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 모험이 없는 문명은 쇠퇴한다
문명의 진보란 어떻게 가능한가?
형이상학이 철학의 공공연한 적으로 간주되던 20세기 초,묵묵히 자신만의 독자적인 형이상학적 사변체계를 웅장하게 건설한 화이트헤드(Alfred North Whitehead,1861~1947). 그의 역작 『관념의 모험』(1933)은 인류로 하여금 문명을 향해 서서히 나아가도록 한 관념의 영향을 기술한 인류 역사에서의 '관념의 모험'이자,동시에 이런 역사상의 모험을 설명해줄 관념의 사변적 구도를 구축하려는 필자 자신의 '관념의 모험'이기도 하다.
이 책은 『과학과 근대세계』(1925),『과정과 실재』(1929)와 더불어 '형이상학 3부작'을 이룬다.
『과학과 근대세계』가 과학철학의 바탕 위에서 형이상학적 체계를 구성하려 한 과도기적 시도였고,『과정과 실재』는 과정 철학으로서의 그의 형이상학적 체계의 전모를 밝힌 것이었다면,『관념의 모험』은 그의 형이상학을 구체적인 인간 경험의 전 영역에 적용하려는 것이었다.
따라서 『관념의 모험』에는 문명론,사회철학,역사철학,과학철학,미학,형이상학 등 화이트헤드의 인간에 대한 모든 관심이 유기적으로 녹아들어 있다.
화이트헤드가 말하는 문명이란 '진리','아름다움','모험','예술','평화' 등의 일반 관념들이 유기적인 조화 상태를 이루고 있는 것이다.
이런 일반 관념들은 사물의 본성에 관한 개념,인간 사회의 가능성에 관한 개념,개인으로서의 인간행위를 이끌어갈 최종적인 목표에 관한 개념을 표현하는 고도의 일반성을 띤 관념으로,모든 시대의 모든 세계에 있어 문명을 야만 상태로부터 그 절정으로 이끌어가는 작인(作因)으로 기능한다.
하지만 이러한 일반 관념은 우리가 호흡하는 공기처럼 매우 투명하고 어디에나 존재하며 지극히 필연적이고 보편적인 것이기 때문에 상당한 지적 노력 없이는 깨닫지 못하는 것이다.
이런 일반 관념들의 조화와 완성을 끊임없이 지향하는 것이 바로 '관념의 모험'이다.
화이트헤드에 의하면 모험이란 새로운 완전성의 탐구이며,모험이 없는 문명은 쇠퇴한다.
모험은 문명의 본질에 속하는 것으로,모험이야말로 문명을 진부함과 지루함으로부터 구출해준다.
모험 정신에 가득 찬 문명은 자유롭고,활기차고,창조적이다.
모험이 결여된 곳에 문학은 깊이를 잃고,과학은 지엽말단에 사로잡히고,예술은 보잘 것 없는 사소한 구별에 급급하고,종교는 독단적인 도그마로 타락하고 만다.
이때의 모험이란 지적인 모험을 뜻한다.
형이상학이라는 말 자체가 실재세계(phisics)를 초월해 있는 관념의 세계를 말한다.
화이트헤드의 필치는 간결하면서도 명료하지만,저자의 번뜩이는 예리함과 방대하고도 심오한 사고의 차원을 잘 드러내 준다.
한마디로 그의 글은 웅혼하다.
그리고 무엇보다 우리를 감동시키는 것은 그의 글에 배어 있는,인간에 대한 깊은 신뢰에서 우러나오는 애정 어린 따뜻함이다.
그렇지만 『관념의 모험』을 읽기란 여간 어렵지 않다.
쓰는 어휘들은 일상용어이면서 동시에 화이트헤드 고유의 전문용어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화이트헤드 철학의 용어들과 그의 사상체계 전반에 대한 이해가 선행되지 않는다면 이 책의 온전한 의미를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일상용어를 바탕으로 한 우리의 자의적(?) 해석만으로도 관념의 모험이 주는 짜릿한 스릴을 맛보기에는 충분하다.
오히려 우리가 관념의 모험을 시작하기에는 화이트헤드에 기대지 않는 자신만의 독단적 해석이 도움이 되기도 한다.
우리의 독서에 있어서도 위험을 간직한 모험은 새로움과 창조적 전진에의 진실한 원천이 되기 때문이다.
◆원문읽기
인간의 삶은 기존의 언어로는 표현할 수 없을 만큼 일반적인 개념을 막연히 감지하는 가운데 그 추진력을 얻는다.
