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승이의 희망과 불안

철승이는 특목고 3학년이다.

내신 때문에 고민하던 차에 반가운 소식을 접하게 되었다.

주요 사립대학에 수능만으로 입학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는 것이다.

희망에 부푼 철승이는 중간고사도 포기한 채 수능에만 전력투구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좋지 않은 소식이 자꾸 들려온다.

수능만 보는 전형이 생기자 지난 대입에서 하향 지원했던 선배들이 다시 도전한다는 것이다.

그뿐만이 아니라 멀쩡하게 대학을 다니던 이들까지도 다시 수능공부를 시작한다는 것이다.

◆경제학자들의 썰렁한 농담

경제학자 둘이 길을 걸어가고 있는데 길 위에 만원짜리 한 장이 떨어져 있었다.

이를 본 한 경제학자가 동료에게 말해주자 다른 학자는 쳐다보지도 않고 사실을 완전히 부인한다.

"여보게,만원짜리가 정말 길 위에 떨어져 있다면 다른 누군가 분명히 집어 갔을 거네.그러니 저것은 가짜가 틀림없어!" 경제학에서는 평균이익을 상회하는 초과이윤은 없다고 말한다.

초과이윤은 새로운 공급자의 진입을 유인하고,경쟁은 이윤 폭을 줄이기 때문이다.

비슷한 일이 얼마 전 송도국제도시의 오피스텔 분양에서 일어났다.

경쟁률이 5000 대 1에 달했다.

당첨될 경우 바로 그 자리에서 1억원 이상의 프리미엄(초과이윤)이 보장되는 셈이라고 한다.

그러나 당첨 시 얻을 이익에 경쟁률을 곱한 기대수익은 2만원에 불과하다.

교통비나 시간 등 비용을 생각해 보면 초과이윤은 없는 것이다.

진짜 만원짜리는 길 위에 오랫동안 홀로 남겨져 있지 않을 것이다.

◆'바이오 스피어Ⅱ'의 실패

[오태민의 마중물 논술] (6) 고립계와 열린계
1991년 미국의 아리조나주 사막에서는 영화 트루만쇼를 연상시키는 실험이 진행되었다.

인공적으로 외부와 고립된 작은 세상을 창조했다.

'바이오 스피어Ⅱ'라고 불리는 이 작은 세계는 축구장 넓이의 약 1.5배나 되었다.

[오태민의 마중물 논술] (6) 고립계와 열린계
유리로 외부와 격리되어 있으며,내부는 지구의 지리적 환경을 축소하여 열대우림,습지,해양,초원,사막,농경지,동물 우리,숙소로 이루어져 있었다.

과학자들은 지식을 총동원하여 이 인공 생태계 속에서 생성되는 물질이 최대한 균형을 이루도록 설계하였다.

8명의 과학자들이 외부로부터 전혀 지원을 받지 않고도 2년 동안 자급자족하는 것이 실험의 목적이었다.

그러나 18개월 만에 치명적인 불균형 상태가 되었다.

산소 농도가 떨어지고 이산화탄소와 질소의 증가로 잡초가 통제할 수 없을 정도로 자랐고,바퀴벌레나 개미와 같은 몇몇 곤충들만 번창하였다.

결국 25종의 작은 동물들 가운데 19종이 사라졌으며,식물의 꽃가루받이를 대신해 주던 곤충들이 죽자 식물들도 번식할 수 없게 되었다.

(고등학교 과학)

◆인식되지 않은 무지

'바이오 스피어Ⅱ'의 실패는 지구환경과 인간의 생물학적 생존에 대해서 과학자들이 미처 인식하지 못한 무지(無知)가 있음을 입증해 준다.

바이오 스피어는 지구환경을 정교하게 모사(模寫)했지만 높은 산으로부터 흘러내려오는 강물이나 대기현상의 오묘한 변화까지는 포함하지 못했다.

이런 외부 환경이 어떤 과정을 거쳐 인간의 생존과 직결된 물질순환에 영향을 미치는지 파악하지 못하였지만 분명 뭔가가 있다는 것만은 암시한다.

바이오 스피어의 실험은 그런 의미에서 성공이다.

인식하지 못한 무지를 일깨워 주었기 때문이다.

◆고립계는 상상의 산물

과학자들은 외부와는 물질과 에너지의 교환이 없는 고립계를 상상한다.

왜냐하면 다른 요소를 억제해야만 진정한 인과관계를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논리적으로 고립계는 단 하나밖에 없다.

바로 우주 자신이다.

우주를 빼고 나면 외부와 완전히 격리된 고립계란 있을 수 없다.

그런 고립계가 우주 어디엔가 있다 해도 이를 확인할 방법이 없다.

어떤 존재를 인식하려면 그 존재와 어떤 형태의 상호작용을 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결국 우주 어딘가에 있을지 모르는 고립계는 인간과는 아무 상관도 없는 셈이다.

블랙홀을 고립계라 생각했던 적도 있지만 블랙홀은 중력이라는 힘을 통해 외부와 상호작용한다.

이마저도 없었다면 블랙홀을 입증하는 데 더 애를 먹었을 것이다.

결국 과학자들이 상상하는 고립계는 현실에는 존재하지 않는 신화속의 동물이라 할 수 있다.

