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ㆍ의료등 서비스 제외… '반쪽FTA' 목소리도

지난 2일 타결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은 우리나라 현대사에서 가장 큰 시장 개방 사건으로 기록될 전망이다.

그러나 그 속내를 들여다보면 이번 FTA는 '반쪽짜리 FTA'였다고 아쉬워하는 목소리도 있다.

그 이유는 FTA가 자동차,쇠고기,농산물 등 양국 간 커다란 쟁점이었던 상품 분야에 집중되는 사이 서비스 부문에 대한 개방은 상당 부분 제외됐기 때문이다.

사실 교육,의료 등 서비스 산업은 일상 생활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는 만큼 서비스 시장 개방이야말로 FTA 체결에 따른 변화를 일반 국민들이 피부로 느낄 수 있는 부분이었다.

우리 정부는 당초 FTA를 추진할 때 서비스 시장을 적극 개방해 이 부문에서 일자리도 확충하고 경쟁력을 강화해 새로운 성장 동력으로 삼겠다는 점을 강조했었다.

그러나 국내 이익단체들의 반대와 미국의 소극적인 자세로 서비스 부문 개방은 유명무실해졌고 결과적으로 서비스 분야 경쟁력을 강화하려던 정부의 계획도 일단 좌절됐다는 지적이다.

◆ 교육 시장

교육 시장이 완전히 개방되면 외국 기업이나 개인이 한국에서 직접 학교를 설립하거나 학원을 운영하는 것이 가능해진다.

그렇지 않아도 국내 교육에 대한 불신으로 기회만 되면 너나 할 것 없이 조기에 유학을 떠나는 마당에 교육 시장이 열린다면 그 영향은 실로 매우 클 수밖에 없다.

참고로 미국 내 한국 유학생의 숫자는 지난해 4분기 기준 9만3728명으로 미국 내 전체 외국인 유학생 중 15%를 차지,출신 국가별 순위에서 1위를 기록했다.

또 우리나라에서 유학 목적의 해외 송금은 지난해 말 기준 44억2000만달러(약 4조1000억원)로 이 가운데 절반가량인 1조9800억원이 미국으로 나가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시장이 개방되면 학부모나 학생은 국내에서 다양한 외국계 학교나 학원 중 원하는 곳을 선택할 수 있는 폭이 훨씬 넓어져 굳이 비싼 돈을 들여가며 영어 공부나 수준 높은 교육의 질을 찾아 유학을 가지 않아도 된다.

시장 개방으로 교육 시장의 경쟁이 치열해지면 사교육 비용도 그만큼 낮아질 가능성이 높다.

학생과 학부모 등 교육 서비스의 소비자 입장에서는 얻는 것이 많아지는 셈이다.

반면 교육 서비스를 제공하는 학교나 학원 등은 개방으로 인해 적지 않은 타격을 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극단적인 예로 초등학교 진학시 외국인이 운영하는 유명 사립학교에는 지원자가 넘쳐나고 국내 국·공립학교나 사립학교들은 지원자 감소로 학교의 존폐 자체를 위협받는 상황이 생길 수도 있다는 것이다.

특히 외국인이 직접 학원을 운영할 경우 많은 기존 외국어 학원에는 직접적인 위협이 될 수밖에 없다.

교육계 일각에서 교육의 상품화,불평등 심화,교육 주권 상실 등을 내세우며 개방에 반대한 것은 내심 이 같은 계산이 있었기 때문이다.

한국과 미국이 이번 협상에서 교육 문제를 중요 쟁점으로 삼지 않은 것은 교육 시장의 문호를 넓히는 게 서로 큰 실익이 없다는 공감대가 형성됐기 때문이다.

미국 교육 시장은 공교육을 제외하고는 이미 다 개방된 상태여서 우리가 추가로 개방을 요구할 분야가 많지 않다.

미국도 자국 내 해외 유학생 중 한국인 비율이 1위에 달할 만큼 교육 시장에서 이미 충분한 이득을 누리고 있는 만큼 굳이 교육서비스 분야를 협상 쟁점에 포함할 이유가 없었다.

◆ 의료 시장

병의원과 의료진의 상호 진출을 의미하는 의료시장 개방 역시 거의 이뤄지지 않았다.

최근 해외로 나가 진료나 치료를 받는 사례가 급증하면서 우리나라는 지난해 5090만달러의 의료수지 적자를 기록한 만큼 우리 입장에서는 상호 개방의 필요성이 높은 분야였다.

