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만적 사회주의자에서 전체주의 비판자로의 사상 편력
"정치적 목적―'정치적'이란 용어는 이 경우 가능한 한 넒은 의미의 것이다.
세계를 특정 방향으로 밀고 가려는 욕망, 성취하고자 하는 사회가 어떤 사회여야 할 것인가라는 문제를 놓고 다른 사람들의 생각을 바꿔보려는 욕망. 다시 말하지만, 어떤 책도 진정한 의미에서 정치적 편견으로부터 자유롭지 않다.
예술은 정치와 무관해야 한다는 견해 자체도 하나의 정치적 태도이다.
" (『동물농장』에 수록된 ‘나는 왜 쓰는가’ 중에서)
조지 오웰은 『동물농장(Animal Farm)』(1945), 『1984』(1949) 등의 작품으로 유명해진 작가다.
이 작품들은 중학생들도 한번 정도는 읽거나 들어 보았을 정도로 유명한 작품인데 비해, 오웰의 작품세계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친 경험을 토대로 쓴 『카탈로니아 찬가』는 생소하기만 하다.
"스페인 전쟁과 1936~1937년의 기타 사건들은 정세를 결정적으로 바꿔놓았고 그 이후 나는 내가 어디에 서 있는가를 알게 되었다.
1936년 이후 내가 진지하게 쓴 작품들은 그 한 줄 한 줄이 모두 직접적으로나 간접적으로나 전체주의에 반대하고 내가 아는 민주적 사회주의를 위해 씌여졌다"고 오웰은 말한다.
그리고 『카탈로니아 찬가』는 실제로 조지 오웰이 1936년 말에서 1937년 중반까지 의용병으로서 스페인 내전에 참전하여 프랑코의 파시즘 군대와 맞서 싸우면서 겪은 경험과 감상을 회고록 형식으로 쓴 작품이다.
자! 이제 존 리드의 『세계를 뒤흔든 열흘』, 에드가 스노의 『중국의 붉은 별』과 함께 전쟁 르포문학의 3대 걸작이라고 손꼽히지만 대중들에게 생소한 이 작품의 세계로 들어가 보자.
◆원문읽기
"의용군 체제의 핵심은 장교와 사병 간의 사회적 평등이었다.
장군에서부터 사병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똑같은 보수를 받았고, 똑같은 음식을 먹었고,똑같은 옷을 입었고, 완전한 평등 관계를 유지하며 함께 생활하였다.
사단을 지휘하는 장군의 등을 툭 치며 담배 한 대 달라고 하고 싶으면, 그렇게 해도 무방했다.
아무도 그것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 의용군 내에서 일시적이나마, 계급 없는 사회의 산 표본을 만들어보려 했던 것이다.
물론 완전한 평등은 없었다.
그러나 평등의 수준은 내가 그때까지 보아온 모든 것 이상이었고, 또 내가 전시에 가능하리라고 생각했던 것 이상이었다."
[해설]= 이 작품은 조지 오웰의 체험소설이다.
처음에는 단순히 전쟁 기사를 쓰기 위해 스페인으로 간 오웰은 혁명의 고조된 분위기에 자극받아 의용군에 곧 입대한다.
그것이 그 시기에 가장 해볼 만하고 가치있는 유일한 일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원문은 의용군에 입대하고 나서 목격한 것 중 오웰이 가장 주목하고 있는 부분이다.
그가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경험한 사건들(노동계급이 권력을 잡은 도시)에서 '싸워서 지킬 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고 뛰어든 전쟁에서 자신이 그전에 경험했던 것들과 다른 모습에 대한 설레임과 해방감을 느끼는 대목이라 할 수 있다.
실제로 오웰은 말이 군대이지 전혀 군대다운 면모를 갖추지 못한 형편없는 의용군들의 실체에 경악을 금치 못했다.
하지만 혁명에 뛰어든 외국인의 눈에 비친 의용군의 평등은 그 자체로 충격이며,감동이었을 것이다.
오웰에게 그것은 군대의 기본(기초적인 무기,훈련 등)보다 더 중요했고 그들과 함께 파시스트에 반대해 싸우는 곳에 자신이 머물렀다는 것을 자랑스러워했다.
◆원문읽기
부르주아 '민주주의'로 파시즘에 대항한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이야기다.
