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리적 근거로 구체성 있어야 '힘' 을 갖지!

[논제] 지문 (가)에 제시된 '선거'의 양상을 살펴보고, 지문 (나)에 제시된 '추첨'이 대안이 될 수 있는가에 대하여 자신의 견해를 논술하시오.

글을 쓰는 행위는 필자의 일방적인 행위가 아니라,독자를 가정한 상호적 의사소통행위이다.

특히 논술은 가상독자에게 자신의 논리를 펼치는 글로 설득적 성격이 강한 글이다.

이러한 사실과 관련하여 볼 때 논술은 논리적이고 구체적인 근거를 들어 독자를 얼마만큼 설득시킬 수 있느냐에 따라 글에 대한 평가가 확연히 달라질 수 있다.

위의 논술은 하나의 상황에 대하여 제시된 대안을 평가하는 글이다.

이러한 글을 쓸 때에는 주어진 대안에 대한 개인적 생각을 뒷받침해 줄 논리적인 근거를 드는 것이 중요하다.

더불어 본인이 생각하는 더욱 효과적인 대안을 구체적으로 제시하는 것도 중요하다 하겠다.

그러므로 위의 논제와 관련하여 '논리적인 근거'와 새로운 '구체적인 대안' 즉,논리성'과 '구체성',이 두 요소면 독자를 설득하기에 충분하다.

(가)그 다음의 순서는 희미한데 한 사람,애국애족을 되풀이해서 들먹이는 사람이 있었다.

그 뒤에 등단한 사람이 그것을 꼬집었다.

"이제 막 말한 사람,틀림없이 애국자입니다.

개장국 잘 먹거든요.

또 애족자인 것도 틀림없습니다.

돼지 족발 잘 잡숫거든요."

애국애족한다는 사람이 가만 있을 리가 없었다.

단상에 뛰어올라 꼬집은 자의 멱살을 잡는 난장판이 벌어졌다.

뒤에 알고 보니 사돈끼리라고 했다.

그 다음 차례의 어떤 사람은 자기가 국회의원이 되기만 하면 공출을 없애고 뭣을 없애고 하며 한창 신이 나게 없애 가는 통에 세금을 없애겠다고 나섰다.

"미친놈 다 보겠다"고 내 곁에 있던 영감이 퉁명스럽게 중얼거렸다.

그러자 저편에서,

"이왕 없앨 바엔 국회도 없애 버려라"고 고함이 터졌다.

(중략)

"내 기호는 10,보시오,위에 막대기 다섯 개 밑에도 다섯 개,노름꾼 문자로 5땡이라는 겁니다.

열다섯 사람이 나왔는데 짓고땡이 끗수로선 내가 최고 아닙니꺼. 노름으로 치면 이긴 거나 마찬가지지요.

그런데 여러분이 표를 찍어 주건 안 찍어 주건 나는 국회에 갈랍니다.

내 기술이 목공이요.

책상 하나, 걸상 하나 만들어 가지고 국회에 턱 갖다 놓고 앉아 버틸 참이오. 국회의원 노릇을 한다 이 말씀입니다.

내 아들이 작년 사범학교에 시험을 봤는데 뚝 떨어졌거든요.

그래 책상과 걸상을 만들어 아이놈에게 짊어지우고 학교로 가서 교실 한구석에 턱 갖다 놓고 아들놈 보고 앉으라고 하고 나는 옆에 서 있었습니다.

선생님 보곤 동냥글 좀 배웁시다 했지요.

그랬더니 1주일 만에 보결로 입학시켜 줍디다.

시험에 떨어진 학생을 배짱으로 입학을 시키는디 백성을 돌보는 국회가 괄세를 하겠습니까.

허나 선거에 떨어진 놈이 국회에 가서 옥신각신한다면 우리 고을의 창피가 아닙니꺼. 그러니 그런 창피가 없도록 미리 내게 표를 많이 던져 주십시오. 기호는 10, 5땡이올시다…."

"그 아버지에 그 아들이라고."

하며 곁에 있는 노인이 우리더러 들으라고 씨부렸다.

"저자의 아들은 아버지가 당선되면 나라 일이 말이 아니고 아버지가 낙선되면 우리 집 일이 말이 아니라면서 돌아댕긴다오."

