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재욱 < 경희대 교수ㆍ경제학 >

☞한국경제신문 5월21일자 A39면

공기업 문제가 또 터졌다.

공기업·공공기관의 감사 20여명이 '공공기관 감사혁신 포럼' 세미나를 열기 위해 열흘간 남미 관광지로 출장을 떠났다.

여행경비로 1인당 800만원 이상을 모두 소속기관이 지출했다고 한다.

물론 감사라고 해외출장을 못 갈 이유가 없다.

그러나 '감사혁신 포럼'이라고 한다면 감사업무에 대해 무엇인가 새로운 것을 배우고 느낄 수 있는 출장이어야 할 것이다.

그런데 내용을 살펴보면 방문지가 브라질의 이과수폭포 등 남미의 대표적인 관광지였다.

그리고 방문하겠다는 현지 공공기관도 감사혁신과 관련해 배울 게 별로 없는 곳이 대부분이었다.

지난 1월 기획예산처가 공개한 공기업에 대한 경영평가에 따르면 우리나라 공기업의 총부채는 2006년 말 기준으로 122조원에 이른다.

공기업 5개 중 1개사가 적자를 면치 못하고 있으며,10개 중 9개는 2006년 순이익이 2005년보다 감소했다.

공기업 부채(負債)는 매년 늘어나 2006년 한 해만 20조원이나 불어났다.

사정이 이러한데도 공기업과 공공기관의 방만한 경영을 감시하고 경영혁신에 앞장서야 할 감사들이 오히려 예산 낭비성 출장을 간 것이다.

자기 돈이라면 그렇게 했겠는가.

이것은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

순이익이 감소하고 부채가 늘어남에도 불구하고 예산을 효율적으로 쓰고 경영을 혁신하려는 공기업은 드물다.

기획예산처 발표에 따르면 공기업 사장 가운데는 7억1120만원의 연봉을 받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4억8540만원의 연봉을 받는 감사가 있다.

공기업 직원의 평균 연봉이 대기업의 최고 1.7배나 된다.

성과등급이 최하위인 11등급의 평가를 받은 직원에게 성과급을 330%나 지급하고 처외조모 상(喪)에까지 위로금 200만원을 주는 등 각종 명목의 복지후생비를 지급하는 곳도 있다.

이러한 공기업의 비효율성과 도덕적 해이 행위는 소유권이 불분명해서 발생하는 문제들이다.

사기업은 시장의 압력을 받는다.

다시 말하면 사기업의 존속은 소비자를 만족시키는 데 따라 성공하느냐 실패하느냐가 달라진다.

소비자를 만족시키는데 성공하면 이윤이라는 보상이 따르고 그 힘으로 기업이 계속 존속할 수 있다.

그러나 소비자를 만족시키지 못하면 손실이라는 처벌을 받아, 손실이 지속돼 감당할 수 없으면 기업은 시장에서 퇴출된다.

이러한 시장의 압력 때문에 사기업은 소비자를 만족시키는 제품을 보다 적은 비용으로 생산하기 위해 비용을 절감하는 노력과 방법을 끊임없이 연구하고 찾는다.

그래서 사기업 소유자와 경영자는 더욱 적극적이고 효율적으로 기업을 경영하게 된다.

그러나 주인 없는 공기업은 사기업과는 달리 시장의 압력을 받지 않는다.

왜냐하면 경영을 잘못한다고 하더라도 정부가 보조해주기 때문이다.

정부 보조로 파산, 청산, 적대적 인수합병 등에 의한 퇴출 가능성이 낮아 공기업의 경영자는 소비자를 만족시켜 이윤을 크게 내고, 자원을 절약해 비용을 절감할 인센티브가 적다.

그러므로 경영이 방만해질 수밖에 없고, 사기업에 비해 비효율적이고 수익률이 낮다.

주인이 없는 공기업은 정치인, 관료, 경영자가 사익(私益)을 추구하는 구조로 돼 있다.

그래서 공기업은 정치적 간섭을 많이 받는다.

정치인과 관리가 공기업 경영자의 임면권을 갖고 있기 때문에 시장 상황에 적극적으로 대처해 이윤을 극대화하기보다는 공기업의 경영자들은 임면권자의 요구를 직간접적으로 충족시키는 방향으로 활동하게 된다.

그 대표적인 것이 낙하산 인사다.

정치인과 관리는 자신들의 영향력을 확대하기 위해 능력 및 자격은 고려하지 않고 자신과 친분이 있는 사람들을 공기업의 경영자 자리에 앉히고 임원이나 직원을 채용하게 한다.

이번에 출장을 간 감사들 중 상당수가 정치권 출신이라고 한다.

