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혁명 풍자…20세기 최고 정치 우화소설

[고전 속 제시문 100선] (38) 조지 오웰의 '동물농장'
조지 오웰(본명 에릭 아서 블레어, 1903~1950)의 『동물농장』은 러시아 혁명을 풍자한 소설이다. 실제 사건 및 인물들을 우화의 형식을 통해 신랄하게 풍자한 20세기 최고의 정치 우화소설이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이 우화소설의 무대는 농장이고, 여기에 나오는 일단의 농장 동물들은 러시아 혁명가들이나 정치 사상가들을 상징하고 있다.

이 책 전반에 걸쳐 오웰의 문장 스타일은 단순, 명료, 분명함을 특징으로 하고 있다.

그는 극도로 절제된 말과 짧고 간단한 문장 구조를 통해 동물농장의 우화적 측면을 강조하고 있다.

◆ 원문 읽기

"동무들, 동무들은 어젯밤 내가 꾼 꿈에 대해서 이미 들으셨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꿈 이야기는 나중에 하겠소. 우선 다른 얘기부터 할까 하오. 동무들, 나는 아무래도 여러분과 더 이상 같이 살 수 없을 것 같습니다.

그래서 죽기 전에 내가 경험에서 얻은 지혜를 여러분들에게 전해주고 가는 것이 도리라고 생각했습니다.

나는 지금 살고 있는 어떤 동물 못지않게 우리 삶의 본질을 이해하고 있다고 생각하오. 내가 오늘 동무들에게 말하려고 하는 것은 바로 이에 관한 것입니다.

자, 동무들 우리의 삶을 한번 돌아봅시다.

우리의 삶은 비참하고 고달프며 또한 짧습니다.

우리는 태어나서 평생을 겨우 목숨 유지할 만큼의 먹이만 얻어먹고 일할 수 있는 자들은 마지막 힘이 다할 때까지 일을 강요당합니다.

그러다 더 이상 쓸모가 없어지면 우리는 아주 지독하고 잔인하게 도살당합니다.

영국에서는 어떤 동물이든지 태어난 지 한 해가 지난 후에 행복이나 여가라는 뜻을 아는 동물은 하나도 없습니다.

영국의 모든 동물들은 자유가 없습니다.

우리 동물들의 생활은 비참한 노예 생활 그대로이고 이것은 명백한 진실입니다."

▶해설=『동물농장』은 우화 형식을 띤 정치 소설이다.

따라서 주로 각각의 인물에 대한 묘사보다는 역사적 사건과 그 사건을 대표하는 역사적 인물을 더 중시하는 것이 특징이다.

이 소설은 크게는 독재체제를, 작게는 1917년 러시아 혁명을 풍자하고 있으며 그 시대를 대표하는 주요 인물들을 주축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이 부분은 초반부의 중심 인물인 메이저 영감이 한 말이다.

메이저 영감은 나이가 열두 살인 수퇘지로 농장에서 깊은 존경을 받는 인물인데, 공산주의 혁명을 이끄는 사상과 저서들을 남긴 칼 마르크스에 비유할 수 있다. '동물들의 삶은 비참한 노예와 같다'는 그의 주장은 인간의 삶을 비참하고 고통스럽고 유한하다고 묘사한 홉스의 주장을 그대로 대변한다고 볼 수 있다.

이런 주장을 통해 그는 농장에 혁명 사상을 불러일으키고, 혁명의 분위기를 만들어낸다.

◆ 원문 읽기

[고전 속 제시문 100선] (38) 조지 오웰의 '동물농장'
스노우볼과 나폴레옹을 제외하고 농장의 다른 모든 돼지들은 식용 돼지들이었다.

그 중 가장 유명한 돼지는 스퀼러라는 이름을 가진 몸집이 작고 통통한 돼지로 볼은 둥글고 눈은 반짝거리며 행동이 민첩하고 목소리가 날카로웠다.

그는 뛰어난 말솜씨로 좀 어려운 문제를 의논할 때면 이리저리 뛰면서 꼬리를 흔드는 버릇이 있는데 여간 설득력 있는 행동이 아니었다.

다른 동물들은 스퀼러라면 검은 것도 흰 것으로 바꿔놓을 수 있을 거라고 말했다.

이렇게 세 마리의 돼지가 주축이 되어 일을 진행시켰다.

세 마리의 돼지들은 나름대로 메이저 영감의 가르침을 정리하고 다듬어서 이른바 '동물주의'라는 것을 발표했다.

동물들은 일주일에도 몇 번씩 모임을 갖고 반란과 동물주의에 대해 토론하고 원리를 설명하고 가르쳐주었다.

처음에 그들의 모임은 다른 동물들의 우둔함과 냉담한 반응 속에서 진행되었다.

어떤 동물들은 자신들이 '주인님'으로 생각하는 존스 씨에 대한 충성과 의무를 이야기하거나 "존스 씨가 우릴 먹여 살리고 있으니 그가 없으면 우리는 굶어 죽고 말 거야"라는 말을 하기도 했다.

