 선진국들에게 온실가스 배출량을 1990년 수준으로 유지하도록 하고 있으나,의무에 대한 구속력이 없어 실효성에 의문이 제기됐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1997년 교토의정서가 채택돼 2005년 발효됐다. 교토의정서의 가장 큰 의의는 선진국에 대한 양적 감축의무를 규정한 것에 있다.

선진국들은 교토의정서에 따라 2008년부터 5년 동안 온실가스 배출량을 1990년 대비 평균 5.2% 감축해야 한다. 이에 선진국들은 에너지 이용효율 증대,신재생 에너지 보급 등을 통해 이산화탄소 배출의 원인이 되는 화석연료 사용을 줄이려는 노력을 하고 있다.

유럽연합(EU)은 2020년까지 에너지 효율을 20% 향상시키고 재생에너지 사용비율을 20% 올리는 정책을 통해,온실가스를 1990년 대비 20~30%까지 줄이겠다는 계획을 올해 초 발표했다. 2001년 기후변화협약에 참여하지 않기로 한 미국도 2017년까지 석유 소비량을 20% 줄이고, 재생에너지 비율을 15% 확대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교토의정서는 온실가스를 효과적으로 줄이기 위해 배출권거래제,청정개발체제 등과 같은 시장원리에 입각한 메커니즘을 도입하였다. 배출권거래제는 환경재에 대해서도 사유재산권을 인정하여 시장에서 배출권이 자유롭게 거래될 수 있도록 하는 제도이다. 교토의정서에 따라 선진국들은 국가별로 설정된 온실가스 감축목표를 달성하지 못한 경우 다른 국가로부터 배출권을 구매하여야 하며,초과 달성한 경우에는 반대로 배출권을 팔 수 있다. 따라서 온실가스를 적은 비용으로 줄일 수 있는 국가들은 배출량을 줄여 배출권 판매수익을 거둘 수 있으며,온실가스를 줄이는 데 비용이 많이 드는 국가는 상대적으로 저렴한 배출권을 구입하여 감축비용을 줄일 수 있으므로 전체적으로는 감축비용을 최소화할 수 있게 된다. 아울러 온실가스를 줄일 수 있는 새로운 기술개발 투자에 대한 개별 국가들의 유인도 커진다. 현재 배출권 거래는 EU,일본 등에서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배출권 거래는 교토의정서상 의무감축 기간이 시작되는 2008년부터 본격적으로 시행될 예정이기 때문에 배출권 거래시장은 더욱 확대될 것으로 보인다. 배출권 거래시장은 현재 300억달러를 넘어섰고, 2010년에는 1500억달러 규모로 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청정개발체제는 선진국이 개발도상국에 투자하여 감축한 온실가스의 일정량을 자국의 실적으로 인정받는 제도이다. 영국,네덜란드,일본 등이 주요 투자국이며 중국,인도 등에서 활발하게 추진되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 700여개 사업이 진행되고 있으며,이들 사업으로 약 1억5000만t의 온실가스 감축효과를 볼 수 있다.

<제시문 [라]>

저는 모임에 참석한 수천명의 자매 여러분들이 걸쳤던 보석들을 대부분 헌납한 것에 대해 감사드립니다. 수백만명이 거의 기아 상태에 있는 이 나라에서, 보석으로 치장하는 것은 눈에 거슬리는 일입니다. 인도 여성들은 현금을 거의 갖고 있지 않습니다. 하지만 여러분들이 걸친 보석들은 주인인 남편의 허락 없이는 내줄 수 없다 해도 여러분들의 소유물입니다. 제 생각에 값비싼 보석을 걸치는 풍토는 국가적 손실입니다. 이는 보석함에 넣어 놓거나 몸에 걸치거나에 상관없이 치명적입니다. 보석을 단념하는 자기 정화의 노력은 분명히 사회적 이익을 가져올 것입니다. 이를 실천하려거든 기쁘게 하십시오. 여성 여러분들은 자신을 속박했던 것들과 헤어지게끔 이끌어 준 저에게 축복을 내려 주었습니다. 그리고 적잖은 남성들도 가정에 단순함을 가져다 준 역할을 한 저에게 감사를 표현했지요. 제가 의사나 법관,그리고 상인들을 가난하게 만드는 역할을 했음을 인정합니다. 저는 그것을 후회하지 않습니다. 반대로,저는 많은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가난을 껴안은 것에 대해 흐뭇함을 느낍니다. 한 닢을 벌기 위해 하루에 몇 킬로미터를 걸어야 하는 인도에서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다는 사람들이 값비싼 장신구를 걸치는 것은 이치에 맞는 일이 아닙니다. 그렇게 되면,우리가 불가촉 천민들과 하나가 될 수 있는 길은 아예 없는 것입니다.

