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을 고치자는 얘기가 나올 때마다 정치권은 '판도라의 상자'를 대하는 것처럼 혼란에 휩싸인다. 5년 단임이냐 4년 중임이냐는 대통령 임기를 따지는 게 아니라 온갖 요구들이 쏟아져나와 혼란이 심해질 수 있어서다. 대표적으로 한나라당 등 야당 일부에서는 의원내각제를 다시 검토해 보는 게 어떻겠느냐는 의견이 조심스레 나오고 있다. 몇 차례 이어진 대선에서 지역감정이 격화되는 등 국론분열이 심각했다는 자기반성에서 아예 통치구조 자체를 바꾸자는 견해다.
◆추상적 표현 VS 구체적 명시
일부에서는 헌법 조항이 너무 구체적이어서 바람직하지 않다는 주장을 편다. 듣기에 좋은 내용을 이것 저것 다 넣다 보니 논리적으로 모순되는 내용들도 들어 있다는 것. 우리 헌법이 자유시장경제를 기본으로 하면서도 중소기업과 농민의 보호,환경권까지 규정하는 등 너무 이상주의에 치우쳤고 그래서 무수한 위헌소송의 원인이 되고 있다는 설명이다.
영토조항이 대표적인 사례다. 헌법 3조는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로 한다"고 영토를 규정하고 있고 전문이나 4조 등에서는 평화적 통일을 추진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북한까지 영토로 명시한 영토조항은 대한민국의 지배력이 북한지역까지 미친다는 당위성을 주장하는 반면,평화통일조항은 분단 현실을 인정하는 바탕 위에서 평화통일을 지향하자고 규정하고 있어 서로 상충된다.
때문에 일부 개헌론자들은 헌법이 추상성을 특징으로 하는 만큼 영국의 불문헌법을 본받아 최소한의 규정만을 담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논리를 펴고 있다.
반면 헌법학자들의 모임인 한국헌법학회는 지난해 말 대통령 4년중임제를 제안하면서 헌법조항의 구체화를 추가 요구했다. 예컨데 국민의 기본권 보장 부분이 단순화되어 있으니 '생명권' 조항을 포함시키는 등 조금 더 명확히 조문화하자는 지적이다. 국가의 경제행위인 재정(財政)운용에 대해서는 거의 규정하고 있지 않아 구체적으로 명시하자는 지적도 있다.
◆보수 진보 대립도
진보세력들은 '사회경제적 민주화' 요구를 더욱 강화하고 영토 '통일헌법'을 요구할 것으로 알려진다. 제헌헌법에 들어있던 '이익배분균점권'을 되살려 분배를 강화하고 영토조항을 손질해 분단 현실을 인정하는 바탕 위에서 통일을 적극적으로 추진하는 내용을 담자는 주장이다. 이 밖에 지구적 책임을 강조하거나 사회ㆍ문화적 다양성 등 미래지향적인 내용을 담자는 목소리도 있다.
반면 보수세력은 제3공화국 헌법이 시장경제 원칙에 가장 충실했다고 주장하며 '적정한 소득의 분배''시장지배와 경제력 남용금지' 등 현행 헌법의 '사회주의적 조항'들의 삭제를 요구하고 있다.
◆개헌불가론
우리나라 개헌의 역사가 특정 집권세력이 장기집권의 편의을 위해 이뤄진 것이라며 개헌 논의 자체를 의심하는 주장도 있다. 실제로 제헌헌법과 1960년 3차 개헌,1987년 9차 개헌을 제외하고 대부분의 개헌은 독재와 장기집권에 악용됐다.
대표적인 것이 이승만 대통령의 '4사5입(반올림)'개헌. 이 대통령은 1954년 초대 대통령에 한해 연임 제한을 폐지하는 방향으로 헌법을 개정하려고 시도했다. 재적의원의 3분의 2 이상이 찬성해야 개헌이 이뤄질 수 있었지만 당시 여당인 자유당 의원은 135명으로 재적의원(203명)의 3분의 2인 135.333명을 충족시키지 못했다.
