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타리는 비정하다

[오태민의 마중물 논술] (10) 꼴찌 합격과 수석 불합격
대학 입시에서 꼴찌로 합격한 학생과 수석으로 떨어진 학생의 점수 차이는 얼마나 될까? 많은 시험이 소수점 이하의 점수 차이로 당락이 결정된다.점수가 가장 많이 모인 곳을 가로지르는 선을 긋기 때문이다.점수만 보면 수석 합격과 꼴찌 합격의 점수 차이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크다.차이는 적지만 꼴찌로 합격한 학생과 수석으로 떨어진 학생에게 그해 봄은 의미가 전혀 다르다.이보다 더 불합리한 일이 있을까? 불합리하다 못해 비정하다.

출산을 앞둔 산모의 배를 걷어찼다가 그 충격으로 태아가 사망했다면 살인죄일까? 흔하게 일어날 일이 아니라고 외면하고 싶겠지만 법학은 이런 문제 하나만을 놓고 온갖 학설을 쏟아낸다.'언제부터 사람으로 봐야 하는가'라는 문제이며 줄기세포를 둘러싼 윤리와도 관련 있다.

◆경계는 허구다

비록 사람이 결정했다 해도 경계선의 의미는 엄중하다.안이냐 밖이냐에 따라 한 사람의 운명이 갈리곤 한다.그러나 자연은 무심하다.탈북자들은 목숨을 걸고 넘으려고 하는 북한과 중국,중국과 한국의 울타리를 황사 먼지는 쉽게 넘어 버린다.

자연에도 경계는 있다.세포막은 세포의 안과 밖을 나누고 내부의 구조물을 보호한다.전자현미경으로 뚜렷이 보이는 세포막을 고정된 것으로 생각했었다.그러나 세포막은 투명하고 유동적이다.안팎으로 물질이 드나들며 형태도 바뀐다.심지어는 두 종류의 세포막을 융합시키면 막의 구성물들이 서로 섞인다.(고교 생물 2)

물리학에서조차 뚜렷한 경계라는 개념은 타격을 받았다.존재란 일정한 공간을 차지해서 다른 존재의 침입을 허용하지 않는 벽돌 같이 딱딱한 입자들로 구성돼 있어야 논리적으로 모순이 없다.그런데 그 기본 단위여야 할 원자는 실상 텅 비어 있다.존재란 에너지의 패턴일 수 있다고 현대 물리학은 추측한다.자연에서조차 명확한 경계라는 것을 찾기 어렵다.

◆여백과 탈근대

가을 구름 아득하고 사방의 산은 고요한데/

낙엽은 소리 없이 져 온 땅을 붉게 물들였네/

시냇가에 말 세우고 돌아갈 길을 물으니/

아,이 몸이 한 폭의 그림 속에 들어있구나/

조선 초기의 사상가 정도전의 시 '방김거사야거(訪金居士野居)'다.마지막 연 "부지신재도화중(不知身在畵圖中)"은 동양미술의 이상(理想)을 잘 표현한다.서양미술에서 여백은 화가의 게으름이지만 동양미술에서 여백은 그림의 일부이며 철학이다.단순히 보는 그림이 아니라는 것.그림 속으로 들어가 화가의 예술 세계를 함께 거닐어야 참된 감상이라는 것.

근대를 가능하게 한 이성은 경계 지음으로 시작한다.주체와 객체,물질과 정신을 명쾌하게 규정한다.그러나 경계는 거대한 비약이다.인간의 둔탁한 칼날로 자연의 실체를 쪼개야 하기 때문이다.정자나 난자도 독립된 생명인가? 그렇다면 수정란은? 자궁 속에서 모든 형태를 갖춘 태아는 인간인가? 이런 질문으로는 자연의 진실을 낚아채기 어렵다.

그래서 탈근대를 주창하는 이들은 인간 이성이 창안한 경계의 허구성을 폭로한다.포스트모더니즘(post-modernism)이 동양 미술에 관심을 기울이는 이유다.둔탁한 붓질과 여백,모호함은 이들이 경외하는 어울림과 참여, 총체라는 개념에 호응하기 때문이다.

◆울타리는 허물어도 불합리하다

울타리가 인위적이라는 것은 사실이지만 문제는 마땅한 대안이 없다는 것이다.난자부터 생명으로 보아 법질서로 반영한다면 생명공학은 원천적으로 폐기되어야 한다.경계가 모호한 법률은 현실에서 작동할까? '선 없는 합격선(커트라인)'은 형용모순이다.실체가 의심스러운 울타리를 허물면 인간은 그만큼의 자유를 누릴까? 경계나 표준이 떠난 자리에는 충동과 우연 같은 것들로 가득하지 않을까? 혼란스런 세계에서 인간은 다시 경계와 표준을 그리워할 것이다.그토록 벗어나고 싶어하던 근대를 '인간 이성의 위대한 황금기'였다고 추억할 것이다.