<제시문 [마]>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기 10년 전,다른 의사들처럼 질병을 연구하는 대신 건강의 본질,건강한 행위의 본질을 연구하고 싶었던 일단의 내과 의사와 생물학자들이 남부 런던페컴(Peckham)에 파이어니어(Pioneer) 건강센터를 설립했다. 그들은 연구를 위한 첫번째 단계로 사교 클럽을 만들었다. 가족 단위로 회원가입을 받았고,가족회원으로 등록하고 정기 건강검진을 받는 것에 동의하면 센터의 다양한 시설을 이용할 수 있었다. 올바른 결론을 얻기 위해서는 자유로운 인간을 관찰해야 한다고 페컴의 생물학자들은 생각했다. 자기가 원하는 대로 행동하고 자기의 욕망을 표현하는 자유로운 인간을 관찰하지 않는다면,관찰 결과도 왜곡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 것이다. 결과적으로 이곳에는 규칙도 없고 제약도 없고 리더도 없었다.

설립자 스코트 윌리엄슨 박사는 이렇게 말했다."권한을 가진 사람은 오직 나뿐이었다.나는 아무도 권한을 행사하지 못하게 하는 데 그 권한을 사용했다." 처음 8개월은 혼란 그 자체였다. 한 관찰자는 이렇게 말했다. "맨 처음 가입한 회원 가족들 중에는 버릇없는 아이들이 무더기로 있었다. 아이들은 넓은 런던 거리를 활보하듯 온 건물 안을 헤집고 다녔다. 훌리건처럼 고함치며 온 방을 뛰어다니고 장비와 가구를 망가뜨렸다." 아이들은 모든 사람들을 짜증나게 했다. 그러나 스코트 윌리엄슨은 평화는 아이들 방식대로,다양한 충동에 대한 반응으로 자리 잡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의 믿음은 결실을 맺었다. "1년도 안 되어 혼란 대신 질서가 찾아왔다.아이들은 수영도 하고 스케이트도 타고 자전거도 타고 실내체육관도 이용하고 게임도 했으며,심지어 가끔은 도서관에서 책을 읽기도 했다.(중략) 뛰거나 고함치는 일은 과거의 얘기였다." 페컴의 실험에 관한 중요한 몇몇 보고서들 중의 하나에서 존 코머포드(John Comerford)는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린다. "따라서 어떤 사회가 자발적으로 자신을 표현할 수 있는 적절한 환경에 놓이면,그 사회는 자구책을 찾아낼 뿐 아니라 강요된 리더십이 결코 흉내 낼 수 없는 방식으로 행동들의 화합을 만들어 낸다."

<제시문 [바]>

언젠가도 말씀드린 일이 있습니다만,우리는 누구나 오늘의 자기 현실을 최종적이고 불가변의 것으로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오늘의 현실은 내일 다시 선택적으로 개선해나갈 수 있다는 가능성 위에서 그 오늘의 현실이 아무리 만족스럽고 행복한 것이라 하더라도 거기에 다시 내일의 선택이 전제되지 않는 한 그 현실은 누구에게도 천국일 수 없습니다. 선택과 변화가 전제되지 않은 필생의 천국이란 오히려 견딜 수 없는 지옥일 뿐입니다.

