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IT·엔터·미술·건축 전문가들 '미래'를 말한다

매년 2000여명에 달하는 세계 각국의 정치·경제계 수뇌들이 스위스의 휴양지 다보스에 모여 각종 정보를 교환하고 세계 경제의 발전 방안에 대하여 논의하는 다보스포럼은 전 세계 경제인들에게 최고의 권위를 인정받고 있는 국제포럼이다.

하지만 IT(정보기술) 문화 디자인 등의 업계에 종사하는 사람들이라면 이제 더욱 관심을 기울여야 할 미래 지향적 포럼이 있다.

바로 지난주 미국 캘리포니아주 몬터레이에서 개최된 연례 세계 IT 및 문화계 인사들의 정보 교류장인 TED 컨퍼런스(conference:회의)다.


[Global Issue] 'TED 컨퍼런스'가 뭐지?… 지난주 미국 몬터레이에서 열려
미국 경제주간지 비즈니스위크 최신호(12일자)는 "기술(Technology),엔터테인먼트(Entertainment),디자인(Design)의 머릿글자를 딴 TED 컨퍼런스가 전 세계 IT업계 기업인들과 문화·과학계 전문가들로부터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다"며 "미래 사회에 대한 다양한 아이디어가 쏟아져 나오는 TED 컨퍼런스는 최근 들어 관련 업계에서 다보스포럼에 견줄 만큼 각광받고 있다"고 보도했다.

TED 컨퍼런스는 1984년 미국 몬터레이에서 처음 개최됐다.

이후 매년 같은 장소에서 포럼을 갖다 최근에는 2년에 한 번씩 자리를 옮겨 개최되기도 한다.

지금껏 각국의 기술 전문가와 엔터테인먼트 과학 미술 건축 등의 분야를 대표하는 전문가들이 이 포럼에 참석,미래 사회에 대한 다양한 지식을 공유해 왔다.

1984년 첫 회의에선 애플의 매킨토시컴퓨터와 소니의 콤팩트디스크(CD)가 처음 공개되는 등 신기술 공개의 자리로도 활용돼 왔다.

지난해에는 세계 최대 검색엔진 업체인 구글이 내과의사이자 공중보건 전문가인 래리 브릴리언트를 이 회의를 통해 자체 자선재단인 구글재단 이사로 임명하기도 했다.

또 IT 전문지인 와이어드도 이 회의를 통해 창업을 위한 종자돈을 얻었다.

나흘간(3월7~10일) 열린 올해의 TED 컨퍼런스에서도 각 분야 전문가들의 다양한 아이디어가 쏟아져 나왔다.

올해 컨퍼런스의 주제는 '아이콘(Icons),이단자(Mavericks),천재(Geniuses)'.1000명에 달하는 각계 전문가들은 이번 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4400달러라는 거금도 지불했다.

올해 회의에선 세션별로 전문가 50여명의 주제 발표가 이어졌다.

이번에 마련된 프로그램 중 하나인 '나는 꿈꾼다'(I Have a Dream)에는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을 비롯 가수 폴 사이먼,전쟁 사진작가인 제임스 나크웨이, 생물학자 E O 윌슨 등이 참석해 각각 18분간 자신이 선택한 주제로 프레젠테이션을 벌였다.

영국 버진그룹 창업자인 리처드 브랜슨,동굴 탐험가 빌 스톤, 신경전문가 빌라야누르 라마찬드란 등은 '탐험과 공포'(Exploration and Awe)란 주제로 발표에 나서기도 했다.

TED 컨퍼런스는 최근에는 인도주의에 대해서도 지대한 관심을 보이고 있다.

이를 위해 2005년부터 10만달러 규모의 인도주의상(償)을 시상하고 있으며 올해는 클린턴을 포함한 3명이 이 상을 받았다.

인터넷 결제 서비스업체인 페이팔 설립자 맥스 레브친은 "TED 컨퍼런스에 오면 당신보다 더 똑똑한 사람들을 많이 만날 수 있을 것"이라며 "3년 전 회의에 참석했을 때 스타벅스 커피를 마시다 문득 다른 곳을 쳐다보니 맷 그로닝(만화 '심슨가족'의 원작자)이 있었고, 뒤를 돌아보니 크레이그 벤터(인간 게놈 지도 완성자)가 있었다"고 말했다.

비즈니스위크는 "지금껏 TED 컨퍼런스에는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MS) 회장과 구글 공동 창업자인 세르게이 브린과 래리 페이지, DNA 구조를 공동으로 발견한 제임스 왓슨 등이 참석해 인류의 미래 사회상에 대한 다양한 아이디어를 제시했다"며 "내년에는 참가비가 6000달러로 오르지만 이미 지난달 참석 등록이 모두 완료된 상태"라고 전했다.

안정락 한국경제신문 국제부 기자 jra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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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러그 뽑아 버리고 느리게 살자"

■ 'TED' 이색 주제들

세계적으로 ‘슬로 푸드,슬로 라이프(slow food,slow life)’ 열풍이 불던 2005년.매년 개최되던 미국 캘리포니아주 몬터레이를 떠나 영국 옥스퍼드에서 열렸던 TED 컨퍼런스의 화두도 바로 ‘느리게 살기’였다.

당시 록가수 밥 겔도프 등 예술가들과 ‘이기적 유전자’의 저자인 리처드 도킨스 등 과학자들은 “플러그를 뽑아 버리자,속도를 늦춰라,느리게 사는 게 비결이다”며 ‘느리게 살기’를 강조했다.

소프트웨어 업체 베리타스의 한 부서는 매주 금요일을 ‘이메일 없는 날(email free day)’로 선언한 뒤 주위 사람들의 우려와는 달리 부서의 생산성은 오히려 높아졌고 밝혔다.

단 하나의 정보도 소홀히 할 수 없는 IT(정보기술) 업계에서도 정신 없이 ‘빨리빨리’를 외치는 삶이 오히려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수도 있다는 것을 입증한 셈이다.

또한 당시 회의에선 네트워크로 연결되는 무제한의 정보와 온라인 쇼핑에 열중하는 것은 오히려 삶의 만족도를 떨어뜨린다는 목소리도 이어졌다.

도시화·세계화·소비중심주의가 ‘빨리빨리’ 문화를 만들었고 시간은 늘 부족한 것처럼 여겨지지만 발상을 전환해야 한다는 지적이었다.

작가 배리 슈워츠는 “슈퍼마켓에서 175가지 샐러드 드레싱,40가지 치약,75가지 아이스티,285가지 쿠키 중에서 물건을 고른다고 생각해 보라”며 “정보의 홍수는 오히려 괴로운 일”이라고 강조했다.

언론인 칼 오노레는 “스피드 데이트,스피드 요가 등이 활개치는 세상에서 ‘빨리빨리’를 지원하는 최첨단 제품이 쏟아지지만 우리는 ‘꺼짐’ 단추를 찾아야할 때”라고 주장했다.

그는 “더 많은 정보에 목말라하는 ‘정보 마니아’들이 적지 않지만 이메일 홍수처럼 정신을 산만하게 하는 과도한 정보들은 IQ를 오히려 떨어뜨린다”며 “삶의 속도를 늦추면 더 잘 먹고,더 좋은 사랑을 나누고,일도 더 잘하게 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