▶해설=처음에 동물들은 혁명 사상을 즉각 받아들이지 못하는데, 이는 혁명의 동기를 의심하는 러시아의 소작농들을 상징한다.

이러한 동물들은 "존스 씨가 우릴 먹여 살리고 있으니 그가 없으면 우리는 굶어 죽고 말거야"와 같은 말로 혁명을 기피하는데, 이들의 모습을 통해 자주적이지만 불확실한 미래를 건설하기 위해서 기존 체제가 주는 안정을 버리기 싫어하는 기성세대들의 목소리를 풍자적으로 대변하고 있다.

한편 그런 동물들을 설득해 혁명 대열에 동참시키는 스퀼러는 "다른 동물들은 스퀼러라면 검은 것도 흰 것으로 바꿔놓을 수 있을 거라고 말했다"라는 부분을 통해 알 수 있듯이 전체주의 정부의 선전 수단을 상징하고 있다.

◆ 원문 읽기

"대단히 경악스러운 일이 드러났소. 스노우볼은 우리를 습격하여 농장을 빼앗으려 하고 있는 핀치필드 농장의 프레드릭에게 자신을 팔아버리고 말았소! 그들이 우리 농장을 침략해 올 때 그가 길잡이 노릇을 할 것입니다.

그런데 그보다 더 놀라운 사실이 있습니다.

스노우볼의 배신은 단지 자신의 야망과 허영으로 인해 일어났다고 우리는 생각해 왔었소. 그러나 그것은 우리가 잘못 안 것입니다.

동무들, 진짜 이유가 무엇인지 여러분은 알겠소? 스노우볼은 처음부터 존스와 한패였던 것입니다.

스노우볼은 처음부터 존스의 밀정이었습니다.

그가 남기고 도망간 문서가 지금 막 발견되었는데 그것이 모든 사실을 증명해주고 있소. 나로서는 그것이 많은 것을 설명해줄 수 있으리라 믿는 바이오. 동무들, 다행히 그 일이 성공하지는 못했지만 '외양간 전투'에서 스노우볼이 우리를 어떻게 패배시켜 파멸을 가져오려 했는지 우리 눈으로 직접 보지 않았습니까?" (중략)

동물들이 농장으로 돌아오자 이상하게도 전투 중에는 보이지 않았던 스퀼러가 꼬리를 흔들며 만족한 듯한 표정으로 미소를 띤 채 그들에게 다가왔다.

동물들은 농장 건물이 있는 곳에서 엄숙하게 울리는 총소리를 들었다.

"저 총소리는 무엇이죠?"

복서가 물었다.

"우리의 승리를 축하하기 위해서죠."

스퀼러가 외쳤다.

"무슨 승리요?"

복서가 물었다.

그의 무릎에서는 피가 흐르고 있었다.

그는 편자 하나를 잃었고 발굽은 찢기었으며,뒷다리에는 10여발의 산탄 총알이 박혀 있었다.

"무슨 승리라니, 동무? 우리는 적을 우리 땅에서, 동물농장의 신성한 땅에서 쫓아내지 않았소?" (중략)

그러나 동물들은 녹색 깃발이 펄럭이고, 승리를 축하하는 일곱 발의 총소리와 나폴레옹의 치하 연설을 들으면서 어쨌든 자신들이 위대한 승리를 거둔 것처럼 여겨졌다.

▶해설=혁명 초기에 공동의 지도자였던 나폴레옹과 스노우볼은 혁명이 성공한 뒤 대립한다.

계속되는 대립에서 승리한 나폴레옹은 풍차 파손의 원인을 스노우볼에게 전가시킴으로써 폭풍을 포함한 모든 과실이 자신의 지도력 부재 때문이라는 동물들의 인식 자체를 완전히 봉쇄시킨다.

이로써 동물들이 단결해서 맞서야 할 공동의 적이 스노우볼로 변해버린다.

아이로니컬하게도 혁명의 지도자인 스노우볼이 나폴레옹의 선전 전략에 의해 동물 전체의 공동의 적으로 왜곡되고 만 것이다.

스퀼러가 스노우볼과 관련해 유언비어를 퍼뜨린 까닭은 최초 혁명에 가담했던 모든 세력들을 완전히 제거하기 위해서다.

공산 혁명 후 동지들에 의해 배척받은 트로츠키를 지목하는 표현일 수도 있다.

이같은 일은 북한에서도 비슷하게 일어났다.

김일성은 한국전쟁 이후 월북한 남로당 총책 박헌영을 반당, 정부 전복 음모, 그리고 미국의 간첩이라는 죄목으로 1955년 숙청하고 독재 권력을 수립하게 된다.

혁명이 표방하는 모든 급진운동의 필연적 귀결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1945년 출간된 『동물농장』의 모습이 10년 뒤 북한에서 그대로 나타나는 것을 보면 조지 오웰의 전체주의적 독재에 대한 탁월한 식견을 발견할 수 있다.

시대와 장소를 불문하고 통할 수 있는 통찰력, 그것이 고전의 매력이 아닐까?

김경환 S·논술 교육팀장 pass@nonsu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