그런데 이 섬 위에 꾸미고 계신 원장님의 천국은 어떻습니까. 정직하게 말해서 그것은 이 섬 원생들의 천국이기 전에 우선 원장님의 천국인 것입니다. 아니 그것은 어쩌면 오직 원장님 한 분만의 천국일 수도 있습니다.

원장님께서는 이 섬 원생들이 목숨을 다할 때까지 편안히 지내다 갈 수 있는 그런 천국을 꾸미고 싶어하십니다. 원생들 역시 즐거이 그 천국을 받아들여야 하리라고 굳게 믿고 계십니다. 그리고 내일 다시 그 천국을 바꾸거나 버리는 일이 없어야 한다고 믿고 계십니다. 원장님께서는 그처럼 누구도 그 원장님의 천국을 거역할 수 없는 필생의 천국을 만들고 싶어하십니다.

하지만 진정한 천국이라면 전 그것을 누리고자 하는 사람에게 먼저 선택이 행해져야 할 것이고,적어도 어느 땐가는 보다 더 나은 자기 생의 실현을 위해 그 천국을 버릴 수도 있어야 하는 것으로 믿고 싶습니다. 천국이란 실상은 그것의 설계나 내용이 얼마나 행복스러워 보이느냐보다는 그것을 누리고자 하는 사람들의 선택 행위와 내일의 변화에 대한 희망이 어느 정도까지 허용될 수 있느냐에 더욱 큰 뜻이 실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형식만 있었을 뿐 원생들의 진정한 선택이 있을 수 없었던 그 마지막 정착지로서의 천국-필생의 천국-그것은 원생들의 천국이 아니라 다만 그들이 그렇게 믿어주기를 바라면서 거의 일방적으로 그것을 점지해주고 싶어하신 원장님이나 그 원장님과 같은 생각을 가진 분들-섬 바깥에서 이 섬을 저들의 천국이라고 말하게 될 바로 그 사람들의 천국일 뿐인 것입니다. 그리고 그 천국은 그것을 이룩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그것을 완벽하게 만들어갈수록 그것을 살아야 하는 사람들에게는 오히려 숨막히는 지옥이 되어버릴 수도 있는 것입니다.


[문제 1] 제시문 [가]를 참조하여 제시문 [나]의 주장을 설명하시오.(500∼600자, 25점)

[문제 2] 제시문 [다]에 제시된 환경 위기에 대한 대응 방식을 제시문 [나]의 관점에서 설명하고, 제시문[라]를 참고하여 이를 보완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시오.(700∼800자, 35점)

[문제 3] 제시문 [마]와 제시문 [바]에 나타난 '스코트 윌리엄슨'과 '원장'의 공동체 운영방식을 비교하시오. 그리고 제시문 [바]의 화자가 말하고 있는 '진정한 천국'에 대해 논술하시오.(900∼1000자, 40점)



한양대 2008학년도 모의논술 Ⅱ 해설

대학이 실제 논술시험을 치르기 전에 예시문항을 발표하는 것은 학생들로 하여금 문제 유형을 미리 경험하도록 한다는 취지에서다. 그런데 요즘 대학에서 발표하는 예시문항들을 보면 문제 유형에 일관성이 없어보이는 경우가 많다.

한양대의 경우도 올해 두 번에 걸쳐 예시문항을 발표했는데 1차 문제와 2차 문제가 많이 다른 것을 확인할 수 있다. 1차에서는 통계자료 해석에 관한 문제와 일반적인 논술문제가 따로 출제되었다. 그러나 2차에서는 시각자료나 통계자료가 없이 난이도가 높은 제시문이 잔뜩 주어진 문제가 출제되었다. 그러나 문제의 형식이 조금 바뀐다고 해서 논술의 본질적인 성격이 바뀌었다고 볼 순 없다. 통합논술이라는 용어가 등장하면서,논술의 성격이 크게 바뀐 것처럼 여기는 경향이 많지만 논술은 예전에도 이미 통합논술이었다.통계자료나 시각자료 등이 꼭 들어가야 한다거나 답안의 분량과 개수는 이러해야 한다는 식의 견해는 형식에 집착하는 것이다. 제시문의 형식이나 분량이 변한다 해도 실력이 있는 학생은 좋은 점수를 받을 수 있으니 문제 유형의 변화에 너무 일희일비하지 말기 바란다.