이에 자유당은 과감히 '반올림'을 해 정족수를 135명으로 정한 뒤 개헌안을 통과시켰다. 이로 인해 2차 개헌은 '4사5입' 개헌이라는 웃지 못할 별칭을 얻게 됐다.
또 다른 대표적인 예는 '유신헌법'. 3선 대통령이 가능하도록 개헌을 한 바 있던 박정희 대통령은 1972년 10월 헌법정지를 선언한다. 대통령 중임제한을 폐지하고 임기를 6년으로 늘린 박 대통령은 대법원의 위헌심판권과 국회의 국정감사권을 빼앗았다. 비상시국에서 법률과 같은 효력을 갖는 긴급조치를 대통령이 내릴 수 있도록 한 것도 이 때의 일이다. '유신헌법' 개헌으로 우리나라의 민주주의는 퇴보의 길을 걷기도 했다.
5ㆍ18 민주화운동을 짓누르고 들어선 신군부는 1980년 10월 8차 개헌을 통해 간접선거를 통한 임기 7년의 대통령 선거제도를 만들었다. 장기집권의 폐해를 막기 위해 단임제가 명문화됐고 전두환 대통령이 선출됐다. 장기집권의 고리를 끊은 것은 분명 진전이었지만 간접선거에 대한 국민 불만은 사라지지 않았다. 1987년 국민들의 직선제 요구로 9차 개헌(1987년 10월)에서는 임기 5년의 대통령을 국민의 손으로 직접 뽑게 바뀌었고 여전히 유효한 제도라는 게 개헌불가론자들의 주장이다.
김현예 한국경제신문 사회부 기자 yeah@hankyung.com
"대통령 임기만 5년 단임 → 4년 연임"
■ 노 대통령의 개헌 제의
노무현 대통령이 주장하는 개헌은 헌법의 전반적인 수정이 아니라 대통령 임기에 관한 조항 하나만을 고치자는 것이다. 현재의 대통령 5년 단임제를 4년 연임제로 바꾸자는 제안이다. '대통령의 임기는 5년으로 하며,중임할 수 없다'는 제70조만 고치자는 제안이기에 '원 포인트(One Point) 개헌'이라고도 불린다.
사실 대통령 5년 단임제의 부작용은 이전부터 제기돼 왔다. 1987년 개헌과정에서 대통령의 장기집권을 막기 위해 도입된 이 제도는 대통령의 국정 수행 실적이 다음 선거에서 평가받지 못하고 국가적 전략들이 일관되게 추진되기 어렵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또 대선뿐 아니라 임기 4년의 국회의원 선거와 지방자치단체 선거가 수시로 치러지면서 정치적 대결과 갈등을 심화시킨다는 주장도 있었다.
이러한 부작용에 대해선 야당도 기본적으로 동의한다. 그러나 이 시점에서 대통령이 개헌 얘기를 꺼낸 이유가 차기 대선을 여당쪽에 유리하게 끌고가기 위한 의도가 아니냐는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고 있다. 한나라당 유력 대선 주자인 이명박 전 서울시장은 "개헌 필요성은 인정하지만 정치적 의도를 갖고 지금 당장 논의하는 것은 반대한다"며 "개헌은 다음 정권의 임기 초기에 해야 한다"고 밝혔다. 박근혜 전 대표도 "참 나쁜 대통령"이라는 말까지 하며 거부감을 보였다.
이에 대해 노 대통령은 "여야 어떤 후보에게도 유ㆍ불리가 없으며 이번 개헌으로 인해 현직 대통령이 얻는 정치적 이해관계는 없다"는 점을 여러 차례 강조했다.
또한 "차기 국회의원은 2012년 5월에 임기가 만료되고 차기 대통령은 2013년 2월에 임기가 만료되므로 어느 한쪽의 임기 1년을 줄이지 않으면 개헌이 불가능하다. 따라서 임기를 줄이지 않고 개헌을 할 수 있는 기회는 20년 만에 한 번 뿐인데 이번에 못하면 20년을 또 기다려야 한다"는 논리를 펴고 있다.
