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당한 불평등'은 NO '정당한 불평등'은 YES

롤스의 '정의의 원칙'을 요약하면 '부당한 불평등은 안되지만 정당한 불평등을 수용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부당한 불평등이란 소수의 권리를 무시하는 처사를 말한다. 아무리 소수에게라도 부당한 불평등이 허용된다면,그 사회는 정의롭다고 할 수 없다. 그런데 정당한 불평등이 실제 가능한 걸까? 롤스는 가능하다고 말한다. 불평등 자체가 부정의는 아니기 때문이다. 소수의 불평등자가 그 불평등을 정당하다고 여긴다면 그 사회는 정의롭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4.정의의 제2원칙;차등의 원칙

◆원문읽기

사회적·경제적 불평등, 예를 들면 재산과 권력의 불평등을 허용하되 그것이 모든 사람,특히 그 사회의 최소 수혜자에게 그 불평등을 보상할 만한 이득을 가져오는 경우에는 정당한 것이 된다.

소수자(강자)가 더 큰 이익을 취한다 해도 그로 인해 불운한 사람(약자)의 처지가 더 향상된다면 부정의한 것은 아니다.

부정의는 그보다 더 큰 부정의를 피하기 위해 필요한 경우에만 참을 수 있는 것이다.

▶해설=상식적으로는 이 원칙이 이해되기 어렵다. 강자가 약자보다 더 큰 이득을 취함에도 불구하고 약자에게 그것이 더 이득이 된다는 게 가능한가? 강자가 더 큰 이득을 취할수록 약자가 더 작은 이득을 가질 수밖에 없는 것 아닌가? 평등주의자들은 불평등이란 강자가 약자의 것을 빼앗기 때문에 발생한다고 본다. 하지만 롤스는 불평등하지만 사회적 약자가 큰 이득을 가질 수 있는 경우를 예로 들어 평등주의를 반박한다.

능력이 탁월한 사람의 대표적인 예로 배용준을 떠올려보자. 배용준은 일반인과는 비교가 안되는 액수를 매년 벌어들이고 있다. 평등주의자의 논리에 의하면 배용준은 사회의 불평등을 야기하는 범죄인이다. 그런데 우리 국민 중에 배용준의 불평등한 경제행위를 부당하다고 느끼는 사람은 없다. 왜냐면 배용준은 자신뿐만 아니라 사회 전체에 커다란 경제적 이득을 가져다주고 있기 때문이다.

고려대 2007년 수시1학기 문제는 바로 이 문제를 묻고 있다.

사회제도/ 계층 A B C
㉠ 6 9 12
㉡ 1 10 25
㉢ 5 5 5

A,B,C는 한 사회에서의 각각의 계층을 뜻하며 왼쪽의 ㉢은 사회주의 사회를,㉡은 불평등이 심한 자유주의 사회를 의미한다. 그렇다면 ㉠은 어떤가? ㉠은 불평등의 정도가 덜한 자유주의 사회나 사회민주주의 사회를 뜻한다고 볼 수 있다. 문제에서는 원초적 입장에 선 개인들이 위에서 과연 어떤 선택을 하게 될지를 묻고 있다. 공리주의는 물론 총합이 높은 ㉡을 선택한다. 그리고 정의의 원칙에 따른다면 ㉠과 ㉢ 중에 어느 것을 선택하게 될까? 정의의 원칙을 평등주의로 오인한 많은 학생들은 ㉢을 선택했을 것이다. 하지만 정의의 원칙은 정당한 차등을 허용한다. 그렇다면 ㉠을 선택해야 한다. ㉠의 불평등이 왜 정당할까? 그 이유는 최저 수혜자 계층인 A그룹이 ㉢의 최저계층보다(그리고 최상계층보다) 더 많은 수혜를 받기 때문이다.

그러나 고려대의 이 문제는 사실 매우 심각한 비판도 받고 있다. 현실에서 국가 전체의 국부가 높은 나라의 최하계층이 그보다 하위 사회의 최하계층보다 턱 없이 낮은 복지를 누릴 수밖에 없는 사회는 예외적이라 할 정도로 적다. C계층이 25의 최고 복지를 누리는 사회(㉡)의 최하계층 A는 실제로 대부분 다른 사회의 최하층보다 높은 복지를 누린다. 한국의 접시닦이가 미국의 접시닦이보다 월급이 많다고 상상하기 어려운 것과 같은 이치다.

5.절차적 정의

앞에서 불평등한 사회에서 소수의 불평등자(최소 수혜자)가 그 사회를 정당하다고 여긴다면 그것은 정의로운 사회라 할 수 있다고 했다. 그리고 그 정당한 불평등을 허용할 수 있는 방법이 절차적 정의다. 고스톱 게임을 생각해보자. 고스톱에서 돈을 잃었을 때 우리는 부당하다고 느끼는가? 그렇지 않다. 우리가 부당하다고 느끼는 경우는 돈을 잃었을 때가 아니라 누군가가 속임수를 쓰거나 게임의 진행이 불공정하게 이루어졌을 때다.