부르주아 '민주주의'란 자본주의의 또 다른 이름일 뿐이며,그 점은 파시즘도 마찬가지다.
(…) 파시즘의 유일하고 현실적인 대안은 노동자들의 통제뿐이다.
이보다 낮은 목표를 설정하면 프랑코에게 승리를 넘겨주거나 기껏해야 뒷문으로 파시즘이 들여오는 결과를 낳은 것이다.
한편 노동자들은 자기들이 쟁취한 모든 것은 굳게 지켜야 한다.
반(半)부르주아 정부에 조금이라도 양보하면 결국 기만당할 수밖에 없다.
노동자 의용군과 순찰대는 현재의 형태로 보존되어야 한다.
그들을 '부르주아화'하려는 모든 시도에 저항해야 한다.
노동자들이 군대를 통제하지 못하면,군대가 노동자들을 통제할 것이다.
전쟁과 혁명은 분리할 수 없다.
[해설]= 스페인에서는 1931년 군주제를 반대하는 혁명위원회가 결성됐고 그것을 기반으로 제2공화국을 건설했다.
혁명위원회는 임시정부가 됐다.
좌익계 공화파는 '모든 노동자의 민주공화국'임을 규정하는 헌법을 제정했다.
1936년 7월 스페인령 모로코의 주둔군 책임자 프랑코가 파시스트 반란을 일으켰다.
따라서 노동자들은 프랑코 반란군에 대한 저항과 동시에 자신들이 희망하는 혁명을 진행해야 했다.
그러나 반란군에 대한 저항과 혁명 중 어느 것을 먼저 해결할 것인지를 두고 반파시트 인민전선은 논쟁하고 대립했다.
반파시스트 인민전선의 논쟁 중에서 오웰의 입장은 혁명이 곧 전쟁을 승리로 이끌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공산당은 반파시스트 전쟁에 집중할 것을 선택했다.
때문에 혁명이 먼저라고 주장하는 것은 반파시스트 전쟁으로의 단결을 해치고, 그것은 바로 파시스트를 이롭게 하는 일이라며 오웰을 간첩으로 몰아 탄압했다.
원문은 오웰이 그 과정에서 자신의 입장을 분명하게 표현하는 부분이라고 여겨진다.
파시즘에 저항하는 것은 사회주의 혁명을 완성하는 과정에서만 가능하기에, 노동자 의용군(자신이 참가해서 보고 느낀 그대로)과 순찰대를 보존해 노동자들이 철저하게 군대를 통제해야 한다는 것이다.
파시즘에 대한 저항과 사회주의 혁명을 따로 떨어진 것이 아니라 동시적으로 이뤄지는 것이라는 오웰의 신념이 잘 드러난 부분이다.
오웰은 '전쟁을 통한 혁명이냐,혁명이 곧 전쟁의 승리냐'라는 입장의 차이로 인한 탄압이 부당하다는 생각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씻을 수 없는 실망감을 갖게 된다.
공산당에 느낀 실망감은 오웰의 작품 세계에 큰 영향을 미치고 후에 스탈린의 독재를 비판하는 『동물농장』을 쓰게 된 계기가 됐다고 볼 수 있다.
◆원문읽기
참호의 냄새, 가없이 뻗어나가는 서광, 땅땅거리는 싸늘한 총소리, 폭탄의 굉음과 섬광. 지난 12월, 사람들이 아직 혁명을 믿고 있던 시절의 바르셀로나를 찾은 아침의 맑고 차가운 빛, 병영 연병장의 쿵쿵거리는 군화발 소리. 음식을 사기 위한 줄과 검붉은 깃발, 스페인 의용군 병사들의 얼굴. 무엇보다도 스페인 병사들의 얼굴. (…) 이런 참사―어떻게 끝이 나건 스페인 전쟁은 살육과 신체적 고통은 별도로 하더라도 경악할 만한 참사였다는 것이 드러날 것이다―를 잠깐 보았다고 해서 꼭 환멸과 냉소만 생기는 것은 아니다.
이상한 일이지만, 그 경험 전체를 통해 인간의 품위에 대한 나의 믿음은 약해지기는커녕 오히려 강해졌다.
[해설]= 『카탈로니아 찬가』 전체에는 오웰이 가까이서 본 전쟁, 정쟁, 혼란 그리고 혁명적 투사들의 억울하고 쓸쓸한 죽음이 깔려 있다.