이러한 일반적 관념들은 상호연관을 떠나서는 파악되지 않는다.
이들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인류가 사물들의 일반적 본성을 파악함으로써 서로 해명되는 관념들의 체계를 구축하는 방향으로 전진해갈 필요가 있다.
그러나 관념의 일반성을 얻기까지의 성장은 모든 진화의 변화 가운데서 가장 느리게 진행된다.
정신성에 있어 이러한 성장을 촉진하는 것이야말로 철학이 해야 할 일이다.
(…)
관념의 역사는 오류의 역사이다.
그러나 그것은 온갖 오류를 통해서 점차적으로 행위가 정화되어가는 역사이기도 하다.
바람직한 질서가 발전적으로 전개되어가고 있을 때면,의식적으로 영입된 관념의 작용이 강화됨으로써 행위가 야만적인 것으로 퇴행하지 않도록 제어되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이 점에서 플라톤의 다음과 같은 선언은 정당화된다.
세계―즉 문명적 질서의 세계―의 창조는 실재 세계의 힘에 대한 언어적 설득의 승리이다.
▶해설=화이트헤드는 '인간의 본질적 권리'라는 일반 관념이 형성된 역사를 추적하는 대목에서 이 구절을 얘기하고 있다.
인류 문명을 정점으로 이끄는 일반 관념은 천부적인 재능을 타고난 소수 사람들의 마음속에 들어 있는 사변적인 착상으로 출발해,어쩌면 지루하게 느껴질지도 모르는 장구한 변화의 시간을 거쳐 한 문명의 구성원들이 공유하는 지배적인 일반 관념으로 성장하게 된다.
그 성장의 과정 속에서 문명은 진보를 가로막는 '무분별한 작인',즉 힘이나 폭력에 의해 잠시 정체할 수도 있지만,관념의 의식적인 영입이나 정신성을 촉진시키려는 철학 등의 '설득의 작인'에 의해 문명은 정점을 향한 모험을 계속하게 되는 것이다.
◆원문읽기
명제가 참이라는 사실보다 명제가 흥미로운 것이라는 사실이 더 중요하다.
이 진술은 거의 동어반복에 가깝다.
왜냐하면 경험의 계기에 있어서 명제의 작용이 갖는 힘은 그것의 흥미로움이자 그것의 중요성이다.
그러나 물론 참인 명제가 거짓된 명제보다 더 흥미를 끌기 쉽다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명제의 정서적 유혹에 따르는 행위는 명제가 참이라면 더 성공적인 것일 가능성이 큰 것이다.
그리고 행위를 떠나 진리를 명상하는 것은 그 나름의 흥미를 갖는다.
그러나 이 모든 설명과 규정에도 불구하고 명제의 중요성이 그것의 흥미로움에 있다는 것은 여전히 사실이다.
▶해설=화이트헤드가 일상용어를 자신만의 전문용어로 변환시켜,자유롭고 웅대한 사상을 펼치는 예를 보여준다.
그는 여기에서 전통 논리학이 독점적 지위를 가지고 논했던 명제에 대해 혁명적인 새로운 의미 부여를 시도하고 있다.
전통 논리학에서 볼 때,거짓된 명제는 참이 아니기에 현실적으로 아무 쓸모가 없는 것이었다.
그러나 화이트헤드는 그의 형이상학 체계 내에서 명제를 존재자의 차원으로 상승시키고,흥미로움의 대상으로 본다.
이때 거짓 명제조차도 그것이 흥미로운 것일 경우에는 참인 명제보다도 더 중요한 힘을 가질 수 있다는 점을 언급한다.
예를 들어,과거 노예제 상태의 인류에게 '인간이 자유롭다'는 명제는 거짓 명제이었지만 이런 거짓 명제가 소수의 천재적 사상가들에게 명상되고 인류에게 흥미로움의 대상으로 점차 확대되어 가면서 결국 인간의 해방을 불러왔다.
넓게 해석하면 거짓 명제야말로 문명을 기존의 정체 상태에서 벗어나 새로운 전진으로 전환시키는 주도적인 역할을 한다고 볼 수 있다.
◆원문읽기
새로운 유형의 문명으로 신속한 이행이 가능한 것은 사상이 실현보다 앞서 있을 때이다.
그때 민족의 활력은 탐험의 물리적 모험을 앞당기도록 상상의 모험을 밀어붙이고 있다.
세계는 다가서는 사물을 꿈꾸며,그로부터 시대의 적절함을 얻어 그 실현을 향해 각성한다.
(…)
때때로 모험은 한계 내에서 작용한다.