◆국제육상연맹을 위한 변명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장애인 선수인 피스토리우스는 '올림픽'에 출전하기를 원한다.기록 면에서는 손색이 없다.그러나 국제육상연맹이 그의 '다리'를 허용하지 않기로 했다.의족 '블레이드 러너'가 기량을 향상시키는 '기술적 장비'라는 것이다.

여론은 피스토리우스의 편이다.연맹의 결정을 '장애인 차별'이나 '시대착오'로 읽기 때문이다.그러나 학생들처럼 경계라는 관점에서 이 문제에 접근해 보자.

slowforest@eduhankyung.com


▶학생글: 김수경(한광여고 2학년)

피스토리우스의 열정과 노력은 누가 봐도 대단한 것이고 찬사받아야 마땅하다.하지만 내가 보기에 그는 올림픽에 출전할 수 없다.이는 단순히 변화나 혁신의 문제가 아니다.

올림픽은 순수한 인간 신체의 능력을 겨룬다.따라서 그의 출전 여부는 어디까지를 인간의 신체라고 경계 짓는지에 달렸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일단 '의족을 신체의 일부라고 할 수 있는가'라는 의문에서 그의 출전은 허용되지 못한다.일반적으로 의족을 하고 달리는 것은 비장애인보다 불리한 조건이라고 여겨진다.하지만 피스토리우스의 의족은 특수 제작한 것이고,그것이 기록에 어떤 영향을 줄지는 알 수 없는 일이다.오히려 의족 덕분에 더 빨리 달릴 가능성도 있는데,문제는 그 측정이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따라서 그의 출전은 명확한 경계를 깨는 것이 된다.만약 이번에 그가 올림픽에 참가하는 것이 허용된다면 앞으로도 수없이 많은 제2,제3의 피스토리우스가 나올 것이다.그렇다면 그들에 대한 기준은 어떻게 적용해야 할까? 매번 '신체'라는 것에 대한 경계가 바뀔 수도 있는 것이다.

▶학생글: 송근일(명지외고 2학년)

이번 사건이 생기게 된 이유는 바로 경계의 모호성 때문이다.의족이라는 것이 그냥 걷기 위한 물건인지, 다리를 잃은 사람에게 생긴 또 다른 몸인지에 대한 싸움이다.

사실 아무도 모른다. 의족이라는 건 피스토리우스 측이 우기면 몸의 일부가 되는 거고, 육상연맹 측이 우기면 도구가 되는 것이다.(…) 그러나 올림픽이라는 큰 행사를 진행하기 위해선 반드시 경계를 인위적으로 정해야 한다.아무리 사실임을 알 수 없다 해도,그리고 거짓의 힘을 빌려서라도 모두에게 이익이 되고,분쟁을 잠재울 만한 결정을 해야 한다.그런 방향에서 의족을 인정하되,인정하는 정도를 정하는 게 좋다.예를 들어 의족에 모터가 있거나 전기가 통하면 실격이라는 등의 이야기이다.

절대적인 경계를 찾기보다,어떤 경계가 이득이 되고 호응을 얻을지를 찾는 것이 비용을 줄이고 더욱더 확실한 경계를 찾는 게 되는 것이다.그런 면에서 여론과 연맹과 올림픽 측은 어느 것이 진짜인가보다는 어느 경계가 호응도를 많이 얻고,많은 사람들에게 이익을 주는지를 생각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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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P] 잘난 체를 허(許)하라

가격과 카탈로그를 보고서야 그림을 감상할 수 있다면? 단어들만 영어인 언어를 구사한다면? 어려운 문자를 섞어서 뭔가를 설명한다면? '왕따'로 가는 지름길이다.

물론 논술에서도 잘 알지도 못하면서 어려운 개념을 늘어놓는 것은 채점자들이 편안한 마음으로 감점할 수 있도록 배려하는 것이다. 미술과 음악,스포츠,심지어는 만화까지도 이제 막 입문한 초보자들이 더 떠든다. 고수가 되면 말을 아끼고 과장도 줄어든다.

논술은 자기만의 시각을 요구한다. 왕도는 없다. 자꾸 자기 입으로 떠들어 보아야 한다. 처음부터 무릎을 치는 탁견(卓見)이 나온다면 그런 학생은 굳이 대학에 가지 않아도 된다. 주변에서 인내심을 발휘해 초보자들을 '봐'줘야 한다. 그러나 잘난 체에 민감한 교실 분위기 때문에 시도조차 하지 않는 학생이 대다수다. 잘난 체도 늦기 전에 시작해야 한다. 수능이 끝나고 시작하면 논술 답안지에 잘난 체가 묻어날 수 있다. 그러니 오늘부터라도 친구의 잘난 체를 귀엽게 봐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