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인재가 되고 싶다면

그 회사의 본사가 있는 나라로 가라"

[한국의 CEO 나의 청춘 나의 삶] (33) 윌리엄 오벌린 주한 미국상공회의소 회장
지난달 2일 서울 하얏트 호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타결 기자회견장. 4500만 국민들의 눈은 양국 협상단 대표들에게 고정돼 있었다.

그때 회견장 뒤쪽에서 잠시 카메라에 모습이 잡힌 한 미국인. 엷은 미소를 띠고 양측 대표의 발표에 귀를 기울이고 있던 그는 한국에 진출한 미국 기업들의 모임인 주한 미국상공회의소(암참)의 윌리엄 오벌린 회장이었다.

미국 보잉사의 한국법인(보잉코리아) 사장이기도 한 오벌린 회장은 올해로 22년째 한국에서 일하고 있는 지한파 미국 기업인. 한국인 아내와 결혼해 딸 마리를 낳아 한국에서 키우고 있다.

1년 임기의 암참 회장을 올해로 세 번째 수행하고 있는 그는 수 년 전부터 양국 정부에 FTA 필요성을 강조한 한·미 FTA 타결의 '숨은 공신'이기도 하다.

오벌린 회장은 어떤 사연으로 한국에 자신의 인생을 걸게 됐을까.

"저의 현재 모습은 그저 작은 선택들이 모여서 이뤄진 결과입니다.

거대한 계획(마스터 플랜)을 세워서 여기까지 온 것은 아니죠. 지금 다시 선택하라면 아마 다른 선택들을 했을 것이고 그러면 제 모습은 달라져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한국은 달라요.

한국에 살지 않을 선택을 할 기회가 여러 번 있었지만 저는 매번 한국을 선택했죠."

오벌린 회장은 1943년 미국 텍사스에서 태어나 인디애나의 한 작은 마을에서 자라난 평범한 미국인이다.

어린시절이라고는 온통 옥수수밭에 둘러싸인 지루했던 기억뿐이다.

그러나 헛된 시간은 아니었다.

정치가였던 아버지로부터 신념에 대해 배운 시기였기 때문이다.

"제가 15살 때인가 아버지께서 인디애나주 내무부 장관 선거에 나가셨는데 낙선하셨죠. 저는 무척 화가 나 있었는데 부모님이 저를 앉혀 놓고 이렇게 말씀하시더군요.

'이번 선거에서 논란이 된 이슈가 있었는데 아버지는 평소의 소신을 굽히지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선거에서는 졌다.

하지만 선거에서 이기는 것보다는 신념을 지키는 게 중요하다'라고요."

인디애나에서 유년시절을 보낸 그는 성년이 되자 공군에 입대, 꿈에 그리던 전투기 조종사(파일럿)가 됐다.

전투기 조종사는 민간 항공기와는 달리 혼자서 비행기를 몰아야 하는 시간이 대부분이었다.

그때 그는 자기 자신을 관리하는 능력을 배웠다.

날씨의 변화, 기류의 변화 등 시시각각 변화하는 외부 환경에 대응하는 방법을 습득했다.

"당시의 경험이 기업 최고경영자(CEO)로 성장하는 데 큰 도움이 된 것 같습니다.

특히 모든 것은 변하기 때문에 끊임없이 혁신해야 한다는 경영철학을 그 당시에 배웠죠."

20년 청춘을 공군에 바친 오벌린 회장은 보잉 동남아시아 헬리콥터 영업 담당으로 입사했으며 1985년 한국에 첫 부임했다.

그는 한국의 첫인상을 이렇게 기억하고 있었다.

"이곳에 오기 전 한국에 대해 갖고 있던 유일한 인상은 한국전쟁에 참전했던 삼촌으로부터 들은 것입니다.

삼촌이 어린 저에게 보여준 사진에서 한국은 온통 '흑백'이었죠. 그래서 전 한국은 아무런 색깔도 없는 흑백의 나라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김포공항에 내려 택시를 타고 가다가 '어! 흑백이 아니잖아'라고 말했죠. 그게 한국에 대한 첫인상이었습니다."

