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인가, 쓰레기인가
제임스 트위첼(James B.Twitchell)
'광고와 문화'에 대한 독특한 접근법으로 세계 문화비평계에서 주목을 받고 있는 저명한 문화사가이자 인문학자이다. 미국 플로리다대 영문학ㆍ광고학 교수이며, 미국 최고의 광고잡지인 '에드에이지'에 고정칼럼을 쓰고 있다. 저자는 마케팅 전문가로서 광고학자는 아니기 때문에 책을 읽다보면 일반 독자들의 시선과 쉽게 교차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책이 다루고 있는 내용에 비해 무척 쉽고 재미있게 읽을 수 있을 것이다.
사실 광고만큼 다양한 모습을 가지고 우리 앞에 나타나는 것은 없다.
광고는 우리의 시선이 닿는 어느 곳에서든 불쑥 나타나 우리를 유혹하고 있다. 우리는 어느 한순간도 광고로부터 자유로울 수는 없다.
광고는 이미 우리 문화의 일부가 되었지만 사랑받지 못하고, 묵인되기는 하지만 환영받지는 못하는 '천덕꾸러기' 같은 존재이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광고'라는 괴물이 '자본주의의 꽃'으로서 사람들의 의식과 가치관에 막대한 영향을 미쳐왔다는 사실이다. 이처럼 현대를 살고 있는 우리에겐 이미 광고라는 독특한 문화양식이 지배적이 되었지만 우리는 아이러니컬하게도 개별 광고에 대해서는 너무나 많이 접촉하고 있는 반면 설득 양식으로서의 광고일반에 대해서는 아는 것이 너무나 적다.
또 판촉의 역사에 대해서도 아는 것이 거의 없다. 저자는 이 점에 주목한다. 산업혁명 이후 상품의 소비를 촉진하기 위해 생겨난 상업광고가 어떤 과정을 거쳐 현대 대중문화의 총아로 자리잡게 되었는지, 저자는 문화사가라는 유리한 입장에서 광고를 둘러싼 인간의 욕망, 소비의 역사를 흥미진진하게 그려내고 있다.
◆원문 읽기
"평생에 단 한 번뿐인 기회를 놓치지 마십시오!" "한정판. 수집가가 믿기 어려울 정도로 싼 특별 할인가에 내놓은 물건!" "도산으로 인한 최후의 폐업 대매출! 전품목 완비! 저희는 영원히 문을 닫습니다! 다시 없는 기회! 유례없는 행사 직접 확인하십시오!" 운운하는 소리가 들린다면, 당신은 지금 바넘의 목소리를 듣고 있는 것이다.
▶해설=사람들은 기만당하기를 좋아한다.
벽에 붙어 있는 광고전단지나 TV홈쇼핑에서 광고의 공식처럼 사용되는 위와 같은 문구들은 벌써 200년도 전에 미국서 살았던 바넘이라는 광고 천재에게서 유래된 것이다.
우리는 이런 광고문구가 사실이 아니라는 것을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인지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것을 믿고 싶어한다. 사람들이 복권을 살 때 복권 자체를 원하는 것이 아니라 복권당첨이 이루어 줄 자신의 꿈을 원하는 것처럼 물건을 구매할 때도 다른 물건과 구별되는 의미를 찾고 싶어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과장광고를 믿는다. 바넘은 이를 두고 "사람들은 기만당하기를 좋아한다"고 평했다.
바넘은 코뿔소를 유니콘으로 광고할 정도로 허풍이 심했는데 더욱 아이러니한 것은 사람들이 이를 믿었다는 것이다. 불행히도 인간이란 삭막한 현실보다 달콤한 꿈에 집착하기 마련이다.
◆원문 읽기
만일 어떤 업자가, 대량생산한 그래서 저속한 상품을 '예술'이라는 특권적 범주에 속한 것들과 결합시킬 수만 있다면, 이 사람은 경쟁에서 앞서나갈 수 있을 것이다.
쓰레기와 골동품의 차이는 단지 그것이 어디 놓여 있느냐에 달려 있을 때가 종종 있는 법이다.
▶해설=광고, 예술을 만나다.