말이 내킨 참인지 그 노인은 또 이런 얘기도 들려주었다.

윤또상이란 입후보자의 아들은 운동원을 트럭에 가득 싣고 거리를 돌아다니면서,

"윤또상 군을 국회에 보냅시다."

하고 선창을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영감의 주석이 또 걸작이었다.

"국회의원도 좋지만 아들놈이 제 애비를 윤또상 군이라고 해? 후레자식 같으니……."

정견 발표회가 끝나자 나와 이광열은 그 노인을 막걸릿집으로 청했다.

거기서 별의별 우스꽝스러운 얘기를 들었다.

돈의 힘,술의 힘,온갖 수단이 쓰여진다는 얘기는 우울했지만 처음으로 겪는 선거라 그런 정도로 되어 가는 것도 반가운 일이라고 우리들은 웃었다.

"저렇게 해서 이루어지는 국회의 꼴이 뻔하기도 하지만."

하면서도 이광열은,

"그러나 로마는 하루 아침에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니까"하고 덧붙이길 잊지 않았다.

-이병주, 『관부연락선』에서

(나)근대국가의 크기는 추첨제도의 폐지를 설명하지 못한다.

규모가 크고 인구 밀도가 높은 국가에서도 커다란 정치 단위로부터 적은 수의 개인을 선발하기 위해 기술적으로 추첨을 사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정치 체제의 크기와 상관없이 추첨을 통해 필요한 숫자만큼의 개인을 선발하는 것은 가능하다.

선발의 한 방법인 추첨은 실행 불가능한 것이 아니다.

실제로,오늘날에도 배심원을 구성할 때 정기적으로 추첨을 사용하는 사법제도가 있다.

따라서 현실적인 문제로 인해 추첨이 아닌 선거에 전적으로 의지하게 된 것은 아니다.

사실상 오늘날에는 추첨의 정치적 사용이 전혀 고려되지 않는다.

오랫동안 추첨은 근대 사회의 정치 문화에서 제대로 평가받지 못했고, 오늘날 우리는 추첨을 괴상한 관습 정도로 여기는 경향이 있다.

물론 우리는 추첨이 고대 아테네에서 사용되었다는 것을 알고 있고,비록 놀랍다는 말투이지만,이러한 사실을 가끔 언급하기도 한다.

실제로 아테네 사람들이 이러한 절차를 채택할 수 있었다는 것은 난해한 수수께끼처럼 보인다.

그러나 세계의 중심을 형성하는 데 일조한 현대 문화의 보편적 관점을 뒤집어 보는 것이 우리에게 도움이 될 수도 있다.

아마도 이렇게 질문해 보는 편이 훨씬 나을 것이다.

"왜 우리는 추첨을 사용하지 않으면서도 우리 스스로를 민주주의자라고 부르는 것일까?" (중략)

아테네 민주정은 민회(ekklesia)가 수행하지 않는 대부분의 기능을 추첨을 통해 선출된 시민들에게 위탁했다.

이 원칙은 주로 집정관(archai)들에게 적용되었다.

아테네 행정부를 구성했던 700명가량의 행정직 중에서 600명 정도가 추첨을 통해 충원되었다.

아테네에서 제비뽑기(kleros) 방식을 통해 선임된 행정직은 대부분 협의체였으며,임기는 1년이었다.

일생 동안 다른 행정직에 임명될 수는 있었지만,동일한 직책을 한 번 이상 가질 수는 없었다.

복무시간표(이전의 직책에 대한 정산과 감사를 모두 마치기 전에 새로운 직책에 취임할 수 없다는 규정)의 존재는 실질적으로 한 사람이 어떤 행정직을 2년 연임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했다.

30세 이상의 시민들(기원전 4세기에 약 2만 명) 중에서 아티미아(atimia : 시민권의 박탈)라는 처벌을 받지 않은 사람은 누구든지 행정직에 취임할 수 있었다.

(중략)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테네 정치체제는 시민들이 미숙하다거나 무능력하다고 판단한 행정관의 선출을 방지하는 제도적 장치를 가지고 있었다.

우선 행정관은 언제나 민회와 시민법정의 감시를 받았다.