이번 문제의 제시문이 다루는 내용은 생소하고 가시덤불처럼 복잡해 보이지만,이러한 다양한 텍스트 속에 숨겨진 하나의 맥락과 주제를 읽어낼 수 있다면 이 문제는 쉽게 풀 수 있다. 논술문제를 해설할 때,출제자의 의도를 넘겨집는 것은 위험할 수 있지만 출제자가 의도한 바를 추측하여 숨겨진 맥락과 행간에 담긴 의미가 무엇인지를 나름의 방식으로 서술해 보고자 한다.

제시문 해설

이번 한양대 예시문제의 6개 제시문은 다양한 주제를 다루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인간본성에 대한 성선설·성악설 논의를 담은 두 개의 제시문,환경오염 해결방식을 다루는 제시문,그리고 자율성에 의해 작동하는 사회와 엄격한 통제에 의해 작동하는 사회를 대비시킨 두 제시문 등이 주어지고 있다.

이렇게 다양한 제시문들이 실은 하나의 주제와 관련되어 있는데,그것은 현대 자유주의.시장경제 사회의 근본을 이루는 개인의 자유에 대한 존중이라 할 수 있다. 자유주의 사회의 작동 원리를 가장 선명하게 보여주는 제시문(마)를 먼저 보면,어떠한 규제도 없이 자유로운 상태에 놓인 개인들이 시간이 지남에 따라 조화와 질서를 이루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것은 어디서 많이 본 듯한 원리이다. 바로 아담 스미스의 '보이지 않는 손'이다. '보이지 않는 손'은 단순히 경제원리를 설명하는 개념만이 아니다. 정치적인 면에 있어서도 규제가 아닌 자율성은 세상의 질서를 이루게 한다. 이 같은 제시문의 핵심은 마지막 문장인 '어떤 사회가 자발적으로 자신을 표현할 수 있는 적절한 환경에 놓이면,그 사회는 자구책을 찾아낼 뿐 아니라 강요된 리더쉽이 결코 흉내낼 수 없는 방식으로 행동들의 화합을 만들어 낸다'에 잘 드러나 있다.

이와는 반대로, 보이는 손이 지배하는 사회는 제시문(바)의 '아름답게 설계된 천국'이다. 이러한 천국은 공산주의 사회를 암시한다. 자유주의 사회와 공산주의 사회의 근본적인 차이는 바로 개인의 선택의 유무에 있다. 제시문(바)의 화자가 누누이 강조하는 바는 아무리 천국이라 해도 자신이 선택하지 않은 천국은 아무 의미가 없다는 것이다. 이 소설의 제목이 '당신들의 천국'인 것도 이 같은 이유에서다.

제시문(다)에서 온실가스를 배출할 권리를 사고판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매우 생소하게 느껴질 수 있다. 사고파는 상품이란 부가가치나 효용을 가지고 있어야 하는데,오염시킬 권리는 그렇지 않은 것 같다. 가스를 배출할 권리란 일종의 '악을 행할 권리'가 아닌가? 성이나 인체장기를 사고파는 것에 대해 대부분 사람들이 반대하듯이 '악을 행할 권리'를 사고 파는 것도 윤리적인 논쟁의 여지가 충분히 있다.

