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기술이 정말 인류를 행복하게 할까?

[고전속 제시문 100선] (41) 닐 포스트먼 '테크노폴리'(Technopoly)
현대인의 생활에서 과학기술이 끼친 영향을 제외한다면 아마 우리는 한순간도 제대로 살아가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이젠 필수품이 된 휴대폰과 컴퓨터는 일상적인 커뮤니케이션 수단이며, 버스 지하철 등 교통수단과 함께 현대인의 공간적 영역을 확장시키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100년 전 우리 선조의 삶과 현재 우리 삶을 비교해 보면, 분명히 우리는 발달한 현대 과학기술 덕분에 풍요롭고 행복한 삶을 누리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 삶에 크나큰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새로운 과학기술들이 속속 개발되고 있으며 그에 관한 거의 무한에 가까운 정보들이 생산·소비되고 있다.

그래서 과학기술이 인류의 장밋빛 미래와 행복을 보장하는 유일한 수단이라는 생각을 많은 사람들이 아무런 거부감 없이 쉽게 받아들이곤 한다.

닐 포스트먼(Neil Postman)은 『테크노폴리』에서 이런 낙관적이고 희망적인 믿음에 아무런 문제는 없을까 하는 문제를 제기한다.

과학기술의 급속한 발달로 인류의 전반적인 삶이 풍족하게 된 한편에는 아직도 굶주림에 고통받고 첨단 의료기술의 혜택을 받지 못하는 수많은 사람들이 존재한다.

지구촌 곳곳에서 과학기술이 집약된 각종 첨단무기들이 인간다운 삶의 안전을 위협하고 있다.

포스트먼은 과학기술의 발전에는 반드시 대가가 따른다고 비판한다.

인간의 통제를 벗어난 과학기술의 발전은 인간성 파괴는 물론, 우리의 삶을 가치 있게 만드는 정신적인 과정들과 사회적인 관계들을 파괴할 수도 있다고 경고한다.

포스트먼은 『테크노폴리』에서 과학기술이 모든 사회문제에 대한 해결사 역할을 하는 현대 미국사회를 '테크노폴리'라고 규정한다.

과학기술의 발달에 따라 인류 역사에 테크노폴리라는 사회 형태가 등장하게 되는 변화 과정과 그에 따른 인간의 의식 변화를 고찰한다.

과학 만능주의가 수반하는 많은 폐해들을 조목조목 따지고 이에 대한 해결책을 모색한다.

◆ 원문 읽기

기술주의 문화에서 도구는 문화의 사고 체계에서 중심적인 역할을 한다.

어느 정도까지는 도구의 개발이 모든 것에 우선하게 된다.

사회적·상징적 세계는 점차 기술 발전의 요구에 순응해 간다.

도구는 문화 속으로 통합되어 가는 것이 아니라 문화를 공격해 들어가는 것이다.

도구는 문화 자체가 되고자 한다.

그 결과 전통, 사회적 습속, 신화, 정치, 의식 그리고 종교는 생존을 위한 싸움을 벌여야 한다.

(중략)

기술주의 문화는 진보의 사상을 우리에게 이식하였고, 그 결과 우리가 전통과 맺었던 관계―그것이 정치적인 것이든 영적인 것이든―가 와해되기 시작했다.

기술주의 문화는 새로운 자유와 새로운 형태의 사회조직을 선사하겠다는 약속으로 우리를 들뜨게 했다.

또한 기술주의 문화는 세계를 가속화시켰다.

▶해설=포스트먼은 기술의 사용이라는 측면에서 인류의 역사를 도구사용문화(tool-using culture), 기술주의 문화(technocracies), 테크노폴리(technopolies)라는 세 가지 유형으로 구분한다.

르네상스와 근대 산업혁명을 거치며 서구의 역사에 기술주의 문화가 등장한다.

시계의 발명은 인간에게 측정이 가능한 새로운 시간의 개념을 제공하였고 시간을 정복 가능한 대상으로 전락시켰다.

인쇄술의 발명은 토론 위주의 구술적인 지식 체계를 무너뜨리고 새로운 형태의 개인주의적이고 대중적인 지식 체계를 발전시켰다.

망원경의 발명은 중세인들의 모든 판단의 기준이었던 신학을 무너뜨리고 그 자리에 과학이 위치하도록 하였다.

이런 기술주의 문화는 중세사회를 붕괴시키고 근대사회를 이끈 원동력이었으며 근대인들의 사고를 지배하였다.

기술주의 문화는 인간의 의식과 의식 밖의 세계를 분리시켰으며 과학기술의 발달은 곧 인류의 진보를 의미하게 되었다.

◆ 원문 읽기

[고전속 제시문 100선] (41) 닐 포스트먼 '테크노폴리'(Technopoly)
"정보가 어떤 문제를 해결해 주는가"라는 질문에 대해 흔히들 다음과 같이 대답한다.

"이전보다 더 많은 정보를 더 편리하고 빠르게 생산하고 보관하고 배포하는 것." 이것은 정보에 형이상학적 지위를 부여하는 것이다.

즉 정보는 인간 창의력의 수단인 동시에 목표라는 것이다.

테크노폴리는 우리의 삶을 정보에 접근하려는 노력으로 채울 것을 요구한다.

정보를 왜 추구해야 하고,또 이에는 어떠한 문제가 따르는가에 대해서 우리가 묻지도 않거니와,이런 식의 질문을 던지는 데 익숙하지도 않다.

▶해설=테크노폴리인 현대사회는 정보 과잉의 시대이다.