때문에 혹자들은 오웰이 인간의 무기력함, 혁명의 부정, 권력에의 환멸을 이 작품에서 고발하고 있다고도 평가한다.
하지만 오웰이 느끼는 분노, 절망, 무력함 뒷면에는 기본적으로 사람 사이의 관계가 이제까지 보기 힘들었던 새로운 세계로 들어갈 때의 해방감과 설레임, 감격스러움이 있었다는 것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참혹한 전쟁의 실상, 믿었던 동지들과의 정쟁 속에서 실망과 환멸을 느낀 것이 아니라 그 어디서도 찾아 볼 수 없는 '인간적 품위'를 확인했기 때문에 '찬가'라고 제목을 붙인 것은 아닐런지….
그러나 이념은 바뀌고 시대는 흘렀다.
스페인은 프랑코 독재를 거치면서 민주화됐고 사회주의 혁명들은 지구촌 곳곳에서 낡은 이념이 되어 혼란만 재촉하고 있을 뿐이다.
소련 공산 혁명은 당초 순수한 열정의 시대가 지나고 지금은 전체주의 독재체제로만 기억되고 있을 뿐이다.
오웰 자신도 사상적 편력을 거치면서 혁명적 열기가 현실 정치에서 어떻게 전체주의적 사고와 체제로 부패해가는지를 그의 작품들에서 표현해 내고 있다.
20세기 전반 세계 젊은이들의 피를 끓게 만들었던 혁명적 분위기 속에서 쓰여진 글이라는 점을 감안하고 『카탈로니아 찬가』를 읽어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스페인 내전과 관련해서는 피카소의 그림 『게르니카』,헤밍웨이의 소설 『누구를 위해 종은 울리나』 등의 명작들도 있다.
논술과 관련해서는 전체주의에 대한 비판이라는 차원에서 문제가 출제될 수도 있고 혁명적 열정의 제도화 가능성이나 평등한 조직의 설계가 실제로 가능할 것인지 등으로 질문이 구성될 수도 있겠다.
김은희 S·논술 선임연구원 lovemin@nonsul.com
"정치적 목적―'정치적'이란 용어는 이 경우 가능한 한 넒은 의미의 것이다.
세계를 특정 방향으로 밀고 가려는 욕망, 성취하고자 하는 사회가 어떤 사회여야 할 것인가라는 문제를 놓고 다른 사람들의 생각을 바꿔보려는 욕망. 다시 말하지만, 어떤 책도 진정한 의미에서 정치적 편견으로부터 자유롭지 않다.
예술은 정치와 무관해야 한다는 견해 자체도 하나의 정치적 태도이다.
" (『동물농장』에 수록된 ‘나는 왜 쓰는가’ 중에서)
조지 오웰은 『동물농장(Animal Farm)』(1945), 『1984』(1949) 등의 작품으로 유명해진 작가다.
이 작품들은 중학생들도 한번 정도는 읽거나 들어 보았을 정도로 유명한 작품인데 비해, 오웰의 작품세계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친 경험을 토대로 쓴 『카탈로니아 찬가』는 생소하기만 하다.
"스페인 전쟁과 1936~1937년의 기타 사건들은 정세를 결정적으로 바꿔놓았고 그 이후 나는 내가 어디에 서 있는가를 알게 되었다.
1936년 이후 내가 진지하게 쓴 작품들은 그 한 줄 한 줄이 모두 직접적으로나 간접적으로나 전체주의에 반대하고 내가 아는 민주적 사회주의를 위해 씌여졌다"고 오웰은 말한다.
그리고 『카탈로니아 찬가』는 실제로 조지 오웰이 1936년 말에서 1937년 중반까지 의용병으로서 스페인 내전에 참전하여 프랑코의 파시즘 군대와 맞서 싸우면서 겪은 경험과 감상을 회고록 형식으로 쓴 작품이다.
자! 이제 존 리드의 『세계를 뒤흔든 열흘』, 에드가 스노의 『중국의 붉은 별』과 함께 전쟁 르포문학의 3대 걸작이라고 손꼽히지만 대중들에게 생소한 이 작품의 세계로 들어가 보자.