◆규제의 비현실적인 가정

문제는 법과 제도를 만들어 내는 사람들이 종종 엄밀한 과학에서도 존재하기 어려운 고립계를 전제하곤 한다는 것이다.

대표적인 것이 왜곡될대로 왜곡된 교육제도다.

이런 교육제도를 기안한 사람들은 교육이라는 시스템을 좁게는 학교라는 울타리 안에,넓게는 한국이라는 경계 안에 가두어 넣고 다스리려 한다.

그러나 학생과 학부모는 이 울타리에 가둘 수 없다.

어떤 제도를 만들건 학생과 학부모는 학교 담장 너머 학원의 도움을 받거나 아니면 아예,한국교육을 통째로 버리기도 한다.

제도의 목적이 무엇이건 목표가 달성되려면 학교라는 울타리가 물질과 에너지의 출입이 없는 고립계라야 한다.

이런 비현실적인 가정에서 출발한 제도가 성공한다면 그것이 더 이상한 일이 아닐까? 실패가 아니라 성공이 바로 자연의 원리에 역행하기 때문이다.

◆틀 밖에서 사고하라

철승이는 입시가 고3들끼리의 경쟁이라고 전제했다.

그러나 수능 전형은 송도 오피스텔의 프리미엄처럼 외부의 참여를 유인한다.

결국 수능 전형의 이점은 감소한다.

고3 수험생 입장에서 보면 재수생들을 차단해 주는 내신 위주의 전형이나 내신 걱정이 필요없는 수능 전형의 기회가 비슷해질 때까지 경쟁률은 조정될 것이다.

결국 입시는 고립계 안의 일이 아니며,길 위에 떨어진 돈도 발견하지 못할 만큼 멍청한 이들만의 게임도 아니다.

논술을 잘하려면 틀 밖에서 생각할 줄 알아야 한다.

한국학생들이 약한 부분이다.

어디 학생뿐이랴? 제도를 만들어내는 엘리트들도 틀 밖에서 문제를 보는 것에 익숙한 편은 아니다.

다음은 재벌의 은행 소유를 막고 있는 일명 금융산업구조개선법(약칭 금산법)에 대한 학생의 글이다.

금산법이라는 내용보다는 문제에 접근하는 학생의 입체적 사고에 주목하면서 읽어 보자.


▶학생 글: 배진현 명지외고 2학년

어떤 법이든 취지에 관계없이 부정적인 효과를 동반하게 되는데 이는 제정 당시에는 미처 고려하지 못했던 변수들이 상황의 변화와 함께 수면 위로 떠오르기 때문이다.

금산법의 경우에도 경제 개방도가 높지 않았던 과거에는 그리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러나 경제가 개방되고 해외 기업들의 국내 진출이 늘어남에 따라 오히려 국내 은행이 해외 기업에게 잠식당하는 결과를 초래하고 말았다.

해외 기업들은 국내에 펀드를 만들어 은행을 인수할 수 있지만 국내 기업은 그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금융자본과 산업자본이 분리된 쪽이 더 좋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것은 '모든' 금융자본이 '모든' 산업자본과 분리되어 있을 때의 이야기이다.

지금처럼 국내 기업만을 구속하는 것은 기업의 경쟁력 향상에 좋지 않은 영향을 끼칠 뿐 아니라 해외 자본에 의해 인수된 은행은 오히려 더 무책임한 운영을 하게 될 뿐이다.

투명한 경제 운용에 대한 대가치고는 너무 비싸다.

해외 기업의 국내 금융자본 인수를 막을 수 있는 뾰족한 방법이 있는 것이 아니라면 차라리 금산 분리정책을 완화해 국내 기업과 은행들의 경쟁력 향상을 도모하는 편이 더 바람직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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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P] 논술은 '3통'이다

3통,즉 '통념,통합,통찰'이 논술의 키워드다.

통념을 깨야 한다.

일반적인 상식,흘러 다니는 억측들은 모두 통념이라고 생각하고 도전할 줄 알아야 한다.

이런 걸 잘 나열해 봐야 수없이 비슷한 답안지 속에 파묻힐 뿐이다.

콜라는 몸에 나쁘지만 가족끼리 통닭을 먹을 때 아버지가 맥주를 찾는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이 때 콜라는 맥주보다 최소한 건전하다.

통합적으로 사고해야 한다.

2008학년도 대입 논술은 교과서 위주로 출제된다고 하지만 교과서적인 공부가 큰 도움이 될 것 같지 않다.

국어,사회,과학의 경계가 지나치게 뚜렷하기 때문이다.

학문의 경계는 대상에 있는 것이 아니라 접근 방법에 있을 뿐이다.

현실 세계의 문제는 언제나 통합적이다.

문제가 법인 것 같으면 오히려 문화나 윤리적 측면을 파고들고 도덕이라면 경제적인 측면을 공략하라.

논술은 결국 통찰력 경연대회다.

통찰력이란 사물을 꿰뚫어 보는 투시력과 비슷하다.

눈에 보이는 현상 너머의 감추어진 원리를 꿰뚫어 보는 것이다.

암기된 지식의 축적으로는 통찰력을 키울 수 없다.

서툴더라도 현상 너머의 무언가를 찾아 눈알을 자꾸 굴려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