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인호 <중소기업연구원 원장>
⇒한국경제신문 3월16일자 A39면
1990년대 중반 시장경제를 본격적으로 도입한 이후 베트남은 연평균 8% 내외의 높은 성장을 지속하고 있어 우리나라의 교역, 투자 대상국으로서 중요성이 점점 커지고 있다.
세계은행도 작년 말 '글로벌 경제전망 보고서'에서 합리적인 경제성장이 유지된다는 가정 하에서 2030년까지 '인구 1억명과 GDP 1000억달러 개발도상국가 군(群)'에 새로이 진입할 나라의 하나로 베트남을 꼽는 등 이 나라의 가능성을 높게 평가하고 있다.
풍부한 자원, 상대적으로 높은 교육수준, 정치적 안정 등 장점이 많다.
특히 우리 중소기업들은 중국 다음으로 유망한 투자 대상국으로서의 베트남 가능성에 크게 주목하고 있다.
이미 많은 기업들이 진출해 다양한 경제활동을 벌이고 있어 이 나라의 장래는 우리의 관심 대상이 아닐 수 없다.
베트남에 관한 내외의 낙관적인 전망에도 불구하고 최근 이 나라를 둘러볼 기회를 가졌던 필자에게는 이 나라의 장래가 밝게만 보이지는 않았다.
경제발전 과정에서 사회주의 국가가 갖는 본질적 한계가 도처에서 드러나고 있기 때문이다.
공산당에 권력이 집중하는 데서 오는 피할 수 없는 부패, 비록 시장경제를 한다고 하나 사회주의적 정치와 정부 시스템이 가져오는 전반적 비능률은 어쩌면 당연하다 할 것이다.
조만(早晩)간 이 나라도 사회주의적 정치체제와 시장경제적 경제운영이라는, 종국에는 조화될 수 없는 두 시스템 간 피할 수 없는 갈등에 직면할 것이다.
지금 같은 경제성장의 지속 여부는 이 갈등을 어떻게 극복하느냐에 달려있다고 본다.
그런데 이를 극복하는 것은 다른 나라와 마찬가지로 정치체제가 민주주의 체제로 전환되고 이 바탕 위에서 시장경제 체제가 보다 심화되는 것 이외에는 다른 길이 없을 것이다.
그런데 이것이 이 나라에서는 특히 어려울 것 같다는 생각이다.
이것은 바로 이 나라의 불멸의 지도자 호찌민(胡志明)과 그의 사상의 극복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베트남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장래는 호찌민을 떠나서 생각할 수 없다.
그는 프랑스, 미국 등 초강대국과의 전쟁을 불굴의 애국심과 특유의 전략 전술을 구사해 승리로 이끌면서 통일 베트남의 기틀을 세웠다.
그는 교육입국의 정신으로 전쟁 중에도 나라의 장래를 위해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혜안(慧眼)을 가졌다.
사후에 발견된 그의 전 재산이 지팡이와 옷 두어 벌, 그가 평소 애독한 정약용의 '목민심서(牧民心書)'등 몇 권의 책이 전부였다는 사실이 말하는 것 같이,전혀 사욕(私慾)이 없었다.
자신의 시체 때문에 땅이 낭비되고 또 우상화될 것을 경계해 사후에 묘지를 만들지 말 것과, 전쟁 종료 후 정치적 보복을 일절 하지 말 것 등 훌륭한 유언을 남겼다.
그래서 그는 전 세계의 사회주의 신봉자들은 물론, 그리고 심지어 전적으로 사상을 달리하는 사람에게서조차 일정 부분 존경의 대상이 되고 있다.
그러니 그의 나라에서 그가 받는 존경과 사랑, 그리고 그의 영향은 사후 40년이 돼 오는 지금도 절대적이다.
그래서 최상의 사회주의 지도자를 가졌던 이 나라가 그 영향에서 영원히 벗어나지 못하고 장기적으로는 오히려 나라 발전이 정체되는 역설(逆說)을 떠올리게 된다.
그렇다면 북한에 호찌민과 너무나 대조되는 지도자가 있는 것은 언젠가 변화되지 않으면 안 될 그 시스템을 위해서 장기적으로는 남북한 모두에게 오히려 다행일 수도 있을까?
필자는 만약 호찌민이 살아 후계자들이 그의 첫 번째 유언을 지키지 않고, 그의 묘역을 성역화하고 극도의 우상화를 진행하고 있는 현실과 그 자신도 몰랐을, 그가 신봉한 사회주의의 원천적 한계가 드러나는 것을 본다면 어떤 반응을 보일까 하는 상상을 해 본다.