특정한 물건에 높은 가치를 부여할 수 있는 가장 손쉬운 방법 중 하나는 이미 가치가 확립된 물건 근처에 그것을 갖다놓는 것이다. 근접성은 유사성을 암시하기 때문이다. 이런 것을 광고에서는 '결합가치(associated value)'라고 부른다. 고급 자동차를 고급 골프채와 함께 보여준다거나 비싼 티셔츠에 폴로 경기용 조랑말을 그려 넣는 것이 그 예이다. 광고와 예술이 최초로 결합한 것은 밀레의 그림 속에 조그만 비누광고를 집어넣은 것이었다. 이 시도는 예술과 광고 사이, 고급문화와 저급문화 사이, 순수와 오염 사이에 분명하게 그어져 있던 선을 흐리게 만들었다. 오늘날 우리는 '모나리자'나 미켈란젤로의 '다비드상', 뭉크의 '절규' 등을 '미술사 101장면' 등과 같은 책이 아니라 광고를 통해서 얻고 있다. 클래식 음악도 마찬가지다.
그리고 예술과 상업의 결합은 팝아트라는 대중적인 예술의 한 장르까지 탄생시켰다.
자본주의의 천박함으로 여겨지는 광고가 끝없이 예술을 탐하는 이유는 바로 그 태생적 한계를 극복하고자 함이다.
◆원문 읽기
우리는 같은 업종의 모든 생산자에게 공통된,단순한 사실들을 이야기한다. 우리 상품에는 대단한 장점 같은 것이 전혀 없다.
아마 셀 수 없이 많은 사람이 유사한 상품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그렇더라도 다른 업자들이 주장하기에는 너무나 평범한 요소와 특징을 이야기하라. 그러면 당신의 상품은 그러한 탁월한 점들을 대표하게 될 것이다. 그 후에 남들이 그런 내용을 주장하면, 그 결과는 당신의 상품을 도와주는 것이 될 뿐이다.
▶해설=먼저 주장하라
특정 진통제 광고가 "처방전 없이 이보다 더 강력한 진통제를 살 수는 없습니다"라는 열변을 토할 때 그들은 다른 진통제들도 무처방전이 허용하는 최대치의 진통 성분을 함유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지 않는다. 이처럼 다른 업자들의 주장을 선점함으로써 대중의 마음 속에 주장이라는 이름의 말뚝을 박아 영역을 선점하는 의식의 식민지화도 광고의 중요한 기법 중 하나이다.
뻔한 거짓말보다는 진실이 그것도 매우 특별한 종류의 진실이 소비자를 오랫동안 유혹할 수 있다.
◆원문 읽기
우리가 인정할 것이 하나 더 있다.
비록 우리가 광고에 대해 사정없이 비난을 퍼붓고는 있지만,광고가 우리를 타락시킨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광고는 우리 자신이다.
광고가 인위적인 욕망을 만들어낸다는 생각은 역사와 인간 본성에 대한 씁쓸한 무지의 소치며,옛날 옛적에 순수하게 자연적인 욕구를 지닌 고상한 야만인들의 평화로운 시대가 있었으리라는 막연하고 낭만적인 추측의 소치다.
식량과 피난처가 충족된 이후로,인간의 욕구는 언제나 문화적이었지 자연적이지 않았다.
그 같은 욕구와 갈망을 체계적으로 정리하고 만족시켜주는 모종의 다른 체제가 도래하기 전까지는,상업주의는―또한 그에 수반된 문화는―끊임없이 전진하여 번성을 이룩할 뿐 아니라 승리를 쟁취할 것이다.
▶해설=광고는 인간의 욕망을 창조하는 것이 아니라 이끌어낼 뿐이다
추잡할 때가 많고 때로는 비도덕적이기까지 한 소비문화를 옹호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이러한 문화를 이해하려는 노력까지 무가치한 것은 아니다.
늘 더 새롭고 더 향상된 것이, 늘 더 크고 좋은 것이, 늘 요란한 것이, 과거는 없고 언제나 끝없는 장밋빛 미래만 있는 것이 오늘날의 소비문화다. 편안한 사람들을 괴롭히고 괴로운 사람들을 편안하게 해준다는 점에서 광고는 자신이 상당 부분 대체해버린 종교를 닮았다. 행복해지고자 하는 인간들에게 행복으로 가는 길을 제시해주기 때문이다. 비록 그것이 잘못된 길이라 할지라도 말이다. 광고는 단순한 상술이 아니라 인간 본성에 대한 깊은 이해를 수반한다는 점에서 가치를 가진다. 광고를 탓할 것이 아니라 그것에 휘둘릴 수밖에 없는 자신의 본성을 진지하게 탐구하는 데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이다. 우리 인간은 생각보다 나약한 존재이나 이러한 사실을 자각함으로써 강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박상철 Sㆍ논술 선임연구원 ace@nonsul.com
제임스 트위첼(James B.Twitchell)
'광고와 문화'에 대한 독특한 접근법으로 세계 문화비평계에서 주목을 받고 있는 저명한 문화사가이자 인문학자이다. 미국 플로리다대 영문학ㆍ광고학 교수이며, 미국 최고의 광고잡지인 '에드에이지'에 고정칼럼을 쓰고 있다. 저자는 마케팅 전문가로서 광고학자는 아니기 때문에 책을 읽다보면 일반 독자들의 시선과 쉽게 교차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책이 다루고 있는 내용에 비해 무척 쉽고 재미있게 읽을 수 있을 것이다.
