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 속 제시문 100선] (39) 메리 W 셸리의 '프랑켄슈타인, 혹은 근대의 프로메테우스'
1818년 메리 W 셸리(Mary Wollstonecraft Shelley)가 쓴 『프랑켄슈타인, 혹은 근대의 프로메테우스』(Frankenstein, or the Modern Prometheus)는 인간에게 불을 전해준 프로메테우스를 끌어들인 데서 알 수 있듯이 인류의 미래를 바꾸고 싶은 과학자 프랑켄슈타인에 대한 이야기다.

물론 프랑켄슈타인 박사는 진정한 프로메테우스가 되지 못했다.

밀턴의 『실낙원』과 성서의 '창세기'를 패러디해 실패한 과학문명을 경고한 원작의 메시지는 오늘날까지도 유효하다.

프랑켄슈타인은 물질문명에 기댄 인간의 오만함을 상징하는 고유명사처럼 여겨지고 있다.

이 책은 여류작가의 소설이다.

그녀는 이 작품을 통해 오늘날 과학소설의 새로운 기원을 열기도 했다.

작가 메리 셸리의 부모는 영국의 급진적인 사상가였다.

특히 어머니 메리 울스턴크래프트는 『여권의 옹호』를 쓴 여권 운동가이자 자유 사상가였다.

메리 셸리가 활동한 18세기 말과 19세기 초는 낭만주의의 열정과 산업혁명을 등에 업고 새로운 사상을 요구하던 시기였다.

빅토리아 왕조의 기운이 무너지면서 바이런, 워즈워스, 그리고 메리 셸리의 남편인 퍼시 셸리 등의 시인이 활약했으며, 제인 오스틴의 소설이 유행했을 때였다.

사람들은 프랑켄슈타인을 잘 알고 있다.

그 모습을 묘사하라고 한다면 엄청나게 큰 거구, 여기저기 꿰맨 자국들, 일그러진 눈 등으로 그릴 것이다.

그런데 프랑켄슈타인은 이 괴물을 만든 사람의 이름이다.

청년 과학도 빅토르 프랑켄슈타인은 시체의 각 부위를 접합해 8피트(244cm)의 거구로 만든 다음 에너지 발생장치로 충격을 가해 인간을 닮은 생명체를 창조한다.

그러나 이 순진한 창조자는 자신의 피조물이 워낙 추하고 무서워 실험실에서 도망친다.

그 이후 수도 없는 영화에서 되풀이 등장하고 있는 괴물은 이렇게 창조됐다.

괴물에는 이름이 없다.

소설 속에서는 그냥 '괴물(monster)'이라고 불릴 뿐이다.

이름도 없이 홀로 남은 괴물은 이 세상에 첫발을 내디디면서 이미 다른 사람들로부터 부정된 존재가 된다.

아무도 그를 부를 수 없다는 사실은 존재 자체가 부정될 가능성을 의미한다.

창조 신화에서도 조물주는 자신의 피조물에 이름을 지어 주어 그 존재를 확인한다.

아담도 그렇게 탄생했고 그 역시 에덴동산에 있는 다른 생명체들의 이름을 짓는 것으로 삶을 시작한다.

그러나 창조자에게 버림받고 이름도 가지지 못한 괴물은 처절한 소외와 고독을 강요당한다.

괴물은 자신의 조물주 프랑켄슈타인을 찾아가 처절하게 외친다.

"나는 당신에게 아담과 같은 존재여야 하는데 당신은 나를 타락 천사 취급하는군요.

아무 잘못도 없는데 나를 기쁨으로부터 몰아내다니."

고전이 생명력을 지니고 시대와 국경을 초월해 사랑받을 수 있는 까닭은 인간 본성의 근본 원칙을 다루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메리 셸리가 낭만주의 시대의 격정 속에 풀어놓은 인간적인 문제들, 창조의 고통, 배반, 소외, 복수, 생명의 창조와 같은 문제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과학이 주는 암울함과 두려움도 그렇다.

괴물은 그를 창조한 프랑켄슈타인에게 이렇게 묻는다.

"창조주여, 제가 부탁이라도 했습니까, 진흙에서 저를 빚어 사람으로 만들어 달라고? 제가 애원했습니까, 어둠에서 절 끌어내 달라고?

이 말은 초판인 1818년판 표지에 실렸던 글이자 소설 속 괴물이 역사적 사실로 받아들였다는 밀턴의 『실낙원』 중 한 구절이다.

괴물은 홀로 책을 읽으며 문자와 지식을 배운다.

고전을 읽는 과정에서 감정과 교양을 익힌 괴물은 책 속의 글귀를 내면화하게 된다.

세상에 던져진 자신의 존재를 근원부터 부인하고 싶은 괴물의 절규가 그대로 드러난다.

이제 몇 구절을 직접 읽어보자.

◆ 원문 읽기

나는 인간의 멋진 형상이 어떻게 퇴화하고 소모돼 가는지 보았다.

생기 있던 생명의 뺨이 죽음으로 부패해가는 것을 보았다.

구더기가 경이로운 눈과 머리에 어떻게 자리 잡는가도 보았다.

생명에서 죽음으로,죽음에서 생명으로 변화하는 데서 볼 수 있는 상세한 인과관계들을 조사하고 분석하다가 난 잠시 멈추었다.

그런데 그때 갑자기 어둠 속에서 빛이 내게 쏟아졌다.

이 빛은 너무도 밝고 경이로웠지만 아주 단순했다.