대선과 국회의원 선거가 올해 말과 내년 초에 열리는 2007년에 개헌을 해야 대통령과 국회의원의 임기가 4년으로 같아져 그동안 잦은 선거에 따른 혼란과 갈등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주장이다.
각종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4년 연임제 개헌에 찬성하는 여론은 과반수를 넘고 있다. 그러나 60%가량의 사람들이 현 정부 임기 내 개헌에 반대하고 있다.
◆추상적 표현 VS 구체적 명시
일부에서는 헌법 조항이 너무 구체적이어서 바람직하지 않다는 주장을 편다. 듣기에 좋은 내용을 이것 저것 다 넣다 보니 논리적으로 모순되는 내용들도 들어 있다는 것. 우리 헌법이 자유시장경제를 기본으로 하면서도 중소기업과 농민의 보호,환경권까지 규정하는 등 너무 이상주의에 치우쳤고 그래서 무수한 위헌소송의 원인이 되고 있다는 설명이다.
영토조항이 대표적인 사례다. 헌법 3조는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로 한다"고 영토를 규정하고 있고 전문이나 4조 등에서는 평화적 통일을 추진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북한까지 영토로 명시한 영토조항은 대한민국의 지배력이 북한지역까지 미친다는 당위성을 주장하는 반면,평화통일조항은 분단 현실을 인정하는 바탕 위에서 평화통일을 지향하자고 규정하고 있어 서로 상충된다.
때문에 일부 개헌론자들은 헌법이 추상성을 특징으로 하는 만큼 영국의 불문헌법을 본받아 최소한의 규정만을 담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논리를 펴고 있다.
반면 헌법학자들의 모임인 한국헌법학회는 지난해 말 대통령 4년중임제를 제안하면서 헌법조항의 구체화를 추가 요구했다. 예컨데 국민의 기본권 보장 부분이 단순화되어 있으니 '생명권' 조항을 포함시키는 등 조금 더 명확히 조문화하자는 지적이다. 국가의 경제행위인 재정(財政)운용에 대해서는 거의 규정하고 있지 않아 구체적으로 명시하자는 지적도 있다.
◆보수 진보 대립도
진보세력들은 '사회경제적 민주화' 요구를 더욱 강화하고 영토 '통일헌법'을 요구할 것으로 알려진다. 제헌헌법에 들어있던 '이익배분균점권'을 되살려 분배를 강화하고 영토조항을 손질해 분단 현실을 인정하는 바탕 위에서 통일을 적극적으로 추진하는 내용을 담자는 주장이다. 이 밖에 지구적 책임을 강조하거나 사회ㆍ문화적 다양성 등 미래지향적인 내용을 담자는 목소리도 있다.
반면 보수세력은 제3공화국 헌법이 시장경제 원칙에 가장 충실했다고 주장하며 '적정한 소득의 분배''시장지배와 경제력 남용금지' 등 현행 헌법의 '사회주의적 조항'들의 삭제를 요구하고 있다.
◆개헌불가론
우리나라 개헌의 역사가 특정 집권세력이 장기집권의 편의을 위해 이뤄진 것이라며 개헌 논의 자체를 의심하는 주장도 있다. 실제로 제헌헌법과 1960년 3차 개헌,1987년 9차 개헌을 제외하고 대부분의 개헌은 독재와 장기집권에 악용됐다.
대표적인 것이 이승만 대통령의 '4사5입(반올림)'개헌. 이 대통령은 1954년 초대 대통령에 한해 연임 제한을 폐지하는 방향으로 헌법을 개정하려고 시도했다. 재적의원의 3분의 2 이상이 찬성해야 개헌이 이뤄질 수 있었지만 당시 여당인 자유당 의원은 135명으로 재적의원(203명)의 3분의 2인 135.333명을 충족시키지 못했다.
이에 자유당은 과감히 '반올림'을 해 정족수를 135명으로 정한 뒤 개헌안을 통과시켰다. 이로 인해 2차 개헌은 '4사5입' 개헌이라는 웃지 못할 별칭을 얻게 됐다.