하지만 제시문(다)가 보여주듯 배출권거래제는 시장경제의 원리로 환경문제를 해결하는 가장 성공적인 사례가 되었다. 이로 인해 전체적인 오염의 정도는 확실하게 줄어든 것이다. 이 사례는 도덕보다 돈이 더 강하는 것을 말해준다. 환경주의자들은 오염문제를 도덕적 원리로 해결하려 하지 '돈'으로 해결하려 하지 않는다. 하지만 '돈'이란 결코 '돈'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돈의 경제적 성격 외의 중요한 두 가지 성격은 '개인에 의한 소유'와 '교환의 용이성'이다. 그리고 이 두 가지 성격은 개인의 자유를 보장하며 선택의 대안을 넓혀준다. 그리고 이 두 가지로 인해 보이지 않는 손이 원활하게 작동하는 것이다.

제시문(나)는 인간본성에 대한 논의와 함께,환경문제 해결에 대한 논의를 담고 있다. 그런데 (나)의 중간쯤에 자본주의와 시장주의는 환경파괴를 결코 방치하는 않을 것이란 문장이 나온다. 여기서 왜 갑자기 시장주의라는 단어가 등장했는지 생뚱맞게 느껴질 수 있다. 그런데 (나)의 중요한 논지인 개인의 자유에 의한 선택과 책임은 (마)에서 말하는 자율성과 같은 개념이며 (다)의 배출권거래제도를 가능하게 하는 근본이념이 될 수 있다. 앞에서 배출권거래제도는 도덕이 아닌 돈의 논리라고 했다. 그리고 돈의 논리는 바로 선택과 책임의 논리이다.(나)에서 선택과 책임을 강조하는 동시에 선하냐,악하냐의 문제를 등한시하는 이유가 바로 그 때문이다.

문제풀이

◆[문제 1] 해설 :
제시문 (나)의 논지엔 인간의 자율적 선택과 책임에 의해서도 환경파괴를 방지할 수 있다는 낙관적 입장이 담겨 있다. 그리고 (가)는 인간의 본성이 악함과 선함을 모두 지니고 있다는 점을 증명하고 이기심보다는 도덕적 책임을 강조하고 있다.(가)의 인간 본성에 대한 주장이 무언지 명확하지 않은 부분이 있긴 하지만 성선설 쪽을 좀더 강조한다는 점에서 (나)의 인간에 대한 긍정적 세계관의 근거가 될 수 있다고 서술하면 앞뒤가 맞을 것이다.

◆[문제 2] 해설 : (나)의 인간의 자율성과 책임에 대한 논의가 (다)의 배출권거래제의 원리적 토대가 된다는 것은 앞에서 설명했다. 또한 문제에서는 (라)를 참조하여 (다)를 보완하라고 했다. 그런데 무언가 보완을 하려면 해소되지 않은 문제가 있어야 할텐데 (다)의 사례는 그러한 문제가 별로 보이지 않는다.(다)의 앞부분에서는 기후변화협약이 의무에 대한 구속력의 결여로 실효성이 없었다고 하며 그 대안으로 배출권거래제가 도입되어 문제를 해결해 주었음을 보여준다. 그런데 (라)의 입장은 기후변화협약과 같은 입장이 담긴 것이며 배출권거래제를 보완한다기보다는 상충하는 원리로 보인다. 이런식의 문제는 이것도 저것도 아닌 절충주의적 결론을 강요하는 좋지 않은 문제가 아닌가 생각된다.

◆[문제 3] 해설 : (마)의 사회운영 방식이 자율에 의한 것이며,(바)에서 원장의 운영방식은 통제에 의한 것임을 이해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마)와 (바)가 말하는 진정한 천국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논술하라고 했는데,이 문제에 답할 때 중요한 건 진정한 천국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쓰려고 하기보다는 진정한 천국이 어떤 요건을 갖추고 있으며 어떤 원리에 의해 운영되어야 하는지를 서술해야 한다는 것이다.그러기 위해선 (바)와 (마)를 포함한 모든 제시문은 진정한 천국의 요건과 원리를 설명하고 뒷받침하기 위한 것들이었음을 유기적으로 엮어서 설명해 줄 필요가 있다.어때,어렵긴 어렵지?

이중한 에듀한경 연구원 doodut@edu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