사실 광고만큼 다양한 모습을 가지고 우리 앞에 나타나는 것은 없다.
광고는 우리의 시선이 닿는 어느 곳에서든 불쑥 나타나 우리를 유혹하고 있다. 우리는 어느 한순간도 광고로부터 자유로울 수는 없다.
광고는 이미 우리 문화의 일부가 되었지만 사랑받지 못하고, 묵인되기는 하지만 환영받지는 못하는 '천덕꾸러기' 같은 존재이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광고'라는 괴물이 '자본주의의 꽃'으로서 사람들의 의식과 가치관에 막대한 영향을 미쳐왔다는 사실이다. 이처럼 현대를 살고 있는 우리에겐 이미 광고라는 독특한 문화양식이 지배적이 되었지만 우리는 아이러니컬하게도 개별 광고에 대해서는 너무나 많이 접촉하고 있는 반면 설득 양식으로서의 광고일반에 대해서는 아는 것이 너무나 적다.
또 판촉의 역사에 대해서도 아는 것이 거의 없다. 저자는 이 점에 주목한다. 산업혁명 이후 상품의 소비를 촉진하기 위해 생겨난 상업광고가 어떤 과정을 거쳐 현대 대중문화의 총아로 자리잡게 되었는지, 저자는 문화사가라는 유리한 입장에서 광고를 둘러싼 인간의 욕망, 소비의 역사를 흥미진진하게 그려내고 있다.
◆원문 읽기
"평생에 단 한 번뿐인 기회를 놓치지 마십시오!" "한정판. 수집가가 믿기 어려울 정도로 싼 특별 할인가에 내놓은 물건!" "도산으로 인한 최후의 폐업 대매출! 전품목 완비! 저희는 영원히 문을 닫습니다! 다시 없는 기회! 유례없는 행사 직접 확인하십시오!" 운운하는 소리가 들린다면, 당신은 지금 바넘의 목소리를 듣고 있는 것이다.
▶해설=사람들은 기만당하기를 좋아한다.
벽에 붙어 있는 광고전단지나 TV홈쇼핑에서 광고의 공식처럼 사용되는 위와 같은 문구들은 벌써 200년도 전에 미국서 살았던 바넘이라는 광고 천재에게서 유래된 것이다.
우리는 이런 광고문구가 사실이 아니라는 것을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인지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것을 믿고 싶어한다. 사람들이 복권을 살 때 복권 자체를 원하는 것이 아니라 복권당첨이 이루어 줄 자신의 꿈을 원하는 것처럼 물건을 구매할 때도 다른 물건과 구별되는 의미를 찾고 싶어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과장광고를 믿는다. 바넘은 이를 두고 "사람들은 기만당하기를 좋아한다"고 평했다.
바넘은 코뿔소를 유니콘으로 광고할 정도로 허풍이 심했는데 더욱 아이러니한 것은 사람들이 이를 믿었다는 것이다. 불행히도 인간이란 삭막한 현실보다 달콤한 꿈에 집착하기 마련이다.
◆원문 읽기
만일 어떤 업자가, 대량생산한 그래서 저속한 상품을 '예술'이라는 특권적 범주에 속한 것들과 결합시킬 수만 있다면, 이 사람은 경쟁에서 앞서나갈 수 있을 것이다.
쓰레기와 골동품의 차이는 단지 그것이 어디 놓여 있느냐에 달려 있을 때가 종종 있는 법이다.
▶해설=광고, 예술을 만나다.