◆원문읽기
"의용군 체제의 핵심은 장교와 사병 간의 사회적 평등이었다.
장군에서부터 사병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똑같은 보수를 받았고, 똑같은 음식을 먹었고,똑같은 옷을 입었고, 완전한 평등 관계를 유지하며 함께 생활하였다.
사단을 지휘하는 장군의 등을 툭 치며 담배 한 대 달라고 하고 싶으면, 그렇게 해도 무방했다.
아무도 그것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 의용군 내에서 일시적이나마, 계급 없는 사회의 산 표본을 만들어보려 했던 것이다.
물론 완전한 평등은 없었다.
그러나 평등의 수준은 내가 그때까지 보아온 모든 것 이상이었고, 또 내가 전시에 가능하리라고 생각했던 것 이상이었다."
[해설]= 이 작품은 조지 오웰의 체험소설이다.
처음에는 단순히 전쟁 기사를 쓰기 위해 스페인으로 간 오웰은 혁명의 고조된 분위기에 자극받아 의용군에 곧 입대한다.
그것이 그 시기에 가장 해볼 만하고 가치있는 유일한 일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원문은 의용군에 입대하고 나서 목격한 것 중 오웰이 가장 주목하고 있는 부분이다.
그가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경험한 사건들(노동계급이 권력을 잡은 도시)에서 '싸워서 지킬 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고 뛰어든 전쟁에서 자신이 그전에 경험했던 것들과 다른 모습에 대한 설레임과 해방감을 느끼는 대목이라 할 수 있다.
실제로 오웰은 말이 군대이지 전혀 군대다운 면모를 갖추지 못한 형편없는 의용군들의 실체에 경악을 금치 못했다.
하지만 혁명에 뛰어든 외국인의 눈에 비친 의용군의 평등은 그 자체로 충격이며,감동이었을 것이다.
오웰에게 그것은 군대의 기본(기초적인 무기,훈련 등)보다 더 중요했고 그들과 함께 파시스트에 반대해 싸우는 곳에 자신이 머물렀다는 것을 자랑스러워했다.
◆원문읽기
부르주아 '민주주의'로 파시즘에 대항한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이야기다.
부르주아 '민주주의'란 자본주의의 또 다른 이름일 뿐이며,그 점은 파시즘도 마찬가지다.
(…) 파시즘의 유일하고 현실적인 대안은 노동자들의 통제뿐이다.
이보다 낮은 목표를 설정하면 프랑코에게 승리를 넘겨주거나 기껏해야 뒷문으로 파시즘이 들여오는 결과를 낳은 것이다.
한편 노동자들은 자기들이 쟁취한 모든 것은 굳게 지켜야 한다.
반(半)부르주아 정부에 조금이라도 양보하면 결국 기만당할 수밖에 없다.
노동자 의용군과 순찰대는 현재의 형태로 보존되어야 한다.
그들을 '부르주아화'하려는 모든 시도에 저항해야 한다.
노동자들이 군대를 통제하지 못하면,군대가 노동자들을 통제할 것이다.
전쟁과 혁명은 분리할 수 없다.
[해설]= 스페인에서는 1931년 군주제를 반대하는 혁명위원회가 결성됐고 그것을 기반으로 제2공화국을 건설했다.
혁명위원회는 임시정부가 됐다.
좌익계 공화파는 '모든 노동자의 민주공화국'임을 규정하는 헌법을 제정했다.
1936년 7월 스페인령 모로코의 주둔군 책임자 프랑코가 파시스트 반란을 일으켰다.
따라서 노동자들은 프랑코 반란군에 대한 저항과 동시에 자신들이 희망하는 혁명을 진행해야 했다.
그러나 반란군에 대한 저항과 혁명 중 어느 것을 먼저 해결할 것인지를 두고 반파시트 인민전선은 논쟁하고 대립했다.
반파시스트 인민전선의 논쟁 중에서 오웰의 입장은 혁명이 곧 전쟁을 승리로 이끌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공산당은 반파시스트 전쟁에 집중할 것을 선택했다.
때문에 혁명이 먼저라고 주장하는 것은 반파시스트 전쟁으로의 단결을 해치고, 그것은 바로 파시스트를 이롭게 하는 일이라며 오웰을 간첩으로 몰아 탄압했다.
원문은 오웰이 그 과정에서 자신의 입장을 분명하게 표현하는 부분이라고 여겨진다.