그랬던 오벌린 회장은 어느 나라보다 다이내믹한 한국의 매력에 푹 빠졌다.

"늦게까지 일을 하고 새벽에 호텔로 돌아가다 혼자 이렇게 외쳤습니다.

'아무도 자지 않잖아(nobody sleep)!'라고요.

이 도시는 잠을 자지 않는 도시예요.

한국은 다이내믹하고 활력이 넘치고(vibrant) 살아있는(alive) 나라입니다."

'소개팅'으로 한국인 아내를 만나 한국식으로 딸을 교육시키고 있는 그는 이제 거의 한국인이 다 됐다.

가장 좋아하는 음식도 수제비다.

그러니 한국에 대해 예찬론을 늘어놓는 것은 당연한 일. 하지만 기업인으로서 한국의 기업 환경에 대해선 어떻게 볼까.

"토머스 허바드 전 주한 미국대사 얘기를 하나 하겠습니다.

톰은 1993년에 국무부 동아시아 담당 차관보로 한국에 왔는데 처음 와서 저희(암참)와 회의를 가졌죠. 우리는 이구동성으로 '한국은 아시아에서 기업을 하기에 가장 나쁜 나라다'라고 말했어요.

외국인은 집 한 채도 살 수 없을 만큼 부동산 시장은 폐쇄적이었고 금융시장도 굳게 닫혀 있었죠. 하지만 톰이 2002년 대사로 돌아왔을 때 우리는 그에게 말했습니다.

'한국은 아시아에서 가장 기업하기 좋은 나라'라고. 톰은 '잠깐! 1993년을 기억하는데 그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냐'고 묻더군요.

저는 '엄청나게 짧은 시간에 엄청나게 많은 일이 있었다'고 말했죠. 무엇보다 안정적인 법 체제와 성숙한 민주주의 정부를 갖게 됐잖습니까? 하지만 기업인의 입장에서 볼 때 한국은 여전히 노동의 유연성이 부족합니다.

특히 장사가 잘 안 될 때는 그에 맞게 인원을 조절할 수 있어야 하는데 한국에선 그게 잘 안 되죠. 외국 기업뿐 아니라 한국 기업인들도 공감하는 문제예요."

암참과 보잉코리아라는 두 개의 조직을 이끌고 있는 리더로서 오벌린 회장은 합리적이고 공평한 리더십을 가졌다는 평가를 받는다.

부하 직원들은 그를 '대장님'이라고 부르며 존경을 표시한다.

오벌린 회장은 리더십은 타고난 기질이 아니며 후천적으로 배우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리더십을 배울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부하(follower)가 되는 것이라는 얘기다.

"부하로서 리드를 당하면서 리더십에 대한 가치 판단을 할 수 있습니다.

어떤 게 좋은 리더십인지…. 가장 좋은 리더십을 발견하면 그걸 닮기 위해 노력하면 되는 것입니다."

그는 리더는 우선 훌륭한 인재를 발견하는 데서 시작한다고 믿는다.

그리고 리더로서 절대 하지 말아야 할 일이 있다고 강조한다.

그것은 훌륭한 인재가 자신을 위해서 같은 자리에서 계속 일하도록 잡고 있는 것. 오벌린 회장은 "만약 그 사람이 정말 훌륭한 인재라면 그가 더 많은 책임을 가지면서 회사 안에서 성장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고 말했다.

주한 외국 기업에 취직하고 싶은 한국의 젊은이들을 위해 한마디 조언을 구했다.

"글로벌 인재가 되고 싶다면 그 회사의 본사가 있는 나라에 먼저 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한국의 인재가 보잉에서 일하고 싶다고 하면 우선 '원더풀'이라고 말하죠. 그러고는 진짜 글로벌하게 일하고 싶다면 미국으로 가라고 합니다.

본사에서 고용된 후 능력을 인정받고 한국 발령을 받으라고 말이죠. 그래야 진정한 글로벌 인재가 될 수 있습니다."

유창재 한국경제신문 산업부 기자 yoocoo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