끊임없이 수많은 정보가 생산되고 축적되고 있으며 우리의 인식에 미처 도달하지 못하는 정보도 부지기수이다.

어떤 정보가 우리의 삶에 유용하고 필수적인지 정확한 판단을 내리기 힘든 상황에 처해 있다.

현대사회가 안고 있는 사회정치적인 문제들을 해결하는 방안에 대해서도 수많은 정보가 만들어졌고 만들어질 것이다.

하지만 현대 과학기술의 관심은 인간에게 유용하고 필수적인 정보가 무엇인지보다 어떻게 해야 더 많은 정보를 지금보다 빠른 속도로 제공할 수 있는가에 맞춰져 있다.

이제 더 이상 정보는 인간 생활을 풍요롭게 만드는 수단이 아니라 정보의 생산 그 자체가 목적이 된다.

윤리적이고 철학적인 문제 제기는 기술적 세계관에서 용납되지 않는다.

◆ 원문 읽기

천주교 신부들이 영적인 사상을 표현하기 위해 포도주, 제병(성찬식의 얇은 빵), 기도문 등을 사용할 때, 이들은 그 신비로운 교의나 은유를 인정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테크노폴리의 전문가들이 표준화된 형식이나 검사, 여론조사 및 다른 도구들을 사용하여 지능이나 창의력, 감수성, 정서적 불균형, 사회적 일탈 혹은 정치 성향 등에 기술적 현실감을 부여할 때에는 그러한 함축이나 미묘한 의미를 인정하지 않는다.

그들은 우리로 하여금 기술이 인간의 특정 조건이나 신념에 내재된 본성을 명확히 드러낼 수 있다고 믿게 한다.

여기에는 이미 점수, 통계수치 혹은 분류법에 의해 하나의 기술적 형식이 부여되었기 때문이다.

▶해설=현대사회는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대상화하고 측정하고 규정하려 한다.

IQ 테스트는 속칭 과학적인 방법론이라는 것을 동원하여 개인의 지능을 측정하려 시도한다.

한 번의 시험으로 어떤 사람이 수많은 상황 속에서 경험하는 현실의 문제들을 해결하는 능력인 지능(지성)의 크기를 알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더 나아가 개인 전체를 판단하는 객관적인 잣대로 이용하기도 한다.

여론조사도 마찬가지이다.

각종 전문적이고 과학적인 용어를 동원하여 여론조사에 대한 사회적인 권위를 세우려 한다.

여론조사의 결과가 마치 정답인 양 사람들의 판단을 호도하기도 하며 우리의 생각이 이것 아니면 저것이라는 식의 답안으로 정리될 수 있다고 믿게끔 한다.

주체들의 다양성이 사라지고 오직 대상화되고 획일화된 수치만이 존재한다.

테크노폴리의 전문가는 통계수치와 전문용어와 같은 정교하고 현란한 기술도구로 자신의 주장을 무장한다.

비 전문가는 전문가가 갖고 있는 주장의 객관적 내용에는 상관없이 기술도구의 존재만으로도 전문가의 지위와 주장을 인정한다.

◆ 원문 읽기

(테크노폴리의 이야기는) 무한한 진보와 책임 없는 권리 그리고 대가 없는 기술이라는 기치를 높이 들며 우리에게 다가왔다.

테크노폴리의 이야기에는 도덕적 구심점이 없다.

이것은 도덕의 자리에 효율성, 흥미 그리고 경제 발전을 채워넣었다.

이것은 기술 발전의 이기를 통해 지상에 천국을 건설하겠다고 약속한다.

이것은 안정과 질서를 말하는 모든 전통적 서사와 상징을 던져버리고 대신 기술, 전문지식 그리고 소비의 쾌락을 위한 삶을 제시한다.

이것의 목표는 테크노폴리를 영속화시키는 기능공을 생산해 내는 것이다.

▶해설=현대사회에서 과학기술은 신성한 위치를 차지하였으며 과학기술이 그리는 아름다운 미래는 현대인에게 일종의 신앙이 되었다.

하지만 중세의 종교가 인간 생활의 모든 가치판단의 기준이 되었던 반면에 현대의 과학기술은 우리의 가치판단에 아무런 윤리적 지침도 내려주지 않는다.

현대사회의 인간은 가치관의 혼란으로 무엇이 선이고, 무엇이 악인지조차 판단할 수 없게 된다.

테크노폴리에서는 오로지 인류의 진보에 기여할 수 있는 것만이 존재 가치가 있으며, 진보의 앞길을 막는 과거의 잔재들―전통들은 없어져야 할 것으로 간주된다.

현재의 우리 사회 역시 포스트먼이 기술하는 테크노폴리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모든 문제의 해결책은 궁극적으로 과학기술이 제공할 것이란 믿음이 우리 사회 곳곳에 존재하는 것이 사실이다.

포스트먼도 과학기술이 인류에게 선사한 긍정적인 결과까지 부인하지는 않는다.

다만 과학기술에 대한 맹목적인 믿음이 파생시키는 문제들에도 관심을 기울이자고 이야기한다.

기술적인 세계관에 대해 어느 정도 거리를 두며 비판하고 수정할 수 있어야 한다고 지적한다.

포스트먼은 테크노폴리의 문제를 극복할 수 있는 대안으로 인간성의 회복을 위한 '교육'을 제시한다.

과연 교육만으로 자신이 지적한 테크노폴리의 문제점들을 모두 해결할 수 있을지는 생각해 볼 여지가 있다.

양충공 Sㆍ논술 선임연구원 newage@nonsu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