한 나라의 장기 발전 여부는 결국은 그 나라가 선택한 전반적인 국가시스템에 달려 있다.
ihkim@kosbi.r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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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상 만드는 사회 제대로 발전할 수 없다
베트남 사람들은 두드러지게 자존심이 센 민족이다.
외견상 왜소해 보이지만 20세기 들어 프랑스, 미국과의 전쟁에서 이겼고 중국과 싸운 중월전쟁에서도 사실상 승리했다.
고대의 중월(中越) 전쟁인 제갈공명의 칠종칠금(七縱七擒)의 고사도 과장·왜곡이 심한 소설 '삼국지연의'에서나 나오는 이야기일 따름이다.
실제 역사에서는 촉한의 군대가 당시 베트남 군대와 몇 번 싸우다 스스로 물러갔을 뿐이다.
또한 1979년 중월전쟁에서 중국은 물러나면서 베트남을 혼내준 것처럼 과장했지만 실제로는 수만명의 사상자를 낸 패배였다.
더 이상 인해전술이 안 먹힌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고 군 현대화를 서두르는 계기가 됐다.
과연 2차대전 이후 '빅5'인 유엔 안보리의 5개 상임이사국 중 세 나라와 맞짱 떠서 이긴 나라가 지구상에 또 있을까? 독일 일본도 못한 것이다.
그러니 베트남 사람들은 가난하게 살았어도 자존심만은 하늘을 찌르고도 남는다.
이런 베트남의 자존심은 국부(國父) 이상의 존재인 호찌민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이 칼럼에서 소개한 대로 호찌민은 권력,부귀영화 등 세속적 욕심이 없는 사람이다.
전쟁터에서도 다산 정약용의 『목민심서』(한자로 쓰여졌음. 당시 베트남은 한자를 사용)를 머리맡에 두고 늘 애독한 일화는 유명하다.
그의 사후 재산 목록을 보면 『목민심서』의 '부임 6조'(관리가 부임할 때 지켜야 할 6가지 계율) 중에서 "청렴한 목민관의 행장은 겨우 이부자리에 속옷, 그리고 고작해야 책 한 수레쯤 싣고 가면 될 것이다"는 가르침을 몸소 실천한 세계의 유일무이한 지도자가 아닌가 싶다.
하지만 자신의 묘를 만들지 말라는 호찌민의 유언은 후계자들에 의해 지켜지지 않았다.
호찌민의 묘소는 1945년 프랑스로부터 독립을 선언했던 바딘 광장에 대리석을 사용한 러시아 양식의 호화 분묘로 만들어졌고, 그의 시신은 방부처리한 상태로 유리관 안에 보관돼 경배의 대상이 되고 있다.
이를 통해 호찌민의 정신을 기리자는 취지이지만 종국에는 우상화(偶像化)·성역화(聖域化)에 다름 아니다.
이는 소위 '불멸의 지도자'라는 북한의 김일성, 김정일 부자가 살아서부터 우상화를 꾀해 온 모습과 묘하게 대조된다.
우상숭배(idolatria)는 성서에서도 철저히 금기시한다.
우상은 창조주에게 다가가는 데 방해하고 호도하기 때문이다.
근대 철학자 프랜시스 베이컨은 "진리의 인식을 방해하는 선입관인 우상(idola)을 없애야 한다"고 갈파했다.
따라서 김인호 원장은 지도자나 정치인을 우상화하는 것은 그 사회가 도달할 한계나 상한선을 설정하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비판한다.
호찌민의 위대함은 식민지 해방 투쟁과 내전의 승리, 외세 배격 등 1980년대까지 베트남의 민족주의적 관점에서 유효했다.
하지만 경제성장을 꾀하고 국리민복(國利民福)을 추구하는 오늘날 베트남에서는 오히려 그의 사상이 걸림돌이 될 수 있다고 김 원장은 지적한다.
시대 변화에 걸맞은 호찌민을 넘어서는 국가 시스템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다.
역사적으로 우상을 만들어 숭배하는 사회가 제대로 발전한 경우를 보지 못했다.
시장경제를 도입해 경제개발에 한창인 베트남에서 호찌민이 우상의 형태로 되살아난다면 과연 지도자로 적합할까?