그 빛이 보여줄 무한한 전망에 어지러움을 느끼면서도 같은 학문을 탐구했던 많은 천재들 가운데 나 혼자만이 그렇게 놀라운 비밀을 발견했다는 것이 놀라웠다.

내가 미친 사람의 환상을 기록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기억하기 바란다.

내가 지금 발견한 것이 사실이라는 건 해가 하늘에서 확연히 빛나는 것과 같이 명백한 것이다.

기적이 이 발견을 가능하게 했다 하더라도 발견의 단계들은 명확하고 믿을 만한 것이었다.

믿을 수 없을 만큼 힘든 작업과 피로로 점철된 밤낮을 보낸 다음 나는 생식과 생명의 비밀을 발견하는 데 성공했던 것이다.

아니 그 이상이었다.

내가 생명이 없는 물체에 생명을 부여할 수 있게 되었던 것이다.

▶해설=19세기 초 자연과학의 발흥 속에서 생명의 신비를 풀 수 있으리라는 시대정신의 자신감이 엿보이는 대목이다.

인간의 탐구활동에는 제약이 없다고 여기고 무한한 지식 추구를 통해 신의 영역에도 도전할 수 있음을 낙관적으로 드러내는 주인공을 통해 작가는 이미 그 자연관이 위험에 도달했음을 보여주려고 한다.

◆ 원문 읽기

인간이 제일 귀하게 여기는 건 높은 신분과 많은 재산이 결합된 것임을 알게 되었소. 이중 하나만 있어도 존경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둘 다 없으면,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고는 거지나 노예 대접을 받으며 선택받은 소수의 이익을 위해 자신의 능력을 허비할 운명에 처하게 되지요.

▶해설=괴물은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이나 『플루타르크 영웅전』『실낙원』 등을 읽고서, 인간이 지닌 감성이나 창조주와 인간의 관계, 인간의 역사 등에 대해 알게 됐다.

프랑켄슈타인의 창조 일지를 읽고 난 후에는, 자신이 인간 공동체 어디에도 속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리고 자신이 익힌 언어와 문자를 도구로, 눈에 보이는 것만을 판단 기준으로 삼는 인간사회에 대해 나름의 비판을 가하기도 한다.

◆ 원문 읽기

나 역시 아담처럼 세상에 존재하는 어떤 피조물과도 연결돼 있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여러 면에서 우리는 달랐습니다.

아담은 신의 손에 의해 완벽한 피조물로 태어났고 창조주의 각별한 보호 아래 행복과 번성을 누렸던 것입니다.

아담은 우월한 존재들과 대화를 나누고, 그들로부터 지식도 전수받을 수 있었지만, 난 홀로 비참하게 버림받은 무력한 존재였습니다.

여러 번 나는 지금 내가 처한 상황을 더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건 사탄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해설=괴물은 『실낙원』에 등장하는 사탄의 처지와 자신의 처지를 비교해 소외감을 표현할 정도로 뛰어난 지적 능력을 보인다.

이러한 괴물의 사고는 철저하게 독학을 통해 이루어졌다.

괴물은 독학 과정을 통해 자신의 창조주인 프랑켄슈타인을 압도하고 있다.

언어는 괴물에게 중요한 구원의 가능성이며,괴물은 언어의 문제가 인간의 상호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도구임을 체험을 통해 알게 됐다.

◆ 원문 읽기

난 그 사람들이 자신의 체험과 감정을 음절이 있는 소리에 의해 전달하는 방식을 지니고 있다는 걸 발견했습니다.

난 그들이 말하는 단어들이 듣는 사람의 얼굴에 때때로 기쁨이나 고통, 미소나 슬픔을 자아낸다는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이것이야말로 신과 같은 과학이며 나는 열렬히 그것을 익히기 원했습니다.

▶해설=괴물은 스스로 '신과 같은 과학'이라고 지칭한 말과 글을 수단으로 하여 공동체에 합류하기를 원한다.

언어의 원리와 속성을 깨달은 괴물은 언어를 타인과의 관계를 연결시켜 주는 도구로 인식한다.

괴물에게는 말과 글이야말로 자신의 외모에 대한 사람들의 혐오감을 없애고, 자신과 다른 사람들의 관계를 설정해 주는 수단이 된다.

자신의 모습은 바람직한 욕망의 대상이 되지 못하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괴물은 언어만이 자신의 구원을 이뤄줄 것으로 여기고 언어를 배우는 데 몰두하며, 이 과정은 그에게 큰 의미를 지닌다.

◆ 원문 읽기

나의 악덕은 내가 혐오하는 강요된 고독의 산물이며, 나의 미덕은 나와 동등한 존재와 교감하며 살 때 필연적으로 생겨날 거요.

난 감수성을 지닌 존재의 애정을 느끼게 될 거고, 지금 내가 소외돼 있는 존재와 사건들의 사슬에 연결될 겁니다.

▶해설=결국 괴물의 말은 프랑켄슈타인에게 부모로서의 역할을 상기시키는 효과를 발휘한다.

프랑켄슈타인은 처음으로 창조주가 자신의 피조물에 대해 어떠한 의무를 지니는지 느끼게 된다.

그는 괴물의 외관에는 여전히 역겨움을 느끼지만 이상한 동정심을 갖게 되며, 괴물은 프랑켄슈타인에게 자신의 고립된 처지에 대해 논리적으로 토로하며 여성 괴물의 창조를 강요한다.

임혜빈 Sㆍ논술 선임연구원 imhaebin@nonsu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