그것은 우리가 게임을 시작하기 전 게임의 규칙에 자발적으로 동의했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절차적 정의다. 쉽게 말해 게임의 법칙이 공정하다면 게임의 불평등한 결과 또한 공정하다는 것이다. 롤스는 케이크 나눠 먹기와 도박의 예를 통해 절차적 정의를 설명하고 있다.

◆원문읽기

몇 사람이 케이크를 나눈다고 할 때 공정한 분할을 동등한 분할이라 한다면 도대체 어떤 절차가 이런 결과를 가져올 것인가? 전문적인 방법을 제외하면 분명한 해결책은 어떤 한 사람이 케이크를 자르고 다른 사람들이 그보다 먼저 케이크를 집어 가게 한 후 그는 가장 나중의 조각을 갖는 것이다. 이 경우에 그는 케이크를 똑같이 자를 것인데,왜냐하면 그렇게 해야 자신에게도 가능한 최대의 몫이 보장되기 때문이다. (중략)

순수 절차적 정의가 성립하는 경우에는 올바른 결과에 대한 독립적인 기준이 없으며 그 대신에 바르고 공정한 절차가 있어서 그 절차만 제대로 따르면 내용에 상관없이 그 결과도 마찬가지로 바르고 공정하게 된다. 이러한 경우는 도박(gambling)에서 볼 수 있다. 몇 사람이 일련의 공정한 내기에 가담했다면 마지막 판이 끝난 후의 현금 분배는 내용에 상관없이 공정하거나 적어도 불공정하지는 않을 것이다. 여기에서 가정된 공정한 내기란 이득에 대한 0의 기댓값을 갖는 내기이며,그 내기가 자발적으로 성립되고,아무도 속이지 않는 것이다.

▶해설=이 정도면 절차적 정의가 무엇인지 충분히 이해가 되었을 것이다. 이제는 마지막으로 절차적 정의를 실현하는 조건에 대해 생각해 보아야 한다.

6.원초적 입장(최초의 상황)

떡 세 개를 4명이서 나눠 먹어야 하는 상황을 생각해보자. 우리는 이제 떡을 나누기 위해 어떤 절차를 합의해야 할까를 생각하고 있다. 이 같은 상황을 롤스는 최초의 상황이라고 명명한다. 만일 어느 떡이 가장 맛있는지를 아는 사람이 있다면 공정하게 떡을 나눌 수 있을까? 만일 이 가운데 2명이 형제 사이라서 형이 동생에게 떡을 양보하고자 한다면 4명이 공정하게 떡을 나눌 수 있을까? 현실에서는 이와 같이 각자의 동기와 이해관계가 같지 않은 상황이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 그래서 롤스는 '원초적 입장'이라는 개념적 모델을 통해 이해관계와 심리적 동기를 배제해야만 공정한 게임의 룰을 정할 수 있다고 말한다. 롤스의 원초적 입장에 선 개인들의 특징은 '무지의 베일'과 '상호무관심한 합리성'이라 할 수 있는데 고려대 수시 1학기 문제의 제시문은 이것을 훌륭하게 묘사해 보여주고 있다.

[제시문 나] 사회제도가 아직 형성되지 않은 가상의 집단이 있다. 이 집단의 구성원들은 자신들의 집단에 적용할 사회제도를 합의를 통해 결정하려고 한다.

선택될 수 있는 사회제도는 ㉠,㉡,㉢의 세 가지다. 어떤 사회제도가 실현되든 각 구성원은 동등한 자유와 공정한 기회를 보장 받지만,사회 경제적인 면에서 A,B,C라는 서로 다른 계층 중 하나에 속한다.

각 구성원이 사회 경제적인 면에서 갖게 될 '행복'의 정도는 그가 속한 계층에 따라 결정된다. 이 행복의 정도를 수치로 표현하여 '행복지수'라고 부르기로 한다.

각 사회제도가 실현될 경우 각 구성원이 얻게 되는 행복지수는 다음 표와 같다. ①사회제도를 결정하는 과정에서 각 구성원은 행복지수를 가능한 한 가장 크게 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어떤 사회제도가 선택되기 이전에 각 구성원은 A,B,C의 계층이 가져다 줄 행복지수를 알고 있다. ②그러나 각 구성원은 자신이 어떤 능력을 갖고 있는지,어느 계층에 속하게 될지는 모른다.

이 제시문에서 문장 ①은 상호무관심한 합리성을 설명한 것이다. 상호무관심한 합리성이란 구성원 모두가 합리적 존재로서 자신의 이익은 극대화하고자 하며,타인의 이해관계에 대해서는 무관심하여 서로 간에 시기심이나 동정심 같은 심리적 관심이 없다고 가정하는 동기상의 가정이다.

그리고 문장 ②는 무지의 베일을 의미한다. 무지의 베일이란 구성원 모두가 자신의 자연적 재능과 사회적 지위,그리고 인생 계획의 세목과 더불어 자신의 가치관,소속된 세대 등 특수한 사정들을 알 수 없는 상태에서 정의의 원칙을 숙고하게 된다는 인지적 조건이다. 이 원초적 입장에서는 누구든 자신이 최악의 상황에 떨어질 수도 있다는 조건으로 규칙에 동의하게 될 것이다. 바로 이 점이 영원한 문제다.

이중한 에듀한경 연구원 doodut@eduhankyung.com