오형규 한국경제신문 경제교육연구소 연구위원 ohk@hankyung.com
⇒한국경제신문 3월16일자 A39면
1990년대 중반 시장경제를 본격적으로 도입한 이후 베트남은 연평균 8% 내외의 높은 성장을 지속하고 있어 우리나라의 교역, 투자 대상국으로서 중요성이 점점 커지고 있다.
세계은행도 작년 말 '글로벌 경제전망 보고서'에서 합리적인 경제성장이 유지된다는 가정 하에서 2030년까지 '인구 1억명과 GDP 1000억달러 개발도상국가 군(群)'에 새로이 진입할 나라의 하나로 베트남을 꼽는 등 이 나라의 가능성을 높게 평가하고 있다.
풍부한 자원, 상대적으로 높은 교육수준, 정치적 안정 등 장점이 많다.
특히 우리 중소기업들은 중국 다음으로 유망한 투자 대상국으로서의 베트남 가능성에 크게 주목하고 있다.
이미 많은 기업들이 진출해 다양한 경제활동을 벌이고 있어 이 나라의 장래는 우리의 관심 대상이 아닐 수 없다.
베트남에 관한 내외의 낙관적인 전망에도 불구하고 최근 이 나라를 둘러볼 기회를 가졌던 필자에게는 이 나라의 장래가 밝게만 보이지는 않았다.
경제발전 과정에서 사회주의 국가가 갖는 본질적 한계가 도처에서 드러나고 있기 때문이다.
공산당에 권력이 집중하는 데서 오는 피할 수 없는 부패, 비록 시장경제를 한다고 하나 사회주의적 정치와 정부 시스템이 가져오는 전반적 비능률은 어쩌면 당연하다 할 것이다.
조만(早晩)간 이 나라도 사회주의적 정치체제와 시장경제적 경제운영이라는, 종국에는 조화될 수 없는 두 시스템 간 피할 수 없는 갈등에 직면할 것이다.
지금 같은 경제성장의 지속 여부는 이 갈등을 어떻게 극복하느냐에 달려있다고 본다.
그런데 이를 극복하는 것은 다른 나라와 마찬가지로 정치체제가 민주주의 체제로 전환되고 이 바탕 위에서 시장경제 체제가 보다 심화되는 것 이외에는 다른 길이 없을 것이다.
그런데 이것이 이 나라에서는 특히 어려울 것 같다는 생각이다.
이것은 바로 이 나라의 불멸의 지도자 호찌민(胡志明)과 그의 사상의 극복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베트남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장래는 호찌민을 떠나서 생각할 수 없다.
그는 프랑스, 미국 등 초강대국과의 전쟁을 불굴의 애국심과 특유의 전략 전술을 구사해 승리로 이끌면서 통일 베트남의 기틀을 세웠다.
그는 교육입국의 정신으로 전쟁 중에도 나라의 장래를 위해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혜안(慧眼)을 가졌다.
사후에 발견된 그의 전 재산이 지팡이와 옷 두어 벌, 그가 평소 애독한 정약용의 '목민심서(牧民心書)'등 몇 권의 책이 전부였다는 사실이 말하는 것 같이,전혀 사욕(私慾)이 없었다.
자신의 시체 때문에 땅이 낭비되고 또 우상화될 것을 경계해 사후에 묘지를 만들지 말 것과, 전쟁 종료 후 정치적 보복을 일절 하지 말 것 등 훌륭한 유언을 남겼다.
그래서 그는 전 세계의 사회주의 신봉자들은 물론, 그리고 심지어 전적으로 사상을 달리하는 사람에게서조차 일정 부분 존경의 대상이 되고 있다.
그러니 그의 나라에서 그가 받는 존경과 사랑, 그리고 그의 영향은 사후 40년이 돼 오는 지금도 절대적이다.
그래서 최상의 사회주의 지도자를 가졌던 이 나라가 그 영향에서 영원히 벗어나지 못하고 장기적으로는 오히려 나라 발전이 정체되는 역설(逆說)을 떠올리게 된다.
그렇다면 북한에 호찌민과 너무나 대조되는 지도자가 있는 것은 언젠가 변화되지 않으면 안 될 그 시스템을 위해서 장기적으로는 남북한 모두에게 오히려 다행일 수도 있을까?
필자는 만약 호찌민이 살아 후계자들이 그의 첫 번째 유언을 지키지 않고, 그의 묘역을 성역화하고 극도의 우상화를 진행하고 있는 현실과 그 자신도 몰랐을, 그가 신봉한 사회주의의 원천적 한계가 드러나는 것을 본다면 어떤 반응을 보일까 하는 상상을 해 본다.