그때 모험은 그 목표를 계산하고 거기에 도달할 수 있다.
이러한 모험은 한 유형의 문명 내부에서 변화의 잔물결이며,그것으로 말미암아 주어진 유형의 시대는 그 신선함을 유지한다.
그러나 일단 모험의 활력이 주어지는 날에는 조만간 상상력이 그 시대의 안전한 한계의 저편으로, 학습된 취미의 규칙의 안전한 한계 저편으로 비상한다.
그때 그것은 문명화된 노력을 위한 새로운 이상의 도래를 반영하는 이탈과 혼란을 불러일으킨다.
민족은 줄곧 있었던 것과 이제부터 있게 되는 것과의 진정한 대비를 간직하고 있는 한,그리고 안일한 과거를 뛰어넘어 모험하는 혈기를 지니고 있는 한,그 활력을 유지한다.
모험이 없으면 문명은 완전히 쇠퇴한다.
이런 이유에서 문화를 지금까지 말해왔고 이루어졌던 가장 최선의 것에 대한 지식으로 정의한다는 것은,그 생략된 부분 때문에 위험하다.
그것이 생략하고 있는 부분이란 과거의 위대한 성과는 그 당시로서는 과거의 모험이었다는 중요한 사실이다.
▶해설=화이트헤드는 문명의 성장에 있어 정신의 모험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역설하고 있다.
『문명의 모험』이 결국 말하고자 하는 핵심적인 메시지는 바로 이것이다.
문명이 위험해 보이는 모험은 처음에는 이탈과 혼란을 불러일으킬 수 있지만 결국에는 위대한 성과를 낳는다.
콜럼버스의 모험이 인도라는 첫 목표지에서 이탈해 혼란을 낳았지만 결국 아메리카를 발견하게 된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이러한 모험을 두려워하고 현실에 안주하는 문명은 지리멸렬한 정체의 늪에 빠지거나 결국 쇠락의 길을 걷게 된다.
여기에서 우리는 묻게 된다.
현재 문명은 지금 어디에 와있으며,어디를 향해 가고 있을까? 우리 문명의 산타마리아호는 과연 위대한 관념의 대해를 가로질러 신천지에 도달하는 데에 성공할 수 있을까?
김훈회 Sㆍ논술 선임연구원 toatopia@nonsul.com
문명의 진보란 어떻게 가능한가?
형이상학이 철학의 공공연한 적으로 간주되던 20세기 초,묵묵히 자신만의 독자적인 형이상학적 사변체계를 웅장하게 건설한 화이트헤드(Alfred North Whitehead,1861~1947). 그의 역작 『관념의 모험』(1933)은 인류로 하여금 문명을 향해 서서히 나아가도록 한 관념의 영향을 기술한 인류 역사에서의 '관념의 모험'이자,동시에 이런 역사상의 모험을 설명해줄 관념의 사변적 구도를 구축하려는 필자 자신의 '관념의 모험'이기도 하다.
이 책은 『과학과 근대세계』(1925),『과정과 실재』(1929)와 더불어 '형이상학 3부작'을 이룬다.
『과학과 근대세계』가 과학철학의 바탕 위에서 형이상학적 체계를 구성하려 한 과도기적 시도였고,『과정과 실재』는 과정 철학으로서의 그의 형이상학적 체계의 전모를 밝힌 것이었다면,『관념의 모험』은 그의 형이상학을 구체적인 인간 경험의 전 영역에 적용하려는 것이었다.
따라서 『관념의 모험』에는 문명론,사회철학,역사철학,과학철학,미학,형이상학 등 화이트헤드의 인간에 대한 모든 관심이 유기적으로 녹아들어 있다.
화이트헤드가 말하는 문명이란 '진리','아름다움','모험','예술','평화' 등의 일반 관념들이 유기적인 조화 상태를 이루고 있는 것이다.
이런 일반 관념들은 사물의 본성에 관한 개념,인간 사회의 가능성에 관한 개념,개인으로서의 인간행위를 이끌어갈 최종적인 목표에 관한 개념을 표현하는 고도의 일반성을 띤 관념으로,모든 시대의 모든 세계에 있어 문명을 야만 상태로부터 그 절정으로 이끌어가는 작인(作因)으로 기능한다.
하지만 이러한 일반 관념은 우리가 호흡하는 공기처럼 매우 투명하고 어디에나 존재하며 지극히 필연적이고 보편적인 것이기 때문에 상당한 지적 노력 없이는 깨닫지 못하는 것이다.
