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승 열명 낸 집보다 처사 한명 낸 집이 더 낫다

[고전속 제시문 100선] (40) 조식의 '남명집(南冥集)'
'처사(處士)'란 말을 들어본 적이 있는지. 요즘 일상생활에서는 '처사'란 말을 거의 쓰지 않지만 아직도 절에서는 남자 신도를 부를 때 사용하는 말이다.

옛날 우리 조상들은 '정승 열을 낸 집보다 처사(處士) 한 명을 낸 집이 더 낫다'고 말하기도 했다.

'처사'가 무엇이기에 막강한 권력을 상징했던 '정승' 열 명보다도 낫다고 한 것일까? 조선시대 퇴계 이황과 더불어 영남학파의 양대 산맥인 대표적 산림처사(山林處士), 남명 조식(南冥 曺植:1501~1572). 조식 선생은 살아서도, 그리고 죽어서도 자신을 다만 '처사'라고 불러달라고 했다고 한다.

천왕봉이 보이는 지리산 자락에서 평생을 은거하며 늘 자신을 성찰하기 위해 성성자(惺惺子)라는 방울을 옷에 달고 때로는 과격하고 직선적인 언어로 중앙 조정을 발칵 뒤집어 놓기도 했던 남명 조식의 글을 따라가며 진정한 '처사'란 무엇인지 알아보자.

1.몸과 마음에 새기다

◆ 원문 읽기

좌우명(座右銘):언행(言行)을 신의(信義)있게 하고 삼가며, 사악(邪惡)함을 막고 정성(精誠)을 보존하라. 산처럼 우뚝하고 못처럼 깊으면, 움 돋는 봄날처럼 빛나고 빛나리라.

패검명(佩劍銘):안으로 마음을 밝히는 것은 '경'(敬)이요, 밖으로 행동을 결단하는 것은 '의'(義)다.

혁대명(革帶銘):혀는 새는 것이요, 가죽은 묶는 것이니 살아 있는 용을 묶어서 깊은 곳에 감추어두라.

▶해설=남명 조식 선생이 살았던 16세기 조선의 정치현실은 매우 암담했다.

1519년의 기묘사화와 1545년의 을사사화를 겪으며 자신의 숙부 조언경과 많은 동료 선비들의 참혹한 희생을 지켜본 남명의 마음은 어땠을까? 만일 우리들이 그 시대를 살았다면 어떤 선택을 할 수 있을지? 남명은 중앙 정치무대를 떠나 산자락에 숨어 살며 제자들을 교육하는 길을 선택했다.

어려운 현실과 적극적으로 맞서지 않았다는 비판을 할 수 있겠지만 남명은 '세상에서 쓰이거나 숨거나 대개 자신이 결정할 일'이라고 시(詩)를 썼다.

다만 '학자도 죽음으로써 도(道)를 지킬 뜻이 없으면 그 마음을 옳게 보존할 수 없다'는 원칙을 세우고 실천할 정도였다.

학자의 용기란 남을 이기기 위해 필요한 것이 아니고 자신을 이기기 위함이니 이는 쉬운 것 같지만 실로 어려운 길이어서 죽을 힘을 다해 선생은 그 길을 걸어갔다.

그래서 늘 공부하는 자리 옆에,자신이 차고 있는 칼에, 그리고 혁대에 목숨을 다하여 자신이 걸어갈 길에 대한 내용을 새겼던 것이다.

2.'경(敬)'으로 들어가라, '의(義)'로 나와라

◆ 원문 읽기

이른바 선(善)을 밝힌다는 것은 이치를 궁구(窮究)함을 이름이요, 몸을 정성되게 한다는 것은 몸을 닦는다는 것을 말합니다.

천성(天性) 안에는 모든 이치가 다 갖추어 있으니, 인(仁) 의(義) 예(禮) 지(智)가 그 본체이고, 모든 선이 다 이로부터 나온다.

마음은 이치가 모이는 주체이고, 몸은 이 마음을 담는 그릇이다.

그 이치를 궁구하는 바탕이 되는 것은 글을 읽으면서 의리(義理)를 강명(講明)하고, 일을 처리할 적에 그 옳고 그름을 찾는 것이다.

몸을 닦는 요체가 되는 것은 예(禮)가 아니면 보지도 듣지도 말하지도 움직이지도 않는다.

가슴 속에 마음을 보존해 혼자 있을 때를 삼가는 것이 큰 덕이고 밖으로 살펴서 그 행동에 힘쓰는 것이 왕의 도리다.

그 이치를 궁구하고 몸을 닦으며, 가슴 속에 본심을 보존하고 밖으로 자신의 행동을 살피는 가장 큰 공부는 반드시 경(敬)을 위주로 해야 한다.

이른바 경(敬)이란 것은 정제하고 엄숙히 하여, 항상 마음을 깨우쳐서 어둡지 않게 하는 것이다.

한 마음의 주인이 되어 만사에 응하는 것은 안은 곧게,밖은 방정(方正)하게 하는 것이다.

공자께서 이른바, '경(敬)으로써 몸을 닦는다'라는 것이 이것이다.

그러므로 경(敬)을 주로 하지 않으면 이 마음을 보존할 수 없고, 마음을 보존하지 못하면 천하 이치를 궁구할 수 없으며, 이치를 궁구하지 못하면 사물의 변화를 다스릴 수가 없습니다.