파시즘에 저항하는 것은 사회주의 혁명을 완성하는 과정에서만 가능하기에, 노동자 의용군(자신이 참가해서 보고 느낀 그대로)과 순찰대를 보존해 노동자들이 철저하게 군대를 통제해야 한다는 것이다.
파시즘에 대한 저항과 사회주의 혁명을 따로 떨어진 것이 아니라 동시적으로 이뤄지는 것이라는 오웰의 신념이 잘 드러난 부분이다.
오웰은 '전쟁을 통한 혁명이냐,혁명이 곧 전쟁의 승리냐'라는 입장의 차이로 인한 탄압이 부당하다는 생각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씻을 수 없는 실망감을 갖게 된다.
공산당에 느낀 실망감은 오웰의 작품 세계에 큰 영향을 미치고 후에 스탈린의 독재를 비판하는 『동물농장』을 쓰게 된 계기가 됐다고 볼 수 있다.
◆원문읽기
참호의 냄새, 가없이 뻗어나가는 서광, 땅땅거리는 싸늘한 총소리, 폭탄의 굉음과 섬광. 지난 12월, 사람들이 아직 혁명을 믿고 있던 시절의 바르셀로나를 찾은 아침의 맑고 차가운 빛, 병영 연병장의 쿵쿵거리는 군화발 소리. 음식을 사기 위한 줄과 검붉은 깃발, 스페인 의용군 병사들의 얼굴. 무엇보다도 스페인 병사들의 얼굴. (…) 이런 참사―어떻게 끝이 나건 스페인 전쟁은 살육과 신체적 고통은 별도로 하더라도 경악할 만한 참사였다는 것이 드러날 것이다―를 잠깐 보았다고 해서 꼭 환멸과 냉소만 생기는 것은 아니다.
이상한 일이지만, 그 경험 전체를 통해 인간의 품위에 대한 나의 믿음은 약해지기는커녕 오히려 강해졌다.
[해설]= 『카탈로니아 찬가』 전체에는 오웰이 가까이서 본 전쟁, 정쟁, 혼란 그리고 혁명적 투사들의 억울하고 쓸쓸한 죽음이 깔려 있다.
때문에 혹자들은 오웰이 인간의 무기력함, 혁명의 부정, 권력에의 환멸을 이 작품에서 고발하고 있다고도 평가한다.
하지만 오웰이 느끼는 분노, 절망, 무력함 뒷면에는 기본적으로 사람 사이의 관계가 이제까지 보기 힘들었던 새로운 세계로 들어갈 때의 해방감과 설레임, 감격스러움이 있었다는 것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참혹한 전쟁의 실상, 믿었던 동지들과의 정쟁 속에서 실망과 환멸을 느낀 것이 아니라 그 어디서도 찾아 볼 수 없는 '인간적 품위'를 확인했기 때문에 '찬가'라고 제목을 붙인 것은 아닐런지….
그러나 이념은 바뀌고 시대는 흘렀다.
스페인은 프랑코 독재를 거치면서 민주화됐고 사회주의 혁명들은 지구촌 곳곳에서 낡은 이념이 되어 혼란만 재촉하고 있을 뿐이다.
소련 공산 혁명은 당초 순수한 열정의 시대가 지나고 지금은 전체주의 독재체제로만 기억되고 있을 뿐이다.
오웰 자신도 사상적 편력을 거치면서 혁명적 열기가 현실 정치에서 어떻게 전체주의적 사고와 체제로 부패해가는지를 그의 작품들에서 표현해 내고 있다.
20세기 전반 세계 젊은이들의 피를 끓게 만들었던 혁명적 분위기 속에서 쓰여진 글이라는 점을 감안하고 『카탈로니아 찬가』를 읽어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스페인 내전과 관련해서는 피카소의 그림 『게르니카』,헤밍웨이의 소설 『누구를 위해 종은 울리나』 등의 명작들도 있다.
논술과 관련해서는 전체주의에 대한 비판이라는 차원에서 문제가 출제될 수도 있고 혁명적 열정의 제도화 가능성이나 평등한 조직의 설계가 실제로 가능할 것인지 등으로 질문이 구성될 수도 있겠다.
김은희 S·논술 선임연구원 lovemin@nonsu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