이런 일반 관념들의 조화와 완성을 끊임없이 지향하는 것이 바로 '관념의 모험'이다.
화이트헤드에 의하면 모험이란 새로운 완전성의 탐구이며,모험이 없는 문명은 쇠퇴한다.
모험은 문명의 본질에 속하는 것으로,모험이야말로 문명을 진부함과 지루함으로부터 구출해준다.
모험 정신에 가득 찬 문명은 자유롭고,활기차고,창조적이다.
모험이 결여된 곳에 문학은 깊이를 잃고,과학은 지엽말단에 사로잡히고,예술은 보잘 것 없는 사소한 구별에 급급하고,종교는 독단적인 도그마로 타락하고 만다.
이때의 모험이란 지적인 모험을 뜻한다.
형이상학이라는 말 자체가 실재세계(phisics)를 초월해 있는 관념의 세계를 말한다.
화이트헤드의 필치는 간결하면서도 명료하지만,저자의 번뜩이는 예리함과 방대하고도 심오한 사고의 차원을 잘 드러내 준다.
한마디로 그의 글은 웅혼하다.
그리고 무엇보다 우리를 감동시키는 것은 그의 글에 배어 있는,인간에 대한 깊은 신뢰에서 우러나오는 애정 어린 따뜻함이다.
그렇지만 『관념의 모험』을 읽기란 여간 어렵지 않다.
쓰는 어휘들은 일상용어이면서 동시에 화이트헤드 고유의 전문용어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화이트헤드 철학의 용어들과 그의 사상체계 전반에 대한 이해가 선행되지 않는다면 이 책의 온전한 의미를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일상용어를 바탕으로 한 우리의 자의적(?) 해석만으로도 관념의 모험이 주는 짜릿한 스릴을 맛보기에는 충분하다.
오히려 우리가 관념의 모험을 시작하기에는 화이트헤드에 기대지 않는 자신만의 독단적 해석이 도움이 되기도 한다.
우리의 독서에 있어서도 위험을 간직한 모험은 새로움과 창조적 전진에의 진실한 원천이 되기 때문이다.
◆원문읽기
인간의 삶은 기존의 언어로는 표현할 수 없을 만큼 일반적인 개념을 막연히 감지하는 가운데 그 추진력을 얻는다.
이러한 일반적 관념들은 상호연관을 떠나서는 파악되지 않는다.
이들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인류가 사물들의 일반적 본성을 파악함으로써 서로 해명되는 관념들의 체계를 구축하는 방향으로 전진해갈 필요가 있다.
그러나 관념의 일반성을 얻기까지의 성장은 모든 진화의 변화 가운데서 가장 느리게 진행된다.
정신성에 있어 이러한 성장을 촉진하는 것이야말로 철학이 해야 할 일이다.
(…)
관념의 역사는 오류의 역사이다.
그러나 그것은 온갖 오류를 통해서 점차적으로 행위가 정화되어가는 역사이기도 하다.
바람직한 질서가 발전적으로 전개되어가고 있을 때면,의식적으로 영입된 관념의 작용이 강화됨으로써 행위가 야만적인 것으로 퇴행하지 않도록 제어되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이 점에서 플라톤의 다음과 같은 선언은 정당화된다.
세계―즉 문명적 질서의 세계―의 창조는 실재 세계의 힘에 대한 언어적 설득의 승리이다.
▶해설=화이트헤드는 '인간의 본질적 권리'라는 일반 관념이 형성된 역사를 추적하는 대목에서 이 구절을 얘기하고 있다.
인류 문명을 정점으로 이끄는 일반 관념은 천부적인 재능을 타고난 소수 사람들의 마음속에 들어 있는 사변적인 착상으로 출발해,어쩌면 지루하게 느껴질지도 모르는 장구한 변화의 시간을 거쳐 한 문명의 구성원들이 공유하는 지배적인 일반 관념으로 성장하게 된다.
그 성장의 과정 속에서 문명은 진보를 가로막는 '무분별한 작인',즉 힘이나 폭력에 의해 잠시 정체할 수도 있지만,관념의 의식적인 영입이나 정신성을 촉진시키려는 철학 등의 '설득의 작인'에 의해 문명은 정점을 향한 모험을 계속하게 되는 것이다.
◆원문읽기
명제가 참이라는 사실보다 명제가 흥미로운 것이라는 사실이 더 중요하다.
이 진술은 거의 동어반복에 가깝다.
왜냐하면 경험의 계기에 있어서 명제의 작용이 갖는 힘은 그것의 흥미로움이자 그것의 중요성이다.