▶해설=많은 유학자들의 생각처럼 남명 역시 인간이 하늘로부터 받은 성품은 선(善)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 착한 본성은 나쁜 환경의 영향으로 사악한 마음이 될 수도 있기 때문에 착한 마음을 잃지 않고 보존하기 위해서는 경(敬)을 통해 자신의 몸과 마음을 곧고 바르게 해야 한다.

'경'은 마음의 주인이 항상 깨어있는 상태(惺惺子)에서 보존해야 하는 것이다.

마음과 경의 관계는 임금과 총재(總裁:내정을 총괄하는 사람)와의 관계와 같다.

한 마음의 주인을 임금에, 그리고 그 마음을 보존하고 총괄하는 역할을 하는 경(敬)을 총재에 비유한 것이다.

경으로써 자신의 착한 마음을 보존하기 위해서는 말과 행동을 삼가야 한다.

제목을 잃어버린 한 시(詩)에서 남명은 '우레 같은 소리를 내려면 몸을 깊이 감추고 있어야 하며, 용(龍) 같은 모습을 드러내려면 바다처럼 깊이 침잠해야 한다'고 읊었다.

즉 경은 안에서 깊이 숨어 용 같은 용감한 모습을 드러내게 할 수 있는 것이고 용으로 나타나서는 의(義)로써 행동을 결단하는 것이다.

3.올바른 것을 위해서라면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 원문 읽기

<을묘년에 사직하는 상소문>

전하의 나라 일이 이미 그릇되었고 나라의 근본이 이미 망했으며 하늘의 뜻은 이미 떠나버렸고 민심도 이미 이반되었습니다.

비유하자면 백 년 동안 벌레가 그 속을 갉아먹어 진액이 이미 말라버린 큰 나무가 있는데, 회오리바람과 사나운 비가 어느 때에 닥쳐올지 전혀 알지 못하는 것과 같으니, 이 지경에 이른 지가 오랩니다.

(중략)신은 이 때문에 은근히 걱정하고 깊게 생각하면서 낮에는 하늘을 우러러보며 탄식한 것이 여러차례이고, 크게 탄식하면서 아픈 마음을 억제하며 밤에 천장을 쳐다본 지가 오래되었습니다.

자전(慈殿:임금의 어머니를 일컫는 말)께서 생각이 깊으시기는 하나 깊숙한 궁중의 한 과부에 지나지 않고,전하께서는 어리시어 다만 선왕의 한 외로운 아드님이실 뿐이니, 천 가지 백 가지의 천재(天災)와 억만 갈래의 민심(民心)을 어떻게 감당해내며 무엇으로 수습하시겠습니까?

<무진년에 올리는 봉사(封事:임금만이 직접 그 내용을 볼 수 있도록 봉해 올린 글)>

신이 홀로 깊은 산중에 살면서 굽어 민정(民政)을 살피고 우러러 하늘을 보며, 탄식하고 울먹이다가 눈물을 흘린 적이 자주 있습니다.

(중략) 전하께서 만약 신의 말을 버리시지 않고 너그럽게 용납하신다면, 제가 비록 천리 밖에 있더라도 전하의 궤연(机筵) 앞에 있는 것과 같을 것입니다.

어찌 반드시 누추한 늙은이를 면대한 뒤라야 신을 임용하신 것이라 하겠습니까? 또한 듣건대 임금을 섬기는 자는 임금을 헤아려 본 뒤에 들어간다고 하는데, 정말 전하는 어떠한 임금이신지 모르겠습니다.

만약 신의 말을 좋아하지 않으면서 한갓 신을 보려고만 하실 뿐이라면 섭공(葉公)이 용을 좋아하던 일(허명을 좋아하면서 실상은 좋아하지 않는다는 비유)이 될까 두렵습니다.

오늘 전하께서 밝게 보셨나 어둡게 보셨나에 따라 앞으로의 다스림이 성공할 것인가 실패할 것인가를 점칠 수 있을 것입니다.

주상께서는 이 점을 살피소서. 삼가 소를 올리나이다.

▶해설=남명의 상소는 유명하다.

명종 임금을 '고아'에, 문정왕후를 '과부'에 빗대어가며 글을 쓴 것은 오늘의 감각으로도 너무 용감한 것이 아닌지 모를 정도다.

선생의 상소가 당시에 미쳤을 파문에 대해서는 짐작이 가고도 남는다.

산속에서 공부만 하시는 양반이 어찌 그리 현실을 살피어 불의(不義)를 참지 못하고 왕에게 직격탄을 날릴 수 있는지. 자신의 마음을 수양(修養)하고 의(義)를 기준으로 행한 현실에 대한 대담한 비판은 남명의 공부가 자기 자신을 위하는 동시에 세상을 위함을 잘 보여주는 것이다.

끝으로 남명의 기백을 보여주는 시 한 수를 소개한다.

봄 산 어느 곳엔들 향기로운 풀이 없겠는가마는

내가 이사한 이유는 단지 천왕봉이 상제가 사는 곳에

가까이 다가가 있음을 사랑하기 때문이다.

빈 손으로 들어왔으니 무엇을 먹고 살까?

은하수 같은 십리 맑은 물 아무리 퍼마셔도 남음이 있겠구나.

김옥란 Sㆍ논술 선임연구원 ybus030@nonsu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