낙하산 인사로 인해 공기업 경영의 비효율성은 더욱 악화될 수밖에 없다.

공기업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은 하나밖에 없다.

바로 민영화다.

그런데 이 정부 들어서 공기업 민영화에 대한 논의조차 중단돼 버렸으니 참으로 안타까울 따름이다.

------------------------------------------------------

해설

최선의 공기업도 최악의 민간기업만 못하다

미국의 한 언론사가 노벨 경제학상(1981년) 수상자인 제임스 토빈을 인터뷰하면서, 경제를 한마디로 요약해 달라고 주문했다.

토빈의 답은 '인센티브'(동기 부여, 유인)였다.

인센티브가 사람을 움직이고, 경제를 굴러가게 하는 동력이란 것이다.

인센티브의 사전적 의미는 "어떤 행동을 하도록 사람을 부추기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자극",즉 유인책, 조성책이다.

주위에서 얼마든지 그 사례를 찾을 수 있다.

성적이 오르면 용돈을 더 받기로 한 부모님과의 약속, 기업 실적이 좋을 때 받는 특별상여금이나 스톡옵션, 백화점·할인점의 에누리와 덤, 극장의 중고생·조조 할인 등…. 특히 민간기업은 소비자를 만족시키지 못하거나, 치열한 가격경쟁 하에 생산비용을 절감해 이익을 못 내면 도태된다.

그래서 경영자와 근로자들에겐 끊임없이 개선하고 혁신하려는 인센티브가 있다.

이런 인센티브 원리가 잘 작동하지 않는 분야가 있다.

바로 공기업과 같은 공공부문이다.

안재욱 교수가 이 칼럼에서 지적했듯이 공기업은 소비자의 압력이 크지 않다.

대부분 독점사업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매년 이익을 내기도 쉽고, 설령 적자가 나더라도 대주주인 정부가 세금으로 메워준다.

파산이나 적대적 M&A 위협도 없다.

민간기업이라면 영업실적이 극도로 나쁠 때 직원 월급을 못주거나 상여금을 깎을 수도 있지만 공기업에선 그럴 염려가 없다.

공기업 경영자는 오너가 아니므로 정부가 정해준 한도 내에선 복지 확대나 임금 인상에도 너그러운 편이다.

월급 수준도 상당히 높고 고용·정년도 훨씬 안정적이다.

칼럼에 예시된대로 최하위 평가등급을 받은 공기업 직원이 월급의 330%에 달하는 성과급을 받아갔다.

민간기업이라면 당장 짐싸서 나가야 할 것이다.

그래서 공기업은 '신이 내린 직장'이라 불린다.

공기업의 실제 주인은 국민이지만 국민 개개인이 공기업의 경영상태를 속속들이 들여다볼 수도 없다.

그래서 공기업을 관리 감독하는 역할을 정부에 위임했지만 관료들이 주인일 수는 없다.

주인이 없는 곳에선 대리인들이 주인행세를 한다.

적절한 견제·감시장치가 부족한 공기업에선 경영자는 물론 노조, 정치인, 관료까지 경영효율과 대국민 서비스 개선보다 자신들의 이익에 좀 더 관심을 기울이게 마련이다.

국내 공기업 뿐아니라 많은 나라의 공기업이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엇비슷한 구조다.

이를 경제용어로 모럴 해저드(moral hazard)라 부른다.

본래 보험용어인 모럴 해저드란 보험계약자의 보험 가입 이후 부주의, 고의 등으로 보험 사고가 늘어날 위험을 의미한다.

예를 들어 생명보험에 가입한 뒤 건강관리를 소홀히 하거나 의사가 보험금을 많이 타려고 과잉진료를 하는 것 등이 그 사례다.

공기업의 구조적인 모럴 해저드를 어떻게 하면 없앨 수 있을까? 안재욱 교수는 한마디로 민영화라고 단언한다.

주인 없는 공기업에 주인을 찾아주는 것이다.

우리 속담에 김매는 주인이 노비 아흔아홉 몫 한다고 했다.

최악의 사기업이라고 효율면에선 최선의 공기업보다 낫다.

주인을 찾아주는 것은 스스로 혁신하고 경쟁력을 갖게 하는데 강력한 인센티브가 된다.

실제로 1980년대까지 공기업이던 포스코는 민영화를 발판으로 오늘날 세계적인 철강회사가 됐다.

KT의 민영화와 경쟁 도입 이후 국제전화 요금이 얼마나 싸졌는지를 생각하면 이해가 쉽다.

이렇듯 해법은 뻔한데 왜 정부가 공기업 민영화 논의를 중단했는지 친구들과 토론해 보자.

오형규 한국경제신문 경제교육연구소 연구위원 oh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