그러나 물론 참인 명제가 거짓된 명제보다 더 흥미를 끌기 쉽다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명제의 정서적 유혹에 따르는 행위는 명제가 참이라면 더 성공적인 것일 가능성이 큰 것이다.
그리고 행위를 떠나 진리를 명상하는 것은 그 나름의 흥미를 갖는다.
그러나 이 모든 설명과 규정에도 불구하고 명제의 중요성이 그것의 흥미로움에 있다는 것은 여전히 사실이다.
▶해설=화이트헤드가 일상용어를 자신만의 전문용어로 변환시켜,자유롭고 웅대한 사상을 펼치는 예를 보여준다.
그는 여기에서 전통 논리학이 독점적 지위를 가지고 논했던 명제에 대해 혁명적인 새로운 의미 부여를 시도하고 있다.
전통 논리학에서 볼 때,거짓된 명제는 참이 아니기에 현실적으로 아무 쓸모가 없는 것이었다.
그러나 화이트헤드는 그의 형이상학 체계 내에서 명제를 존재자의 차원으로 상승시키고,흥미로움의 대상으로 본다.
이때 거짓 명제조차도 그것이 흥미로운 것일 경우에는 참인 명제보다도 더 중요한 힘을 가질 수 있다는 점을 언급한다.
예를 들어,과거 노예제 상태의 인류에게 '인간이 자유롭다'는 명제는 거짓 명제이었지만 이런 거짓 명제가 소수의 천재적 사상가들에게 명상되고 인류에게 흥미로움의 대상으로 점차 확대되어 가면서 결국 인간의 해방을 불러왔다.
넓게 해석하면 거짓 명제야말로 문명을 기존의 정체 상태에서 벗어나 새로운 전진으로 전환시키는 주도적인 역할을 한다고 볼 수 있다.
◆원문읽기
새로운 유형의 문명으로 신속한 이행이 가능한 것은 사상이 실현보다 앞서 있을 때이다.
그때 민족의 활력은 탐험의 물리적 모험을 앞당기도록 상상의 모험을 밀어붙이고 있다.
세계는 다가서는 사물을 꿈꾸며,그로부터 시대의 적절함을 얻어 그 실현을 향해 각성한다.
(…)
때때로 모험은 한계 내에서 작용한다.
그때 모험은 그 목표를 계산하고 거기에 도달할 수 있다.
이러한 모험은 한 유형의 문명 내부에서 변화의 잔물결이며,그것으로 말미암아 주어진 유형의 시대는 그 신선함을 유지한다.
그러나 일단 모험의 활력이 주어지는 날에는 조만간 상상력이 그 시대의 안전한 한계의 저편으로, 학습된 취미의 규칙의 안전한 한계 저편으로 비상한다.
그때 그것은 문명화된 노력을 위한 새로운 이상의 도래를 반영하는 이탈과 혼란을 불러일으킨다.
민족은 줄곧 있었던 것과 이제부터 있게 되는 것과의 진정한 대비를 간직하고 있는 한,그리고 안일한 과거를 뛰어넘어 모험하는 혈기를 지니고 있는 한,그 활력을 유지한다.
모험이 없으면 문명은 완전히 쇠퇴한다.
이런 이유에서 문화를 지금까지 말해왔고 이루어졌던 가장 최선의 것에 대한 지식으로 정의한다는 것은,그 생략된 부분 때문에 위험하다.
그것이 생략하고 있는 부분이란 과거의 위대한 성과는 그 당시로서는 과거의 모험이었다는 중요한 사실이다.
▶해설=화이트헤드는 문명의 성장에 있어 정신의 모험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역설하고 있다.
『문명의 모험』이 결국 말하고자 하는 핵심적인 메시지는 바로 이것이다.
문명이 위험해 보이는 모험은 처음에는 이탈과 혼란을 불러일으킬 수 있지만 결국에는 위대한 성과를 낳는다.
콜럼버스의 모험이 인도라는 첫 목표지에서 이탈해 혼란을 낳았지만 결국 아메리카를 발견하게 된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이러한 모험을 두려워하고 현실에 안주하는 문명은 지리멸렬한 정체의 늪에 빠지거나 결국 쇠락의 길을 걷게 된다.
여기에서 우리는 묻게 된다.
현재 문명은 지금 어디에 와있으며,어디를 향해 가고 있을까? 우리 문명의 산타마리아호는 과연 위대한 관념의 대해를 가로질러 신천지에 도달하는 데에 성공할 수 있을까?
김훈회 Sㆍ논술 선임연구원 toatopia@nonsu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