한 나라의 장기 발전 여부는 결국은 그 나라가 선택한 전반적인 국가시스템에 달려 있다.
ihkim@kosbi.r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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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상 만드는 사회 제대로 발전할 수 없다
베트남 사람들은 두드러지게 자존심이 센 민족이다.
외견상 왜소해 보이지만 20세기 들어 프랑스, 미국과의 전쟁에서 이겼고 중국과 싸운 중월전쟁에서도 사실상 승리했다.
고대의 중월(中越) 전쟁인 제갈공명의 칠종칠금(七縱七擒)의 고사도 과장·왜곡이 심한 소설 '삼국지연의'에서나 나오는 이야기일 따름이다.
실제 역사에서는 촉한의 군대가 당시 베트남 군대와 몇 번 싸우다 스스로 물러갔을 뿐이다.
또한 1979년 중월전쟁에서 중국은 물러나면서 베트남을 혼내준 것처럼 과장했지만 실제로는 수만명의 사상자를 낸 패배였다.
더 이상 인해전술이 안 먹힌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고 군 현대화를 서두르는 계기가 됐다.
과연 2차대전 이후 '빅5'인 유엔 안보리의 5개 상임이사국 중 세 나라와 맞짱 떠서 이긴 나라가 지구상에 또 있을까? 독일 일본도 못한 것이다.
그러니 베트남 사람들은 가난하게 살았어도 자존심만은 하늘을 찌르고도 남는다.
이런 베트남의 자존심은 국부(國父) 이상의 존재인 호찌민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이 칼럼에서 소개한 대로 호찌민은 권력,부귀영화 등 세속적 욕심이 없는 사람이다.
전쟁터에서도 다산 정약용의 『목민심서』(한자로 쓰여졌음. 당시 베트남은 한자를 사용)를 머리맡에 두고 늘 애독한 일화는 유명하다.
그의 사후 재산 목록을 보면 『목민심서』의 '부임 6조'(관리가 부임할 때 지켜야 할 6가지 계율) 중에서 "청렴한 목민관의 행장은 겨우 이부자리에 속옷, 그리고 고작해야 책 한 수레쯤 싣고 가면 될 것이다"는 가르침을 몸소 실천한 세계의 유일무이한 지도자가 아닌가 싶다.
하지만 자신의 묘를 만들지 말라는 호찌민의 유언은 후계자들에 의해 지켜지지 않았다.
호찌민의 묘소는 1945년 프랑스로부터 독립을 선언했던 바딘 광장에 대리석을 사용한 러시아 양식의 호화 분묘로 만들어졌고, 그의 시신은 방부처리한 상태로 유리관 안에 보관돼 경배의 대상이 되고 있다.
이를 통해 호찌민의 정신을 기리자는 취지이지만 종국에는 우상화(偶像化)·성역화(聖域化)에 다름 아니다.
이는 소위 '불멸의 지도자'라는 북한의 김일성, 김정일 부자가 살아서부터 우상화를 꾀해 온 모습과 묘하게 대조된다.
우상숭배(idolatria)는 성서에서도 철저히 금기시한다.
우상은 창조주에게 다가가는 데 방해하고 호도하기 때문이다.
근대 철학자 프랜시스 베이컨은 "진리의 인식을 방해하는 선입관인 우상(idola)을 없애야 한다"고 갈파했다.
따라서 김인호 원장은 지도자나 정치인을 우상화하는 것은 그 사회가 도달할 한계나 상한선을 설정하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비판한다.
호찌민의 위대함은 식민지 해방 투쟁과 내전의 승리, 외세 배격 등 1980년대까지 베트남의 민족주의적 관점에서 유효했다.
하지만 경제성장을 꾀하고 국리민복(國利民福)을 추구하는 오늘날 베트남에서는 오히려 그의 사상이 걸림돌이 될 수 있다고 김 원장은 지적한다.
시대 변화에 걸맞은 호찌민을 넘어서는 국가 시스템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다.
역사적으로 우상을 만들어 숭배하는 사회가 제대로 발전한 경우를 보지 못했다.
시장경제를 도입해 경제개발에 한창인 베트남에서 호찌민이 우상의 형태로 되살아난다면 과연 지도자로 적합할까?
오형규 한국경제신문 경제교육연구소 연구위원 oh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