특정한 물건에 높은 가치를 부여할 수 있는 가장 손쉬운 방법 중 하나는 이미 가치가 확립된 물건 근처에 그것을 갖다놓는 것이다. 근접성은 유사성을 암시하기 때문이다. 이런 것을 광고에서는 '결합가치(associated value)'라고 부른다. 고급 자동차를 고급 골프채와 함께 보여준다거나 비싼 티셔츠에 폴로 경기용 조랑말을 그려 넣는 것이 그 예이다. 광고와 예술이 최초로 결합한 것은 밀레의 그림 속에 조그만 비누광고를 집어넣은 것이었다. 이 시도는 예술과 광고 사이, 고급문화와 저급문화 사이, 순수와 오염 사이에 분명하게 그어져 있던 선을 흐리게 만들었다. 오늘날 우리는 '모나리자'나 미켈란젤로의 '다비드상', 뭉크의 '절규' 등을 '미술사 101장면' 등과 같은 책이 아니라 광고를 통해서 얻고 있다. 클래식 음악도 마찬가지다.
그리고 예술과 상업의 결합은 팝아트라는 대중적인 예술의 한 장르까지 탄생시켰다.
자본주의의 천박함으로 여겨지는 광고가 끝없이 예술을 탐하는 이유는 바로 그 태생적 한계를 극복하고자 함이다.
◆원문 읽기
우리는 같은 업종의 모든 생산자에게 공통된,단순한 사실들을 이야기한다. 우리 상품에는 대단한 장점 같은 것이 전혀 없다.
아마 셀 수 없이 많은 사람이 유사한 상품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그렇더라도 다른 업자들이 주장하기에는 너무나 평범한 요소와 특징을 이야기하라. 그러면 당신의 상품은 그러한 탁월한 점들을 대표하게 될 것이다. 그 후에 남들이 그런 내용을 주장하면, 그 결과는 당신의 상품을 도와주는 것이 될 뿐이다.
▶해설=먼저 주장하라
특정 진통제 광고가 "처방전 없이 이보다 더 강력한 진통제를 살 수는 없습니다"라는 열변을 토할 때 그들은 다른 진통제들도 무처방전이 허용하는 최대치의 진통 성분을 함유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지 않는다. 이처럼 다른 업자들의 주장을 선점함으로써 대중의 마음 속에 주장이라는 이름의 말뚝을 박아 영역을 선점하는 의식의 식민지화도 광고의 중요한 기법 중 하나이다.
뻔한 거짓말보다는 진실이 그것도 매우 특별한 종류의 진실이 소비자를 오랫동안 유혹할 수 있다.
◆원문 읽기
우리가 인정할 것이 하나 더 있다.
비록 우리가 광고에 대해 사정없이 비난을 퍼붓고는 있지만,광고가 우리를 타락시킨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광고는 우리 자신이다.
광고가 인위적인 욕망을 만들어낸다는 생각은 역사와 인간 본성에 대한 씁쓸한 무지의 소치며,옛날 옛적에 순수하게 자연적인 욕구를 지닌 고상한 야만인들의 평화로운 시대가 있었으리라는 막연하고 낭만적인 추측의 소치다.
식량과 피난처가 충족된 이후로,인간의 욕구는 언제나 문화적이었지 자연적이지 않았다.
그 같은 욕구와 갈망을 체계적으로 정리하고 만족시켜주는 모종의 다른 체제가 도래하기 전까지는,상업주의는―또한 그에 수반된 문화는―끊임없이 전진하여 번성을 이룩할 뿐 아니라 승리를 쟁취할 것이다.
▶해설=광고는 인간의 욕망을 창조하는 것이 아니라 이끌어낼 뿐이다
추잡할 때가 많고 때로는 비도덕적이기까지 한 소비문화를 옹호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이러한 문화를 이해하려는 노력까지 무가치한 것은 아니다.
늘 더 새롭고 더 향상된 것이, 늘 더 크고 좋은 것이, 늘 요란한 것이, 과거는 없고 언제나 끝없는 장밋빛 미래만 있는 것이 오늘날의 소비문화다. 편안한 사람들을 괴롭히고 괴로운 사람들을 편안하게 해준다는 점에서 광고는 자신이 상당 부분 대체해버린 종교를 닮았다. 행복해지고자 하는 인간들에게 행복으로 가는 길을 제시해주기 때문이다. 비록 그것이 잘못된 길이라 할지라도 말이다. 광고는 단순한 상술이 아니라 인간 본성에 대한 깊은 이해를 수반한다는 점에서 가치를 가진다. 광고를 탓할 것이 아니라 그것에 휘둘릴 수밖에 없는 자신의 본성을 진지하게 탐구하는 데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이다. 우리 인간은 생각보다 나약한 존재이나 이러한 사실을 자각함으로써 강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박상철 Sㆍ논술 선임연구원 ace@nonsu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