특히 최근 한국의 성형수술 수준은 해외에서 브랜드화될 정도로 유명세를 얻고 있어 개방이 불리한 것만도 아니었다.

의료 시장의 경우 우리가 영리 의료법인을 원천적으로 제한하고 있는 만큼 미국 측이 의료 시장 진출에 큰 매력을 느끼지 못했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게다가 이미 많은 한국인들이 의료 서비스를 받기 위해 미국을 찾고 있는 만큼 구태여 한국 시장에 직접 진출할 필요성이 크지 않았다는 후문이다.

또 미국 시장 의료 가격이 한국보다 9배나 높아 개방의 이익이 거의 없다는 점도 감안되었을 것으로 평가된다.

◆ 방송 법률 회계 등 기타 서비스 시장

교육,의료 이외의 서비스 분야는 대폭은 아니지만 부분적,단계적인 개방이 이뤄지게 됐다.

방송 시장은 채널사용사업자(PP)에 대한 외국인 직접 투자는 기존과 마찬가지로 지분 소유를 49%로 제한키로 했으나 간접 투자는 100% 개방된다.

이는 외국인이 100% 투자한 법인도 국내 법인으로 보겠다는 의미여서 미국의 대형 미디어 그룹들이 국내에 100% 지분을 투자해 법인을 세운 뒤 이 법인을 통해 국내 PP의 지분 전부를 가질 수 있어 사실상 미국에 100% 개방한 것이나 큰 차이가 없다.

그렇지 않아도 전체 프로그램 중 미국 콘텐츠 비중이 70%에 육박하고 있는 케이블TV 업계는 앞으로 시장 개방으로 상당한 어려움이 예상된다.

미국 자본이 직접 PP 사업을 할 수 있다는 점에서 국내 PP들에 콘텐츠를 판매하지 않거나 팔더라도 높은 가격을 요구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방송 시장과 관련,미국 측은 협상 막판에 유명한 케이블 뉴스채널 CNN의 한국어 더빙을 허용해 줄 것을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으나 우리 측의 반대로 실현되지는 않았다.

CNN 뉴스가 한국어로 실시간 전달될 경우 이미 상당수 시청자를 확보하고 있는 CNN의 시청률이 급증할 가능성이 크고 이에 대한 국내 방송사들의 거부감이 크게 작용했다.

방송사들은 방송 주권이라는 등의 자극적인 용어로 방송 개방에 반대했다.

그러나 소비자 입장에서는 국내 방송사들이 골라 주는 국제 뉴스만 봐야 한다는 점에서 선택권을 계속해서 제한받게 되었다.

영화 산업의 경우 지난해 연간 73일로 종전에 비해 절반으로 축소된 스크린쿼터(국내 영화 의무 상영일)를 현행대로 유지키로 해 앞으로 한국 영화산업이 위기에 처하더라도 다시 현재보다 늘리지 못하게 됐다.

변호사의 법률 자문서비스로 대표되는 법률 시장은 앞으로 5년간 3단계에 걸쳐,회계 세무 시장은 2단계로 나뉘어 개방된다.

법률과 회계시장 개방 역시 논란이 많았던 분야다.

개방을 통해 투명성이 확보된다면 변호사 등을 쓸 때 지금보다 높은 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이점이 있다.

소비자 입장에서는 변호사 수를 크게 늘려 수임료가 더욱 싸지게 유도하는 것도 필요한 조치다.

저작권은 보호 기간이 현행 저작권자 사망 후 50년에서 70년으로 보호 기간이 20년 늘어 문화산업계는 향후 약 2000억원의 로열티(저작권 사용료)를 추가로 부담해야 하게 됐다.

이번 협상 결과는 나라 경제의 장래는 물론 우리들의 직업 활동 등에도 큰 영향을 미치는 변화들이 많다.

FTA 협상에 대해 논술 시험이 출제된다면 어떻게 나올까.

타결 내용에 대한 구체적인 지식을 묻는 문제가 출제된다고 볼 수는 없다.

그러나 시장 개방의 철학과 경쟁 원리를 묻는 문제는 올해 논·구술에서 주요 주제로 출제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자신의 생각을 미리 정리해 두자.

김선태 한국경제신문 경제교육연구소 연구위원 ks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