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비리에 운영되는 국가소유 투자회사

중국ㆍ일본 "우리도 그런 회사 만들어보자"

[Global Issue] 싱가포르 '테마섹' 모델 뜬다
최근 국제 기사에 자주 이름이 오르내리는 한 회사가 있다.

바로 싱가포르 국영투자회사인 테마섹(Temasek)이다.

이 회사는 국가가 소유한 연금 기금 외환 등 여유 자산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모범 사례'로 평가되면서 최근 각국 정부의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다.

중국판 테마섹, 일본판 테마섹, 대만판 테마섹 등 아시아 국가들은 최근 이 회사를 모델로 한 국영투자회사를 만들고 있다.

중동의 아랍에미리트(UAE)도 넘쳐나는 석유 자금을 활용해 새로운 투자기관 설립을 구상 중이다.

◆ 테마섹은 어떤 회사인가

테마섹은 싱가포르 재무부가 정부 지분율이 20% 이상인 기업(정부출자회사)을 관리하기 위해 1974년 만든 지주회사다.

그래서 정식 이름도 '테마섹 홀딩스'다.

싱가포르 재무부가 100% 출자해 설립한 후 33년 동안 이 구조를 유지해 왔다.

테마섹은 현재 싱가포르의 22개 대형 공기업을 관리·감독하고 있다.

싱가포르텔레콤, 싱가포르항공, 케펠코퍼레이션 등 굵직굵직한 싱가포르 기업들을 거느리고 있다.

이들 회사는 다시 자회사 및 관계사를 두고 있어 테마섹이 영향력을 미치는 기업은 수천 개에 이른다.

선박 제조, 반도체에서 동물원 사업까지 손대지 않는 분야가 없을 정도다.

테마섹이 직접 투자해 증시에 상장된 회사들은 싱가포르 증시 시가총액의 4분의 1가량을 점하고 있다.

◆ 화려한 실적의 테마섹

테마섹은 지난해 3월 말 현재 1290억싱가포르달러(약 850억달러)의 운용 자산을 보유하고 있다.

설립 당시 자산 3억5000만싱가포르달러가 32년 만에 35배로 늘어났다.

이 기간 연평균 18%의 수익률을 기록했으며, 유일한 주주인 싱가포르 재무부는 연 평균 7%의 배당 이익을 얻었다.

지난해만 보면 테마섹의 수익률은 24%에 달했다.

세계 각국 중앙은행들의 자산 운용수익률이 평균 5% 안팎에 그치는 것과 대조된다.

특히 테마섹은 설립 이후 바이오 산업이나 이머징마켓(신흥시장)의 글로벌 기업 등에 투자하는 전략을 유지해 좋은 성과를 내왔다.

테마섹은 또 성장 잠재력이 높은 투자 대상을 골라 그 능력을 최대화시켰다.

'전략적 개발' '기업 발전' 등이 그와 같은 전략의 주요 개념이다.

예를 들어 '기업 발전' 전략은 투자한 기업이 스스로 발전할 수 있도록 돕고 이런 과정을 테마섹 투자 기업 간에 공유할 수 있도록 해 시너지 효과를 최대로 살리는 것이다.

이를 통해 각 기업의 미래 경영자도 길러내고 있다.

물론 공격적인 투자를 하다보니 실패 사례도 있다.

싱가포르항공의 에어뉴질랜드 투자가 한 예다.

해저 통신케이블 구축 사업에 대한 투자도 실패했다.

◆ 테마섹의 아시아 금융 허브 전략

[Global Issue] 싱가포르 '테마섹' 모델 뜬다
2002년 싱가포르의 리센룽 총리의 부인인 호칭(Ho Ching) 여사가 테마섹의 최고경영자(CEO)로 취임하면서 테마섹에 변화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호칭은 '싱가포르를 중심으로 한 범아시아 금융 네트워크 구축'을 테마섹의 새 목표로 내걸었다.

테마섹은 이를 위해 2003년부터 해외 은행을 마구 사들이기 시작했다.

인도네시아 최대 다나몬은행(지분율 59%)과 인터내셔널뱅크(35%),인도 최대 은행인 ICICI(8%),중국건설은행(6%),중국은행(5%) 등에 투자를 늘려갔다.

우리나라 하나금융지주회사에도 투자해 약 10%의 지분을 갖고 있다.

테마섹 산하인 싱가포르 DBS은행이 한국외환은행 인수전에 나서면서 테마섹이란 이름은 우리에게도 더욱 익숙해지게 됐다.

전문가들은 테마섹의 이 같은 '아시아 금융 허브' 전략에 새로운 시도가 더해지고 있다고 분석하고 있다.

지난해 3월 인수한 스탠다드차터드은행을 통해 아시아뿐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사업 영역을 넓히려는 의지를 보였다는 것. 테마섹은 이제 아시아를 넘어서 '글로벌 금융 제국' 건설을 목표로 세계로 나아가고 있다.

안정락 한국경제신문 국제부 기자 jra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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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가포르의 또다른 투자기관 GIC

나랏돈 운영하는 기관…한국서 부동산 큰손으로 등장하기도

테마섹과 관련해 혼란을 불러일으키는 싱가포르 투자기관으로 싱가포르투자청(GIC)이란 곳이 있다.

두 기관은 설립 목적과 투자 방향 등에서 몇몇 차이가 있어 잘 구분해서 볼 필요가 있다.

싱가포르 정부는 잉여 자산을 싱가포르통화청, 싱가포르투자청, 테마섹 등 3개 기관으로 나눠 운용하고 있다.

이 중 해외 자산 투자에 나서는 곳은 GIC와 테마섹이다.

GIC는 싱가포르의 외환과 국채 매각대금, 재정 잉여금 등을 정부를 대신해 굴리는 일종의 국가 펀드운용기관으로 1981년 설립됐다.

채권 주식 선물 등 금융 상품과 부동산에 단기 투자를 한다.

요즘 들어선 신흥시장, 사모펀드, 헤지펀드 등의 투자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투자 기금은 1000억달러를 웃도는 정도라고만 알려졌을 뿐 구체적인 투자 내역은 철저히 비밀에 감춰져 있다.

우리나라에선 1999년부터 서울 파이낸스센터와 스타타워빌딩 등 알짜 빌딩에 투자, 부동산 시장의 큰손으로 등장하기도 했다.

투자 전략을 비교해 보면 테마섹은 장기 투자로 기업을 성장시켜 수익을 극대화하는 전략을 펴고 있다.

또 공격적으로 관심이 있는 기업을 인수·합병(M&A)하는 방식을 주로 선호한다.

이같이 테마섹은 다소 위험하더라도 고수익을 추구한다.

반면 GIC는 일반적으로 안정적인 수익을 추구한다.

재미있는 것은 GIC와 테마섹 모두 리콴유 전 총리 가족에 의해 움직인다는 점이다.

리콴유의 며느리인 호칭은 테마섹의 최고경영자(CEO)이며, GIC의 이사회 의장은 여전히 리콴유가 맡고 있다.

리콴유의 둘째 아들인 리셴양은 최근까지 테마섹 산하 최대 기업인 싱가포르텔레콤의 사장을 맡기도 했다.

일각에서는 이를 두고 '리콴유 주식회사'라는 비아냥도 한다.

2002년 호칭이 테마섹의 CEO에 선임됐을 때 미국 경제 주간지 비즈니스위크는 그의 경영 능력에 의문이 있다는 기사를 썼다.

2004년에는 경영 정보를 일절 공개하지 않는 테마섹의 비밀주의를 영국의 경제 주간지 이코노미스트가 비판했다가 일부 과격한 표현을 사과하는 해프닝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