임기가 끝나면 결산 보고서를 제출해야 했으며,임기 중에도 시민들이 그들에게 책임을 물을 수 있었고 직무 정지를 요구할 수 있었다.

행정관에 대한 신임을 묻는 것은 최고회의(ekklesiai kyriai)의 필수 안건이었다.

시민이면 누구나 행정관에 대한 불신임 투표를 제안할 수 있었다.

만약 행정관이 투표에서 지면 즉각적으로 업무가 정지되고 사건은 법정에 회부되어 무죄(그 이후에는 다시 업무를 재개할 수 있었다) 혹은 유죄 판결을 받게 된다.

이러한 제도적 장치들은 상식이었기에,모든 시민은 행정관이 되면 직무 결산 보고서를 제출해야 한다는 것,탄핵될 가능성이 늘 있다는 것,소송에서 지면 처벌을 감수해야 한다는 사실 등을 사전에 알고 있었다.

이와 관련하여 특히 주목할 필요가 있는 점은,행정관으로 선출되기를 원하는 사람의 이름만이 추첨기계(kleroteria)에 넣어졌다는 사실이다.

30세 이상의 모든 시민을 대상으로 추첨이 행해진 것이 아니라,후보로 지원한 사람에 한해서만 추첨이 이루어졌다.

-버나드 마넹,『선거는 민주적인가』에서

문제는 지문 (가)에 묘사된 선거의 양상을 고려하여 지문 (나)에 제시된 '추첨'의 대안적 가능성 여부를 논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두 지문 가운데 (나)에 초점이 놓이는 셈이다.

(나)의 내용은 고대 아테네에서 시행됐던 추첨 제도의 요목을 집약적으로 정리한 것으로서 면밀히 숙고할 필요가 있다.

특히 뒷부분에 나와 있는 '미숙하거나 무능력한 행정관의 선출을 방지하는 제도적 장치'에 관한 사항은 '추첨'을 엉뚱하거나 초보적인 제도로 논단할 수 없도록 하고 있다.

추첨의 유효성을 부정하는 견해를 제시하고자 할 때 치밀한 반박 논리가 필요한 상황이다.

이와 함께 지문 첫머리에는 오늘날 배심원 선출에 있어 추첨을 적용하는 사례가 제시되어 있어 그것이 현대에도 하나의 대안이 될 수 있음을 시사하고 있다.

이는 추첨을 한낱 지난날의 제도일 뿐이라고 몰아붙일 수 없게 하는 한편, 오늘날 추첨을 적용한다면 어느 분야에 어떤 방식으로 적용할 수 있을까(또는 없을까)를 고민하도록 하는 조건이 된다.

추첨의 대안적 가능성을 인정하든 그렇지 않든 간에 자료에 대한 정확한 이해와 그에 따른 논리적 판단이 필요한 것이다.

지문 (가)는 지문 (나)에 대한 보조 자료에 해당하는 것으로서,그 내용이 별로 어렵지 않다.

하지만 이 지문 속에도 몇 가지 신중히 고려할 사항이 담겨 있다.

전체적으로 선거의 혼탁상과 난맥상이 묘사되어 있지만,글 뒷부분에 '처음으로 겪는 선거'라는 사실과 함께 앞으로 나아질 수 있다는 전망이 제시되어 있어 선거 자체를 부정하고 있지는 않다.

수험생들은 선거의 난맥상이 여전하며 본질적이라고 하는 쪽으로도,또한 그것이 부수적인 것이며 개선될 수 있다고 하는 쪽으로도 논지를 전개할 수가 있다.

이때 어떠한 문제가 어떻게 이어질 수밖에 없다거나 또는 어떻게 개선 가능하다거나 하는 데 대한 판단을 할 것이 요청된다.

지문의 내용 가운데 선거에 있어서의 '돈의 힘'[금권]이나 '공약(空約)''비방 및 인신공격' 등이 중요한 화두가 될 터인바,이러한 요소를 잘 짚어내 논리정연하게 주장을 풀어나가면 좋은 답안이 될 것이다.

stonlee@megastudy.net

◆파워논술특강이 이번 회를 끝으로 대단원의 막을 내립니다.

그동안 수고해주신 이석록 원장님과 생글생글 독자 여러분의 성원에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