또 다른 대표적인 예는 '유신헌법'. 3선 대통령이 가능하도록 개헌을 한 바 있던 박정희 대통령은 1972년 10월 헌법정지를 선언한다. 대통령 중임제한을 폐지하고 임기를 6년으로 늘린 박 대통령은 대법원의 위헌심판권과 국회의 국정감사권을 빼앗았다. 비상시국에서 법률과 같은 효력을 갖는 긴급조치를 대통령이 내릴 수 있도록 한 것도 이 때의 일이다. '유신헌법' 개헌으로 우리나라의 민주주의는 퇴보의 길을 걷기도 했다.
5ㆍ18 민주화운동을 짓누르고 들어선 신군부는 1980년 10월 8차 개헌을 통해 간접선거를 통한 임기 7년의 대통령 선거제도를 만들었다. 장기집권의 폐해를 막기 위해 단임제가 명문화됐고 전두환 대통령이 선출됐다. 장기집권의 고리를 끊은 것은 분명 진전이었지만 간접선거에 대한 국민 불만은 사라지지 않았다. 1987년 국민들의 직선제 요구로 9차 개헌(1987년 10월)에서는 임기 5년의 대통령을 국민의 손으로 직접 뽑게 바뀌었고 여전히 유효한 제도라는 게 개헌불가론자들의 주장이다.
김현예 한국경제신문 사회부 기자 yeah@hankyung.com
"대통령 임기만 5년 단임 → 4년 연임"
■ 노 대통령의 개헌 제의
노무현 대통령이 주장하는 개헌은 헌법의 전반적인 수정이 아니라 대통령 임기에 관한 조항 하나만을 고치자는 것이다. 현재의 대통령 5년 단임제를 4년 연임제로 바꾸자는 제안이다. '대통령의 임기는 5년으로 하며,중임할 수 없다'는 제70조만 고치자는 제안이기에 '원 포인트(One Point) 개헌'이라고도 불린다.
사실 대통령 5년 단임제의 부작용은 이전부터 제기돼 왔다. 1987년 개헌과정에서 대통령의 장기집권을 막기 위해 도입된 이 제도는 대통령의 국정 수행 실적이 다음 선거에서 평가받지 못하고 국가적 전략들이 일관되게 추진되기 어렵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또 대선뿐 아니라 임기 4년의 국회의원 선거와 지방자치단체 선거가 수시로 치러지면서 정치적 대결과 갈등을 심화시킨다는 주장도 있었다.
이러한 부작용에 대해선 야당도 기본적으로 동의한다. 그러나 이 시점에서 대통령이 개헌 얘기를 꺼낸 이유가 차기 대선을 여당쪽에 유리하게 끌고가기 위한 의도가 아니냐는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고 있다. 한나라당 유력 대선 주자인 이명박 전 서울시장은 "개헌 필요성은 인정하지만 정치적 의도를 갖고 지금 당장 논의하는 것은 반대한다"며 "개헌은 다음 정권의 임기 초기에 해야 한다"고 밝혔다. 박근혜 전 대표도 "참 나쁜 대통령"이라는 말까지 하며 거부감을 보였다.
이에 대해 노 대통령은 "여야 어떤 후보에게도 유ㆍ불리가 없으며 이번 개헌으로 인해 현직 대통령이 얻는 정치적 이해관계는 없다"는 점을 여러 차례 강조했다.
또한 "차기 국회의원은 2012년 5월에 임기가 만료되고 차기 대통령은 2013년 2월에 임기가 만료되므로 어느 한쪽의 임기 1년을 줄이지 않으면 개헌이 불가능하다. 따라서 임기를 줄이지 않고 개헌을 할 수 있는 기회는 20년 만에 한 번 뿐인데 이번에 못하면 20년을 또 기다려야 한다"는 논리를 펴고 있다.
대선과 국회의원 선거가 올해 말과 내년 초에 열리는 2007년에 개헌을 해야 대통령과 국회의원의 임기가 4년으로 같아져 그동안 잦은 선거에 따른 혼란과 갈등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주장이다.
각종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4년 연임제 개헌에 찬성하는 여론은 과반수를 넘고 있다. 그러나 60%가량의 사람들이 현 정부 임기 내 개헌에 반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